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4/고구려 유적 답사여행1날짜: 2007.6.30~7.4(4박5일)
압록강변- 졸본성- 오녀산성- 졸본성터- 통화- 백두산- 금강대협곡- 통화- 장춘- 인천
압록강변따라 신의주, 위화도, 월량도를 조망 하면서 터덜 거리는 버스길을 5시간이나 지루하게 타고
혼강을 우측으로 끼고 돌아 고구려 첫 도읍지 졸본성, 지금의 오녀산성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정상까지는 열여덟 굽이(十八盤)의 길이며, 이것을 계단으로 오르면 999개라고 한다.
그 길이 멀고 일직선의 가파른 계단이지만 우비를 입고 한계단 한계단을 밟아 올라 가면서 많은 생각이 교차된다.
오녀산성은 비류수 혼강을 끼고 우뚝 솟아있다. 삼국사기에서 주몽은 3명의 현인과 함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졸본천(卒本川: 魏書에서는 흘승골성(紇升骨城)이라고 표현)에 이르게 되는데 이 졸본천이 바로 비류수 혼강이다.
고구려의 초기 산성으로 해발 820m의 오녀산 꼭대기에 동·남·북쪽 삼면을 돌로 쌓았다.
남쪽은 절벽이며 서쪽은 성벽없이 산봉우리가 천혜의 장벽을 이루고 성 안에는 샘물과 점장대가 있다.
현재 세계문화유산에 중국의 유적지로 등재돼 있어 아쉬움을 더한다
오솔길을 따라서 가다보니 넓은 들판이 나왔다. 잡초만 우거진 넓은 풀숲, 간간히 들꽃과 고운 야생화 들이 있어
바위 꼭대기라는 생각을 잊어 버릴 정도였다. 아무리 들판이 넓고 좋아도 물이 없으면 사람이 살 수 없는것,
숲을 나와 들판길을 조금 가니 못이 나왔다. 그 표지석 앞면에 성급문물보호단위 오녀산산성이라고 쓰여 있고
그 뒷면에는 천지라는 큰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물은 생각보다 깨끗하지 못했지만, 저수지가 있다는 것은 고구려 산성의 특징이다.
그러나 800 여미터의 절벽위에 남북 1Km, 동서 300m로 놀라울 정도로 넓은 평지로 이루어진 곳곳에는 주춧돌 놓인
흔적 하나 찾아볼 길 없었고, 고구려 역대 왕들이 왕위에 오르면 이곳에 와서 시조 주몽왕에게 참배했다는 사당마저 간 곳 없었다.
그리고 산상부분(山上部分)의 남쪽 끝에 일종의 조망대인 점장대가 위치한다. 오녀산성 내에서는 이곳 점장대에서의
전망이 가장 좋다. 날이 좋으면 저 아래 태극 모양의 모습을 선면하게 볼수 있다는데 안개가 자욱했다.
이곳에는 한쪽으로 점장대, 다른 한쪽으로 요녕제1경(遼寧第一景)이라는 표석이 서 있다.
중국 역사의 현장 이름으로 바뀐 '오녀산산성' 입석 표지석, 유네스코 문화유산임을 표시하고 있다.
오녀산성 입구
이렇게 기파른 계단을 올라간다.
왕궁터라고 했지만 아무런 흔적도 없었다.
마르지 않는 샘,천지
800m가 넘는 산꼭대기에 1,000m나 되는 평지가 있고, 숲이 있으며, 또한 샘물이 있는 천연 요새를 찾아
도읍한 동명성왕의 예지를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그 당시 쌀창고의 터,
초가 지붕이 정겨웠고 바닥에는 태극 무늬가 선명하게 그려져 있었다.
내려다 본 풍경,
점장대에 있는 선돌,
침묵의 안개만이 흘러간다.
백두산 가는길
통화에서 조식후 서백두 셔틀버스 있는 곳까지 5시간이나 걸려서 도착, 점심을 하곤 다시 버스로 이동한다.
내년 북경 올림픽과 더불어 이곳 근처에 비행기장을 공사하고 있다니 아마도 훨씬 힘이 덜어 질것 같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올라가는 양쪽 숲은 푸르고 자작나무들이 울창해 조금도 낯설지가 않다.
노란 매발톱등 많은 야생화들이 비에 젖어 고개를 숙이고 있다. 그러나 마음은 백두산 천지에 가 있다.
과연 천지를 볼 수 있을까...한 가닥의 희망을 안고 올라간다. 고산화원이라는 곳이라고 설명을 하지만 버스는 안타깝게 달린다.
고산이지만 푸른 평지에 보랏빛의 붓꽃이 장관을 이루고 키 작은 흰꽃, 하늘 매발톱꽃이 바람에 흔들 거리는데 정말 아름답다.
