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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혼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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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과벗 2008. 2. 18.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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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주단자] [함] [혼례]

blue01_up.gif  합근례의 모습입니다. 신부의 하님이 술잔에 술을 따르면 신부가 허리를 굽혀 읍례한 뒤에 술을 신랑에게 보내고, 신랑은 그 잔을 입에 대었다가 다시 신부 쪽으로 퇴주하는 의식으로 신랑 신부가 하나됨을 뜻합니다

  사람의 통과 의례에 드는 혼례는 나라마다 다르기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혼례 풍속은 그 나라의 본디 모습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거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 같은 나라라도 혼례가 지방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나며 시대에 따라 변화를 겪기도 합니다. 의식으로서의 혼례는 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각을 드러내 보이는 역사의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우리가 말하는 전통혼례는 유교 사상이 생활 양식의 규범으로 자리를 잡았던 조선 시대에 한 가례로 뿌리를 내린 것입니다.

  전통 사회에서는 남여의 내외법이 엄격하여 중매가 끼어드는 혼인만이 가능하였고, 개인끼리의 인격적인 만남보다 가문끼리 맺어져 대를 잇는 데에 혼인의 뜻을 두었습니다. 그래서 혼기에 이른 자녀가 있는 집안에서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런 사람을 "중신 어미" 또는 "중신 애비"라고 부릅니다-을 중간에 두고 두 집안을 왔다갔다 하며 혼인을 성사시키게 하였습니다.

green07_next.gif 사주단자

 우리의 전통 혼례의 경우에 따로 보내지는 사주 단자는 궁합이 만족스럽게 풀이되어 혼인을 하기로 약정이 되면 좋은 날을 가려 신랑집에서 신부집으로 보냅니다.

  사주 단자는 간지를 일곱번 또는 다섯번 접어서 한가운데에 신랑의 사주 곧, 태어난 해와 달, 그리고 시간을 적어 봉투에 넣어 만듭니다. 봉투의 앞면에는 사주라 적고, 뒷면에는 근봉이라 쓰는데 봉투는 봉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수숫대나 싸릿대를 반으로 쪼개서 봉투를 그 사이에 끼우고 양쪽끝을 푸른 실과 붉은 실을 두겹으로 해서 감습니다. 이것을 푸른색과 붉은색으로 된 겹보자기에 푸른색이 겉으로 드러나도록 싸서 신부집으로 신랑 가족중의 덕망있는 사람 편에 보내는 것을 "납채"라고 합니다.
사주 단자가 신부집에 오면 대청이나 마루에 돗자리를 깐 다음에 그 위에 붉은 보자기를 씌운 상을 놓고 이를 받아들이는 꽤 복잡한 의식을 거칩니다.
 

  그리고 사주 단자를 받은 신부집에서는 "좋은 날"로 혼인날을 정해 간지에 적은 택일 단자를 혼인하기 두세달이나 반년쯤전에 신부 가족중의 덕망있는 사람 편에 신랑집으로 보냅니다.
이런 관례는 신식 혼례에도 남아 혼인 날짜를 신부 쪽에서 정하기가 예사입니다. 이는 신부의 몸 상태와 신부 쪽의 준비 상황을 헤아린 합리적인 풍습인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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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 전날 밤에 신랑집에서 신부집으로 함을 보냅니다. 함에는 혼서지 곧 "이 미숙한 아이를 잘 받아들여 잘 좀 지도해 달라"는 뜻의 글을 적어 넣은 신랑집 쪽 편지를 맨 위에 넣고 그 아래에 푸른 비단과 붉은 비단을 한감씩 깔되 푸른 비단은 붉은 종이에 싸고 붉은 비단은 푸른 종이에 싸서 푸른색과 붉은색으 명주실 타래를 사용하여 동심결이라는 매듭으로 묶어서 깔았습니다. 이는 바로 "음양"의 결합을 상징하는 것으로 푸른색은 "음"을 나타내며 붉은색은 "양"을 나타냅니다. 지방에 따라서 함에 콩과 팥과 목화송이를 담은 향낭(노란 비단주머니)을 넣는 수도 있는데 콩은 아들을 뜻하며 팥은 딸을 뜻합니다.

