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설악산 오세암 이야기

☞산사를 찾아서/독경·자비

by 산과벗 2006. 2. 4. 09:20

본문

5세 동자의 순진무구함이 서린 암자

설악산 오세암

  
▲ 오세암 우측 산 위에 우뚝한 불두암(佛頭岩)을 보니 다시금 오묘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연이 만들어 낸 기암의 하나겠지만 뉘엿뉘엿 석양을 등지고 있는 바위는 영락없는 부처님 형상이기에 두 손을 합장케 한다.
ⓒ2003 임윤수


살며 살아가며 겪게되는 온갖 풍상은 심신을 피곤하게 하고 자연스레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훌쩍 먹어버린 나이에 아랑곳없이 가끔은 동심의 아가가 되어 따뜻하게 기억되는 어머니의 품에 안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세파에 지친 몸과 마음을 어머니 같은 마음으로 보듬어 줄 그런 휴식공간과 여유가 필요하다면 설악산 오세암(五歲菴)엘 가보라고 말하고 싶다.

 

모시적삼을 곱게 차려입은 어머니 같은 백의의 관음보살이 있고 동색의 무구함으로 심신을 넉넉하게 해 줄 오세(五歲)동자가 그곳에 있다.

'어린이는 곧 어른의 스승'이며 '어머니의 사랑은 가이없다'란 말들을 한다.

과연 어린이의 무엇이 어른을 가르칠 수 있단 말인가? 해박한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며 풍부한 경험에서 터득한 지혜가 있는 것도 아닐텐데 무엇을 배우란 말인가.

 

출세욕과 명예욕 그리고 재물욕과 같이 잡다한 허욕에 사로잡혀 권모술수에 익숙한 어른들의 눈에는 아가들이 가지고 있는 순수한 마음이야말로 가장 큰 가르침이며 번뇌로부터 해탈케 할 구원의 손길임을 알리 없다.

▲ 멀리보이는 기암의 산하가 오세암을 향하여 다가서는 듯 하다.
ⓒ2003 임윤수


아가들은 배고프면 밥 달라 보채고 더러운 것을 보면 거짓없이 더럽다 말한다.

 

예쁜 것을 보면 예쁘다 말하고 못생긴 것을 보면 못생겼다 말하지 상대방의 비위나 맞추려 거짓으로 예쁘다고 말하지 않는다.

어린이의 이런 솔직함은 때묻지 않은 순수한 마음에서 시작된다. 그 순수함은 어른들이 잃어버린 가장 큰 자산이며 꼭 되찾고 다시 배워야 할 덕목중의 하나인 셈이다. 그러기에 어린이의 동심이야말로 부처님 마음이라고 한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많고 많은 사랑 중에 어머니가 자식에게 베푸는 사랑만큼 위대하며 무조건적 사랑은 없다.

 

그리고 남편을 향한 내조만큼 헌신적인 사랑도 없다. 세상 모든 어머니들의 자식에 대한 사랑이 그러하겠지만 특히 한국 어머니의 사랑과 내조는 가이 없어 으뜸중의 으뜸이다.

그런 어머니의 사랑과 아가의 무구함을 근간으로 백담계곡에 도량을 이루고 있는 암자가 바로 오세암(五歲庵)이다.

 

백담사를 지나 계곡으로 들어서면 세 개의 암자가 있다. 제일 먼저 만나는 암자가 영시암이며 이곳에서 봉정암과 오세암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뉘어진다.

▲ 오세암이란 편액이 마음을 맑게한다.
ⓒ2003 임윤수


계곡을 따라 곧장 올라가면 봉정암이며 영시암에서 좌측으로 방향을 잡으면 오세암으로 가는 길이 된다.

 

어찌 되었던 조금 더 발품을 팔면, 봉정암을 들렸다 오세암으로 오던, 오세암을 들려 봉정암으로 가던 한번의 산행으로 영험 가득한 심산유곡의 세 암자를 전부 참배할 수 있다.

백담사에서 영시암까지는 대략 1시간 정도 소요되며 산책로처럼 평탄한 산행 길이다.

 

영시암에서 곧장 봉정암으로 오르는 행로는 상당히 완만하며 순탄하다.

