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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길어 밥해먹던 그시절~~

☞옛날·풍속·풍물/그때 그시절

by 산과벗 2008. 5. 8.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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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길어다 밥해주시던 어머니가 그립다

[70년대 사람과 삶 4]물동이 이던 어머니와 누나, 물지게 깨나 졌던 우리들의 살림
김규환(kgh17) 기자   
▲ 물동이와 시루. 조금만 가벼웠더라면...
ⓒ2005 김규환
우리 집에는 샘이 없었다. 아니, 팔 시기를 놓친 것인지도 모른다. 남의 집에 세 들어 살 때도 없었고 우리 집을 산 뒤로도 없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인 중학교 1학년 때 마을 뒷산에서 플라스틱 관을 연결하여 오기 전까지는 물 한 방울을 쓸래도 밖에서 길어와야 했다.

▲ 양철로 된 물동이가 세월을 말하듯 녹이 슬고 있다.
ⓒ2005 김규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집에 물이 떨어지면 아침이건, 밤 9시를 넘긴 캄캄한 시각이건 먹는 물이나 허드렛물, 쇠죽 쑬 구정물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수고를 해야 했다. 우리 집처럼 우물이 없는 집은 겨울과 장마철엔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광주에서 상수원인 동복수원지가 말라가서 격일제 급수를 한다고 야단일 때는 최상류였던 우리 마을 냇가도 마르는 일이 잦았다. 물 부족은 참으로 삶을 팍팍하게 한다. 눈이 많이 왔던 70년대까지 시골마을 고샅길엔 저벅저벅 눈이 녹았다가 얼음으로 변하여 녹고 얼기를 반복한다. 이때도 마을 공동 샘으로 물을 길어와야 한다.

아버지 위엄이 대단했던 시절, 남자들은 물 긷는 일을 아예 하지 못하도록 금지했던 집안도 있었다. 똥장군이나 오줌장군 져 나르는 게 체통이었다면 믿는 사람 있을까? 남자와 여성의 일이 명확히 구분되어야 체신이 서니 뭣 달린 놈들이 정지를 들락거리면 지청구를 듣곤 했다.











▲ 아버지들이 져날랐던 똥장군
ⓒ2005 김규환
그런 집에 비하면 우리 집이 민주화가 일찍 찾아온 건지 모르겠다. 도리 없이 가사노동에 남자, 여자 구분없이 참여하고 거들었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소 두 마리에 돼지 너덧 마리, 염소와 닭까지 키웠고 식구가 8명이었던 대식구 살림에 어찌나 물이 많이 필요하던지 지금 생각하면 물 긷다 판이 날 뻔한 대단한 양이었다.

▲ 물동이 한가지
ⓒ2005 김규환
다섯 살 위인 누나는 나를 어머니 대신 업어 키웠을 뿐만 아니라 일곱 살 때부터는 동이를 이고 다녔다. 어머니는 하루에도 몇 번이고 집과 우물을 오갔다.

남자 형제들은 물지게를 졌다. 쇠죽을 쑤기 전에 여물을 썰어 놓고 발이 없는 물지게를 지고 나간다. 도랑물을 두 통 푹 떠서는 양쪽 고리에 걸고 쏜살같이 쉬지 않고 달려 집으로 온다. 구정물 통에 쏟고 달려 나간다. 빈 수레가 더 요란하듯 양철통을 달가닥거리며 뛰어갔다가 퍼 나르기를 대여섯 번이나 한다.

양동이를 갖고 나갈 때는 빙그르르 돌아버리므로 손으로 잡아줘야 한다. 그러니 물지게보다 그냥 양동이만 갖고 나가야 편하다. 쇠죽솥에 두 번 네 통을 부으면 저녁 물 긷기는 끝이 난다. 누가 시켜서는 팍팍해서 못할 짓이다. 어깨가 앞으로 축 처지며 허리가 굽고 통증이 바로 전해온다. 다음날 아침에도 고단한 작업은 계속됐다.

우리 남자들은 편했다. 뛰다가 돌부리에 걸리거나 아이들이 반질반질 윤을 내놓은 눈 위에 발을 디뎌도 그 자리에서 고꾸라져 넘어지면 그만이다. 엉덩방아를 찧거나 무릎이 조금 시큰할 뿐 위험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 소쇄원의 우물. 우리마을은 사각형이었다.
ⓒ2005 김규환
여자들은 달랐다. 그 무거운 것을 이고 엉덩이를 좌우로 흔들며 힘을 주어 걷노라면 밑바닥이 보이지 않은 고로 남자들의 물지게와는 본질부터가 달랐다. 위에서 물이 넘쳐흘러 서너 번 오가면 찬물로 목욕을 하는 것은 예삿일이다. 코로 물이 들어가면 "푸푸" 뱉어내며 길을 재촉하여 얼른 집으로 오른 게 상책이다. 중간에 내릴 수도 없고 쉴 수도 없는 형편이다.

이뿐이면 말을 하지 않겠다. 고무신 코빼기가 걸리거나 헛디뎌 미끄러운 부분을 밟았다가는 웬만히 완력이 있는 사람도 열이면 열 물동이를 머리에 인 채로 넘어지니 물동이 깨지는 건 고사하고 옹기가 깨지면서 며칠 동안은 문 밖 출입을 할 수 없도록 큰 부상을 입는다.

