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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월산의 전설

☞산사를 찾아서/우리의 사찰

by 산과벗 2006. 2. 28.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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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월산에 얽힌 전설

 
신라 굴자군에는 모습이 아주 괴이하면서도 오묘한 산이 하나 있는데, 그 이름이 백월산으로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 오고 있다.
옛날 중국 당나라 황제가 황궁 안에 아름다운 연못을 만들었는데, 보름달이 휘영청 밝은 밤에 황제가 연못가를 거닐다가 우연히 연못 속에 어려있는 풍경을 보게 되었다.
황제가 자세히 살펴보니 사자처럼 생긴 바위산이 연꽃사이로 보이는데그 산봉우리가 기이하게 빼어났다.
황제는 연못 속에 비친 산을 찾으려고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펴보았으나 아무리 봐도 사자형상을 한 산봉우리를 찾을 수 없었다.


그 뒤에도 보름달이 뜨면 그 산의 모습이 연못 속에 어려서, 황제는 화공에게 산을 그리게 하고 신하를 시켜 연못 속의 산을 찾게 하였다.
신하들이 중국 전역을 샅샅이 돌아보았으나 그 산을 찾지 못하여 우리나라에까지 오게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전국을 찾아 헤매다가, 마침내 우리고장 창원에 이르러 그림과 똑같은 산을 찾게 되었는데, 그 산은 줄기가 수백 리에 뻗어 있는 진 산이라 할 만한 산이다.
신하는 산을 찾았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까? 생각하다가 바위산 정상에 신발 한 짝을 얹어 놓고 중국으로 돌아갔다.


신하는 황제를 만나 뵙고, 그 산을 해동 국에서 찾았다고 말하자 황제는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느냐?" 고 물었다. 신하는 자기가 신었던 신발 한 짝을 산봉우리 바위 위에 놓고 왔다고 말했다. 보름이 되자 황제와 신하는 연못가에 서서 달이 떠오르기를 기다렸다. 아니나 다를까! 밝은 달이 떠오르자 연못 속에 바위산이 비치는데 바위 위에 신하가 벗어둔 신발 한 짝도 선명하게 보였다.
황제는 감탄하여 그 산을 "보름달과 같이 연못 속에 하얗게 비친다"하여 "백월산"이라 부르게 하고 정상부근에 기이하게 생긴 바위 세 개는 사자가 하늘을 보고 울부짖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어 사자암이라 불렀다 한다.


이 이야기는 삼국유사에 전해오고 있다.


백월산(해발 428m)은 신라 때부터 명산으로 알려진 산으로 창원시 북면에 있는 마금산 온천으로 가는 국도를 따라 가다보면, 완만한 능선으로 된 산들이 이어지다가 갑자기 우람한 바위산을 만나게 된다, 산봉우리에 커다란 바위 세 개가 있어 삼국유사에서 전하는 전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삼국유사에서 전하는 白月山의  전설>

 

신라 굴자군에는 모습이 아주 괴이하면서도 오묘한 산이 하나 있는데,
그 이름이 白月山으로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옛날 중국 당나라 황제가 황궁안에 아름다운 연못을 만들었는데, 보름달이
휘영청 밝은 밤에 황제가 연못가를 거닐다다 우연히 연못속에
어려있는 풍경을 보게 되었다.
황제가 자세히 살펴보니 사자처럼 생긴 바위산이
연꽃사이로 보이는데, 그 산봉우리가 리이하게 빼어났다. 황제는 연못속에
비친 산을 찾으려고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펴 보았으나 아무리 봐도
사자형상을 한 산봉우리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 뒤에도 보름달이 뜨면 그 산의 모습이 연못 속에 어려서, 황제는 화공에게
산을 그리게 하고 신하를 시켜 연못속의 산을 찾게 하였다.
신하들이 중국전역을 샅샅이 돌아 보았으나 그 산을 찾지 못하여
우리나라에까지 오게 되었다.

우리 나라에서도 전국을 찾아 헤매다가, 마침내 우리 고장 창원에 이르러
그림과 똑같은 산을 찾게 되었는데,
그 산은 줄기가 수 백리에 뻗어 있는 진산이라 할 만한 산이다.