 

계곡과 함께 하는 그런 산책로 같은 길이 계속되다 봉정암에 거의 다가가서야 급경사가 시작되는 그런 코스다.

 

그러나 오세암을 들려 봉정암으로 가는 길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는 산행길로 정말 만만치 않은 코스가 된다.

필자는 당일에 봉정암엘 먼저 들려 참배하고 하산길에 오세암엘 들리는 좀 팍팍한 일정으로 산행을 강행하였다.

봉정암 오층석탑(사리탑) 우측으로 조금 올라 우뚝 솟은 바위에 오르니 설악의 기암괴석들이 발아래 도열하니 '와!'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봉정암엘 들리는 사람들은 이곳엘 꼭 올라보라고 권하고 싶다.

 

힘에 겨워 몇 걸음 더 걷는 여유를 잃게 된다면 눈앞에 펼쳐질 장관도 함께 잃게되니 꼭 한번 서보라고 권하고싶다.

▲ 기암괴석을 배경으로 한 오세암 전각들이 영험해 보인다.
ⓒ2003 임윤수


멀리 보이는 속초와 동해의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한 기암의 설악 군봉들이 점점 가까워지며 한 폭의 웅장한 산수화로 감명의 울렁임을 만든다.

 

자연과 조물주의 걸작이라 할 설악의 유곡들이 발아래 즐비하고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봉안된 성지에 오르니 주변의 풍광들에 질기도록 함께 하던 마음속 번뇌의 티끌들조차 절로 사그라지는 듯하다.

우뚝한 기암을 양옆으로 고행의 흔적처럼 생겨 난 하산로를 따르면 오세암엘 갈 수 있다. 말이 하산길이지 절벽과 다름없다.

 

두발 가진 인간이지만 이 절벽을 오를 땐 네발 가진 짐승이 되지 않으면 안될 듯 싶다. 앞발이 된 두 손으로 움켜쥔 코앞의 절벽은 겨우 한 두 뼘 정도로 눈에 바싹 와 닿는다.

이렇게 이어지는 만만치 않은 하산길은 내내 숲 터널을 이루고 있다. 완급이 반복되는 이런 하산길엔 오르내림이 반복되는 몇 개의 고개를 넘어야 한다. 그렇게 3시간쯤 내려오니 울창한 나무 사이로 청기와의 오세암이 보인다.

오세암엔 여느 절들과 달리 금빛 찬란한 불상이 보이지 않는다. <천진관음보전>이란 편액이 걸려있는 전각으로 들어서면 정면에 백의(白衣)의 관음보살상이 있고 안쪽으로 아기동자상이 있다.

▲ 백의의 관음보살상에서 위대한 어머니의 사랑과 자애로움이 느껴진다.
ⓒ2003 임윤수


보전에 들려 참배하고 종무소엘 들려 스님을 찾으니 영운스님이 반갑게 맞아주신다. 여염집 사랑방처럼 아담한 종무소에서 차 한잔을 건네시며 오세암의 창건사와 설화를 이야기하듯 들려 주신다.

오세암은 644년, 신라 선덕여왕 13년, 자장율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관음보살의 진신을 친견한 자장 율사가 절을 창건하고 관음보살이 언제나 상주하는 도량임을 알리기 위해 절 이름을 관음암(觀音庵)이라 부르니 오늘날 오세암이 시작된 것이라 한다.

관음암이라 불리던 절 이름이 오세암으로 바뀐 것은 1643년(인조 21)에 설정(雪淨)스님이 중건한 다음부터라 한다.

 

절 이름이 관음암에서 오세암으로 바뀐 배경에는 정말 전설 같은, 5세 동자에 얽힌 유명한 관음영험설화가 있으며 중창과 깊은 연관이 있다고 한다.

관음암에서 수행 중이던 설정스님은 형님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고아가 된 조카를 암자로 데려와 기르게 되었다.

 

아이의 나이가 5살 되던 해, 겨울이 막 시작되는 10월 하순 어느 날 스님은 산사의 월동준비로 양양의 물치 장터를 다녀오기 위하여 암자를 비울 수밖에 없었다.

