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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성 누드

☞그림 감상/그림·누드화

by 산과벗 2006. 7. 26.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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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림을 그린다. 내가 꿈꾸어 왔던 그런 그림을 그린다.
내가 어린 시절 마음 속으로, 머릿속으로만 그렸던 그런 그림을 화폭에 옮기는 작업을 시작했다.
내 그림은 두 가지 의미로 볼 수 있다.
한 가지는 볼 수는 없지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내 그림 속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여자이고 보이지 않는 것은 사랑이다.
나의 인생에서 여자는 신비스러움 그 자체였다.
작은 우주와도 같은 여자. 그 속에서 생명을 만들고 탄생시킨다.
 
나는 이 신비스럽고 사랑스런 여자를 화폭에 담으려고 정했다.
내가 그리는 여자는 아름다운 여자, 부드러운 여자, 야한 여자다.
이 여러 형태의 여자들은 내 그림 속에서 사랑을 말한다.
그림 속의 배경들은 사랑을 언어로, 또는 남성을 나타내는 것들로
내가 사랑하고 있는 것들이다.
나는 내 작업의 방법을 진실하게 보여주기 위해
사실주의를 택하였다.
 
마치 큰 현미경으로 세포를 들여다 보듯 세밀하게 보여주기 위해서다.
사랑은 거짓이나 허상이 아니라 진실이고 사실이기 때문이다.
내 그림 속의 여자와 배경 속의 사랑은 그림 안에서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강렬하게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하고 있고 원하는 그런 사랑을 하고 있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그런 사랑을 그리기 위해 오늘도 사랑을 하고 그림을 그린다.
 
 
 
 
 
 
 
 
 
 
 
 
 
 
 
 
 
 
 
 
 
 
 
 
 
 
 
 
 
 
 
 
 
 
 
 
 
 
 
 
 
 
 
 
 
 
 
 
 
 
 
 
 
생의 열망
 
벗은 여자의 육체는 남성의 시선에 욕망적이고 결국 성애적이다. 모든 누드화는 사회적 성으로서의 성적 정체성의 역사가 육체에 박혀 있는 흔적, 상처다. 그것은 결국 하나의 기호이고 재현의 정치학이다. 그러나 그림의 표면에는 그 같은 역사의 흔적은 말끔히 지워져 있다. 우리의 눈에 벅차게 들어와 박히는 것은 더없이 희고 깨긋한 피부, 봉긋한 유방, 탐스러운 엉덩이, 늘 열려 있는 자궁이 슬쩍 가려져 있는 것들이다. 아름답고 관능적이며 순응적인 여성 육체의 창백한 이미지들이다.
 
박태성의 그림을 보면서 그 누드화의 역사가 질기고 아득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가 그린 여자들의 벌거벗은 육체와 얼굴들은 너무나 아름답고 관능적이며 도발적이기까지 하다. 그만큼 관음적인 시선의 집중을 외면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의 누드는 단순한 정물로서의 육체의 재현에서 벗어나 성적 메타포가 함께 하는 그림이기도 하다. 단조로운 여성 누드의 찬미나 이를 정성 들여 재현하는 구상화로 마감하기보다는 성에 대해 적극적이고 자극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여성의 누드를 통해 자신의 성에 대한 특별한 경험이나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듯하다. 그것이 그의 하나의 텍스트로 접하게 한다.
 
그가 그린 여자들은 모두 전라의 육신을 자랑하듯 보여준다. 그 시선은 정확하게 보는 이의 시선과 일치한다. 그 시선 아래 연출된 포즈로 자신의 얼굴과 피부, 유방과 성기를 보여 준다. 작가는 공들여 그들의 피부를 다듬고 있다. 그의 손길을 통한 붓과 물감으로 여성의 육체는 더욱 완벽해진다. 극사실적인 기법으로 그린 유화, 수채화, 아크릴릭, 그리고 부조와 혼합된 그림들은 화장이나 분장처럼 자신의 눈앞에 잇는 모델의 육체를 덧칠해 점유해 들어간 것이다. 그는 공들여 여성의 육신을 장식하고 있다. 그것은 그가 바라는 여성의 육체이고 이상적이고 신화화된 성에 가깝다. 그 육체 속에는 강렬한 섹스와 유혹, 관능과 욕망, 사랑 등이 뒤엉켜 있다. 그리고 그 얼키고 설킨 속내를 보여주기 위해 그 배경에 다양한 도상과 기호들을 깔아 놓았다.
 
화면에는 여성의 육체가 특정한 포즈로 연출되어 있고, 그 배경에는 인도의 탄트라 조각의 성애장면들, 벌어진 꽃잎, 남녀으의 키스 장면, 묶인 매듭, 상형문자 꼴들이 가득하다. 우주만물의 이치가 성의 교합과 음양의 조화, 만남이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메시지 뿐만 아니라 성애를 암시하는 은유적 상징물들이 잠복해 있다. 그의 그림은 자신의 성에 대한 관점과 철학을 도해적 선상에서 보여 준다. 지극히 섬세하게 그려진 그의 그림 속의 여자들은 오늘날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바로 그런 얼굴과 체형을 지닌 여자들이다. 미인이란 것 역시 역사적인 개념이므로 그의 누드들은 후기 자본주의 사회, 관능이 들끓는 시대이 비등점에서 요구하는 육체들이다.
 
박태성이 그린 이 누드들은 그의 이상적인 여자 육체이자 그가 원하고 바라는 성의 육체화이다. 그는 실체의 육체에 자신의 이상적인 육체를 덧씌운다. 그래서 환생된 육체들은 그만큼 자기애적인 존재들이다.
 
이 작가의 지극히 자기애적인 그림 앞에서 보는 이들은 여성의 육체와 그 존재, 그리고 사랑에 대한 강렬한 편집증적 시선의 덩어리를 만난다. 그리고 그의 탁월한 솜씨, 기교의 섬세함을 만난다. 그의 손으로 그려져 재현된 여성의 육체는 흡사 피그말리온이 상아로 조각한 여성, 타락한 현실세계에서느 구할 수 없었던 자신의 이상적인 여성 존재와 사랑에 빠져버린 그 신화를 연상하게 한다. 여셩과 성에 대한 관심이야말로 모든 인간에게 본질적인 것이고, 이를 완벽하게 이미지화 시키려고 하는 그의 순수한 열망은 결국 생에 대한 뜨거운 열망, 삶의 강렬한 집중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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