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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시트라우스 - 봄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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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과벗 2008. 2. 27.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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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an Strauss 요한 슈트라우스 (1825.10.25~1899.6.3)


오스트리아의 작곡가·지휘자.
‘왈츠의 왕’으로 불리며 ‘왈츠의 아버지’ J.B.슈트라우스의 장남이다.
아버지는 처음 그를 상공학교(商工學校)에 입학시켜 은행업을 배우게 하였으나, 음악에 대한 집념이 강한 그는 아버지 몰래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웠다.
1843년 아버지와 어머니가 별거생활을 하자 이를 기회로 생애를 음악에 바치기로 결심하고 피아노 교수로 생계를 꾸리면서 바이올린 외에 작곡이론을 배웠다.
처음에는 교회음악 작곡에 뜻을 두었으나, 19세 때 시 당국의 허가를 얻어 15인조악단을 조직, 무도회에 데뷔하여 그 자신의 작품 1∼4번의 무도곡을 연주하여 크게 성공하였다.
아버지와의 갈등은 46년에 일단 수습되었으나 그는 아버지의 악단에는 가담하지 않고 자기 악단을 인솔하여 독립 활동을 계속하였으며, 49년 아버지가 죽자 아버지의 악단도 지휘하게 되어, 동생이 악단에 가담하기까 지 수년간 그는 분주한 세월을 보냈다.
62년에는 통칭 예티(Jetty)라고 불린 가수 헨리에테 트레프츠와의 결혼으로 커다란 전기를 맞았다.
78년 아내가 죽자 30세 연하인 릴리 디트리히와 재혼했으나 어울리지 않는 이 결혼은 얼마 후 파탄되고 87년 아델레 도이치와 재혼, 빈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축복받는 만년을 보냈다.



요한 슈트라우스

Strauss, Johann (1825.10.25~1899.6.30) 오스트리아

요한 슈트라우스는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이름을 사용하였는데 보통 아버지를 '왈츠의 아버지'라 하고, 아들을 '왈츠의 왕'이라 부른다. 여기에서 다루는 인물은 아들 요한 슈트라우스이다.

아버지 슈트라우스는 빈 왈츠의 기초를 닦아 아들에게 그것을 계승시켰다. 아들은 아버지에게서 빈 왈츠를 인계 받아 최고조로 발전시킨 사람이다.

처음에 요한 슈트라우스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가 아버지 몰래 아들에게 바이올린과 작곡을 배우게 했다. 그의 뛰어난 음악적 천품으로 인하여 19세때에는 이미 관현악단의 지휘자로서 활약하여 이름을 날렸다.

1949년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아버지의 악단을 인수하여 유럽 각지를 순방하여 그는 명성을 높였다. 30세 때는 러시아의 레닌그라드에 있는 페토로포로프스키 공원의 하기 연주회 지휘자로 10년간계약을 맺기도 했다. 38세 때는 오스트리아 궁정 무도회의 지휘자로서, 45세 이후에는 오페레타를 적지 않게 작곡하였다.
그가 남긴 작품은 500여곡의 왈츠곡을 비롯하여 오페레타 [박쥐][집시남작] 등 16개나 되는 오페레타가 있다. 그는 간소한 관현악법으로 작품을 썼는데 극히 효과적으로 처리하였다. 또 경쾌하고도 친밀감이 있도록 하여 대중의 오락성에 맞도록 했다. 극히 청신하고 건강한 감각을 왈츠에 담아 왈츠의 수준을 크게 높인 것이다.

본래 왈츠는 17~18세기 경부터 빈의 궁전에서 추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후 여러 갈래로 발전되어 오늘에 이른 것이다. 빈 왈츠의 특징은 특히 반주부에 나타나는데 제2막 즉, 둘재 박자를 약간 단축시키고 제 3박을 제 1박으로넘어 가듯 연주하여 미묘한 싱코페이션을 느끼게 한다.

 

 

요한 시트라우스 - 봄의소리  

소푸라노 : 매디 메스풀
봄의 느낌을 주는 가볍고 밝은 왈츠로 섬세하고 아름답운 곡으로 봄을 맞이한 기쁨을 나타내 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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