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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 김홍도의 작품세계

☞墨香·古書畵/古서화·풍속도

by 산과벗 2018. 7. 11.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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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간]

 

풀무에 바람을 넣는 견습생, 달군 쇠를 모루 위에 대주는 사람,

쇠를 모양에 맞게 쇠망치로 내리치는 사람,다 만든 연장을 숫돌에 가는 사람 등

 대장간에서 일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한참 바라보고 있으면 즐거운

금속음이 들리는 듯하다.

 

 

[고기잡이]

 

당시의 어촌의 고기잡이 모습이 잘 살아 있다.

울타리처럼 쳐져 있는 것이 울짱인데 울짱은 주로 떡갈나무나 소나무를

이용하여 물이 앝은 바다나 산발치가 바다로 들어간 섬의 모래벌 가에 빙둘러 세운다.

울짱의 귀퉁이에는 물살에 따라 물고기가 들어가긴 해도 나오지 못하는 임통을 설치하고

조수물이 들어오면 물고기가 거기에 갇히게 되고 그 물고기를 가지러 어부들이 배를

나눠타고 임통 안으로 들어가 물고기를 떠서 배에 저장한다고 한다. 그림에서 보면

울짱에서 물고기를 건져 배에 건네는 사람도 보이고, 중간의 배에는 아마도

물고기를그 자리에서 조리하는 듯이 보이는 솥단지가 보인다.

 

 

[기와잇기]

 

대패질하는 목수, 수평을 맞추는 사람, 흙을 개어 올려주는 사람,

기와를 던지는 사람, 기와를 받는 사람 등 분업이 잘 이루어진 기와이는

 현장이 그대로 표현되었다. 작업 현장 옆에는 아마도 주인인듯 보이는 양반이

일을 잘하나 감시하듯이 긴 작대를 들고 지켜보고 있는듯..

하지만 누구 하나 그 양반에게 신경을 쓰는 사람이 없이 저마다 자기 일에 열중이다.

단원의 노동현장 작품이 좋은 이유는 노동의 즐거움이 그들의 표정에,

근육과 몸동작에 생생히 살아 있기 때문이다.

 

 

[길쌈]

 

이 그림에는 길쌈의 도구들이 자세히 나타나 있어 당시 서민의 생활사를 연구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화면은 2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상단에는 베매기를 하는

여인의 모습이 보이고, 하단에는 배짜기를 하는 여인과이를 지켜보는 할머니,

등에 업힌 아이, 서 있는 아이가 보인다.

익살스러운 단원의 필치가 엿보이는 것은 마치 뒤에 서 있는 할머니가 베짜는 여자의

시어머니인듯,손자에게 시켜 며느리에게 뭔가 지시하고 있는 듯하다.

손자는 무슨 말을 하고 있을까? 아마

"엄마, 함니가 좀더 빨리 하래?" 눈치도 없이 이런 말을 한 건 아닐까? ㅋ

 

 

[논갈이]

 

봄이 되었다. 논을 갈아 한해의 농사를 준비하는 농부들의 손길이 바쁘다.

소들의 육중하고 힘 있는 움직임에 굳었던 논바닥이 부슬부슬 일어나 흙들이 부드러워진다.

웃옷을 벗어던지 농부의 팔뚝에 힘이 들어가 근육이 생생히 보이고 거기에 땀방울이 맺힌다.

쨍그랑 쨍쨍~ 쟁기 부딪히는 소리가 날 것 같은 느낌, 경쾌하고 약동하는 농촌풍경이다.

 

 

[담배썰기]

 

이 그림은 무더운 여름 어느 날 방 안에서 담배를 써는 풍경을 그리고 있다.

이 그림에도 두 부류가 나타나는데

왼쪽 상단의 작두질 하는 사람과 오른쪽 아래의 담뱃잎을 정리하는 사람은 일하는 부류

(아마도 아랫사람)이고,오른쪽 상단의 작두질을 구경하는 사람과 왼쪽 하단의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은 아마도 이 일을 시킨 주인네들인 것 같다.

 

일하는 두 사람은 웃옷을 벗어젖히고 무더위를 이기며 일을 하고 있고

주인은 부채질을 하며 책을 읽고 있다. 작두질을 구경하는 젊은 청년은 주인의 아들인가?

김홍도의 그림에는 종종 이렇게 노사가 함께 나오는데 분위기는 아주 평화롭고 밝다.

즐겁게 일하는 노동자와 그들을 착취하지 않는 사주의 모습이랄까?

요즘 노동분쟁으로 시끄러운 회사들은 노사 막론하고 단원의 풍속화 속에

나타난 모습에서 배워야 하는 게 아닐까?

 

 

 [행상]

 

부부로 보이는 행상 가족의 모습이다.

당시 행상은 여러 지방을 돌아다니며 물품을 파는 상인을 말하는데 아무래도

돌아다니며 장사를 하다보니 행색이 남루하다. 낡은 벙거지에 나무통 지게를 진

남자와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아이를 업은 여인은 서로 행상을 떠나기 위해

헤어지려고 하고 있는 듯하다.

