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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시작과 끝이 있는 경주 서남산

☞여행·가볼만한 곳/국내·문화.유적

by 산과벗 2007. 3. 9.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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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시작과 끝이 있는 경주 서남산


주말 경주 여행은 미리 코스를 잡아 코스대로 여행을 할 작정이면 시간이 허락하지 않고 그렇다고 모처럼 장거리 여행인데 한 코스만을 보기에는 아쉬움이 남아 항상 딜레마에 빠진다.


▲ 불국사 정경, 경주에 가면 그래도 불국사에 들러야 덜 서운하다
가족까지 동반하는 경우엔 더욱 복잡해진다. 나는 남산을 종주하면서 바위에 새긴 불상들을 감상하는 것을 제일로 치지만 첫째와 둘째에게는 따분하고 힘든 남산코스를 고집하기 어렵다. 게다가 경주하면 첨성대, 불국사의 석가탑·다보탑, 석불사의 석굴, 그리고 박물관을 보여 줘야 아버지 노릇을 잘 했다는 강박관념에 남산만을 고집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 안압지 야경
애들에게 어찌하여 동의를 구했다 하더라도 모처럼 가는 여행인데 아내한테 그래도 말발이 서려면 겨울바다라도 보고 저녁엔 그럴싸한 곳에서 데이트를 즐겨야 하는 부담도 있다. 이러한 고민은 경주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거꾸로 말하면 경주는 가족 누구나 만족시키는 최적의 여행지라 할 수 있다.


▲ 이견대에서 바라 본 감포바다
가족의 요구를 최대한 배려하여 남산은 아래부분만 훑는 것으로 만족하고 밤에는 커피 한잔 뽑아 들고 야경이 아름다운 안압지와 첨성대 주위를 거닌다. 그리고 다음날 감포가도를 달려 바다를 구경하고 돌아오는 길에 불국사에 들러 장거리 여행의 서운함을 달랜다. 감포 가는 길은 기림사, 장항리 절터, 골굴암, 감은사터 등 볼거리가 풍부해 그저 겨울바다를 보면서 회한접시 먹는 밋밋한 길이 아니라 마음과 몸을 풍요하게 하는 기름진 길이라 좋다.

첫째 날: 서울 출발(8시)->경주(1시)-점심(2시)->서남산(나정->양산재->남간사터->포석정->배리삼존석불입상->삼릉->삼릉 목없는석불좌상->삼릉 마애관음보살상->삼릉 마애선각육존불상)->숙소(5시)->저녁(8시)->야경(안압지,첨성대)->숙소(10시)

둘째 날:감포로 출발(9시,날씨가 흐려 토함산 일출은 포기)->장항리 절터->골굴암->감은사터->대왕암->이견대->점심(2시)->불국사(3시)->동남산(남산동 삼층쌍탑->보리사->부처바위->부처골 감실석불좌상)->서울로 출발(6시)

서남산 훑어보기

앞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에 바위가 있거나 바위의 크기가 크면 영락없이 불상을 새겨 작품을 만들어 놓았으니 60여 구의 석불이 있고 100여 곳의 절터와 40여 기의 석탑이 있는 남산은 과연 지붕없는 박물관이요 남산 그 자체가 거대한 문화재라 할만하다.

이렇게 볼 때 남산의 일부분만 감상하는 것은 경주 박물관으로 치면 야외 전시장만 둘러봤다 할 것이다. 그래도 배리 삼존석불의 동안(童顔)의 미소와 부처바위 남면(南面)의 삼존불의 천진한 표정과 부처골 감실부처의 인자한 자태를 보았으니 참맛은 아닐지라도 남산의 속맛은 보았다 할 수 있지 않을까?

서남산에는 나정, 양산재, 남간사터, 창림사터, 포석정이 있다. 신라의 태동을 알리는 나정과 신라의 종말의 공간인 포석정이 불과 몇 백 미터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신라의 시작과 끝이 한자리에 있으니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나정은 박혁거세 탄생 신화를 간직한 곳이다. 표주박 같은 알에서 태어나 성을 박(朴)이라 하고 세상을 밝게 다스린다 하여 혁거세(赫居世)라 하였다. 박혁거세의 나이가 13세 되던 해 진한의 육부 촌장들이 모여 여섯 촌을 합하여 나라를 세우고 박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하였다. 나라 이름은 서라벌. 아침해가 가장 먼저 비치는 성스러운 땅이라는 뜻이다.


▲ 나정 정경
최근 중앙문화재 연구원의 발굴조사(2002-2005, 4차에 걸친 발굴 조사)에서 팔각건물터와 우물터, 기와편이 발굴돼 삼국사기에 기록으로만 남아 있던 신궁터로 추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되었다. 삼국사기에는 '소지왕(489년) 때 나을(나정)에 신궁을 지으니 나을은 시조가 처음 탄생한 곳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에 대한 논란은 분분하지만 우물터와 건물 관련 시설의 발굴로 나정이 허구의 공간을 넘어 역사의 공간으로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2005년 10월에 열린 학술대회의 제목을 '경주 나정 -신화에서 역사로'라고 붙여 나정이 단순한 신화속의 공간이 아닌 역사적 공간으로 여겨질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문이 굳게 닫힌 채 안내판만 서 있는 나정은 봄에 씨앗을 뿌리려고 흙을 고른 밭처럼 황량하였지만 나정의 유물들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며 부활의 싹을 틔우고 있었다.

