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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삿갓 방랑기(해학과 풍자)

☞고사·한시·속담/시조·한시

by 산과벗 2012. 6. 19.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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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안동(安東), 경기 양주 출생.
본명 병연(炳淵).(1807~1863) 자 성심(性深). 호 난고(蘭皐).
1811년(순조 11) 홍경래의 난 때 선천부사(宣川府使)로 있던 조부 익순(益淳)이 홍경래에게 항복한 죄로 폐족(廢族)이 되었다.

방랑시인 '김삿갓'이 어느 집 앞을 지나는데, 그 집 아낙이 설거지물을 밖으로 휙~ 뿌린다는 것이 그만 '김삿갓'에게 쏟아졌다. 구정물을 지나가던 객(客)이 뒤집어썼으니 당연히 사과를 해야 마땅하지만, '삿갓'의 행색이 워낙 초라해 보이는지라 이 아낙은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없이 그냥 돌아선다.

그래서 '삿갓'이 등 뒤에 대고 한마디 욕을 했다. 하지만 암만 그래도 상스런 욕을 할 수는 없어서 단 두 마디를 했다. "해. 해."

이게 무슨 욕인가? 그러나 잘 풀어보면 해=年이니까 "해. 해."
그러면 '년(年)'자(字)가 2개니까 2年(=이 년!)이던지 아니면 두 번 연속이니까 쌍(雙), 곧 '雙年'(쌍년)이 될 것이다.

그에 관한 일화나 유머와 재치, 해학에 가득 찬 멋진 시가 어디 한 두 개인가?
한 농부의 처가 죽어 그에게 부고를 써달라고 하자 '유유화화(柳柳花花)'라고 써주었다는 얘기는 국민들이 외울 정도이다.

'버들버들하다가 꼿꼿해졌다'는 뜻이 아닌가? 이처럼 한자를 빌어 우리말을 표현하기도 하며 한시를 한글의 음을 빌어 멋지게 풍자하고 조롱하는 그의 솜씨는 우리나라 고대문학사에서 따라올 사람이 없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죽시 竹詩>이다. 그 시의 첫머리는 이렇다

此竹彼竹化去竹
風打之竹浪打竹

이것을 옛 한시대로 곧이곧대로 해석하면 어떤 뜻이 되나? "이 대나무 저 대나무 되어가는 대나무, 바람이 치는 대나무, 물결이 치는 대나무"이다.제법 그럴 듯 한 것 같은데 사실은 해석이 틀렸다. 이 시의 비결은 대죽(竹)에 있다. 여기서 김삿갓은 대를 대나무가 아니라 "...대로"의 '대'로 썼다.
그렇게 해서 다시 이 시의 첫 구절을 다시 읽어보면

이대로 저대로 되어 가는 대로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가 된다.

엄격한 정형이 있는 한시가 아니라 우리말의 시조를 흉내낸 멋진 한시가 된다.
말하자면 시조를 한자의 운에 맞추어 부른 것이다.

이런 방법으로 시 전체를 보면

此竹彼竹化去竹 ; 이대로 저대로 되어 가는 대로
風打之竹浪打竹 ;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飯飯竹竹生此竹 ; 밥이면 밥, 죽이면 죽 이대로 살아가지만
是是非非付彼竹 ; 옳은 것은 옳다 하고 그른 것 그르다고 제대로 붙이세
賓客接待家勢竹 ; 손님 접대는 집안 형편대로
市井賣買歲月竹 ; 시장에서 사고 파는 것은 시세대로
萬事不如吾心竹 ; 만사는 내 마음대로 함만 같지 못하니
然然然世過然竹 ; 그렇고 그렇고 그런 세상 그런대로 지내세 가 된다.


또 그 유명한 구월산이란 시는 어떤가?


 


昨年九月過九月 작년에는 구월에 구월산을 넘었는데
今年九月過九月 금년에는 구월에 구월산을 넘는구나
年年九月過九月 해마다 구월에 구월산을 넘으니
九月山光長九月 구월산 경치는 언제나 구월이로다.

김삿갓의 해학 가운데 비교적 많이 알려진 것이 "스무 나무 아래 서러운 나그네.."로 시작하는 <이십수하(二十樹下)>라는 시이다.

二十樹下三十客
四十家中五十食
人間豈有七十事
不如歸家三十食

이 시에서 二十은 스무이고, 三十은 서러운 또는 설은이고, 四十은 마흔, 곧 망한, 망할을 뜻한다. 五十은 쉰, 七十은 일흔, 곧 이런이 된다. 그런데 <이십수하>라는 시 제목을 잘 보면 상당히 심한 욕임을 알 수 있다. '수'를 나무 또는 놈 등 훈으로 읽으면 '수하'는 '놈아'가 된다.

