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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이완용(李完用 1858∼1926)의 작품

☞墨香·서예배우기/墨香·한문서예

by 산과벗 2006. 4. 6.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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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식인의 행동이 유구한 나라의 민족사를 철저히 짓밟아 놓았다. 개인의 욕망과 지성인의 심지(心志)는 어떠해야하는가.
  항상 격변의 시대를 살면서 오늘 우리의 공부도 무수한 이완용이를 양산하는 무책임한 지식과 외래 문물 추종의 만용에 빠져있는 것은 아닐까?  이 글속에서도 매국노의 정서속에 꿈틀대는 일향성(日向性)을 느낄 수 있다.

 "上苑春先入 中園花盡開  惟餘幽徑草 尙待日光催"
   궁궐의 동산에 봄이 먼저 드니
   동산가운데 꽃이 다 피었네
   오직 남아있는 깊은 그늘 길의 풀들은
   아직도 햇볕이 빨리들기를 기다리네

    조선 말기 문신으로 친일파,매국노이다. 자는 경덕(敬德), 호는 일당(一堂)이고, 본관은 우봉(牛峰). 경기도 광주(廣州) 출신으로 을사오적의 한 사람이다. 아버지는 석준(奭俊)이고, 판중추부사 호준(鎬俊)에게 입양되었다. 1882년(고종 19) 증광문과에 급제, 주서·규장각대교·검교·홍문관수찬·동학교수·해방영군사마 등을 지냈으며 1886년 육영공원에서 영어와 신학문을 배웠다. 1887년 박정양(朴定陽)을 수행하여 미국에 건너갔다가 귀국한 뒤 부승지·이조참의·전보국회판·외무참의 등을 지내고,1888년 주차미국참찬관·대리공사를 지냈다. 1890년 돌아와 대사성·교환서총판·중추원의관 등을 지내고 1896년 아관파천 때 이범진(李範晉)과 함께 친러파로서 외부대신에 올라 학부대신·농상공부대신서리를 겸했다. 1901년 궁내부특진관으로 있다가 친일파로 변신, 1905년 학부대신이 되어 일본의 을사늑약체결제의를 앞장서 지지, 체결하게 하였다. 그해 12월 의정대신 겸 외부대신서리를 지내고 1907년(순종 1) 의정부참정으로 의정부를 내각으로 고쳤으며, 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추천으로 내각총리대신·궁내부대신서리를 겸했다. 헤이그특사사건 뒤 일본의 지시대로 고종에게 양위를 강요, 순종을 즉위하게 하였다. 이에 전국에서 항일의거가 일어났으며, 1909년 이재명(李在明)의 칼에 맞아 부상당했다. 1910년 8월22일 총리대신으로 정부전권위원이 되어 한·일합병조약을 체결, 일제에게 나라를 넘겨주었다. 그 공으로 일제에 의해 백작이 되고 조선총독부 중추원고문이 되었다. 3·1운동 때 독립투쟁을 비난하며 경고문을 발표하는 등 매국행위에 앞장섰다. 편서로 《황후폐하치사문(皇后陛下致詞文)》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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