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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항재 복수초 & 영월 드라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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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과벗 2008. 3. 20.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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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따라 떠나는 여행] 만항재 복수초 & 영월 드라이브

일간스포츠 | 기사입력 2008.03.18 14:25 | 최종수정 2008.03.18 14:28


[일간스포츠 박상언] 따사로운 봄의 입김이 백두대간에도 미치기 시작했다. 만항재 일대는 해발 1330m가 넘는 고지대라 잔설이 산하를 뒤덮고, 차가운 바람이 아직 매섭지만 바짝 다가선 봄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다.

이를 가장 먼저 알리는 봄의 전령은 빼꼼히 고개를 내민 복수초다. 양지바른 비탈에 쌓인 하얀 눈을 헤집고 손톱만한 노란 꽃망울을 앙징맞게 터뜰인 복수초는 예쁜 모습에 비해 향기를 느낄 수 없지만 강렬한 생명력만으로도 후각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정선 고한읍에서 만항재를 넘어 상동-중동을 거쳐 영월읍으로 이어지는 드라이브는 심심산골 오지의 정감을 느낄 수 있어 좋다. 특히 상동읍의 마을 풍경은 1980년대를 주제로 하는 드라마 세트장같아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되돌아간 분위기를 풍긴다.

만항재는 함백산(1573m)과 백운산(1426m)의 능선을 이으며 강원 정선과 영월을 가르는 고갯길이다. 1980년대까지 일대에서 캐낸 석탄을 옮기던 운탄로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재의 북쪽 일대는 비교적 완만한 능선이 이어져 파릇파릇 잎이 돋아나는 봄부터 야생화 천국을 이룬다. 정제된 느낌이나 향기는 덜하지만 자유와 생명력 만큼은 오히려 정원을 장식하는 관상용 꽃이 따라오지 못한다.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주인공이 복수초다. 불과 10㎝ 내외의 작은 키의 복수초는 녹기 시작한 눈을 헤치고 올라와 해가 뜨는 날이면 활짝 꽃봉우리를 열어제친다. 그리고는 해가 서산으로 저물면 내일을 기약하며 다시 꽃봉우리를 오무린다.

만항재 남쪽에는 지난주부터 복수초가 노란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사람의 발길이 닿기 어려운 가파른 비탈을 터전 삼아 두 송이 또는 세 송이가 옹기종기 모여 꽃을 피워내는 모습은 신비롭기만 하다. 대부분 눈이 녹은 상태에서 싹을 틔웠지만 성급한 놈들은 눈을 헤치고 줄기를 밀어올리는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준다.

복수초는 완전히 만개해 꽃술까지 하늘을 향할 때보다 특히 해가 떠오르는 오전에 예쁘다. 노란 꽃잎을 둘러싼 짙은 갈색의 꽃받침이 햇살의 강도에 따라 조금씩 벌리는 모습을 지켜보면 "아!" 하는 탄성이 입술 사이를 비집고 튀어 나온다.

복수초 군락지에서는 또 하나의 진객을 만날 수 있다. 복수초와 크기는 물론, 꽃을 피우는 시기도 비슷한 중의무릇이다. 줄기에 4개 이상의 꽃자루를 품는 중의무릇은 지금 맨 윗부분의 꽃자루만이 붓꽃처럼 생긴 노란색 꽃을 피웠다.

그런데 복수초가 꽃망울을 터뜨릴 즈음이면 이 일대가 몸살을 앓고 있다. 만항재의 복수초가 유명세를 타면서 발길이 잦아졌고, 이로 인해 발 밑에 자라고 있는 생명에 대한 고려 없이 마구잡이로 헤치고 다니거나 자신만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남획도 서슴치않기 때문이다. 이런 추세라면 조만간 복수초를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란 걱정스러운 전망이 나올 지경이다.

무릇 모든 사물은 원래의 자리를 지키고 있을 때만 가치가 있고, 빛이 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대목이다.

만항재에서 태백과 영월을 가르는 화방재로 이어지는 414번 지방도로는 마치 뱀이 기어가는 듯 구불구불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흰 눈을 뒤집어쓴 주변 산들과 어울려 한 폭의 수묵 산수화를 그려내고 있다. 이 길의 끝은 태백과 영월을 가르는 화방재. 여기서 우회전, 영월 방향으로 좀 더 가면 상동이다.

상동의 본 이름은 구래리이다. 신라 때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부처님 진신사리를 가져온 후 이를 보관하기 위한 곳을 찾기 위해 이곳을 아홉번 다녀갔다고 한다. 자장율사는 이곳에서 산을 넘어 고한의 정암사 수마노탑에 사리를 봉안했다. 이때부터 이 마을의 이름은 구래리가 됐는데, 광산이 개발되면서 상동이란 이름을 갖게 됐다.

백운산 북쪽을 따라 이어지는 함백·사북·고한은 과거 국내 석탄 생산의 상당량을 차지했던 탄광지역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백운산 남쪽 상동이 광산지대였다는 사실은 모르는 이들이 많다.

상동은 일제 때 중석 광산이 개발되면서 인구 2만명 이상이 북적거리던 지역이다. 1993년 광산의 폐광과 함께 활기는 사라지고 이젠 2000명도 남지 않은 한적한 시골 마을로 변하고 말았다. 상동의 지금 모습은 1980년대 그대로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떠나온 것처럼….

그래서인지 마을 진입로부터 썰렁하다. 다른 시골 마을과 달리 식당·술집 등의 간판이 붙어있던 상가가 늘어서 있는데, 영업을 하지 않는듯 문을 닫아걸었기 때문이다. 그 길이가 무려 2㎞나 된다.

마을의 한 촌로는 "한창 때는 가는 곳마다 왁자지껄, 문전성시를 이뤘지. 그런데 지금은 너무 조용해"라고 말했다. 실제 건물에는 주거환경 개선을 위해 철거할 예정이라는 안내판만 덩그러니 붙어 있다. 마을 끝에는 중석을 캐던 대한중석 상동사무소가 건물만 남아있다.

상동에서 눈에 띄는 것은 꼴두바위. 마을 한 가운데 덩그러니 솟은 꼴두바위는 마을 사람들로부터 신성한 바위로 사랑받고 있다. 옛날 이 마을에서 주막을 운영하던 한 며느리가 아이를 낳기 위해 꼴두바위에 치성을 드리다 시어머니의 구박을 이기지 못해 죽었는데, 아이 대신 바위가 중석을 잉태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상동에서 옥동천을 따라 영월읍까지 이어지는 길은 수도권 강변도로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다. 개발의 흔적이 전혀 없어 그야말로 원시 자연 속을 달리는 느낌을 전해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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