빨간 옷에 빨간 모자를 쓴 함진애비가 함지게를 지고 가다가 일행이 신부집 마을에 이르면, 신부집에서 안내자가 나와 함진애비를 맞아들여 신부집에 가까이 있는 거처에 머무르게 합니다. 이때에 함진애비 일행이 머무르는 곳을 "사처"라고 부릅니다. 밤이 되면 함진애비가 등롱 곧 헝겊씌운 촛불 등을 든 사람들과 함께 신부집 문 앞에 이르러 좀 머뭇거립니다.
그러면 신부집에서 함을 받아 마당에 미리 준비해 둔 빨간 보자기를 씌운 상위에 올려 놓습니다. 그런 뒤로 함을 방으로 들여보내면 신부 가족들은 함에서 혼서지를 꺼내 소중하게 영구히 보관합니다.(호적이나 혼인 신고 제도가 없었던 시절에 혼서지가 혼인 문서와 같은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신부 식구가 함에 든 예단을 혼서지 다음으로 꺼낼 때에 파란 종이에 싼 빨간 비단이 먼저 나오면 첫아들을 낳는 다는 속설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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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en07_next.gif 혼례

  혼례는 신부집 마당에서 마을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치루어졌습니다. 사모관대를 한 신랑이 가마나 조랑말을 타고 상객, 후행, 기럭아비 곧 안부, 함진애비와 함께 신부집에 도착하면 혼례가 시작됩니다. 그러면 신부집의 안내자가 나와 신랑을 맞아들여 혼례를 올릴 준비를 합니다. 돗자리를 깐 대청이나 차일을 치고 멍석을 깔고 다시 돗자리를 편 마당으로 신랑이 안내되면 곧 이어 "전안례"가 시작되는데 그 절차나 방법은 지방에 따라 조금씩 다르나 공통된 점은 신랑이 보자기에 싼 기러기를 들고 읍-서서 하는 절-을 세번 하면서 신부집에 들어가 전안상 위에 기러기를 놓고 다시 절하는 것입니다.
혼례4.jpg 신부 어머니가 신랑의 절이 끝나기 전에 재빨리 기러기를 치마에 안고 안방으로 들어갑니다. 기러기로는 산 기러기를 쓰는 것이 원칙이나 나무를 깍아 만든 것을 사용해도 무방합니다. 전통 혼례에 기러기가 등장하는 까닭은 기러기가 정절을 상징하는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전안례에 이어 "교배례"와 "합근례"로 이루어 지는 "대례"가 진행됩니다.
신랑이 대례상 앞에서 서쪽을 향해 서면 원삼 차림에 족두리를 쓰고 연지 곤지를 찍은 신부가 동쪽을 향해 섭니다. 신부가 먼저 하님의 부축을 받으며 두번 큰절을 하면 신랑은 무릎을 꿇고 앉아서 절을 받은 뒤에 한번 하는 큰절로 답례를 하며, 신부가 다시 두번 큰절을 하면 신랑은 다시 한번 하는 큰절로 답례를 합니다. 여기까지가 "교배례"입니다.
이때에 신부가 신랑보다 절을 많이 하는 것은 아무래도 남존 여비 사상이 반영된 풍습인 듯 합니다.

혼례3.jpg 교배례가 끝나면 바로 합근례로 들어갑니다. 신랑은 무릎을 꿇고앉고 신부는 앉아 있는 상태에서 신부의 하님이 푸른 실과 붉은 실을 드리운 술잔에 술을 따라주면 신부가 허리를 굽혀 읍례 합니다. 신부가 읍례한 술을 신랑에게 보내면 신랑은 그 잔을 입에 대었다가 다시 신부쪽으로 퇴주합니다. 이것이 합근례입니다.

