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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여[喪輿] 와 상여[喪輿]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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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과벗 2007. 6. 27.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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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여[喪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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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례 때 시신을 나르는 도구.

상여
행상(行喪)이라고도 한다. 상여라는 말은 19세기 중엽 간행된 한국의 대표적 예서인 이재(李縡)의 〈사례편람〉에 처음 나온다. 〈사례편람〉에 따르면 대여(大與)는 가난한 사람들이 구하기 힘드므로 상여를 사용해도 무방하다고 했으며, 〈세종실록〉·〈순종국장록〉에 따르면 대여는 국장에 사용되는 기구로 쓰였다고 밝히고 있다.
 

상여는 마을마다 공동기금으로 마련하고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상여집(곳집)에 보관했다가 필요할 때마다 썼다. 상여가 낡으면 다시 기금을 모아 장만했다. 상여를 메는 사람은 상여꾼·상두꾼·향도꾼이라 하여 주로 마을공동 품앗이로 이루어진다.
 
상여꾼의 유래에 대해서는 전통시대의 신앙공동체였던 향도(香徒)조직이 조선시대에 들어와 향촌공동체의 기능으로 분화되면서 두레는 공동노동을 담당하고 향도는 상장(喪葬)의 일만을 담당하여 향도조직원들이 상여꾼으로 변한 것으로 본다. 상여의 모양은 가마와 비슷하나 더 길고 몸채 좌우에 밀채가 있어 그 양쪽에 채막대를 가로로 대고 앞채막대 좌우로 2줄씩 끈을 달아 뒤채막대에 붙잡아맨 다음, 중간에 일정한 간격을 두어 멜빵을 좌우로 끼고 사람들이 그 사이에 들어가 어깨로 메도록 되어 있다. 몸채는 단청으로 채색을 하고 네 귀에는 포장을 쳐 햇볕을 가리며 상여 뚜껑은 연꽃이나 봉황새로 장식했다. 상여 중 꽃상여는 채색된 꽃을 달아서 장식하며 일단 산역(山役)이 끝나면 장식들은 태워버린다. 상여꾼들은 걸음을 멈추고 죽은 사람의 넋을 위로하기 위하여 〈상여소리〉를 불렀는데, 상여가 나가기 전날 밤 빈 상여를 메고 풍악과 노래를 하는 상여놀이 풍습도 있었다. 이는 슬픔에 잠긴 상주를 위로하고 현세에서 이루지 못한 행복을 저승에서 이루라는 위로의 놀이였다.

전래만가 [상여소리] 모음

 
꽃상여

 


 

상여[喪輿] 나가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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