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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래가있는 고사성어(ㅁ)

☞고사·한시·속담/고사성어

by 산과벗 2006. 4. 4.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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馬耳東風(마이동풍) : 말의 귀를 스치는 동쪽 바람이라는 뜻으로, 다른 사    <말 마> <귀 이>    람의 의견이나 충고를 전혀 듣지 않는 것을 말한다.     <동녘 동><바람 풍>   우이독경(牛耳讀經; 소 귀에 경 읽기)과 같은 뜻으로                          쓰인다.

☞     왕거일한야독작유회

       王去一寒夜獨酌有懷

    ‘왕거일이 추운 밤에 혼자 술을 마시고 회포에 잠기다.’라는 시에 나온다.  귀    족 사이에는 사치가 만연되어 있는데 서민들의 고충을 진술해도 상대하지 않고    귀담아들어 주지 않는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輓歌(만가) : 상여를 메고 갈 때 부르는 노래.  죽은 사람을 애도하며 부르는 <끌 만><노래 가> 노래를 말한다.

☞  한고조(漢高祖)는 즉위한 후, 전횡(田橫)이 나중에 반란을 일으킬 것을 걱정하    여 회유책을 쓰기로 하였다.  죄를 용서하는 대신에 낙양으로 들어와 신하 되기    를 청하였다.

    그러나 낙양성 밖 30리까지 왔던 전횡은 절개를 굽히고 한고조의 부하가 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 자살하고 말았다.  남은 가족과 부하들도 그를 좇아 모두     자결하였는데, 사람들은 전횡의 높은 절개를 사모하는 마음에 상가(喪歌)를 지어    불렀다고 한다.


麥秀之嘆(맥수지탄) : 맥수(麥穗)란 보리가 무성하다는 뜻으로, 옛날 번영 <보리 맥><빼어날 수>  하던 도읍에 보리가 무성하게 자란 것을 보고 고국의   <의 지> <탄식할 탄>   멸망을 탄식했다는 일화에서 비롯된 성어이다.

☞  기자(箕子)는 주왕의 도읍으로 가던 도중 은(殷)의 옛성 근처를 지나게 되었     다.  전에는 번영을 구가했던 곳이건만 이제는 옛날과 너무나 변해 버린 모습에    서글퍼져서 맥수지시(麥秀之詩)를 지어 읊었다고 한다.

     맥수점점혜 화맥유유혜

     麥秀漸漸兮 禾麥油油兮  옛 궁궐터에는 보리만 무성하고 벼와 기장들도 잎이                              기름지도다

     피교동혜 불흥아호혜

     彼狡僮兮 不興我好兮  저 교동이 나의 말을 듣지 않았음이 슬프구나


孟母三遷之敎(맹모삼천지교) : 맹자(孟子)의 어머니가 맹자를 교육시키기 <맏 맹><어머니 모><석 삼>     위해 세 번이나 이사했다는 고사에서 유래됐 <옮길 천><의 지><가르칠 교>    다.                   「後漢書․烈女傳」

☞  맹자 어머니가 처음 이사를 했는데, 공동 묘지 근처였다.  어린 맹자는 놀이도    상여를 메고 가는 흉내만 내는 것이었다.  ‘여기는 자식을 기를 만한 곳이 못 되    는구나.’  이런 생각을 한 맹자 어머니는 곧 시장 근처로 이사했다.  그러자 맹    자는 장사하는 흉내를 내며 놀았다.

    맹자의 어머니는 여러 가지로 궁리한 끝에 학교 부근으로 이사했다.  그러자    맹자는 학생들이 공부하는 모습과 예의를 갖춰 인사하고 행동하는 광경을 흉내    내며 노는 것이었다.  그 후 학교 근처에 자리를 잡고 오랫동안 살았다고 한다.


盲人摸象(맹인모상) :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식으로 사물의 일부만을 알   <소경 맹><사람 인>   면서 전체에 대한 결론을 내리는 잘못된 견해를 말한  <더듬어 찾을 모><코끼리 상> 다.

☞  옛날 인도의 어떤 왕이 신하들에게 명했다.

