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북한작가 그림

☞옛날·풍속·풍물/북한풍경·사진

by 산과벗 2006. 2. 25. 18:36

본문

북한미술은 김일성 지시의 결과물?
김의관 <남강마을의 여성들>

△김의관, <남강마을의 여성들>


북한미술에 대한 오해 중 가장 큰 부분은, 북한 미술은 김일성, 김정일의 지시를 수동적으로 반영한 결과물이라는 이해이다. 정말 그러할까? 사람들이 살아가는 조직에서 한 명의 절대 권력자의 지시가 언제나 일사불란하게 관철되는 것이 가능할까? 그것도 예술분야에서. 이런 질문들을 갖게 된다.

어떠한 다른 의견이 밑에서 제시되고 그것이 정책적으로 반영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을까? 반론이란 불가능한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예술작품을 고민하고 생산하는 미술이라는 장르에 대해 고민하면서 처음 품었던 나의 궁금증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북한미술계 안에서도 논쟁이 있었고, 토론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흔적은 발견된다는 점이다. 남한 땅에서 북한미술을 연구하는 많은 자료적 한계 속에서, 이번 북한미술 연재를 통해서 이야기해 보고 싶은 또 하나의 화두가 이것이다.

김일성주의 미술론 성립

이를 위한 여행을 떠나기 전에, 노파심에 조금 더 짚고 넘어가자면, 남한 미술계를 읽듯이 북한 미술계를 읽으려 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논쟁을 할 때에도, 직접적으로 권력자의 견해를 반대하기 어려운 사회에서, ‘반대’라는 용어 대신 어떠한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지, 직접적인 반대 대신 어떠한 논리적인 수사법을 사용하고 있는지, 각 문장의 행간을 읽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다행히도 미술은 시각 언어이기 때문에, 문자 언어로서는 조심스럽게 진행된 논쟁이 결론적으로 시각 언어로 드러날 때에는 보다 명확하게 드러나게 된다. 물론 지난 시간에도 언급했던 것처럼, 북한 사회에서 미술이라는 장르는 인민들을 교양해내기 위한 선전 선동 매체임에는 틀림없다.

따라서 ‘인민’이라고 불리우는 북한 사회 대중들을 선정 선동해내기 위해서 미술가들은, 각 계층을 정서적으로 공감하고 감동시키기 위해 내용 뿐만 아니라 조형언어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이를 위한 창작방법론에 대해서는 북한미술계에서도 논쟁하고 토론하여 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 김일성주의 미술론, 김정일주의 미술론이 성립되었다.

<남강마을의 여성들>은 김일성시대 미술론을 대표하는 작품 중의 하나다. 첫 연재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우리들이 쉽게 떠올리는 북한의 회화 작품들에 대한 인상, 즉 이발소 그림과 아슬아슬한 경계선을 갖고 있다고 심정적으로 느끼는 북한미술 작품들은 김일성주의 미술론을 토대로 하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김일성주의 미술론이 어떠한 역사적 결과물이었는지 이해하고, <남강마을 여성들> 감상을 통해 그 예술적 가치를 느껴보고자 하다.

△김의관, <남강마을의 여성들> 부분


새로운 조선화 탄생

<남강마을의 여성들>은 화가 김의관이 1966년 제작한 조선화다. 총과 볏짚을 진 여성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하거나, 좌우를 살피며, 하나 가득 볏짚을 진 소를 몰고 강을 건너고 있는 장면이다. 화면은 중심에 총을 쥔 여성에 감상자의 시선이 집중되도록 구성되어 있다. 세밀하게 표현된 총의 표현에만 집중해보면, 이 작품이 붓과 먹으로 그린 작품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사실적이다.

만지면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입체감. 이러한 사실감을 표현하기 위하여 명암법을 사용하고 있음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시선은 총을 쥔 여성에서 다시 소로, 다시 옆에 볏짚을 쥔 여성을 통해 오른쪽으로 시선이 흘러 나가거나, 총을 쥔 여성의 왼쪽 옆에 볏짚을 이고 쥔 여성과 그 뒤의 인물을 통해 왼쪽으로 시선이 빠져나가게 의도하였다. 이를 위해 화면 안에 선원근법과 공기원근법을 적절하게 사용하고 있음을 확인해볼 수 있다.

전통적인 재료, 즉 종이, 붓, 먹을 사용하였고, 다양한 채색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으며, 이에 서양의 선원근법, 공기원근법, 명암법 등을 적용한 화면이 탄생했다. 전통적인 재료를 사용하여, 화면 안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 깊이감과 만지면 잡힐 수 있을 것 같은 입체감을 표현한 새로운 조선화가 탄생한 것이다. 이러한 양식이 북한미술계를 대표하는 아카데믹한 양식으로 자리 잡는 과정에는 어떠한 토론과 논쟁이 존재하였을까?