대례상 위에 늘어 놓은 음식은 지방에 따라 다르지만 서울에서는 달떡, 밤, 대추, 나무로 만든 닭을 좌우에 한마리씩 놓고 촛불, 대나무, 들쭉나무를 양쪽에 놓습니다.
합근례를 마침으로써 대례가 끝나면 신랑과 신부는 신방에 들어가 잠깐 마주 앉습니다. 신부가 신방에서 나오면 신랑은 예복을 벗고 신부집에서 마련해 준 옷으로 갈아입는데 이를 "관대 벗김"이라 합니다. 신랑은 곧 사랑으로 나와 신부의 부모와 집안 어른들에게 인사를 드립니다. 이때부터 집안은 온통 잔치 분위기에 휩싸여서 마을 사람들은 술과 고기과 떡과 국수를 대접받으며 소문을 듣고 몰려온 걸인들에게도 걸게 차려진 잔치상이 나갑니다.

대례날 저녁에는 신부집에 신방이 꾸며지니 이곳에서 신랑 신부가 첫날밤을 보냅니다. 이때 신부가 먼저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신방의 법도 입니다. 촛불을 끌때에는 젓가락이나 이불자락으로 끄는데 입김으로 끄는 일은 복을 불어 낸다고 삼가기 때문입니다.
이날 밤에는 친척이나 이웃 사람들이 신방에 손가락으로 문구멍을 내어 엿보는데 이를 "신방지킴"이라 합니다. 그러나 방안에 촛불이 꺼지면 방문 밖으로 물러가는 것이 예의로 되어 있습니다.

폐백은 신부가 시댁 식구에게 첫인사를 드리는 예로, 대례를 치르고 나서 친정에 머물다가 대개 두서너달 뒤에 신부가 신랑을 따라 시집으로 간 뒤에 이루어집니다. 이를 신행이라 합니다. 폐백 음식으로는 자손의 번창을 뜻하는 대추와 고기를 주로 사용하는데 대추는 시아버지 앞에, 고기는 시어머니 앞에 놓습니다. 며느리가 큰절을 하고 폐백술을 올리면 시아버지가 붉은 실에 꿴 대추를 던져 주면서 아들을 낳으라고 말합니다. 이때에 서울 지방에서는 시어머니가 고기를 두손으로 쓰다듬기도 하는데 이는 며느리의 흉허물을 덮어준다는 상징적인 표시입니다. 폐백을 드리고 나면 신부도 "입매상"이라고 하는 큰 상을 받습니다. 이 절차를 거치면 신부는 완전히 시댁의 며느리로 받아들여져 "죽어도 시집 귀신"이 되는 것입니다.

"재행"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재행은 혼인한 뒤에 처음으로 처가에 가는 것으로 처가에서 하루를 쉬고 다음날 집으로 돌아옴으로써 혼인 대사가 마무리 되는 것입니다. 이 의식은 앞서의 폐백과 함께 "후례"라고 합니다.
끝으로 혼례 과정에는 신랑과 같은 나이 또래인 친척이나 마을 사람들과 인사를 닦기 위한 의식으로서 "동상례"가 있는데 지방에 따라서 대례를 치르는 날에 하는 곳도 있고 재행 때에 하는 곳도 있습니다. 동상례로 말미암아 신랑이 곤욕을 당하는 경우도 있지만 나쁜 뜻은 없고 서로 친해지자는 뜻을 담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이러한 혼인이 인륜의 대사인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습니다. 한 사람의 생애에 커다란 의미를 지닌 통과 의례로서의 혼례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즈음의 혼례는 물질 만능 위주의 사고에 밀려 혼례의 가치가 많이 사라졌음은 우리가 깊이 반성해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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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선경식님의 글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사진은 백승기님의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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