신하는 산을 찾았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까 생각하다가 바위산 정상에 신발 한 짝을
얹어 놓고 중국으로 돌아갔다. 신하는 황제를 만나뵙고, 그 산을
해동국에서 찾았다고 말하자 황제는
"어떻게 증명할 수 있냐?"고 물었다. 신하는 자기가 신었던 신발 한짝을
산봉우리 바위 위에 놓고 왔다고 말했다.

 

보름이 되자 황제와 신하는 연못가에 서서 달이 떠오르기를 기다렸다.
아니나 다를까 밝은 달이 떠오르자 연못속에
바위산이 비치는데 바위 위에 신하가 벗어둔 신발 한짝도 선명하게 보였다.
황제는 감탄하여 그 산을 보름달과 같이 연못속에
하얗게 비친다라고 하여 '白月山'이라 부르게 하고
정상부근에 기이하게 생긴 바위 세개는 사자가 하늘을 보고
울부짖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어 사자암이라 불렀다 한다.

이 이야기는 삼국유사에 전해오고 있다.
白月山(해발 428m)은 신라 때부터 명산으로 알려진 산으로 창원시 북면에 있는 마금산 온천으로 가는 국도를 따라 가다보면,
완만한 능성으로 된 산들이 이어지다가 갑자기 우람한 바위산을 만나게 된다. 산봉우리에 커다란 바위 세 개가 있어 삼국유사에서
전하는 전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白月山과 노힐부득,달달박박 에 얽힌 전설

노힐부득과 달달박박

옛날 신라의 진산으로 알려진 白月山(지금의 경남 창원 소재)아래 자리한
어느 마을에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이란 두 청년 선비가 살고 있었다.
풍채가 좋고 골격이 범상치 않은 두 청년은 속세를 초월한 높은 이상을 지닌 좋은 친구였다.
이들이 20세가 되던 어느 가을날.

두 사람은 白月山에 올라 먼 산에 곱게 물든 단풍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겨 있었다. 이때 부득이 먼저 입을 열었다.
『여보게, 우리가 이렇게 평범한 생활에 만족하여 지낼 수가 없지 않은가.』
『자네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군. 나도 동감일세.』
두 청년은 그날 함께 출가할 것을 결심, 그 길로 마을 밖 법적방(창원에 있던 절)에 가서 머리 깎고 스님이 되었다.

그 후 부득은 회진암에, 박박은 유리광사에 각각 터를 잡은 뒤 처자를 데리고 와서 밭을 일구며 정신수양을 했다.
양쪽 집이 서로 왕래하며 오손도손 재미있게 지냈으나 두 사람은 속세를 떠나고 싶은 마음을 잠시도 버리지 않았다.
『아내와 자식들과 함께 지내며 의식이 풍족하니 좋기는 하지만, 연화장 세계에서 여러 부처가 즐기는 것만 못하네.
더구나 불도를 닦아 참된 것을 얻기 위해 머리를 깎았으니
마땅히 몸에 얽매인 것을 벗어 버리고 무상의 도를 이루어야 할 것일세.』
추수를 끝낸 어느 날 밤. 두 사람은 장차 깊은 산골짜기에 숨어 공부할 것을 다짐했다.

 

그날 밤 두 사람은 꿈을 꾸었다.
백호의 빛이 서쪽에서 오더니 그 빛 속에서 금빛 팔이 내려와 두 사람의 이마를 쓰다듬어 주는 상서로운 꿈이었다.
이튿날 아침, 서로 꿈 이야기를 주고받던 두 사람은 똑같은 꿈을 꾸었음에 감탄과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들은 드디어 白月山 무등곡으로 들어갔다.
박박은 북쪽에 판잣집을 만들어 살면서 미타불을 염송했고, 부득은 남쪽 고개에 돌무더기를 쌓아 집을 만들어 살면서
아미타불을 성심껏 구했다.

그렇게 3년이 지난 경덕왕 8년(709) 4월 8일. 해가 뉘엿뉘엿 서산에 걸릴 무렵,
20세 안팎의 아름다운 한 낭자가 난초 향기를 풍기면서 박박이 살고 있는 판잣집으로 찾아들었다.
그녀는 말없이 글을 지어 박박 스님에게 올렸다.