올라 갈수록 나무들은 사라지고 비 오는 안개 속에 자그마한 꽃들만 나풀 거린다.
백두산의 날씨는 하루에도 몇 번씩 변화가 있다는데 혹시 한 순간이라도 볼 수 있을까 싶어 그 순간을 잡아 보려고
카메라를 메고 우비를 입고 1300여 계단을 올라야 하는데 오를수록 안개는 더 심해져 사진의 대한 마음을 아예 비우니 편하다.
멀리는 보이지 않아도 가까이 꽃이랑 담으면 되겠지만 포기한 채 백두산 정상에 오른다.
그저 안개만 뿌열 뿐 아무것도 보이지를 않아 중국과 북한에 경계선인 비만 한 장 담았다.
백두산은 삶의 터전이며 민족 얼의 발상지이다. 고조선, 고구려, 발해, 조선에 이르기까지, 반만년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땅...
인간의 간섭 없이 그대로의 원시가 살아 있는 숲...그 안에서 피고 지는 백두의 사계는 수많은 생명들을 잉태한다.
수억 년, 거듭되는 자연의 순환 속에 거대한 운명을 이고 흘러온 백두산...백두산 정상에서 그 기상을 굽어본다.
다시 오리라....그때엔 트레킹으로 종주를 하리라.....
중국과 북한의 경계의 비,
금강 대협곡 들어 가는길
백두산에서 내려와 금강대협곡에 도착해 들어가니 나무들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통나무 길로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우선 키 큰 나무들이 예사롭지 않다. 수종도 다양하지만 그 기품 있는 모습은 잊지 못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천지는 열리지 않아 못 봤지만 입을 다물 수 없는 그 기품과 화려한 변화에 매혹되고 만다.
협곡을 따라 펼쳐지는 산과 바위에 다양한 색상에 의아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용암에 모두 녹아 없어지지 않고 잔뼈만이라도 남겨둔 바위들은 갖가지 형상의 만물상을 연출하고 있다.
그 기이한 형상은 신기하기 그지없고 용암의 무서운 파괴력에 자연재앙의 무서움을 다시금 실감해야 했다.
서백두 모든 곳은 우리가 보존하고 가꾸어야 할 원시환경 그대로였고, 다행스럽게도 북백두와는 달리
서백두 산문 안에는 모든 건축물을 제한하고 있다는 설명에 그저 고마울 뿐이다
백두산의 숨은 비경들~~~금강 대혐곡
금강 대협곡을 둘러 보고는 다시 통화로 5시간 버스를 타고와 저녁을 먹곤 옵션으로 전신맛사지를 받곤
호텔에 와 잠을 잤는데 새벽 3시반경 배가 아프면서 설사를 하기 시작 하는데 멈추지를 않아 몇 번이나 했다.
오늘 하루 일정이 남았는데 걱정이 앞선다. 여행을 망칠 수도 있으니 일행에게 내색은 하지 말아야지 했다.
6시경, 넷째 시누가 와 별일 없으냐고 괜찮으냐고 묻는다. 괘잖다 했는데, 셋째 시누가 밤새도록 설사를 하고 토하고 앓고 있단다.
가보니 이불을 뒤집어 쓰고 오한이 나 덜덜 떨고 있었다. 나만 그런줄알고 있었는데 11명중 6명이나 그런 것이다.
여행사 측에서 사장님이랑 직원이랑 나와 가이드랑 꽤나 큰 병원엘 갔는데 병원이라기 보다는 시장 같았다.
중국이란 나라는 질서도 없고 그저 밀고 진찰실에 들어오면 의사는 아무 말없이 그냥 봐준다.
긴장이 풀렸는지 힘도 없고 머리까지 아파 나무의자에 앉아 기다리기조차 너무 힘들었다.
급성장염이란다. 저녁까지 금식을 해야 하고... 침대가 20여개 있는 방으로 가 링거를 맞는데 베개도 없고 침대는 물론
이불이 어찌나 더러운지 도저히 덮을 수가 없어 약간은 추웠지만 내 잠바 하나로 6시간 한나절을 누워 있었다
오후 2시경 설사는 멈추었는데 기운이 없고 힘이 없어 병원에서 나온 사람들은 비 맞은 닭과도 같다.
그래도 우리끼리 왔으니 천만 다행이지 많은 팀들과 섞였으면 큰일이 아닌가.....
결국 오늘의 일정인 광개토왕비, 광개토왕릉, 장수왕릉, 국내성 성벽, 환도산성은 포기한 채 장춘으로 5시간 버스를 타고 왔다.
다시 찾아 오르리라. 그날이 오면 무거운 가슴 풀어헤치고 회한의 세월을 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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