    “코끼리 한 마리를 끌고 오시오.  그리고 장님들을 불러 코끼리를 만져 보게    하시오.”

    장님들이 제각기 코끼리를 만져 보고 느낀 것을 말하기 시작했다.  코끼리의    이빨을 만져 본 장님이 말했다.

    “코끼리의 형상은 굵고 큰 무와 같습니다.”

    귀를 만져 본 다른 장님이 말했다.

    “코끼리의 형상은 쌀을 까부는 키 같습니다.”

    발을 만져 본 장님과 코끼리의 뱃가죽을 만져 본 장님도 저마다 의견을 내놓    았다.

    “코끼리의 형상은 절구통과 같습니다.”

    “코끼리의 형상은 배가 툭 튀어나온 옹기와 같습니다.”

    그러자 마지막으로 코끼리의 꼬리를 만져 본 장님이 큰소리로 “천만의 말씀입    니다.  모두 틀렸습니다.  코끼리의 형상은 굵은 밧줄과 꼭 같습니다.”라고 외쳤    다.

    이들은 각자 자기의 견해가 옳다고 고집을 피웠다.  그것은 장님들은 코끼리    전체를 만져 보지 않고 코끼리의 일부만 만져 보았기 때문에 착각한 것이다.


毛遂自薦(모수자천) : 모수라는 사람이 자기 스스로를 천거했다는 고사에서 <털 모><드디어 수>   나온 말이다.  남이 추천해 주지 않으니까 기다리다 못<스스로 자><천거할 천> 해 스스로 자청해서 나서는 것을 말한다.  부끄러움                         없이 자기를 내세우는 사람을 빗대어 쓰는 말이다.                                                             「史記․平原君列傳」

☞  조(調)나라 평원군(平原君)이 진(秦)나라를 치기 위해 초(楚)나라의 협조를 얻    고 조약을 맺으려고 하였다.  그래서 그 문하에 출입하는 식객 3천명 가운데 20    명을 뽑아서 초나라에 함께 가기로 하였는데, 19명을 선발하고 적당한 사람이     없어 1명을 채우지 못했다.

    이때 식객 중에 모수(毛遂)라는 자가 자신이 끼기를 청하였다.

    평원군이 이것을 보고 말했다.

    “그대는 내가 3년 동안 데리고 있었으나 장점을 하나도 발견 못했노라.”

    “나를 주머니 속에 넣어 주면 뾰족이 나오는 송곳처럼 나타날 것이니 일을 맡    겨 주십시오.”

    결국 모수를 데리고 가서 회담이 성공하였다.

    초왕은 모수의 위엄과 설득에 굴복하여 조나라에 구원병을 보낼 것을 약속하    게 되었던 것이다.  귀국하자 모수는 상객(上客)으로 대접받았다는 고사에서 나    온 말이다.


矛盾(모순) : 말이나 행동의 앞뒤가 서로 맞지 않는 것을 말한다.

<창 모><방패 순>

☞    楚人(초인)에 有賣盾與矛者(유매순여모자)러니 譽之曰(예지왈) 吾盾之堅(오순      지견)은 莫能陷也(막능함야)라 하고

      又譽其矛曰(우예기모왈) 吾矛之利(오모지리)는 於物無不陷也(어물무불함야)니      라 하니

      或曰(혹왈) 以子之矛(이자지모)로 陷子之盾(함자지순)이면 何如(하여)요 하니      其人(기인)이 不能應也(불능응야)러라.                          「韓非子」

    초(楚)나라 사람 중에 방패와 창을 파는 사람이 있었는데, 방패에 대해 말하기    를 “나의 방패는 굳고 단단하여 그 무엇으로도 뚫을 수 없다.”하고, 또 그 창에    대해 말하기를 “이 날카로운 창이면 뚫지 못하는 것이 없다.”라고 했다.

    이때 어떤 사람이 “그러면 그 창으로 그 방패를 뚫으면 어쩌겠소?”하고 물으    니 그 사람이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급히 도구를 챙겨 가지고 슬그머니    사람들 속으로 모습을 숨기고 말았다.

