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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의 색을 향한 집념이 만들어낸 고려청자

☞국보·보물·유물/도자기·청자

by 산과벗 2006. 2. 14.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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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 고려청자라고 한다. 그래서 한국의 가장 대표적인 문화재로 청자를 제일 앞에 놓는다. 고려청자하면 제일먼저 그 깊고 심오한 비색에 감탄하게 되며, 두 번째로는 청자를 구워낸 고려도공의 예술성에 감탄하기 때문이다.

한국미의 본질을 말하라고 한다면 어디까지가 자연이고 어디까지가 인간인지 분별하기 어려움이라할 수 있다. 자연과 한 몸을 이루고 싶어 하는 한국인의 염원의 결실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늘과 땅과 인간은 하나라고 하는 진리의 기본을 지키며 창조주로부터 창조의 본성을 배우고 싶어 하는 구도적 삶을 살아온 이름 없는 예술가들의 깨끗하고 아름다운 마음이 만들어낸 것이다. 기술이 부족한 것이 아니다. 자칫 그 기술이 창조주의 위대한 작품을 상하게 하지나 않을까, 저급한 자아가 자연위에 오르지 않게 하기위하여 스스로 자신을 갈고 닦아온 흔적이 남은 것이 한국미술의 유업이다. 건축, 도자기, 조각, 의상, 민화 등 모든 분야에 이르기까지 이 아름다운 심성이 알알이 새겨져있지만 여기서는 고려청자에 국한 하에 말하고 싶다.

고려청자는 10세기경 중국 남방지방의 「월주요」의 청자제작 기법이 전라남도 해안지방인 흑산군도 지방을 통하여 고려에 들어오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고려의 사기장들은 1세기 동안에 걸쳐 청자의 원고장인 「월주요」의 청자기술을 능가하는 위대한 고려청자를 완성하게 되었으니, 이것이 한국에 청자도자기의 전통이 탄생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

바다를 건너온 중국청자는 고려의 생활문화의 고려도공의 아름다운 마음에 부딪치면서 새로운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텁텁하던 중국 청자색을 벗어던지고 비온 후의 고려 하늘처럼 맑고 청명한 아름다운 청자색을 만들어내게 된 것이다. 고려청자를 보고 있노라면 마음에 평화가 깃들며 담담하게 내뿜고 있는 고고한 자태를 보노라면 절로 마음이 편안해진다. 깊고 푸르스름한 사색의 세계로 잠겨드는 것 같은 착각이 일어난다.

고려청자의 신비스러운 비색은 고려인의 곱디고운 마음으로부터 탄생한 것이다. 고려 비색의 아름다움은 천상의 아름다움이며 세속을 탈법한 심오한 것이다. 물색도 아니요 하늘색도 아니요 아스라한 청자의 비색은 마음의 색이라고 불러야할 만한 것이다. 청자색을 비유할 때 비유할만한 것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흔히 청자비색을 “벽옥”에 비유하여 말하곤 한다.

「일찍이 인류가 만들어낸 도자기 중에서 제일 으뜸가는 것이 고려청자다.」 영국의 저명한 미술사학가 하니(W.B Honey)의 표현을 빌리지 않더라도 청자의 가치는 가히 세계적이다.

청자의 아름다움을 말할 때 쓰는 표현이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흐르는 선의 묘미와 만물을 보고 다듬어내는 뛰어난 조형솜씨가 청자비색을 만나 더욱 높은 세계로 올라 가히 신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평하는 것이다. 장주원 선생이 그토록 청자에 심취했던 것도 그와 같은 연유이다.

고려청자 중에는 사자향로, 원향향로, 칠보투각문향로, 기린향로 봉황향로, 어룡주전자, 연화문화병 등 너무도 아름다운 작품이 오늘까지 전해지고 있다. 1000년 전 고려에 뛰어난 천재가 있어 빚어낸 명기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 하나하나의 작품을 하나씩 논할 수 없지만 오리연적 하나만 보더라도 연꽃잎을 물고 평화롭게 떠있는 오리의 모습이 금방 물속에서 갓 나온 듯하다. 군더더기 없이 필요 없는 것은 철저히 배제한 그 오리의 모습이 청자의 비색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어 보는 이의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준다.

강조와 생략을 절묘하게 섞어내는 예술적 감각이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하다. 가히 天上의 수준이다. 고려청자의 비색을 창조한 고려도공은 누구였을까? 그는 분명 한국인이요, 그의 피 속에는 玉의 심정이 흐르고 있었을 것이다.

청자비색은 중국청자와 구분하기 위하여 붙인 이름이다. 그 유약을 찾아내기 까지 얼마나 많은 세월, 인고의 끈기로 집념을 불태웠을까? 어디쯤가야 완성되었다고 가마의 불을 껐을까? 아마 고려도공은 아직도 그 불을 끄지 못하고 더 좋은 비색… 玉같이 심오하고 깊은 색을 계속 찾고 있을 것만 같다.

玉의 심성을 갖지 않고 어찌 고려청자의 비색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사기장이 지니고 있던 玉의 꿈이 청자비색을 탄생시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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