 

"갈 길 더딘데 해는 져서 먼 산에 어둠이 내리니
길은 막히고
성은 멀어 인가도 아득하네
오늘 이 암자에서 자려 하오니
자비스런 스님은 노하지 마소서 "

 

글을 읽은 박박이 생각할 여지도 없이 한마디로 거절했다.
『절은 깨끗해야 하므로 그대가 머물 곳이 아니오. 지체하지 마시고 어서 다른 곳으로 가 보시오.』
낭자는 다시 부득이 살고 있는 남암으로 찾아갔다.
『그대는 이 밤중에 어디서 왔는가?』
『맑고 고요하기가 우주의 근본 뜻과 같거늘 어찌 오고감의 경계가 있겠습니까.
다만 어진 스님의 뜻이 깊고 덕행이 높다는 풍문을 듣고 보리를 이루는 데 도움을 드릴까해서 찾아왔습니다.』
이렇게 답한 낭자는 다음과 같이 게송을 읊었다.

 

"해 저문 깊은 산길에
가도가도 인가는 보이지 않네
대나무와 소나무 그늘은 그윽하기만 하고
시내와 골짜기에 물소리 더욱 새로워라
길 잃어 잘 곳 찾는 게 아니고
존사를 인도하려 함일세
원컨대 내 청을 들어주시고
길손이 누구인지 묻지 마오 "

 

부득은 이 게송을 듣고 내심 몹시 놀랐다.
『이곳은 여자와 함께 있을 곳은 아니나, 이 깊은 산골짜기에서 날이 어두웠으니
어찌 모른 척할 수 있겠습니까.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밤이 깊자 부득은 자세를 바르게 하고 희미한 등불이 비치는 벽을 마주한 채 고요히 염불삼매에 들었다.
새벽녘이 되자 낭자는 부득을 불렀다.
『스님, 제가 산고가 있으니 스님께서 짚자리를 준비해 주십시오.』
부득이 불쌍히 여겨 자리를 마련해 준 뒤 등불을 비추니 낭자는 이미 해산을 끝내고 다시 목욕하기를 청했다.
부득은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일었으나 어쩔 수 없이 물을 덥히고 낭자를 통 안에 앉혀 목욕을 시키기 시작했다.
『아니!』
부득이 놀라 크게 소리치니 낭자가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 스님께서도 이 물에 목욕을 하시지요.』
마지못해 낭자의 말에 따라 목욕을 한 부득은 또다시 크게 놀랐다.
갑자기 정신이 상쾌해지더니 자신의 살결이 금빛으로 변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옆에는 연화좌대가 하나 마련되어 있었다. 낭자가 부득에게 앉기를 권했다.
『나는 관음보살이오. 대사를 도와 대보리를 이루게 한 것입니다.』
말을 마친 낭자는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한편 북암의 박박은 날이 밝자
『부득이 지난밤 필시 계를 범했겠지. 가서 비웃어 줘야지.』
하면서 남암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부득은 미륵존상이 되어 연화좌 위에 앉아 빛을 발하고 있지 않은가.
박박은 자기도 모르게 머리를 조아려 절을 하며 물었다.
『어떻게 해서 이리 되셨습니까?』
부득이 그간의 사정을 말하자 박박은 자신의 미혹함을 탄식했다.
『나는 마음에 가린 것이 있어 부처님을 뵙고도 만나지를 못했구료. 먼저 이룬 그대는 부디 옛 정을 잊지 말아 주시오.』
『통 속에 아직 금물이 남았으니 목욕을 하시지요.』
박박도 목욕을 하고 무량수를 이루었다.

이 소문을 들은 마을 사람들이 다투어 모여 법을 청하자 두 부처는 그들에게 불법의 요지를 설한 뒤 구름을 타고 올라갔다.