남자인 나도 동이를 한 번 머리에 이어 봤다. 물동이는 두 가지다. 한동안은 옹기로 만든 무거운 동이를 썼다.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반 전국에 양철과 함석이 대량생산되면서 잠시 함석으로 된 물동이를 썼을 뿐이다.

▲ 짚으로 만든 똬리 아래쪽은 오목하고 위쪽은 볼록하다.
ⓒ2005 김규환
빈 것도 손잡이를 들어 갖고 나갔다가는 떨어뜨리고 마는지라 애지중지 이고 나간다. 불을 꺼트리는 것만큼 소중한 여성들 재산이었으니 조심히 다룰 수밖에 없다. 어머니 손에는 또아리(똬리, 동아리)가 들려 있다. 동이 안에 든 바가지가 달가닥거린다.

"엄마 어디 간가?"
"물 질르러(길으어) 가."
"저도 바케스 갖고 나오끄라우?"
"할라믄 어둑해지기 전에 나와야 혀."
"알았어라우."


▲ 이 항아리에 물을 채워 바가지 동동 띄워 힘껏 들어올려 집으로.
ⓒ2005 김규환
골목길을 나가서 동네 앞길을 따라 100여 미터 내려가 네모난 징검다리 일곱 계단을 한 발 한 발 건너면 여름 한 철 우리 입을 즐겁게 했던 벚나무 한 그루가 있다. 물동이를 네모난 우물 귀퉁이 위에 올려놓고 우물 속을 들여다보면 '쏙쏙쏙' 속삭이듯, '솔솔솔' 지껄이듯 노래한다. 샘물이 살아 꿈틀거린다.

갈수기여도 결코 �아지는(마르는) 일이 없고 여름엔 시원하기 이를 데 없고 겨울엔 얼지도 않고 따스하다. 바가치(박으로 만든 바가지의 사투리)를 요리조리 움직여 먼지를 걸러 떠내면 하늘도 같이 움직인다. 열두어 번 퍼담는다. 물동이에 물을 8할 이상 채우고 마지막 바가지는 꿀꺽꿀꺽 몇 모금 마시다가 조금 남겨서 물동이에 넣어 물이 출렁거리지 않게 담가둔다.

또아리 줄을 입에 물고 비녀 꽂은 머리에 또아리를 올려 자리잡게 하고는 있는 힘을 다 써서 힘껏 혼자서 들어올린다. 힘이 부치거나 균형을 잃으면 한꺼번에 쏟아지고 만다. 철퍼덕 쏟아지면 물세례 자체다.






▲ 예전 정지(부엌)엔 설강엔 그릇과 음식이 덮여 있었고 바닥엔 물항아리와 나무가 놓여 있었다. 낮에도 무척이나 어두웠다.
ⓒ2005 김규환
아무 일 없이 들어올리고는 자세를 가다듬어 한 발짝 한 발짝 디뎌 조심조심 건넌다. 앞이 잘 보이지 않아도 한 손만 손잡이를 잡고도 어렵지 않게 잘도 걷는다. 몇 방울 흐르면 "푸우 푸" 불어버리고는 집에까지 무사히 도착하여 뚤방(마당과 마루의 중간에 있는 토방의 사투리)을 오르고 정지로 들어가서 "콸콸콸" 큰 항아리에 쏟기도 하고 솥단지를 채우고 경물통(설거지통의 사투리)에 붓는다.

솥단지 뿍뿍 긁어 씻고 매캐한 연기 마시며 불을 때서 밥을 해주셨다. 일 년 열두 달 그렇게 살았다. 한평생을 한결같이 살았다. 그마저 오래 볼 수 없었다. 어머니는 마흔 아홉에 먼저 저 세상으로 가셨다.

▲ 물 항아리에 새끼줄을 씌워 이동이 편리하고 깨지지 않게 했다.
ⓒ2005 김규환
누나는 초등학교 졸업하고 2년 동안 집안일 거들다가 서울서 돈버는 두 오빠들 밥해 먹이느라 시골을 떠났다. 어머니와 누이의 힘들었던 인생살이를 잊고 산 지 오래다. 그립고 고마운 마음을 어떻게 전할까.

2005년 오늘 마흔 서넛 이상 드신 여성과 40대 중후반을 살고 있는 남성들은 누구나 한 번쯤은 그 시절이 생각날 듯싶다. 잊고 지내온 세월만큼이나 세상이 편리해졌다. 집안에서 수도꼭지만 틀어도 콸콸 물이 쏟아지니 물을 길어와야 하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

빨래와 밥짓기, 목욕을 맘대로 다 해내는 현재의 편리한 생활이 얼마나 좋은가. 아침저녁으로 매운 연기에 눈물 흘려가며 불 때는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되니 세상 참 좋다. 전기만 있으면 알아서 척척 해주니 이 얼마나 문명이 발달한 첨단 사회에 살고 있는가 말이다. 돈만 있으면 밖에서 사먹고 들어가도 되니 참으로 좋은 세상인데 마음 한구석이 허전함은 무슨 까닭인가.


▲ 이건 변소를 치울 때 쓰던 것이나 물지게도 이와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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