    이와 같이 어떤 말이나 행동의 이치가 서로 상반되어 조리에 닿지 않는 경우,    또는 어떤 상태나 판단이 서로 양립하지 못하는 경우에 빗대어 쓰이는 말이다.


武陵桃源(무릉도원) : 속세와 동떨어진 별천지.  즉 사람들이 화목하고 행 <군사 무><언덕 릉>   복하게 살 수 있는 이상향(理想鄕)을 말한다.

<복숭아 도><근원 원>                                           「桃花源記」

☞  진태원(晉太元)때 무릉인(武陵人)이라는 사람이 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유지했    는데 시내를 따라가다가 길을 잃었다.

    문득 복사꽃나무 숲을 만나 바라보니 양 언덕으로 수백 보에 이르도록 다른     나무는 없고 복사꽃나무만 있었다.  어부가 매우 이상하게 생각하고 앞으로 걸    어나가 그 숲이 다한 곳까지 이르자, 어느 산속에 물이 솟아나는 골짜기가 나왔    다.  조그마한 굴이 있었는데 꼭 빛이 보이는 것 같아 문득 배를 버리고 굴을     따라 들어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아주 접아서 사람이 겨우 통과할 정도였는데    다시 수십 보를 걸어가니까 공간이 넓어지면서 땅이 평평하고 집들이 높게 서     있는 곳으로 나오게 되었다.

    좋은 밭과 아름다운 연못과 뽕나무, 대나무 등이 언덕에 동서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고, 닭이 울고 개가 짖는 소리가 먼 곳에서 들리며, 사람들이 왕래하며     농사를 짓고 있었다.  사람들이 어부를 보고 크게 놀라 오게 된 경우를 묻자 사    실대로 대답하고 수일 동안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어부가 돌아가게 되자 “절대 밖의 사람에게 말하지 말라.”고 부탁하였다.  돌    아오면서 곳곳에 표시를 남기고 마을에 도착하여 태수(太守)에게 보고하니 태수    가 곧 사람을 보내어 찾게 하였지만 아무도 그곳에 갈 수 없었다고 한다.


巫山之夢(무산지몽) : 무산에서 꾼 꿈이라는 뜻으로, 남녀의 밀회나 정교를    <무당 무><뫼 산>    일컫는 말이다.

  <의 지><꿈 몽>

☞  옛날 선왕이 향연을 즐기다 피로해서 잠시 낮잠을 잤다.  잠이 들자 곧 아름    다운 여자가 나타났다.  ‘누구일까?’생각하고 있을 때 그 여자가 왕의 곁으로 다    가와 말했다.

   “저는 무산(巫山)에 삽니다만 왕께서 이곳에 계사다는 말을 듣고 이렇게 찾아    뵈었습니다.  모쪼록 동침하게 해주십시오.”

    왕은 굼에서나마 잠시 그 여자와 동침하였다.

    얼마 후 작별할 때가 되자 그녀는 이런 말을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

   “저는 무산 남쪽 험준한 곳에 삽니다만, 아침에는 구름이 되어 산에 걸리고 저    녁에는 비가 되어 산을 내려와 아침 저녁으로 양대(陽臺) 기슭에 있습니다.”

    이상한 꿈에서 깬 왕이 이튿날 아침 일찍 무산 쪽을 바라보니 꿈속에서 선녀    가 말한 대로 무산에 아름다운 빛을 받은 구름이 두둥실 떠 있었다.

    왕은 그 선녀를 생각하고 묘를 세워 조운(朝雲廟)라고 이름지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송옥(宋玉)의 고당부(高唐賦)에서 비롯된 것으로, 흔히 남녀의은    밀한 사귐을 지칭할 때 은유적으로 사용하는 성어이다.


刎頸之交(문경지교) : 목이 잘려도 마음이 변하지 않을 만큼 친밀한 사귐을 <목마를 문><목 경>    일컫는 말로서 깊은 우정을 뜻한다. [史記]

<의 지><사귈 교>

☞  인상여(藺相如)는 일개 식객에 지나지 않는 신분이었으나 조왕(趙王)이 수치를    당할 때 구해 준 공으로 상경(上卿)의 자리에 임명되었다.  그러자 염파는 분개    하여 말했다.