훗날 경덕왕이 즉위하여 이 말을 듣고는 白月山에 큰절 남사를 세워
금당에 미륵불상을 모시고 아미타불상을 강당에 모셨는데
아미타불상에는 박박이 목욕시 금물이 모자라 얼룩진 흔적이 그대로 있었다 한다




현재 속리산 법주사 벽화에 현신성불상이 새겨져 있

현신성불상(現身成佛相):신라 성덕왕 8년에 노힐부득과 달달박박 두 스님이 백월산 무등곡에 남암(南庵)과 북암(北庵)을 짓고 미륵부처님과 아미타불을 염송하며 열심히 수행하던 중, 3년째가 되는 4월 8일에 관세음보살이 한밤중에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신하여 두 성인의 정진하심을 실험하여 더욱 분발케 하고, 마침내 현신(現身)으로 미륵부처님과 아미타부처님이 되도록 인도하시고 홀홀히 허공중에 사라져 가는 모습이다.


속리산 법주사 13개 벽화는 다음과 같다

13개의 벽화

  이렇듯 부조에 새겨진 2편의 글을 살펴 본 후 이제 우리는 용화전 내부에 새겨진 13개 벽화의 전체 구성에 대해 알아 보기로 하겠는 바, 전체 벽화의 내용은 4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첫번째 부분은 입구로부터 오른쪽에 배치된 5개의 벽화로서, 이 부분은 ꡔ관미륵보살상생경(觀彌勒菩薩上生經)ꡕ 및 ꡔ미륵 하생경(彌勒下生經)ꡕ, ꡔ미륵 대성불경(彌勒大成佛經)ꡕ 등 <미륵 삼부경(彌勒三部經)>의 전체 내용을 전개적 순서에 의해 하나의 이야기로서 구성한 것이다.  곧 그 옛날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자 아일다(阿逸多,Ajita) 비구가 수기(手記)를 받고, 그로부터 12년이 후 도솔천에 왕생하여 하늘 천인(天人)들에게 설법하고 있는 모습과 함께, 그로부터 56억 7천만 년 후 도솔천으로부터 당시의 세계인 용화세계에 태어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成佛)‧수많은 중생들을 제도하신 후, 그 이전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신표로 전한 <가사(袈裟)와 발우(鉢盂)>를 대선정(大禪定)에 잠겨 있던 마하가섭 존자로부터 건네받게 된다는 이야기로 이 부분은 종결되는 바, 이제 각각의 벽화를 설명하고 있는 문구를 들어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마정수기상(摩頂授記相):「사바세계(娑婆世界)」가 끝나고, 미래로 다가올 「미륵 용화세계(彌勒龍華世界)」의 교주가 될 아일다(阿逸多,Ajita) 비구가 마정수기(摩頂受記)를 받고 있다.  그때 기원정사에서는 석가세존께서 칠겹의 금빛 광명과 연꽃비를 내리고, 백천의 화불(化佛)이 나타나 설법을 하신다.  수천의 비구‧비구니‧16대보살과 문수사리 법왕자의 권속 및 팔부신 등이 설법을 듣고 있다.

  천중설법상(天中說法相):장차 미륵부처님이 될 아일다 비구는 「도솔천(  率天)」 내원궁(內院宮;혹은 善法堂)에 미륵보살(彌勒菩薩)로 태어나, 수행하고 있는 천인(天人)들을 교화하고 계신다.  도솔천 가운데 2중 방형의 내‧외원궁에 수천의 천인들이 설법을 듣고 있으며, 좌우로는 향‧연꽃‧감로수‧과일 등을 든 비천(飛天)이 모시고 있다.

  도솔강생상(  率降生相):미륵보살이 「도솔천(  率天)」에서의 수명이 다할 때 우리들의 염부제(閻浮堤)인 「용화세계(龍華世界)」에 내려와, 바라문의 녀(女) 범마파제에 탁생하였다가 미륵불(彌勒佛)이 된다.  용을 타고 강생하시는 미륵보살을 맞는 천인들의 모습은 환희에 차있고, 서광이 가득하다.

  수하성도상(樹下成道相):새벽에 출가하여 「금강 장엄도량(金剛莊嚴道場)」인 <용화수(龍華樹)> 아래 앉아 그날 초저녁에 성불한 미륵부처님의 좌우 보처(補處) 법화림 보살‧대묘상 보살‧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노인‧아이‧원숭이‧토끼‧학‧양‧사자‧기린 등 뭇 중생들이 환희에 찬 모습으로 부처님을 향하고 있다.