수묵화와 채색화 논쟁

해방 직후 북한미술계는 1단계 반사대주의 이론 투쟁 단계와 2단계 반복고주의 이론 투쟁 단계를 거쳐서 김일성주의 미술론을 성립해내었다. 첫 시간에 이야기 나눠 본 바와 같이, 반사대주의 이론 투쟁 단계는, 전통회화에서 주체를 확립해야 할 당위와 근거만 확보한 상태이고, 아직 다양한 전통회화 양식 중 어디에 정통성을 부여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 논의는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따라서 현재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채색화 위주의 제한적이고 협애한 조선화의 전형이 확립되지 않은 단계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반복고주의 이론 투쟁 단계에서는 전통회화의 많은 양식 중 어떠한 양식에 정통성을 부여하여 현대화 할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 진행되었다. 이에 따라 수묵화와 채색화 논쟁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김용준 계인 한상진, 리능종의 수묵화 전통계승론과, 조준오, 김무삼의 채색화 전통계승론 간의 논쟁에서 조준오, 김무삼이 승리함으로써 전통시대 수묵화를 봉건적 잔재로 정의하여 척결해야할 대상으로, 채색화를 계승해야할 대상으로 규정되었다. 형태 뿐만 아니라 색채에서도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을 담보하기 위해 채색의 강조와 더불어 전통회화를 이데올로기에 의해 이분법으로 규정하는 도식화 작업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을 통하여 현대화된 조선화는, 인물 중심의 구상화를 위주로 하여, 이를 수묵담채가 아닌 채색화로, 서구적인 명암법을 사용하여 입체감을 강조하는 방법으로 그리는 양식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이론 투쟁이 정리되자 1965년 김일성이 담화를 통해 채색화를 중심으로 조선화를 발전시킬 것을 선포한다.

△김의관, <남강마을의 여성들> 부분


전통의 현대적 해석

김의관의 <남강마을의 여성들>은 1965년 김일성의 담화 직후인 1966년 제작된 작품으로 그가 매우 만족해 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작품 양식 뿐만 아니라 내용에서도 만족을 표현하며 극찬을 한 바 있기 때문이다. 6.25전쟁 중 직접 전투에 참여하는 남자들 못지 않게 후방에서 용감하게 싸우는 여성들의 모습을 형상화 함으로써 인민들에게 제공할 하나의 본보기를 제시하여 주었기 때문이었다.

두려움 없이 총을 부여잡고 앞을 주시하는 여인네의 빛나는 눈동자. 굳게 다문 입에는 추호의 두려움도 없어 보인다. 단련된 억센 손에 쥐여진 장총은 여인네의 용감성을 더욱 부각시킨다. 이러한 여인의 모습은 목을 길게 빼든 소의 긴장된 행태를 통해 긴박감을 화면 전체로 확장시키고 있다. 전쟁의 현장을 방불케하는 이러한 긴장감과 긴박감은 화면의 윗부분을 잘라 가로로 긴 화면을 구성함으로써 배가시켜내고 있는 역작이다.

작가 김의관은 1939년 평안북도 곽산군 안의리에서 출생하여 1962년 북한 최고의 미술대학인 평양미술대학교를 졸업한 재원이었다. 졸업 후 창작의 실마리를 찾아 헤매던 중, 어느날 강원도 고성군의 한 여성을 만나 6.25 전쟁 때 남강마을 여성들이 자신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전쟁에 참여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이 남강마을 여성들이 치마폭에 낫을 싸가지고 다니면서 적군이 있는 곳에 들어가 벼를 베어 밥을 지어 전쟁터의 병사들에게 날라다 주었다는 이야기였다. 이 이야기를 듣고 김의관은, 벼를 베어서 강물을 건너오는 여성들의 모습을 통하여 전쟁 때 발휘한 여성들의 슬기롭고 강한 모습을 보여주려 하였다.

화가 김의관이 이러한 작품을 창작하려 한다는 것을 안 당시 미술가동맹에서는, 이러한 주제가 의미있는 주제라 하여 동맹창작실에서 작품을 완성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주었다. 때마침 당시 동맹창작실에서는 당대 대표 작가인 정종녀와 리석호가 작업을 하고 있었다. 덕분에 김의관은 정조녀와 리석호의 창작 과정을 직접 보면서 조선화에서 선의 활용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러한 자극은 <남강마을의 여성들>을 창작하는 과정에도 영향을 주었다. 그의 화면은 중심에 조각상처럼 뚜렷하게 총을 쥔 여성을 통해 서양화 적인 입체감이 부각되고 있지만, 그 양 옆의 여성들과 볏짚을 통해서는 조선화의 전통을 보다 효과적으로 계승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또 대상을 규정해내는 대담한 선의 활용은, 맑은 채색과의 조응 속에서 유화 작품에서는 이룩하기 힘든 담백하면서도 활기찬 맑은 화면을 형상화내었기 때문이다.

김일성시대 북한에서 특정 전통을 정통화하고 이를 해석하는 과정에 미술사적 문제점이 노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조선화를 계승하고 현대화하는 역사적 실험을 시도하였고 나름의 결과를 이룩해낸 것도 사실이다.

그들이 이 첫 번째 실험을 통해 선택한 전통과, 이를 현대적으로 해석해낸 결과물인 <남강마을의 여인들>이 예술이라는 조형언어를 갖고서, 이데올로기를 초월하여 우리에게도 예술적 감동을 줄 수 있는가의 판단은 이제 우리 감상자들의 몫으로 남았다.

[박계리 - 한국미술연구소 선임연구원]

'☞옛날·풍속·풍물 > 북한풍경·사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북 미녀응원단  (0) 2006.02.25
북한의 미녀응원단  (0) 2006.02.25
양강도의 도청 소재지 혜산시  (0) 2006.02.25
강타리 탈북 사진  (0) 2006.02.25
북한 기념 우표  (0) 2006.02.25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