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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나비

☞조류·곤충·동물/나비의 세계

by 산과벗 2006. 2. 14.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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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기에 행복한 복숭아나무
미디어다음 / 글, 사진 = 최병성 목사

 

 

 

 

 

 

 

12년 전 서강 가에 자리를 잡으며 창가에 앵두나무를 심었습니다. 앵두나무는 벌레가 없고 동글동글한 빨간 열매가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해주기 때문이지요. 어느 날 앵두나무 사이를 헤집고 이상한 나뭇가지가 삐죽이 올라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복숭아나무였습니다. 내가 심은 앵두나무는 원래 앵두나무가 아니라, 복숭아나무 뿌리에 앵두나무 가지를 접붙인 녀석이었던 모양입니다. 보나마나 열매가 실하지 못한 개복숭아가 분명하리라 싶어 복숭아나무 가지를 가차 없이 베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이 복숭아나무는 참 대단한 친구더군요. 자르고 또 자르고, 가지가 보이는 대로 잘라버렸건만 새 가지를 밀어 올리는 것을 포기하지 않더군요. 쓸모 없어 잘라버리는 집주인과 어떻게든 살아보려는 복숭아나무와의 씨름이 몇 해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하루는 톱을 들고 복숭아나무를 자르려는데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저도 살아서 꽃 피우고 싶어요"라는 복숭아나무의 애절한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결국 제가 두 손을 들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열매가 보잘것없는 나무였지만, 더 이상 야박하게 복숭아나무의 이토록 간절한 생의 소망을 외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제 아래쪽에는 앵두나무가, 위쪽에는 앵두나무보다 성장 속도가 더 빠른 복숭아나무가 나란히 자라고 있습니다. 한 뿌리에 꽃과 열매가 전혀 다른 두 나무가 동시에 자라고 있는 것입니다.

복숭아나무는 지금껏 단 한 번도 내게 달콤한 열매를 제공해 주지 못했지만, 그 어떤 나무들보다 더 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끊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생명까지 포기할 정도로 그들이 처한 환경이 무척 고통스럽고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복숭아나무는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 가장 아름다운 가치라고 말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소유와 성취로 한 사람을 평가하고 판단합니다. 많은 이들이 자신을 보잘것없다 여기며 괴로워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까닭이겠지요. 그러나 한 사람의 참된 가치는 그의 소유와 성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존재 자체, 곧 살아있다는 생명 그 자체가 가장 귀한 것입니다. 오늘 이 사회는 생명 그 자체를 기뻐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사회이지요.

앵두나무와 함께 복숭아나무가 연분홍 빛깔의 곱디고운 꽃들을 피우면 저희 집은 일 년 가운데 가장 흥겨운 잔치가 벌어집니다. 그 어느 때보다 가장 많은 친구들이 앵두꽃과 복숭아꽃을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호랑나비와 여러 종류의 나비들부터 생전 처음 보는 특이하게 생긴 곤충들에 이르기까지 앵두꽃과 복숭아꽃 사이를 오르내리며 꽃 잔치를 즐깁니다.

이렇게 많은 친구들이 찾아오는 것을 보니 아마 앵두와 복숭아나무가 꽤 인심이 좋은 모양입니다. 찾아오는 친구들마다 빈손으로 보내지 않기에 저리도 많은 친구들이 찾아오는 것이겠지요.

따스한 봄 햇살 아래 올해도 꽃을 피우게 되었다는 사실이 즐거운 듯 복숭아나무는 무척 행복해 보입니다. ‘내가 무엇을 이루었는가’라는 것 보다, 오늘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기쁘다고, 찾아오는 친구들과 더불어 이야기 나누는 복숭아나무의 행복의 향기가 내 가슴에 진하게 다가오는 하루입니다.

'서강 지킴이’ 최병성 목사는 강원도 영월군의 서강 가의 외딴집에서 11년째 살고 있다. 영월 동강과 짝을 이룬 천혜의 비경인 서강 유역에 쓰레기 매립장이 들어서려 하자 사재를 털어 반대운동을 펼쳤다. 최근에는 청소년 생태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 진행하고 생명의 소중함을 글과 사진을 통해 전하고 있다. ‘딱새에게 집을 빼앗긴 자의 행복론’과 생태교육교재 ‘청소년을 위한 숲과 생명 이야기’의 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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