  전수법인상(傳授法印相):미륵보살이 성불(成佛)하여 전불(前佛)인 석가모니 부처님의 법인(法印)을 받으신다.  석존의 제1제자인 가섭존자가 기사굴산 남적봉에 석가불의 법인(法印)을 전하는 신표로 <가사(袈裟)와 발우(鉢盂)>를 수지하고 대선정(大禪定)에 들어 미륵불을 기다리고 있는 곳에, 미륵부처님이 보처보살(補處菩薩)과 제자들을 데리고 나타나신다.


  다음 두번째 부분은 그 옆 오른쪽에 배치된 3개의 벽화로서, 이들은 각각 ꡔ삼국유사(三國遺事)ꡕ 및 ꡔ삼국사기(三國史記)ꡕ에 기술된 미륵신앙에 관련된 이야기로서, 우리땅에 미륵 부처님께서 강림하기를 고대했던 민족적 감수성의 예들을 발췌‧단편적 이야기를 벽화에 담았다.  이중 「용화향도상(龍華香徒相)」의 이야기는 ꡔ삼국유사ꡕ의 기록(卷三.塔像第四 중 「彌勒仙花 未尸郞 眞玆師」條) 및 ꡔ삼국사기ꡕ의 기록(卷四十一.列傳 중 「金庾信 上」條)을 복합적으로 구성한 것이며, 「현신성불상(現身成佛相)」의 이야기는 ꡔ삼국유사ꡕ의 내용(卷三.塔像第四 중 「南白月二聖 努肹夫得 怛怛朴朴」條)을, 그리고 「미륵출현상(彌勒出現相)」의 이야기 역시 ꡔ삼국유사ꡕ에 각각 실려진 내용(卷二.紀異第二 중 「武王」條)들이다.  이 또한 각각의 벽화를 설명하고 있는 문구들을 들어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용화향도상(龍華香徒相):신라에 있어 화랑도(花郞徒)의 수행(독서‧참선‧가무‧무술연마 등)은 불교의 이상국가관인 「미륵 용화정토」를 구현하고자 하는 강한 원력의 수양생활이었고, 화랑(花郞)을 미륵의 화신으로 삼고 그를 추종하던 낭도(郞徒)들을 「용화향도(龍華香徒)」라 하는데, 이들은 미륵부처님을 믿는 신도들이었다.  심산유곡의 절경에서 원광법사(圓光法師)로부터 10명의 화랑이 설법을 듣고 있는데, 이는 「미륵 10선도」의 수행을 상징한다.

  현신성불상(現身成佛相):신라 성덕왕 8년에 노힐부득과 달달박박 두 스님이 백월산 무등곡에 남암(南庵)과 북암(北庵)을 짓고 미륵부처님과 아미타불을 염송하며 열심히 수행하던 중, 3년째가 되는 4월 8일에 관세음보살이 한밤중에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신하여 두 성인의 정진하심을 실험하여 더욱 분발케 하고, 마침내 현신(現身)으로 미륵부처님과 아미타부처님이 되도록 인도하시고 홀홀히 허공중에 사라져 가는 모습이다.

  미륵출현상(彌勒出現相):백제의 무왕(武王) 내외가 군신과 함께 익산에 있는 용화산 사자암으로 지명법사를 찾아가는 도중 산아래 연못에서 미륵삼존이 출현하여 놀라움과 환희에 가득찬 모습으로 쳐다보며, 이는 미륵불이 백제땅에 하생(下生)할 인연이 도래하였다고 생각하고 연못을 메꾸어 삼원 대가람의 미륵사(彌勒寺)를 창건하였다.  온백성에게 「미륵 10선도」를 닦아 <3회 치우설법>에 이르러 이 국토에 바로 「용화정토」가 구현되게끔 정진케 하였다.


  다음 세번째 부분은 그 옆 오른쪽에 배치된 3개의 벽화로서, 이 부분은 ꡔ삼국유사(三國遺事)ꡕ의 내용 중 법주사의 중흥조 진표(眞表)스님과 관련된 기록(卷四.義解第五 중 「關東楓岳鉢淵藪石記」條)을 형상화시킨 것이다.  이에 대한 설명은 벽화의 각각 문구들이 상세히 기술해 놓았기에, 단지 그 문구들을 나열하기로 한다.