▲ 순진 무구함으로 성불한 5세동자상이 마음을 혼탁한 마음을 맑게 해 줄듯하다.
ⓒ2003 임윤수


오세암에서 양양의 물치 장터까지는 빠른 걸음으로 다녀와도 족히 이틀은 걸리는 장도였다. 그 이틀 동안 혼자 있을 다섯 살 짜리 조카를 위하여 스님은 그 기간 동안 아이가 먹을 만큼 밥을 짖고 반찬을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스님은 아이를 불러 무릎에 앉히고 법당 안의 관음보살을 가리키며, "내가 다녀오는 동안 이 밥을 먹고 있으며 저분을 어머니처럼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이라 불러라 '그러면 저 분이 너를 보살펴 줄 것이다'"라고 일렀다.

5살의 어린 조카에게 이렇게 신신당부를 하고 설정스님은 관음암을 내려와 물치 장에 들려 겨우살이를 포함하여 이 것 저 것을 구입한 후 신흥사에 들려 하루를 묵게 되었다.

스님은 다음날 조카가 기다리고 있을 관음암으로 돌아가려 일찍 일어났으나 밤샌 폭설로 엄청나게 쌓인 눈 때문에 도저히 암자로 돌아갈 수 없었다.

 

스님은 어쩔 수 없이 그곳에서 머물 수밖에 없게 되었다. 스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야속한 눈은 그 뒤에도 그치지 않고 계속 쌓여만 갔다.

▲ 여신도나 여자등산객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이 꽤나 넉넉해 보인다.
ⓒ2003 임윤수


눈에 생기는 발자국의 깊이가 깊어질수록 혼자 있는 조카에 대한 걱정으로 스님의 애간장은 점점 녹아 내릴 듯 간절하다 못해 시커멓게 타들어 갔다.

 

잠도 제대로 잘 수 없고 먹는 것도 제대로 먹을 수 없었지만 워낙 많이 쌓인 눈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엄동설한 폭설에 혼자 남겨둔 조카가 어떻게 됐을까'하는 생각만이 화두처럼 온몸을 감싸고 돌았다. 스님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부처님께 조카의 무사를 서원하는 기도를 열심히 드리는 일 뿐이었다.

이렇게 고통스런 몇 며칠을 보내다 도저히 안되겠다는 생각에 억지로라도 관음암으로 돌아 가려하니 사중의 모든 스님들이 말렸다.

 

'이러 폭설에 길을 나서면 죽을 게 뻔한데 왜 가려고 하느냐'며 적극 만류하여 결국 스님은 눈길이 트일 때까지 신흥사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에도 무정한 시간은 유수처럼 흘러 어느덧 봄이 오고 눈이 녹아 산길이 트이게 되었다.

서둘러 바랑을 챙긴 스님은 뜀박질을 하듯 달려 암자에 들어섰다. 암자에 들어서니 죽었을 것이라 생각하였던 아이가 목탁을 치면서 가늘게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있었고 방안은 훈훈한 기운과 함께 향기가 감돌고 있었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조카가 살아있다는 반가움에 스님은 어쩔 줄 몰라했으며 어찌된 것이냐고 물으니 조카는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 어머니가 언제나 찾아와서 밥도 주고 재워도 주고 같이 놀아도 주었어요'라고 답을 하였다.

 

그러자 갑자기 환한 백의여인이 관음봉으로부터 내려와 동자의 머리를 만지면서 성불의 기별을 주고는 한 마리 푸른 새로 변하여 창공으로 날아가 버렸다고 한다.

▲ 갈증을 달래 줄 감로수가 넉넉하게 흐르고 있다.
ⓒ2003 임윤수


놀란 스님은 마음을 가다듬고 부처님 전에 큰절을 올리고 조카를 안아 보려 하자 품에 안기지도 않은 채 조카는 그대로 사그라져 승천을 하였다 한다.

 

나중에 살펴보니 법당 경상에 놓여 있던 책장이 스님이 집을 비운 딱 그만큼의 날짜만큼 찢겨져 나가있었다. 부처님의 신통력으로 종이 한 장으로 그날 하루를 지내게 되었음을 짐작케 한다.

