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에 휘 감긴 마음속 우주에 밝은 빛으로 불을 밝히는 날 하늘이 흘린 눈물 이슬되어 5월의 향기를 따라 나서는길에 하이얀 아카시아 꽃이 반기는 아침에 떠나는 문학기행 이다. 희뿌연 하늘 때문에 맘이 편치 않은 이런 흐리고 아름다운 날에는 하늘 빛 편지를 수취인 없는 내마음에 써서 차창밖으로 우표도 붙이지 않은채 물빛 편지를 쓰고싶다는 생각에 취해 있을 무렵 메타쉐콰이가 있는 담양에 도착했다. 오월의 신록이 연녹색으로 터널을 이루며 아름다운 풍경 펼쳐졌다.

역시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로수길 인것만은 누구도 부인할수 없을듯 하다. 그런 아름다운 길을 따라 도착한곳은 담양이다 담양은 대나무 고을로 이름난 전남 담양이 요즘 인파로 넘쳐나고 있다. 때마침 대나무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담양 축제에 오신 많은분들 을 위해 이마에 송글 송글 맺힌 얼굴에 하얀 미소를 띄우며 진지하게 가이드를 해주시는 분의 모습에서 담양사랑 열정을 느낄수 있었다. 또한 대나무 숲 그늘에 앉아 점잖게 책을 보며 신록을 즐기는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대나무숲 사이로 새어드는 오후 햇살은 새벽부터 서둘렀던 피로를 말끔히 씻어주는 빛이되어 저편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는 대순 언저리에 다소곳이 앉아 5월을 노래하고 있었다 오르는 길 양쪽에 대나무 숲이 우거지고 정자 앞에는 300년 이상된 보호수가 운치를 더해준다.

드넓은 봉산 들녘, 멀리 추월산과 금성산성, 불태산, 병풍산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개성유수 이조판서 대사헌 등을 지내다 내려온 송순은 이곳에서 퇴계 이황, 기대승, 고경명, 정철, 임제 등과 함께 문학을 논했다. 정자 안에는 이들이 면앙정을 노래한 작품이 걸려 있는곳에 한줄기 빛이 새어들고 있었다.

면앙정에서 자동차로 광주쪽으로 3~4분 거리에 송강정이 자리하고 있다. 선조때 당쟁으로 물러난 송강 정철이 소박하게 지은 ‘ 죽림정’을 1770년 후손들이 그를 기려 세웠다. 노송과 대나무가 무성하다. 이곳에서 송강은 가사문학의 백미로 불리는 ‘사미인곡’ ‘속미인곡’을 썼다.

‘그림자가 쉬고 있는 정자’라는 이름의 식영정(息影停)은 노송 등 주변의 풍경이 뛰어나 특히 많은 문인들의 명작을 남긴 곳이라고 하며 서하당 김성원이 그의 장인 임억령을 위해 지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노닐었던 김성원, 임억령, 정철, 고경명은 각각 식영정의 아름다움을 읊은 글 20수씩을 남겼고 이는 정철이 지은 ‘성산별곡’의 뿌리가 됐다고 했다.

정철의 스승이었던 김윤제의 거처인 환벽당으로 가는길에 아장아장 돌계단에 또 한줄기 빛이내려 윙크하며 반갑게 인사를 했다. 바쁜 일정의 시간속에 고운빛은 가슴에 담아두고 가사문학관 으로 향하였다.

가사문학관 은? 조선시대 한문이 주류를 이루던 때에 국문으로 시를 제작하였는데 그중에서도 가사문학이 크게 발전하여 꽃을 피운곳이다 이서의 낙지가, 송순의 면양정가, 정철의 성산별곡, 관동별곡,사미인곡,속미인곡, 정식에 축산별곡 등등 열여덟 편에 가사가 전승되고 있어 담양을 흔히 가사문학의 산실이라고 이른다고 한다.

