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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봉 흑염소 불고기(1박2일)

☞나의 포토갤러리/나의 旅行흔적

by 산과벗 2024. 1. 6.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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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사봉 흑염소 불고기(1박2일)

지인들과 함께 진주시 사봉면에 있는 어느 펜션에서 염소불고기 파티 벌이며 즐거운 1박2일을 보내고 왔다.

30여평(방2개,거실1개,화장실1개,고기굽는 공간 등)의 넓은 공간에서 사장님이 손수 방목하여 키우고 있는 염소1마리

불고기용으로 손질하여 염소곰탕,각종 반찬에다 쌀 까지 준비해 주셨으며 우리는 밥해서 고기 구워 먹기만 하면 되는 그런 구조의 펜션 이였다. 방도 따뜻해서 좋았고 노래방 기기까지 있어 노래도 한곡조 뽑으며 즐겁고 행복한 하룰 보내고 왔다. 다음날 생육신(조려, 이맹전, 원호, 김시습, 남효온, 성담수) 등의 제향을 위하여 창립한 함안 군북 서산서원에 잠깐 둘려본후 입곡저수지 둘레길을 한바퀴 돌아보는 여유속에 즐거운 하루를 보낸후 돌아오는 길목에 있는 함안고개 맛집 양평해장국 식당에 들려 해장국 한그릇에 행복 가득 담고 돌아 왔다.

 

사봉 염소불고기

전화 : 055-752-7128

휴대폰 : 010-4580-7128

흑염소 중탕 액기스 주문도 받고 있습니다.

사장님에 대한 믿음이 있어 다음날 일행들 흑염소 액기스 5박스 구입했답니다.

 

 

 

함안 서산서원(西山書院)

서산서원(西山書院)

서산서원은 숙종 계미년(1703)에 경상도 유학자 곽억령 등이 생육신이신 이맹전, 조려, 원호, 김시습, 남효온 등의 병향이 사육신의 예에 따라 이루어짐이 마땅함을 국왕께 상소하여 윤허를 받고 여섯 분의 제향을 위하여 창립한 서원이다. 숙종 때인 1713년에는 국가에서 제물을 내리고 서산서원의 현판을 내렸으나, 고종 때 서원쳘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다. 그 후 조려선생의 후손들이 1984년에 사우, 강당, 재료, 문, 원장 등을 빠짐없이 갖추어 복원하였다.

 

함안 생육신 조려 유적(咸安 生六臣 趙旅 遺蹟)

경상남도 군북면 원북리에 있는, 생육신 조려와 관련된 서산서원과 채미정 그리고 원 서산서원 터인 원동재를 포함한 유적이다. 서산서원은 숙종 계미년(1703)에 경상도 유학 곽억령(郭億齡) 등이 생육신인 조려, 이맹전, 원호, 김시습, 남효온, 성담수 등의 제향을 위하여 창립한 서원이다. 숙종 계사년(1713)에 국가에서는 제물을 내리고 서산서원의 현판을 내렸으나 고종 신미년(1871) 서원철폐령에 의해 철거됐다가 그 후 조려선생의 후손들이 1981년에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생육신의 충절과 절개를 배향하고 덕의를 숭모코자 세운 서원으로 조려선생을 포함하여 생육신 모두를 배향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매년 음력 9월 9일 국천제의 향례를 지내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채미정은 조선 단종때 생육신의 한사람인 어계 조려가 세조의 왕위찬탈에 격분하여 조정을 등지고 고향에 돌아와 여생을 보낸 정자라고 전하며 채미정 현판 오른편에 백세, 외편에 청풍이란 현판이 있다. 원동재는서산서원의 원 터는 지금의 쌍절각 좌측 뒤편 대나무 밭을 포함한 군북 원북길 12의 원동재로 추정되며 현재의 규모보다는 작았고 부속공간으로 채미정을 추가 건립한 것으로 추정된다. 서원철폐령에 의해 철거된 원 터에는 이후 민가가 들어서고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1981년 원 터와 가까운 현재의 위치에 서원을 이전·복원했다

 

서산이란 명칭의 유래

서산이란 명칭의 유래를 살펴보면 서산(西山)은 사기(史記) 열전에 나오는 고죽국의 왕자 백이, 숙제의 고사에서 기인한다.백이 숙제는 부친이 죽자 왕위를 양보하고 나라를 떠났는데 주나라가 노인을 잘 봉양한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갔다. 그러나 주나라의 무왕은 아버지 문왕의 장래도 마치지 않고 군사를 일으켜 상나라 주왕을 정벌하려고 했다.백의 숙지는 부자지간의 예의와 군신지간의 의리를 들어 말고삐를 잡고 만류하다가 목숨이 위태로웠는데 강태공의 도움으로 살아났다. 하지만 무왕이 상나라를 평정하고 천하가 주나라를 섬기게 되자 백의와 숙제는 주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이 치욕으로 여기고 지조를 지켜 주나라의 곡식을 먹지않고 수양산에 숨어 고사리로 연명하다가 죽었다.그들은 죽기전에 고사리를 캐는 노래인 채미가를 짖는데 그 첫구절이 "저 서산에 올라 산중의 고사리나 캐자" 이다. 여기서 서산은 백이와 숙제가 절개를 지킨 수양산을 말하는 것으로 자체로 절개를 상징하게 되었기 때문에 생육신을 기리는 이름으로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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