이십은 경음으로 읽으면 욕을 음사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를 점잖게 해석하면
스무 나무 아래 서러운 나그네,
망할 놈의 집에서 쉰 밥을 먹는구나,
인간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있는가.
차라리 집에 돌아가 설은 밥을 먹으리.로 되는데,

스무 나무라는 말은 앞에서 설명한 대로 심한 상소리 욕이기에 그냥 이렇게 점잖게 표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인구에 회자되는 시,

書堂乃早知
房中皆尊物
生徒諸未十
先生來不謁.


 


 

는 뜻으로 풀면 "서당을 일찍부터 알고 와보니/방 안에 모두 귀한 분들일세/
생도는 모두 열 명도 못 되고/선생은 와서 뵙지도 않네"가 되지만
한자음을 그대로 읽는 경우 그 발음이 뜻하는 바는 익히 발음 그대로이다.

이렇게 우리 말을 이용한 해학시는 끝이 없다. 그러면서도 그는 언어의 마술사였다. 어느 누구도 즉흥적으로 그처럼 능수능란하게 우리 말이건 한문이건 싯귀를 만들어내는 재주가 없었다. 천하를 방랑하던 그가 금강산의 한 절에서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나누는 스님과 선비를 놀리는 대목을 보자

"좋소, 그럼 내가 먼저 운을 부를 테니 즉시 답하시오.
"선비는 이왕 내친김에 이렇게 말하고는 잠시 생각한 끝에 입을 열었다. "타."

"타라니, 이건 한문풍월이요, 아니면 언문 풍월이요?" 김삿갓은 눈을 빛내며 선비에게 물었다.

"그야 물론 언문 풍월이지." 김삿갓을 완전히 무시하는 말투였다.

"좋소이다. 내 답하리다. 사면기둥 붉게 타!"

"또 타!" ..."석양 행객 시장타!"

"또 타!" ..."네 절 인심 고약타!"

`타`자가 떨어지기 바쁘게 김삿갓이 대답하니 선비는 어이없는 모양이었다. 갈수록 듣기 거북한 말만 나오니 다시 더 부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김삿갓은 선비의 입만 쳐다보고 있었다.

다시 그가 `타!`하고 뱉으면 `지옥가기 꼭 좋타!` 하고 내쏠 작정이었다고 한다.

또 하나 이야기를 들어보자

해가 질 무렵 어느 마을 서당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재워달라는 김삿갓의 요청에 서당 훈장이 내기를 건다. ˝내가 운을 띄울 터이니 시를 지어 보도록. 잘하면 따뜻한 저녁에 술상이 나가지만 그렇지 못하면…˝ 김삿갓이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시제를 청했다.

˝멱!˝ ...˝무슨 멱자이옵니까?˝

˝구할 멱(覓).˝

김삿갓은 빙그레 웃고는 마치 운을 알고 있었다는 듯 곧바로 시구를 댔다.

˝許多韻字何呼覓 많고 많은 운자에 하필 멱자를 부르는가?˝

˝다시 멱!˝훈장은 두 번째로 멱자를 불렀다.

˝彼覓有難況此覓 첫 번 멱자도 어려웠는데 이번 멱자는 어이 할까? ˝

˝또 멱!˝ ...˝一夜宿寢懸於覓 오늘 하룻밤 자고 못자는 운수가 멱자에 걸리었는데˝

˝멱!!˝ ... 훈장은 마지막 멱자에 힘을 주어 운을 띄웠다.

김삿갓은 마지막에도 주저하지 않고 마치 준비된 듯이 남은 시구를 완성하였다.

˝山村訓長但知覓 산촌의 훈장은 멱자 밖에 모르는가. ˝

그 날 훈장은 아마도 틀림없이 뒤로 자빠졌을 것이지만 그런 묘사는 나오지 않는다.

매년 10월 10일을 전후해서 영월에서는 "김삿갓문화큰잔치"가 열린다. 그의 묘소가 영월군 하동면 와석리에 있기에 그를 기려 영월군이 마련하는 잔치다. 올해는 10월7일부터 9일까지 사흘동안 성대하게 열렸다고 한다. 그 행사기간에 마침 한글날이 끼어 있었다.

김삿갓, 아니 김병연(1807~ 1863)이야 말로 우리 한글날에 되돌아 볼 인물이다. 그가 남긴 그 재치있는 우리말 실력과 이를 한시로 엮어내는 솜씨는 오늘날에도 계속 음미하고 이를 발전적으로 계승해야 할 중요한 자산이다. 한글 회문시를 지어보자는 바로 전 번의 칼럼에서의 제의를 기억하신다면 김삿갓을 다시 만나고 싶어질 것이다. 물론 왜 한글로 쓰지 않았을까? 하고 따질 수는 있다.

그러나 그에게는 한시가 그가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그 한시라는 표현방법으로 우리 말의 묘미를 살린 것이다. 그 한시를 통해 옛 사람들의 욕설이 오늘과 다르지 않았음도 알게 되었다.

김병연(金炳淵). 일명 김삿갓 그는 우리 말의 묘미를 되살리고 후세에 전해준 사람으로 평가받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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