뭔가 아쉬움과 염려의 눈길로 아내에게 이런 저런 당부를 하고 있는 남편과

몸조심하라고 여러번 말하는 아내의 정이 느껴진다. 아이를 업고 저고리를 입은

엄마는 아이를 긴 행려에서 조금이나마 보호하려는 모심을 보이고 있고,

질끈 행전을 묶은 바지차림과 치마를 걷어올려 허리춤에 끈을 묶은

 모습에서 노곤한 행려의 길을 떠나는 모습이 역력하다.

 

 

[벼타작]

 

쉴 새 없이 일하는 농부들의 숨가뿐 움직임이 그대로 묘사된 그림이다.

힘은 들지만 일 년 동안 애쓴 보람의 수확을 하는 이 순간 농부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만연하다.

한 짐 타작할 벼를 지게에 지고 오는 사내의 웃음 띤 얼굴, 벼를 힘껏 들어 올려 탁탁 치느라

 얼굴이 힘이들어간 남자의 표정, 바닥에 떨어진 알곡들을 쓸어 모으는 사람, 타작벼를 묶는 사람

모두 재미있다. 뒤에는 주인쯤 되보이는 양반이 돗자리에 비스듬이 누워 긴 곰방대를 물고

에헴~ 거드름을 피고 있다. 돋자리 옆에 놓인 술병과 잔, 벗어 놓은 고무신까지

단원의 세심한 관찰이 그대로 보인다.

 

 

[빨래터]

 

이 작품은 꽤나 잘 알려진 단원의 작품 중 하나인데

바람의 화원에서도 이 장면이 묘사되어 나왔다.

팔다리를 걷어붙이고 편편한 돌판을 빨래판 삼아 방망이를 두들기며 동네 사람들

이야기에 여념이 없는 두 여인,흐르는 물에 훨훨 빨래를 흔들어 헹구며 짜내는 여인,

감은 머리를 손질하고 있는 여인과 그 옆에서 보채는 아기,바위 뒤에서 몰래 숨어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여인들을 엿보고 있는 한량의 모습이 익살스럽다.

특히 이렇게 여인을 엿보는 장면처럼 춘의가 담긴 작품은 신윤복이 즐겨 그리는

스타일로김홍도의 풍속화에서는 잘 볼 수 없는 이색적인 시각이다.

  

 

[우물가]

 

우물가란 그 마을의 모든 스캔들의 근원지이고 전달지이다.

갑돌이와 갑순이가 어쩌구저쩌구 했다네~ 하는 여인들의 입방아에서부터

물 길어올리는 여인에게 슬쩍 접근하여 작업거는 남정네까지 마을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이 도마에 오르는 곳이기도 하다.

이 그림에서는 더위와 갈증에 지친 남정네가 옷고름을 풀어헤치고 갓을 벗어 걸치고

가슴털을 드러내며 여인에게 물 한모금을 청하자 여인은 수줍은 듯이 얼굴을 돌리고

물을 건네고, 이 우악스런 선비는 왈칵왈칵 물을 흘리면서 거침없이 마셔댄다.

물을 한동이 머리에 이고 바가지를 손에 들고 치마를 걷어붙인 채 걸어가는

여인의 모습도 보인다.

 

 

[자리짜기]

 

방 안에서 돗자리를 짜고 있는 남편과 물레를 돌려 실을 잣고 있는 아내,

그 뒤편에서 책을 펴놓고 글자를 막대기로 짚어가며 글을 읽고 있는 아들.

모두 각자의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평범하고 푸근한 한 가족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장터길]

 

김홍도의 풍속화첩에 두 페이지에 걸쳐서 실린 작품이다.

장터에서 물건을 다 팔고 돌아가는 길인 듯, 말을 탄 사람들의 행장이 가볍다.

삿갓을 쓰거나 갓을 쓴 사람도 보이지만 거의 맨머리 차림이 많고 바지에는

행전을 둘러 말을 타고 활동하기에 편하도록 복장을 했음을 알 수 있다.

  

 

[편자박기]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설명無) 


활 쏘 기

자 리 짜 기

서 당

점 괘

행 상

  벼 타 작 

대 장 간

노 상 과 안

씨 름

장 터 길

논 갈 이

나 룻 배

신 행

고 누 놀 이

편 자 박 이

주 막

기 와 이 기

고 기 잡 이

점 심

우 물 가

서 화 감 상

빨 래 터

담 배 썰 기
 


 

단원 김홍도의 생애와 작품세계

 

김홍도는 본관은 김해이며, 자를 사능(士能), 호를 단원(檀園), 단구(檀丘),

서호(西湖)라 했던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화원 화가이다. 18세기 영·정조시대에

학문과 예술의 향기로 가득 차 있던 안산에서 태었났다.