위 치 : 전남 담양군 남면 지곡리 319번지 이다 개 요 : 전라남도 북쪽에 위치한 담양은 기름진 평야와 아름다운 자연 그리고 수많은 문화 유산을 보존·전승해 온 유서 깊은 고장이다. 대쪽같이 올곧은 선비정신을 이어 받은 조선시대 사림(士林)들은 불합리하고모순된 정치 현실을 비판하고, 자신들의 큰 뜻을 이룰 수 없음을 한탄하며 낙남(落南)하여, 이곳 담양 일원에 누(樓)와 정자(亭子)를 짓고 빼어난 자연 경관을 벗삼아 시문을 지어 노래하였다. 이들은 수신과 후진양성에 힘쓰다가 나라의 부름을 받아서는 충성하고, 국난이 있을 때에는 분연히 일어나 구국에도 앞장섰다.
조선시대 한문이 주류를 이루던 때에 국문으로 시를 제작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가사문학이 크게 발전하여 꽃을 피웠다. 이서의 낙지가, 송순의 면앙정가, 정철의 성산별곡·관동별곡· 사미인곡·속미인곡, 정식의 축산별곡, 남극엽의 향음주례가·충효가, 유도관의 경술가·사미인곡, 남석하의 백발가·초당춘수곡·사친곡·원유가, 정해정의 석촌별곡·민농가 및 작자미상의 효자가 등 열여덟편의 가사가 전승되고 있어 담양을 가사문학의 산실이라고 부른다.
담양군에서는 이 같은 가사문학관련 문화유산의 전승·보전과 현대적 계승·발전을 위해 1995년부터 가사문학관 건립을 추진하여 2000년 10월에 완공하였다. 본관과 부속건물인 자미정·세심정·산방·토산품점·전통찻집 등이 있다. 전시품으로는 가사문학 자료를 비롯하여 송순의 면앙집(傘仰集)과 정철의 송강집(松江集)및 친필 유묵 등 귀중한 유물이 있다.
문학관 가까이에 있는 식영정·환벽당·소쇄원·송강정·면앙정 등은 호남시단의 중요한 무대가 되었으며, 이는 한국 가사문학 창작의 밑바탕이 되어 면면히 그 전통을 오늘에 있게 하고 있다. 가사(歌辭) : 고려말엽부터 나타난 3·4조 또는 4·4조의 운문(韻文)으로 된 긴 시가형식

규 모 : 부지 5,017평, 건물 650평(한옥형-지하 1층, 지상 2층) * 가사홍보영상물(25분) : 한국어, 일어, 중국어,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주요소장품 : 가사문학관련 재현도 및 유물 5,590여점 담양권 가사 발취 열여덟편
전시실안내 : [제1전시관] 담양가사 (면앙정가, 성산별곡, 관동별곡 등) 면앙 송순(교지, 시호장, 분재기, 면앙집, 면앙정가 등) 송강 정철(문청공연행일기, 문청공유사 등) [제2전시관] 규방가사(계여가, 연화산화젼가, 한별곡, 별한가 등) 정극인, 조위, 백광홍 등 가사 설명
[제3전시관] 가사문학권 인물 및 유물
관람시간 : 하절기(3~10월) 10:00 ∼18:30 동절기(11∼2월) 10:00 ∼17:30 휴 관 일 : 연중무휴 교통안내 : (자 가 용) - 호남고속도로 창평IC →고서사거리 →광주댐방면 → 가사 → 문학관 - 광주 →각화동 →고서사거리 →광주댐방면 →가사문학관 - 광주 →산수오거리 →충장사 →광주댐방면 →가사문학관
(시내버스) 28, 125, 225번 이용 (1일 15회 이상 운행)
가사 문학관은.. 누구나 한번쯤은 가볼만한곳 이라서 한국가사문학관 정보제공으로 소개한다

한정된 시간속에서 구석구석 돌아볼수 없어 수박 겉할기식으로 가사문학관을 허둥지둥 대는듯한 그런 모습을 뒤로하고 고서면 산덕리에 있는 명옥헌으로 수수꽃다리(라일락) 향기를 코끝에 담아내며 발길을 재촉했다. 고서 네거리를 지나 창녕쪽으로 가다보면 오른쪽 후산대 마을 입구가 나타나고 수국이 담장위에 하얀 드레스 입고 걸터앉아 배시시 미소짖는다.

마을 입구엔 수백년묵은 느티나무가 있고 저수지를 감싸않은 왕버들 고목이 줄지어 사열을 하고 있고 마을 가로질러 나지막한 고개를 넘으니 명옥헌이 보였다. 명옥헌은 전라남도 담양군 고서면 산덕리에 있는 조선시대 오희도가 살던 집의 정원이며 전남기념물 제44호이다 지정연도 는 1980년 6월 2일 전남 담양군 고서면 산덕리 513 에 소재하고 있으며 조선시대 에 면적 1,386평 에 넓은 한국의 대표적인 아름다운 민간 정원으로 꼽힌다.