  초회설법상(初會說法相):미륵보살님은 성불(成佛)하여 단지 초회설법(初會說法)으로 용화세계의 일체중생을 아라한과(阿羅漢果)와 보살과(菩薩果)를 성취토록 하는 대 설법회(大說法會)를 여시는데, 처음 설법도량은 <무학산 금산사>로서 이 법회에서 96억의 중생이 아라한과의 경지를 득한다 하였다.  신라의 진표율사(眞表律師)가 미륵으로부터 계법(戒法)을 받은 후 금산사, 법주사, 발연사를 차례로 <미륵도량(彌勒道場)>을 개설하였다고 한다.

  이회설법상(貳會說法相):진표율사(眞表律師)가 금산사에 이어 두번째로 「미륵도량(彌勒道場)」으로서의 <법주사(法住寺)>를 중창하려고 속리산으로 가던 중, 소(牛)가 율사의 청정함을 알아보고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법주사의 2회 설법에서 94억의 중생이 아라한과(阿羅漢果)와 보살과(菩薩果)를 증득하기 위하여 설법을 듣고 있는 모습이다.

  삼회설법상(參會說法相):진표율사께서 법주사에 이어 세번째 「미륵 설법도량」으로서의 <발연사(鉢淵寺)>를 개창하려고 금강산으로 가던 도중 바다의 수중중생(水中衆生)을 위하여 설법을 하러 가시는데, 고기떼들이 몰려와서 길을 놓아 주었다는 설화가 있다.  발연사의 3회 설법에서 92억의 중생들이 아라한과와 보살과를 득하기 위해 설법을 듣고 있다.


  다음 네번째 부분은 그 옆 오른쪽에 배치된 2개의 벽화로서, 이 부분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고뇌에 찬 사바세계(娑婆世界)의 모습과 이후 미륵 부처님의 강생으로 말미암아 형성될 용화정토(龍華淨土)의 안락한 모습을 대비시켜 놓은 것으로, 우리로 하여금 용화정토에로 나아갈 수 있게끔의 욕구를 일으켜 주는 형상화라 말할 수 있다.  이제 각각의 벽화를 설명하고 있는 문구들을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사바고뇌상(娑婆苦惱相):「사바세계(娑婆世界)」는 본래 깨끗한 인간성을 상실하고 탐내고(貪)‧성내고(䐜)‧어리석은(癡) 마음으로 오욕(五欲)에 깊이 빠져, 자기가 마음쓰고 행동함의 선악(善惡) 업보에 따라 지옥‧아귀‧축생‧수라‧인간‧천상을 오르내리며, 육도윤회(六道輪廻)를 끝없이 반복하여 고뇌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현실세계의 모습을 말하는 것이다.

  용화정토상(龍華淨土相):무명(無明)으로 인한 상대적 차별관념으로 대립하고 갈등하며 분열하는 고뇌무한(苦惱無限)의 「사바세계(娑婆世界)」를 뛰어넘어, 우주와 내가 하나이며 만물이 나와 더불어 한몸이어서 너와 내가 둘이 아닌 커다란 나 하나의 생명실상으로 열리는 세계, 동체대비(同體大悲)의 정신으로 이타자리(利他自利)가 실천되어져 절대의 자유와 평등과 평화가 넘쳐나는 우주 대자연의 본래 생명력, 「용화정토(龍華淨土)」의 안락한 세계의 모습이다.


  이상으로 우리는 「용화전(龍華殿)」 내부에 새겨진 전체 벽화를 부분별로 나누어 분석해 보았는 바, 이들 벽화들은 <미륵사상 전반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더불어 우리 민족의 감수성 속에 스며들은 <민중신앙으로서의 미륵신앙> 및 <국가 정책으로서의 미륵신앙의 현양>, <법주사의 중흥조 진표스님의 행적>과 함께 <사바세계에 대한 용화정토의 안락함> 또한 일깨워 주고 있어 전체 용화국토의 전망 속에 법주사 미륵도량으로부터 피어오르는 용화(龍華)의 향기를 한껏 접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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