나정 바로 위엔 육촌의 시조를 모셔 놓은 양산재가 있다. 별 볼거리가 없지만 양산재 언덕에서 보는 주위 풍경이 좋다. 지대가 높아 양지바르고 농사짓기 편하여 사람이 모여 살기 적합한 곳이다. 실제로 양산재에서 장창골로 이어지는 부근에서 신석기 유물이 가장 많이 발견되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 육촌의 시조를 모셔놓은 양산재
양산재를 조금 벗어나 오른쪽 농로를 따라가면 남간사터 당간지주를 만난다. 생김새와 규모로는 강릉 굴산사터 당간지주와 비교도 안되지만 논 한가운데 덩그란히 서 있는 것이 강릉 굴산사터 당간지주를 생각나게 한다.

이 당간지주는 남산지역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것이고 꼭대기의「+」자형 간구는 어느 당간지주에서도 볼 수 없는 특이한 것이어서 눈여겨볼 만하다.


▲ 남간사터 당간지주, 남산 지역의 유일한 당간지주며 꼭대기의 십자형 간구가 특이하다
당간지주에서 좁은 농로를 따라 조금 걷다보면 만나는 것이 창림사터. 왼쪽 산언덕 소나무 밭에 찾는 이를 숨죽이며 기다리고 있다. 농로 한 편에 얼굴 무늬 수막새 모양으로 안내판을 세워 놓긴 했으나 유심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쉽다.


▲ 얼굴 무늬 수막새 안내판, 창림사터를 알리는 글씨는 떨어져 나갔다
창림사터는 박혁거세가 신라 최초로 궁궐을 세운 곳이라 전하지만 지금은 그런 흔적은 찾아볼 수 없고 다만 삼층석탑과 묘지 앞에 놓인 쌍귀부 그리고 주위에 흩어져 나뒹구는 몇 개의 석물만이 이 곳이 창림사였음을 알리고 있다. 삼층석탑은 남산일대에서는 가장 크고 우람하다.


▲ 창림사터 삼층석탑, 남산일대에서 가장 크고 우람하다
당간지주와 창림사터, 나정, 양산재 모두 눈으로 보기에 화려한 것은 없다. 다만 이런 것들이 인연이 되어 한 걸음 한 걸음 발길을 옮겨가며 우리 땅, 우리 논길을 걷는 즐거움이 있다.


▲ 창림사터 쌍귀부, 비신도 없이 바둥거리고 있는 듯하여 귀엽다
수학여행 때 빠지지 않고 들르는 곳 중 하나가 포석정. 우리의 머릿속에는 단지 왕실의 놀이터로 경애왕이 후백제군이 쳐들어오는 줄도 모르고 유흥을 즐기다 자결한 암울한 곳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경애왕이 포석정에 간 시기가 동짓날이라는 점, 후백제군이 쳐들어올 거라는 것을 알고 고려 태조에게 구원을 요청해 놓았다는 점 등으로 미루어 경애왕이 유흥을 즐기다가 나라를 망쳤다는 사실은 왜곡되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경애왕이 긴박한 상황에서 구국기원제(救國祈願祭)를 올리기 위해, 혹은 의지할 곳을 잃고 마지막 피난처로 이 곳을 찾았을 거라는 것이다.


포석정은 단순히 유흥을 즐기는 놀이터가 아니라 신라시대 가장 아름다운 이궁지였고 남산신에게 제사를 지낸 국가적으로 주요한 장소였다는 최근 연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포석정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부정적 공간이 아니라 신라의 종말을 고한 안타까운 공간으로 간주함이 옳을 듯하다.

지금의 포석정은 화려하거나 아름다움을 찾아보기 어려워 대개 비싼 주창요금과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면 실망하기 쉽다. 포석정은 원래 중국의 명필 왕희지가 친구들과 함께 물 위에 술잔을 띄워 술잔이 자기 앞에 오는 동안 시를 읊어야 하며 시를 짓지 못하면 벌로 술 3잔을 마시는 잔치인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을 본 따서 만들었다 한다. 그러나 중국에서 조차 유상곡수연 유적이 거의 없어 문화재로서 가치가 충분하다 할 수 있다.

나정과 포석정이 있는 남산 서쪽은 묘하게도 신라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장소이면서 발굴 작업과 연구가 진행되면서 역사적 재평가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나정은 신화속의 허구적 공간이 아닌 역사의 공간으로, 포석정은 유흥을 즐기다 변을 당한 치욕의 공간이 아닌 왕조를 살리려는 마지막 몸부림을 한 안타까운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경주여행은 여기에서 시작하기를 권하여 본다. [오마이뉴스 김정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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