명옥헌을 아름답게 치장하고 늘어선 배롱나무와 늘씬하게 자라난 소나무가 오후 햇살을 역광으로 작은 연못에 젖어 있었다. 배롱나무 가지는 요염한 자태로 속살을 드러내고 나를 유혹했다. 언뜻 내가 아닌 다른이가 보았어도 그렇게 느낄지 모르지만 여인의 흰속살을 처럼보이는 모습이 뒤틀리고 자유분망 했지만 굵은 가지에서 내려오는 작은 가지는 여인의 가락 같고 그끝에 매달린 작은 연두빛 잎새는 가녀린 여인의 손가락에 매니큐어를 치장을 한듯했다

무더위가 시작되는 8월이 오면 배롱나무는 화려한 변신을 할것이다 꽃이 피어 고운 옷을 입는 그런날엔 더없을 배롱나무의 유혹이 이곳을 찾는 모든이의 가슴에 요염함으로 자극할것이다. 백일을 붉게 피었다고 백일홍이라고 하지만 실제 백일을 피는지는 잘 모른다. 다만, 벼이삭이 삐죽삐죽 고개를 내밀면 백일홍도 피어나기 시작해서 한여름 내내 쏟아지는 태양 아래에서 여름을 만끽하며 즐긴후에 벼가 고개를 숙일 즈음인 초가을까지 피는 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화무십일홍을 무색케 하는 꽃이 아닐수 없을것이다. 백일홍과 늘씬한 소나무의 군무를 상상해 보면 미간에 절로 미소가 머물지 않을수 없다

2007년 5월4일 마지막 문학기행 예정지인 소쇄원에 도착하니 입구에 조성된 대나무 숲을 답사객들이 거닐고 있다. 소쇄원을 소개하면 소쇄원은.. 종 목 사적 제304호 로 면 적 108,531㎡ 이며 1983.07.20 지정 되었다고 한다 소재지는 전남 담양군 남면 지곡리 123 번지 이고 조선시대 에 만들어졌다 자연과 인공을 조화시킨 조선 중기의 정원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다.

양산보(1503∼1557)는 은사인 정암 조광조(1482∼1519)가 기묘사화로 능주로 유배되어 세상을 떠나게 되자 출세에의 뜻을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와 자연속에서 숨어 살기 위하여 깨끗하고 시원하다는 뜻 별서정원인 소쇄원을 지었다. 정원은 계곡을 중심으로 하는 사다리꼴 형태로 되어있다. 4.060㎡의 면적에 기능과 공간의 특성에 따라 애양단구역, 오곡문구역, 제월당구역, 광풍각구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정원 내에는 대나무, 소나무, 느티나무, 단풍나무들로 된 숲이 있다. 주위에는 흙과 돌로 쌓은 자연스러운 담이 있는데‘애양단’오곡문’ 소쇄처사양공지려’의 석판과 목판글씨가 담벽에 박혀있다.
주거와의 관계에서 볼때에는 하나의 후원이며, 공간구성과 기능면에서 볼 때에는 입구에 전개된 전원과 계류를 중심으로 하는 계원 그리고 내당인 제월당을 중심으로 하는 내원으로 되어 있다.

전원은 대봉대와 상하지, 물레방아, 그리고 애양단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계원은 오곡문 곁의 담 아래에 뚫린 유입구로부터 오곡암 폭포 그리고 계류를 중심으로 여기에 광풍각을 곁들이고 있다. 광풍각의 대하에는 석가산이 있었다. 이 계류구역은 유락공간으로서의 기능을 지니고 있다.
내원구역은 제월당을 중심으로 하는 공간으로서 당과 오곡문 사이에는 두 계단으로 된 매대가 있으며 여기에는 매화, 동백, 산수유 등의 나무와 기타 꽃나무가 심어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오곡문 옆의 오암은 자라바위라는 이름이 붙여지고 있다.