모든 것을 목격한 설정 스님은 다섯 살 어린 조카가 맑고 무구한 마음으로 삼촌인 스님이 시키는 대로 무념무상의 '관세음보살'을 계속하자 관음보살이 감응하고 그 가피로 영생불멸의 길로 접어든 것을 알게 되었다.

비록 5살 밖에 안된 동자였지만 그 순진 무구한 마음이 동자를 성불케 하였으며 이 도량에 관음보살의 영험이 있음을 길이 전하기 위해 관음암을 중건하고 절 이름을 오세암으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영운스님께서는 이런 설화를 들려주시면서 몇 가지 당부의 말씀도 잊지 않으셨다. 많은 사람들이 오세암을 찾는다고 한다.

 

그 중에는 불자도 있으나 산행을 하다 잠시 들리거나 하루를 묵게되는 등산객의 경우도 많다고 한다.

산이 좋아 산을 찾으면서 자연의 현신인 산을 사랑할 줄 모르고 환경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어 마음을 서글프게 한다고 한다.

 

오세암이 불자에겐 기도처가 되고 산행에 지친 등산객에겐 구원의 공간이 되어 잠자리도 마련해 주고 먹거리도 제공해 주고 있다고 한다.

▲ 전각의 처마에 걸리듯 우뚝한 바위에서 설악의 기가 느껴진다.
ⓒ2003 임윤수


상수원의 발원지라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기에 오세암에선 비누와 샴푸 등의 화학세제를 쓰지 말라고 한다.

 

그런데 일부 사람들은 스님들의 부탁에 아랑곳하지 않고 화학제품을 펑펑 써가며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는다고 한다.

스님은 말씀하신다. 헝클어지고 겉으로 드러난 먼지나 땀 자국은 물로만 씻어도 충분하니 마음의 때나 열심히 씻으라고. 산세의 좋은 기와 명경수 같은 맑은 물에 세파에 찌들고 잡다한 욕심에 번득이던 마음이나 깨끗하게 씻으라 말씀하신다.

 

몰래 화학세제로 얼굴 닦고 머리감는 것은 마음에 또 하나의 업을 만들지만 조금 더러워 보여도 환경을 생각하며 화학세제를 쓰지 않는 것이야말로 마음을 닦는 선이라고 하신다.

도량에서 금하는 화학세제를 몰래몰래 사용하는 사람은 비록 얼굴이 깨끗해 보여도 영혼에서 악취가 나고 비록 얼굴이 거칠고 머리가 푸시시해도 화학세제를 사용하지 않은 사람들은 맑은 영혼에서 품어져 나오는 향기로운 사람 냄새가 날 것이라 하신다.

어렵고 힘이 들 때는 어머니의 사랑처럼 크고 간절한 관음보살의 가피가 머물고 오세동자의 순진 무구함이 서린 오세암을 찾는 것도 좋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을 때는 집에서라도 기도하는 마음으로 인내력을 기르라고 하신다.

 

부처님께 지성을 다해 기도하는 마음은 어머니의 내조력 같은 힘과 사랑이 되어 세파를 극복할 힘과 용기를 주실 것이라 하신다.

스님이 알려주시는 산 위에 우뚝한 불두암(佛頭岩)을 보니 다시금 오묘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연이 만들어 낸 기암의 하나겠지만 뉘엿뉘엿 석양을 등지고 있는 바위는 영락없는 부처님 형상이기에 두 손을 합장케 한다.

▲ 오세암에서는 태양열집진기를 이용하여 최소한의 전기를 자급하고 있다.
ⓒ2003 임윤수


스님으로부터 동화 같은 설화와 좋은 말씀을 듣다보니 산 그림자가 길어진다. 내려가겠노라 인사를 드리니 '어둔 밤길 조심하라' 하시며 사탕을 한 주먹 건네신다. 오세암엔 오세동자가 모셔진 탓에 불자들이 공양물로 사탕을 많이 올리기에 사탕은 항시 넉넉하다고 말씀하신다.

마음이 혼잡해 지고 삶의 무게가 무겁다고 느껴지면 다시 찾으려한다. 그리고 오세동자의 맑은 눈으로 자아를 돌이켜 보고 싶다. 정말 방하착(放下着)하려 노력하느냐고.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