   “나는 전쟁에서 큰 공을 세웠는데, 상여는 적은 공으로 나보다 위가 되었다.      그 사람은 원래 천한 놈이다.  그런 놈 밑에 있다는 것은 욕된 일이다.  상여를    만나게 되면 욕을 보여 주겠다.”

    이 말을 들은 상여는 염파와 만나는 것을 피했다.  상여의 부하 한 명이 비취    가 거슬려 이렇게 말했다.

   “지금 당신은 염장군을 무서워하고 있습니다.  너무나 비겁해서 나는 떠나겠습    니다.”

    상여는 그 사람을 붙잡고 이렇게 말했다.

   “염 장군과 진왕 중 어느쪽이 더 무서운가?”

   “물론 진왕이죠.”

   “나는 그런 진왕을 두려워하지 않고 조정에서 진왕을 질책했을 뿐만 아니라 모    든 군신들을 욕보였소.  이러한 내가 왜 염 장군을 두려워하겠소.  강국인 진이    조를 공격해 오지 않는 것은 염장군과 내가 있기 때문잉오.  두 마리 호랑이가    서로 싸운다면 그 어는 한쪽은 쓰러지게 마련이 아니오.  내가 염 장군을 피하    는 것은 국가의 위급을 먼저 생각하고, 개인의 원한을 뒤로 하기 때문이다.”

    염파는 이 밀을 전해 듣고 크게 반성했다.  그래서 염파는 상반신을 벗고 가    시 막대를 짐으로써 알몸에 그 매를 받겠다는 결심을 하고 상여의 집을 찾아가    서 진심으로 사과했다. 그후 두사람은 친구가 되어 문경지교를 맺었다고 한다.


門前成市(문전성시) : 세력 있는 사람의 집 앞이 시장처럼 사람들로 붐빈다   <문 문> <앞 전>    는 뜻으로, 세상 인심의 덧없음을 보여 주는 말이다.  <이룰 성><시가 시>                                      「漢書의 孫寶傳」

☞  정숭(鄭崇)은 와과 인척이 되는 명문 출신이다.  외척들의 횡포를 보다못해 여    러번 애제(哀帝)에게 직언했다.  애제도 그의 간언(諫言)에 귀를 기울였다.  정숭    은 애제가 동현(董賢)을 지나치게 믿는 것을 재삼 간언했으나 애제도 그 무렵에    는 이미 귀를 기울이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로 인해 죄를 얻어 힐책당할    정도였다. 

    당시 조창(趙昌)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남을 고자질하여 아첨하는 인물로 정    숭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그는 정승이 애제에게서 소원되고 있는 것을 무척 좋아    하고 있었다.

    하루는 “정숭이 무슨 음모를 꾸미려고 앙실의 여러 사람들과 내통하고 있습니    다.”하고 애제에게 이간질했다.  애제는 곧 정숭을 불러들여 문책했다.

   “그대의 집 앞은 시장터와 같다고 하더군.”

    힐책하는 애제의 말을 받아 정숭이 말했다.

   “신의 문은 시장 같아도 신의 마음은 문과 같습니다.  다시 한 번조사해 보옵    소서.”

    하지만 애제는 노해서 정숭을 옥사시키고 말았다.


尾生之信(미생지신) : 고지식한 미생이란 사람의 믿음으란 뜻으로, 쓸데없   <꼬리 미><날 생>     는 구애된 나머지 임기응변이 모자라서 죽음에까지 이   <의 지><믿을 신>     르게 된 것을 말한다.

☞  노(魯)나라에서 미생(味生)이라는 고지식하고 정직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    나이가 개울 다리 밑에서 애인을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그는 약속 시각에 도    착해서 애인을 기다렸으나 아무리 기다려도 애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는     동안에 비가 많이 와서 개울물이 불어나 그는 물에 잠기게 되었다.  나중에는     물이 머리 위까지 올라와도 그곳을 떠나지 않고 있다가 결국 익사해 버리고 말    았다.

    쓸데없는 약속에 구애되어 하나밖에 없는 귀한 목숨을 잃어 버렸다는 이야기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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