또 당 앞에는 빈 마당이 있고, 광풍각 뒷편 언덕에는 복숭아나무가 심어진 도오가 있다. 당시에 이곳에 심어진 식물은 국내종으로 소나무, 대나무, 버들, 단풍, 등나무, 창포, 순채 등 7종이고 중국종으로 매화, 은행, 복숭아, 오동, 벽오동, 장미, 동백, 치자, 대나무, 사계, 국화, 파초 등 13종 그리고 일본산의 철쭉, 인도산의 연꽃 등 모두 22종에 이르고 있다. 소쇄원은 1530년(중종 25년)에 양산보가 꾸민 조선시대 대표적 정원의 하나로 제월당, 광풍각 , 애양단, 대봉대 등 10여개의 건물로 이루어졌으나 지금은 몇 남아 있지 않다.
제월당은 "비개인 하늘의 상쾌한 달"이라는 뜻의 주인을 위한 집으로 정면 3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며, 광풍각은 "비갠뒤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이라는 뜻의 손님을 위한 사랑방으로 1614년 중수한 정면 3칸, 측면 3칸의 역시 팔작지붕 한식이다.
정원의 구조는 크게 애양단을 중심으로, 입구에 전개된 전원과 광풍각과 계류를 중심으로 하는 계원, 그리고 내당인 제월당을 중심으로 하는 내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도가적인 색채도 풍겨나와 오암, 도오, 대봉대 등 여러 명칭이 보인다. 제월당에는 하서 김인후가 쓴「소쇄원 四十八詠詩」(1548)가 있으며, 1755년(영조 31) 목판에 새긴「소쇄원도」가 남아 있어 원래의 모습을 알 수 있게 한다.
소쇄원은 1528년 처음 기사가 나온 것으로 보아 1530년 전후에 착공한 것으로 보여 진다. 하서 김인후 가 화순으로 공부하러 갈때 소쇄원에서 꼭 쉬었다 갔다는 기록이 있고 1528년 『소쇄정즉사』에는 간접적인 기사가 있다.
송강 정철의 『소쇄원제초정』에는 자기가 태어나던 해(1536)에 소쇄원이 조영된 것이라 하였다. 1542년에는 송순이 양산보의 소쇄원을 도왔다는 기록이 있다. 소쇄원은 양산보 개인이 꾸몄다기보다는 당나라 이덕유가 경영하던 평천장과 이를 모방한 송순, 김인후 등의 영향을 크게 받았을 것이다. 1574년 고경명이 쓴 『유서석록』에는 소쇄원에 대한 간접적인 언급이 있어 당시 소쇄원에 대한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우리나라 선비의 고고한 품성과 절의가 엿보이는 아름다운 정원으로, 조선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정원이다.
숨가뿌게 달려온 일정이 어느덧 마무리 되어가고 있을때 풍수와 역학에 많은 조혜가 있는 박선생님과 소쇄원의 안내자와 많은 토론이 오고간다. 옆에서 귀동냥으로 들어도 아니 그냥 듣기만 해도 이해하게 어려운 난제 들이 대화와 작은 토론이 이어지고 푸르른 대잎에서 속삭이던 바람이 불어온다. 만개한 황금빛 넝쿨 매화 사이로 하루를 정리하는 빛이 스며든다.
하루 동안 답사 하기에 조금은 힘에 부치는듯한 일정속에 문학기행이 마무리 되어 가고 버스로 돌아오는길엔 정경남 시인님꼐서 김기림님의 길을 낭송 하셨다.
♤ 길 / 김기림
나의 소년 시절은 은(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상여(喪輿)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
내 첫사랑도 그 길 위에서 조약돌처럼 집었다가 조약돌처럼 잃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푸른 하늘 빛에 혼자 때없이 그 길을 넘어 강(江)가로 내려갔다가도 노을에 함뿍 자줏빛으로 젖어서 돌아오곤 했다.
그 강가에는 봄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나의 나이와 함께 여러 번 다녀갔다.
가마귀도 날아가고 두루미고 떠나간 다음에는 누런 모래둔과 그리고 어두운 내 마음이 남아서 몸서리쳤다. 그런 날은 항용 감기를 만나서 돌아와 앓았다.
할아버지도 언제 낳은지를 모른다는 동구 밖 그 늙은 버드나무 밑에서 나는 지금도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 돌아오지 않는 계집애,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가 돌아올 것만 같아 멍하니 기다려 본다. 그러면 어느새 어둠이 기어와서 내 뺨의 얼룩을 씻어 준다.
이어지는 박정자 시인님은 김용택 시인님의 11월의 노래를 낭송 해주셨다.

♤11월의 노래 / 김용택
해 넘어가면... 당신이 더 그리워집니다 잎을 떨구며 피를 말리며 가을은 자꾸가고...
당신이 그리워서 마을 앞에 나와 산그늘 내린 동구길 하염없이 바라보다
산 그늘도 가버린 강물을 건넙니다 내 키를 넘는 마른 풀밭들을 떼어내며 당신 그리워 눈물납니다
못 견디 겠어요 아마도 닿지 못할 세상의 외로움이 마른 풀잎 끝처럼 뼈에 와 닿습니다
가을은 자꾸 가고 당신에게 가 닫고싶은 내 마음은 저문 강물처럼 바삐 흐릅니다
나는 물가버린 물소리 처럼 허망하게 빈산에 남아 억새꽃만 허옇게 흔듭니다
해는 지고.....
가을은 가고 당신도 가지만 서러 녹던 내 마음의 당신 자리는 식지 않고 김이납니다.
낭송하시는 두분 모습이 세월을 초월한 소녀같은 모습! 낭낭한 목소리로 많은 연륜에서 빚어내는 아름다움의 깊이가 더해가고 백발의 노시인 김현경 선생님의 카랑 카랑 허스키로 불러 주시는 동요가 버스안에 가득 맴돌다 우리일행의 심장속으로 숨어 버릴즈음 김옥현 선생님의 톡톡 터지는 유머와 재치가 쌓여있던 피로를 말끔히 씻어 주었던 문학기행은 달빛과 함께 문지방을 넘어섰다.
2007 년 5월 4일 문학기행에서...
♤ 山 海 / 김. 유. 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