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良藥苦口.忠言逆而(양약고구 충언역이)

☞고사·한시·속담/명언·속담·격언

by 산과벗 2016. 9. 20.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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良藥苦口.忠言逆而(양약고구 충언역이) 

 어질 량       약 약         괴로울 고        입 구

충성 충      말씀 언      거스를 역        귀 이

 

‘良藥苦口 忠言逆而 양약고구 충언역이’란 말은?

‘좋은 약은 입에 쓰고 바른 말은 귀에 거슬린다.’다는 뜻으로 공자가어(孔子家語) 육본편(六本篇)과 설원의

정간편(正諫篇)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다시 해석하면

良藥苦口利於病(양약고구이어병)

忠言逆耳利於行(충언역이이어행)

좋은약은 입에는 쓰나 병을 고치는데는 이롭고,

충고하는 말은 귀에 거슬리나 행동에는 이롭다는 뜻이다


진나라 진시황(BC 259∼210)은 천하를 통일하고 만리장성을 쌓았으나,분서갱유(焚書坑儒-백성들을 포학하고

수 백 명의 선비들을 생매장함)하면서 아방궁(阿房宮)을 지어 초호화 향락에 빠진다. 

이때 초(楚)나라 항우(項羽.BC 230∼202)는 진(秦) 나라를 치고 초왕이 됐으나 결국 자살한다.

항우는 힘이 장사나 재략과 도량이 부족하고 인재를 얻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방은 장량(張良), 한신(韓信) 같은 어진 신하와 이름난 장수들이 많았기에 유방은 항우보다 앞서 군사를

거느리고 진 나라 서울 함양에 입성하여 진나라를 함락시켰던 것이다. 

유방은 진나라를 멸망시킨 후 진시황제 같은 영화를 누리고 싶어 하는것 아닌가,

그러자 강직한 '번쾌'는 유방의 눈치를 알아채고는,“아직 천하가 통일되기 전입니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태산 같고 이제 부터가 시작 아닙니까? 한시바삐 궁 밖으로 나가 전세를 가다듬어야 합니다.”

 

그러나 유방은 눈살을 찌푸리며 이를 듣지 않았다.

이때 슬기로운 장수 '장량'이 또 충언한다,

“진시황이 포학하고 초호화 향락으로 백성의 원성을 샀기 때문에 당신과 같은 한낱 서민으로서

진 나라를 정복한 것이 아닙니까? 이제 겨우 시작인데, 진시황처럼 향락에 빠져 버리면,

그의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良藥苦口忠言逆而양약고구충언역이’라

‘좋은 약은 입에 쓰고 바른 말은 귀에 거슬린다.’다고 제발 번쾌(樊噲)의 충언을 받아주시옵소서.”  

번쾌와 장량의 충언忠言을 받아들인 유방은 천하를 통일한 후 한나라를 이룩한다.

 

약은 써야 병에 듣는다는 뜻보다는 ‘바른 말은 듣기에는 거슬려도 잘 받아들어야 한다’는 것은

시대를 초월해서 삶의 진리가 아닐까 싶다. 

사람은 누구라도 남의 교훈과 충고가 가시처럼 걸리고 자존심도 상하는 것 같아 선뜻 받아들인다는 것이 그리 쉽지않다.

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가시처럼 거슬리는 그 충고와 교훈을 진심으로 고맙게 수용한다.


아무리 절친한 사이라도 좋은 말은 해주기 쉬워도 안좋은 얘기는 해주기 어렵습니다.
충고를 해줄수 있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는 말도 있습니다.
충고는 아주 가까운 사람이기에 그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기에 해줄수 있는 말이니까요.
관심이 없으면 할수가 없는 것이지요.진정으로 충고를 해줄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행복한 일이고

또 그 충고를 진실로 받아들이는 모습에서 아름다운 행복이 느껴지지 않을까 합니다.



