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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김씨 자계서원(紫溪書院)

☞역사·족보·전통/김해김씨·三賢派

by 산과벗 2007. 2. 27.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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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계서원(紫溪書院)

[주 소 : 경북 청도군 이서면 서원리 85]
지정번호 :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83호
지 정 일 : 1975. 12. 30 
소 재 지 : 경북 청도군 이서면 서원리 85 
시    대 : 조선시대
소 유 자 : 김헌수(김해김씨문중)

조선 초 문신이며 학자인 탁영 김일손(濯纓 金馹孫) 선생을 배향 하기 위해 중종13년(1518년)창건하고 운계서원(雲溪書院)이라 하였고 선조11년 중건하여 현종2년(1661년) 자계서원으로 사액(賜額)되었다. 고종8년(1871년) 서원 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어 동 . 서재만 남아 있다가 1924년 참봉 김용희(金容禧)가 중건하였다.
탁영 김일손 선생은 성종17년(1486년)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갑과(甲科)로 급제(及第)하여 예문관(藝文館)에 등용된 후 청환직(淸宦職)을 거쳐 이조정랑(吏曹正郞)이 되었다. 연산군4년(燕山君 1498년) 『성종실록(成宗實錄)』을 편찬할 때 스승 김종직(金宗直)이 쓴『조의제문(弔義帝文)』을 사초(史草)에 실은 것이 화근이 되어 참화(慘禍)당하였다. 이 사건을 무오사화(戊午史禍)라 한다. 중종 반정 후(燕山君12년 1506년) 도승지와 이조판서 양관 대제학에 추증(追贈) 되었다.

건물 배치 중심에 있는 보인당(輔仁堂)은 정면5칸, 측면2칸의 고상형(高床形) 집이며 겹처마 팔작 지붕에 활주가 있다. 가구는 5량가이며 연등천장에 우물마루를 깔고 공포는 익공계 이다. 영귀루(1699년重建)는 정면3칸 측면2칸으로 자연석의 초석상에 원주를 세워 루주(樓柱)로 삼고 마루를 놓아 다시 루를 가구 하였다. 가구는 5량가로 공포는 주심포계에 익공이 절충한 모양이다. 동재의 건축기법은 그 유례가 흔하지 않으며 청도 지역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것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보인당(輔仁堂) 주축 선에는 영귀루(詠歸樓) 와 유직문(惟直門)이라는 三門이 있고 보인당 동쪽에는 존덕사(尊德祠)와 전사청, 신도문이 따로나있다.
이 서원의 12동 건물중 영귀루와 동서양재가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고, 영귀루 옆에는 탁영 김일손 선생께서 손수 심었다는 은행나무와 동쪽으로 탁영선생의 신도비와 절효(節孝) 김선생 정려비(旌閭碑)라 쓴 조부의 비가 있으며, 서쪽에 서원정비(書院庭碑)등이 있는 자계서원은 조선초기 역사와 건축을 볼 수 있는 곳으로 학자와 유림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다.









자계제월(紫溪霽月)
[주 소 : 경북 청도군 이서면 서원동]

이서면 서원리에 자리하고 있는 자계서원의 앞을 흐르는 냇물은 청도천인데 이 냇물은 앞내 또는 운계라 하였다 한다. 옛날 탁영 김일손이 무오사화를 당해 참화를 입었을 때 이 냇물이 3일동안이나 거꾸로 피빛으로 흘렀다 하여 그 후부터 자계라 하였는데 수면이 거울 같고 보름달이 물에 비치는 그림자는 하늘의 달같이 황홀하였으며 동쪽 와룡산 기슭의 연못을 얼싸안은 서원의 모습은 시정에 넘치는 아름다운 월경이다. 지금은 냇가의 모습도 물결도 달라졌으나 맑은 하늘에 둥실 뜬 보름달이 비춰주는 서원과 와룡산은 옛 경치 그대로여서 자신도 모르게 시상에 잠기게 하는 청도팔경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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