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줄기의 시발점 상장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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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장봉
북한산 상장능선이 지난 2006년 1월 휴식년제에서 풀린 후 이곳을 찾는 산꾼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강원 철원에서 달려온 한북정맥은 도봉산에서 한번 몸을 일으켰다가 우이령에서 누인 후 북한산에서 마지막으로 크게 용솟음친다. 북한산 줄기의 시발점이 바로 상장능선이다. 북한산 종주의 북쪽구간이기도 한 상장능선은 산 등줄기를 타고가며 양쪽으로 도봉산과 북한산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어 인기가 높다. 다소 위험한 릿지 코스인 상장봉(543m)과 왕관봉(550m 추정)이 있고, 솔밭 사이로 호젓한 산책로도 나 있다. 지난 20일 상장능선과 영봉(604m)을 아우르는 산행을 가졌다. 영봉은 인수봉(806m)을 가장 전면에서 조망할 수 있는 곳으로, 북한산 절경지 가운데 하나다. 신령함마저 느껴지는 곳이다. 이 때문에 영봉 곳곳에 북한산 등반중 숨진 산악인들의 추모비가 즐비하다. 이 곳에서 영혼들은 조석으로 인수봉을 감상하며 다하지 못한 등반의 꿈을 위로받고 있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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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장봉을 가볍게 올랐던 여성 등산객.
상장능선에 오르기 위해 경기도 양주시 솔고개를 들머리로 삼았다. 지하철 3호선(혹은 6호선) 불광역 7번출구에서 지근거리에 있는 불광동 서부터미널에서 34번 의정부행 버스(800원)를 타고 예비군 종로·중구 교장에서 하차하니 솔고개다. 솔고개에서 상장능선 꼬리에 붙어 조금 오르노라니 길이 가팔라진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지만, 흔히 ‘폐타이어 참호’로 불리는 325봉(가칭)까지만 오르면 나머지 구간은 약간씩 오르고 내리고만 반복할 뿐 평탄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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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관봉.
산악인 블로그에 의하면 상장능선은 북한산 북쪽 솔고개에서 육모정고개까지의 능선을 말한다. 능선 사이에 상장봉을 시작으로 9개의 산봉이 있다고 하는데, 국립공원 지도에는 상장봉(543m)만 표기돼 있을 뿐이다. 더러 산꾼들이 상장봉을 제1봉으로 삼아 동남쪽인 육모정고개로 이동하면서 2봉(545m), 3봉(565m), 4봉(545m), 5봉(565m)…9봉(왕관봉·550m)이라고 명명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정확한 것은 아니다. 영봉에서 지나온 구간을 돌아보니 1, 2, 3봉과 왕관봉은 분명 암봉인데, 나머지는 육봉(肉峯)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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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헬기장에서 본 코끼리 바위.
제1봉 상장봉은 오르는 길이 있다고 하지만, 위험해서 대부분 우회로를 이용한다. 앞에서 중년의 남녀 한팀이 상장봉을 오르길래 따라 나섰다가 아닌게 아니라 겁이 나서 헛물만 켜고 돌아나왔다. 요즘 여성 산꾼들은 특이한 DNA를 가졌는지 무서움이 없다. 2봉도 대부분 우회로를 이용하는 편인데, 때마침 노련한 산꾼의 도움을 받으며 오를 수 있었다. 내려가는 길에는 밧줄이 매달려 있다. 나머지 산봉은 무난했다. 왕관봉에서 또다시 갈등에 사로잡혔다. 산세가 하늘을 찌들듯 가파르다. 바위 중간중간 손을 잡을 곳이 눈에 들어왔고, 마침 왕관봉에서 내려오는 2명의 산꾼이 있어 용기를 내어 바위에 붙었다. 중간쯤 오르자 잡을 곳이 마땅치 않아 고민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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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장능선에서 바라보니 영봉(왼쪽)과 인수봉이 마주보고 있다.
밑을 내려다 보니 다리가 후들후들 떨린다. 산꾼들은 길이 없다며 내려오다 다시 올라선다. 그때 산꾼 한명이 발길을 돌리려다 “올라올 수는 있겠다”며 도움말을 준다. 동행한 산우 ‘다지’가 먼저 오르는 것을 보고 용기를 내어 약간 홈이 패인 곳에 왼쪽 발 끝을 겨우 걸친 뒤 위쪽 벌어진 바위 양 끝을 손으로 잡아당기며 조심스럽게 올라섰다. 정신이 하나도 없는 데, 박수를 쳐준다. 또한번 위험한 곳을 만났지만, 산꾼의 길 안내로 무사히 정상까지 오를 수 있었다. 산꾼들에 따르면 상장봉이나 왕관봉은 다소 위험한 릿지 코스지만, 경험자의 조력을 받으면 얼마든지 오를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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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봉서 뒤 돌아본 상장능선. 맨 왼쪽에서 처음 나타나는 암봉이 상장봉이고, 맨 오른쪽 암봉이 왕관봉이다.
왕관봉에서 15분가량 내려가니 상장능선이 끝나는 육모정고개다. 육모정고개는 사거리안부로 돼 있다. 고개 건너편에 이창렬(1917∼1974) 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의 추모비가 있다. 추모비에는 ‘님은 산을 그렇게도 사랑하더니 끝내 여기서 산과 하나가 되다’는 이은상(당시 한국산악회장) 시인의 글이 담겨 있다. 산행 길이 새삼 숙연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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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봉에 세워진 작은 추모비가 인수봉을 바라보고 있다.
육모정고개에서 숨을 고른 뒤 다시 힘차게 산을 오른다. 이른바 우이능선이다. 영봉능선이라고 부르는 산꾼도 있다. 30분가량 오르니 헬기장이 나오고, 이어 능선 곳곳에 불에 탄 나무들이 뼈대만 앙상하게 남아 있는 지역이 나타난다. 이른바 산불재다. 다시 철난간이 가설된 암봉을 힘겹게 오른 뒤 봉우리를 하나를 또 오르니 드디어 영봉(靈峯) 정상. 영봉 건너편으로 높이 300m가 넘는 거대한 바위덩어리인 인수봉이 눈 앞에 펼쳐진다. 무섭도록 웅장하다. 해질녘에 당도해 인수봉이며 북한산 동북면이 거무튀튀하게 실루엣 처럼 보이지만, 이곳이 예사롭지 않은 곳임을 한 눈에 알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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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봉 표지석과 인수봉. 영봉 정상에 서면 인수봉이 웅장한 자태를 드러낸다.
여기저기 작은 추모비들이 인수봉을 향하고 있다. 산자가 죽은 자에게 베푼 최상의 선물이었을 것이다. 이곳에서 산자와 죽은 자는 함께 산을 경외하게 될 것이다. 동틀녘에 오면 동쪽 수락산이나 불암산에서 솟구쳐 오르는 일출을 받아 인수봉이 구리빛으로 변해 환상의 풍광을 펼쳐 보이리라.
이날 ‘솔고개∼상장봉∼상장능선∼육모정고개∼영봉∼하루재∼백운대 제2통제소(매표소에서 통제소로 명칭이 바뀌었음)’코스를 마치는 데 걸린 시간은 6시간30분. 2봉과 왕관봉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시간이 좀더 걸렸다.[세계일보 정성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