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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역사를 담은 굴불사지 석불

☞산사를 찾아서/미륵불과 석불

by 산과벗 2006. 7. 26.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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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불사지 석불은 신라 25대 경덕왕이 이 곳 금강산 기슭을 행차하다가 땅속에서 목탁을 치며 여불하는 소리가 들려 그 곳을 파 보니 큰 바위가 나와 이를 신비하게 생각한 왕은 바위 면마다 부처를 새기게 하고  그 위에 지붕을 덮어 절을 만들어 절 이름을 굴불사라고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 져 내려 온다.

서출지와 황룡사지에 얽힌 이야기는 불교와 기존 신앙과의 갈등, 왕권과 신권의 대립이었습니다. 그 갈등과 대립이 이야기로 만들어져 지금까지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굴불사지에는 서출지와 황룡사지 처럼 갈등과 대립이 없습니다. 신라에 불교가 완전히 정착되었다는 뜻입니다. 이때부터 신라에는 찬란한 불교 문화가 꽃피게 됩니다. 

서쪽면에 있는 삼존불입니다. 왼쪽에(본존불을 중심으로)계시는 보살님이 정병을 들고 계시고 보관을 쓰고 계시기 때문에 관음보살상으로 부릅니다. 그러므로 본존불은 서방정토 극락세계를 관장하시는 아미타여래이십니다. 오른쪽 보살님은 오른손에 정병을 들고 계십니다. 불교 교리에 의하면 대세지보살이 됩니다. 본존불은 자연석 바위에다 목만 따로 만들어 모셨습니다. 자연스럽게 바위신앙과 불교가 만났습니다.  오른쪽 보살님은 너무 많이 파손되어 가슴이 아픕니다. 좌우 보살님들은 독립된 바위로 모셨습니다.

왼쪽에 계시는 관음보살님입니다. 목은 별로도 만들어 모셨습니다. 이 시대에 만든 불상들은 목과 몸체를 따로 만드는 경우가 많았답니다. 경주박물관에 가면 몸만 남아 있는 부처님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신라에 불교가 정착되고 난 뒤 이곳 저곳에서 불상을 찾는 이가 많아졌나 봅니다. 분업화가 되었다는 거죠. 그 만큼 신라 불교 예술성도 뛰어 났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동쪽에 앉아 계시는 분은 왼손에 약병을 들고 계시는 것으로 보아 동방 유리광 세계를 관장하시는 약사여래입니다.잘 안보이지만 코를 시멘트로 보수해서 보기가 좀 흉합니다. 이렇게 신라시대 불상들은 어느 시대를 거치면서 코가 유난히 수난을 많이 당합니다.  불교탄압설, 아들을 바라는 설이 있습니다. 아무튼 그 시대의 문화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남쪽면에 있는 불보살입니다. 두 분중에서 오른쪽분은 정병을 들고 계시는 것으로 보아 보살입니다. 얼굴이 없는 분은 여래상인데 굴불사지에서 가장 가슴이 아픈 분입니다. 1973년 이구열이 쓴 <한국문화재 비화>라는 책에 1915년께에 일본인 악당들이 남쪽면의 본존상 머리와 오른쪽의 협시보살상 전체를 떼어가 버렸답니다. 이 당시 일확천금을 노린 일본인들에 의해 많은 우리 문화재들이 수난을 당했다니다. 전부 나라 잃은 서러움이죠. 몇년전 미국과 이라크 전쟁으로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이 무너져 잠시 치안이 마비되자 바그다드 국립 박물관에 있는 수많은 문화재들이 도난을 당했다고 합니다. 일제 강점 36년 동안 우리 문화재들은 어떤 일을 겪었을지 상상이 되죠. 이렇게 문화재는 우리에게 산 교훈을 영원히 남겨 줍니다. 잘 기억합시다.

 

 

부처님 오신날 의 모습니다. 경주 인근의 많은 분들이 오셔서 등을 밝혀 부처님의 진리를 구하고자 합니다. 참 아름다운 밤입니다. 부처님 오신날 오시면 구경할 수 있습니다.

 

굴불사지 사면 석불을 찾는 오늘날의 모습니다. 천년전 신라인들을 충분히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그 옛날이나 오늘날 찾는 이는 다르지만 비는 소원은 같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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