좋은 약은 입에 쓰다는 뜻으로, 곧 충고나 충언(忠言)은 귀에 거슬리지만 행실에는 이롭다는 것을 비유하는 말입니다.
공자가어(孔子家語), 한비자(韓非子) ‘외저설(外儲說)’, 사기(史記) ‘유후세가(留侯世家)’등에 나옵니다.
우리가 격언, 또는 속담으로 쓰는 말 중에 ‘좋은 약은 입에 쓰고 바른 말은 귀에 거슬린다’는 말이 있는데

양약고구 충언역이(良藥苦口 忠言逆耳)를 우리말로 옮겨 놓은 말입니다.


공자가어(孔子家語)> ‘육본(六本)’편을 보면, ‘좋은 약은 입에 쓰나 병에 이롭고,

충언은 귀에 거슬리나 행실에 이롭다(良藥苦於口而利於病, 忠言逆於耳而利於行).

은(殷)나라 탕왕(湯王)과 주(周)나라 무왕(武王)은 간(諫)하는 충신이 있었기 때문에 번영했고

하(夏)나라 걸(桀)과 은의 주(紂)는 뜻에 따르기만 하는 신하들이 있었기 때문에 멸망했다.

임금의 잘못은 신하가, 아비의 잘못은 아들이, 형의 잘못은 동생이, 자신의 잘못은 친구가 간해야 한다.

간하는 사람이 없다면 과오를 범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고 나와 있습니다.


사기(史記)에도 장량(張良)이 한 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의 잘못을 지적하면서

간언할 때에 이 말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진(秦)의 시황제(始皇帝)가 죽고 나자 각지에서는 진나라를 타도하려고 군사를 일으켰는데 유방도 군사를 일으켰습니다.  

기원전 206년, 유방은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항우(項羽)보다 한 발 앞서 진나라의 도읍인 함양(咸陽)에 입성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3세 황제 자영(子嬰)의 항복을 받고 아방궁으로 들어간 유방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호화로운 궁전과 온갖 금은보화, 아름다운 궁녀들에 정신을 빼앗긴 유방은 그대로 아방궁에 머물고자 했습니다.

그러자 용장 번쾌가 나서서 반대했습니다.
“절대로 안 될 일입니다. 여기 머문다면 기껏 함양을 차지한 것이 수포로 돌아가고 맙니다.

지체 없이 궁을 떠나 적당한 곳에 진을 치십시오.”

그러나 유방은 유혹을 쉽게 떨치지 못했습니다. 이에 참모 장량이 설득했습니다.


“당초 진나라가 포악한 정치를 했기 때문에 민심이 떠나 쟁란(爭亂)의 세상이 된 것입니다.

그렇기에 또 전하와 같은 야인(野人)이 이처럼 왕궁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이야말로 전하는 천하를 위해 나머지 적들을 소탕하여 백성들의 짓밟힌 마음을 위무(慰撫)해야 합니다.

우리는 바로 그 때문에 이 왕궁에 온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 궁궐에 눈이 어두워 포학한 진왕(秦王)의 음락(淫樂)을 배우려 하신다면,

이는 하나라 걸왕, 은나라 주왕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원래 ‘충언은 귀에 거슬리나 행실에 이롭고,

양약은 입에 쓰나 병에 이롭다’고 하였습니다. 부디 번쾌의 진언에 따르십시오.”


이렇게 간곡한 진언이 이어지고서야 정신을 차린 유방은 곧 진의 창고를 봉인하고 왕궁을 물러나왔습니다.  

그렇지요. 진정한 간언이 없었다면 한나라의 역사는 어찌 되었을까요?  

바른 말을 들으면 잠깐은 기분이 안 좋을 수 있지만 자신을 돌이켜본다면 분명 자신에게 이로움이 있을 것입니다.

듣기 좋은 감언이설(甘言利說)보다는 듣기 거북하더라도 충언역이(忠言逆耳)를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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