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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대왕암의 여명

☞멋진 자연·풍경/멋진 일출·석양

by 산과벗 2006. 11. 14.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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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암의 일출직전 모습..여러번 대왕암을 찾았지만 어제 새벽처럼 멋진
하늘을 본 기억은 없습니다.

오메가나 해무는 어제도 역시나 였지만 황홀한 하늘을 본 것만으로도 감사했었지요

 

자유는 일상의 틀에서 벗어나는 것만이 아니라,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도 얻어지는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몸은 일상에 머물러 있을지라도 생각을 바꾸면,
그 순간부터 몸도 머리도 자유로워지지요.

 새 날의 태양이
잔잔한 바다의 잔물결을 헤치고
갈매기랑 눈맞춤 합니다

 

 높이 나는 갈매기가 멀리 보듯
낮게 나는 갈매기는 자세히 볼 수 있겠지요^^

 

여명의 갈매기는 희망으로 빛나고
흥겨움에 넘쳐 있었습니다.

 

 갈매기들은 바다의 세찬 바람에도
결코 비틀거리지 않습니다.

 공중에서 비틀거린다는 것은
그들에겐 불명예요 치욕일겁니다.

 문무대왕릉 [文武大王陵]

경북 경주시 양북면(陽北面) 봉길리(奉吉里) 앞바다에 있는
신라 문무왕의 수중릉(水中陵).

사적 제158호. 대왕암(大王岩)이라고도 한다.

삼국통일을 완수한 문무왕이 유언으로, 자신의 시신(屍身)을
불식(佛式)에 따라 고문(庫門) 밖에서 화장하여 유골을 동해에 묻으면,
용이 되어 동해로 침입하는 왜구를 막겠다고 하였다.

이에 따라 유해를 동해의 대석(大石)에 장사지낸 뒤,
사람들은 왕의 유언을 믿어 그 대석을 대왕암이라고 불렀다.

이 바위에는 사방으로 수로(水路)를 냈는데,
특히 바다 쪽인 동쪽 수로에서 파도를 따라 항상 맑은 물이 흘러 들어와
서쪽의 수로를 통해 빠지게 되어 있다.

인공을 가한 것이 분명하며, 그 안에는 넓은 공간이 있고
그 한가운데에 대석을 놓았는데, 바다의 수면은 그 돌을 약간 덮을 정도이다.
유골은 이 돌 밑에 안치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신문왕(神文王)은 부왕의 뜻을 이어 동해변에 감은사(感恩寺)를
창건하여 불력(佛力)으로 동해의 왜구를 막으려 하였고,
감은사 금당(金堂) 밑에서 동해를 향해 구멍을 뚫어

조수가 금당 밑까지 들어오게 하여, 용이 된 문무왕이 조수를 따라
금당까지 드나들 수 있으리라 생각하였다.

또 대왕암이 바라다보이는 북쪽 언덕 위에는 이견대지(利見臺址)가 있는데,
신문왕은 이곳에서 대왕암을 망배(望拜)하였다.

대석 밑에 어떤 시설이 있는지 알 수 없으나,
중앙의 장골처(藏骨處)를 중심으로 하여 사방으로 수로를 설치한 것은,
석가의 사리(舍利)를 안치한 탑의 형식을 적용하였다고 볼 수 있답니다.

네이버 제공


 

물안개가 조금 피려다 말더군요

금빛 찬란한 해무를 꿈꾸며 달려갔지만
오늘도 황홀한 해무는 찬바람 파도소리에 묻고
다음을 기약해야 하는 사진가들..

 

 대왕암 자갈밭에서 거세게 몰아치는 찬바람만 맞고
발길을 돌려야 하지만
그래도 그 바다를 잊을 수 없습니다.
다음 월요일..또 도전 할겁니다.

 오징어와 대왕암..
해무를 만나지 못한 사진가를 달래는
소박한 풍경인가 봅니다.


 

사진작가 : 주왕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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