 

김홍도는 7∼8 세부터 20여세까지 이곳 안산에서 표암 강세황 선생으로부터 그림과

글 수업을 받았으며 그의 천거로 도화서 화원이 되었다. 이렇게 어릴 때부터 그림에

천재적인 소질을 보여 주었던 단원 김홍도는 후에 어진 화가로 대성하여 그 명성을

전국에 떨쳤다. 산수화, 도석인물화, 풍속화, 화조화 등 여러 방면에 걸쳐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여 당대부터 이미 크게 이름을 떨쳤다.

 

29세인 1773년에는 영조와 왕세자의 초상을 그렸고, 그로 인하여 벼슬길에 올라

여러 관직을 거쳐 충청도 연풍 현감까지 지냈다.

 

그는 외모가 수려하고 풍채가 좋았으며 또한 마음이 넓고 성격이 활달해서 마치

신선과 같았다고 한다.

그는 산수화, 도석인물화, 풍속화, 화조화 등 여러 방면에 걸쳐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여

당대부터 이미 크게 이름을 떨쳤다.

 

1788년 스승 김응환이 왕명으로 일본 지도를 그리러 갈 때 그를 따라가 김응환이

부산에서 죽자 홀로 쓰시마에 가서 일본지도를 모사해 돌아왔다.

1796년 왕명으로 용주사의 <부모은중경>삽화를 그렸으며, 97년 나라에서 간행한

<오륜행실도(오륜행실도)>의 삽화를 그렸다.

 

한국적 정취가 짙게 풍기는 그의 작품은 강한 먹선의 강조와 부드럽고도 조용한

담채의 밝고 투명한 효과, 탁월한 공간구성으로 대단히 높은 경지의 예술적 성취를

이루었다.

 

그의 산수도에서는 실경을 소재로 단원법이라 부를 만큼 세련되고 개성이 강한

독창적인 화풍을 이룩하였다. 산수뿐 아니라 도석 인물화에서도 특이한 경지를

개척하였다. 굵고 힘찬 옷 주름과 바람에 나부끼는 옷자락, 그리고 티없이 천진한

얼굴 모습 등도 특징적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를 돋보이게 하는 것은 역시 풍속화이다.

풍속화는 서민사회의 생활정서와 농(농) 상(상) 공(공) 등의 생활정서를 주제로

하여 그들의 생활모습을 원형구도를 써서 익살스럽고 구수한 필치로 그린, 일종의

사회풍자를 곁들인 작품이다.

그의 화풍은 아들인 김양기를 비롯, 조선 후기와 말기의 화가들에게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

 

모두 25점으로 이루어진 《단원풍속화첩》에는 당시 사람들의 삶이나 사회상이

한국적 해학과 정취가 곁들여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담고자 하는 핵심을 집약하려는 듯 그의 풍속화는 대체로 배경을 생략하고, 꽉 짜인

원형 구도를 이루며 간략한 선의 묘미가 잘 나타나 있다. 주제는 서민들의 소박한

일상 생활을 꾸밈없이 표현하고 있으며, 이러한 주제에 어울리게 거친 듯하면서도

투박한 선을 쓰고 있다.

 

김홍도는 풍속화를 잘 그리기로 일반에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남종화, 평생도,

신선도, 풍속화, 진경산수, 초상화 등 전반에 걸쳐 탁월한 기량을 보였다.

그 중에서도 산수화는 그의 예술세계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이다.

김홍도의 산수화 배경은 당대에 유행하고 있던 남종화풍을 바탕으로 우리 나라

산천의 아름다운 산수풍속의 서정을 잘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고,

그가 44세 되던 해에 정조의 명을 받고 복헌 김웅황과 함께 금강산에 있는 4개 군의

풍경을 그린 것을 계기로 하여 그의 독자적인 산수화를 확립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때 김홍도가 실제 경관을 사생(寫生)한 것이 금강산 사군첩인데 여기에서 우리나라

화강암 돌산과 소나무가 있는 토산을 표현하는 적절한 묘사법을 터득하여 나뭇가지에

물이 오르는 모습을 경쾌하게 묘사한 수지법이 완성되었다.

 

그의 산수화는 여백을 적절히 남기면서 대상을 압축하는 밀도 있는 구도법과 형상을

집약해서 표현해 내는 묘사력, 그리고 운치 있는 운염법 등으로 김홍도의 산수화는

진경산수와 남종문인화가 하나로 만나는 높은 예술적 경지를 보여주었다.

그가 이룩한 속화 양식은 같은 시대의 긍재 김득신, 혜원 신윤복에게도 크게 영향을

끼쳤으며 그의 후배들이 그대로 추종하여 그의 아들인 긍원 김양기, 임당 백은배,

혜산 유숙, 시산 유운홍 등에 의해 계승되었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정승 벼슬자리하고도 바꾸지 않는다는 삼공불환도와

한국적인 해학과 정취가 가득 찬 25면으로 구성된 풍속화점, 말을 타고 가다가 꾀꼬리

소리에 멈추었다는 마상청앵도(馬上廳鶯圖)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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