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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월산 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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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과벗 2006. 4. 11.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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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 굴자군에는 모습이 아주 괴이하면서도 오묘한 산이 하나 있는데, 그 이름이 백월산으로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 오고 있다.
옛날 중국 당나라 황제가 황궁 안에 아름다운 연못을 만들었는데, 보름달이 휘영청 밝은 밤에 황제가 연못가를 거닐다가 우연히 연못 속에 어려있는 풍경을 보게 되었다.
황제가 자세히 살펴보니 사자처럼 생긴 바위산이 연꽃사이로 보이는데, 그 산봉우리가 기이하게 빼어났다황제는 연못속에 비친 산을 찾으려고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펴 보았으나 아무리 봐도 사자 형상을 한 산봉우리를 찾을 수 없었다.
그 뒤에도 보름달이 뜨면 그 산의 모습이 연못 속에 어려서, 황제는 화공에게 산을 그리게 하고 신하를 시켜 연못속의 산을 찾게 하였다.
신하들이 중국 전역을 샅샅이 돌아 보았으나 그 산을 찾지 못하여 우리 나라에까지 오게 되었다.
우리 나라에서도 전국을 찾아 해매다가, 마침내 우리고장 창원에 이르러 그림과 똑같은 산을 찾게 되었는데, 그 산은 줄기가 수 백리에 뻗어 있는 진산이라 할 만한 산이다.

신하는 산을 찾았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까? 생각하다가 바위산 정상에 신발 한 짝을 얹어 놓고 중국으로 돌아갔다.
신하는 황제를 만나뵙고, 그 산을 해동국에서 찾았다고 말하자 황제는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느냐?" 고 물었다. 신하는 자기가 신었던 신발 한짝을 산봉우리 바위 위에 놓고 왔다고 말했다.
보름이 되자 황제와 신하는 연못가에 서서 달이 떠오르기를 기다렸다, 아니나 다를까밝은 달이 떠오르자 연못속에 바위산이 비치는데 바위 위에 신하가 벗어둔 신발 한짝도 선명하게 보였다.
[출토된 기와]
 
  황제는 감탄하여 그 산을 보름달과 같이 연못속에 하얗게 비친다라여 '백월산'이라 부르게 하고 정상부근에 기이하게 생긴 바위 세 개는 사자가 하늘을 보고 울부짖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어 사자암이라 불렀다 한다. 이 이야기는 삼국유사에 전해오고 있다.
백월산(해발 428m)은 신라 때부터 명산으로 알려진 산으로 창원시 북면에 있는 마금산 온천으로 가는 국도를 따라 가다보면, 완만한 능선으로 된 산들이 이어지다가 갑자기 우람한 바위산을 만나게 된다, 산봉우리에 커다란 바위 세 개가 있어 삼국유사에서 전하는 전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신라 경덕왕 때인 764년 7월에는 이 산에 남사라는 절을 세우고 미륵존불과 아미타상을 모셨다고 하는데, 여기에 얽힌 전설이 같은 책에 실려 있다.
백월산에서 동남쪽으로 선천동이라는 마을이 있었는데, 이 마을에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이는 두젊은이가 살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그 생김새가 비범했고 생각이 높고 깊어서 함께 중이 되어 도 닦기에 열중했다.
이러던 중에 그들은 불법을 공부하려면 마땅히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인간세상을 등지고 백월산 무등골로 들어가게 되었다.
달달박박은 백월산 북쪽 사자바위를 차지하여 작은 움막을 지어 지내고, 노힐부득은 동쪽의 바위아래 물이 있는 곳에 돌집을 지어 각각 불도에 정진했다.
3년이 지난 어느 날 밤, 아름다운 낭자가 달달박박이 거처하는 북쪽 암자에 찾아 와서는 하룻밤 자고 가기를 청하면서 다음과 같은 시를 읊었다

갈 길 더딘데 해는 떨어져
모든 산이 어둡고 길이 막히고
마을은 멀어 인가도 아득하네
오늘은 이 암자에서 자려하오니
자비로운 스님은 노여워 마오

이에 달달박박은 '절은 깨끗해야 하는 곳이니, 그대는 어서 다른 곳으로 가시오.'하고 문을 닫고 들어가 불도에 전념했다. 발길을 돌린 낭자는 노힐부득이 있는 암자로 가서 똑같은 청을 하며 시를 읊었다.

첩첩산중에 날은 저물어
가도 가도 아득한 땅
송죽의 그늘은 더욱 깊어 가는데
골짜기의 물소리는 더욱 새로워라
자고 가길 청함은 길 잃은 탓도 아니요
스님을 성불하는 길로 인도할까 함이니
바라건대 스님께서 제 청만 들으시고
누구냐고 묻지마오

이 시를 들은 노힐부득은 깜짝 놀라서 '이곳은 여자와 함께 있을 곳이 아니나 중생을 따르는 것도 역시 보살들이 하는 착한 행동수의 하나인 것, 깊은 산속 밤이 어두운데 어찌 당신을 소홀히 대접할 수 있겠소.'하며 낭자를 머무르게 하고 노힐부득은 정신을 맑게하여 염불에만 전념했다.
날이 밝으려고 할 때 낭자가 아리를 낳으려는 기운을 보이면서 도움을 청했다.
노힐부득은 애처러운 마음이 들어 짚자리를 마련하고, 물을 데워 목욕을 시켜주고 나니, 그 목욕물은 갑자기 진한 향기를 풍기면서 황금빛으로 변하였다.
노힐부득이 깜짝 놀라자 낭자는 노힐 부득도 목욕할 것을 권하였다.
노힐부득은 마지 못해 옷을 벗고 목욕을 하니 갑자기 정신이 상쾌해지고 살결이 황금빛으로 빛나면서 옆에 연꽃모양으로 조각된 좌대가 생겨났다.
낭자는 노힐부득을 그 좌대에 앉기를 권하면서 말하기를 '나는 관음보살인데, 스님을 도와서 최고의 진리를 깨닫게 하려 한 것입니다.'하면서 사라졌다.
한편, 달달박박은 저녁에 낭자를 물리쳤으니, 낭자가 반드시 노힐부득을 파계시켰을 것이라 믿으며 비웃어 줄 작정으로 노힐부득을 찾아갔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노힐부득은 연화대에 올라앉아 미륵존상이 되어 광명을 내뿜으며 온통 황금빛으로 변해있었다.
달달박박은 자신을 찾아 온 귀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아름다운 여자로만 본 것을 후회하며 자비로운 미륵존상이 된 노힐부득에게 자신을 이끌어 줄 것을 청하자 노힐부득은 이제까지의 내용을 자세히 말해주며, 그를 남아있는 목욕물로 몸을 씻게 했다.
그러자 달달박박 역시 무량수불이 되었다. 이때 백월산 아래 사람들이 앞을 다투어 와서 우러러 보며 설법해 줄 것을 청하자 두 부처는 불법을 설명하고 나서 구름을 타고 사라졌다고 한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경덕왕이 절을 창건했는데, 바로 이 절이 남사라고 하며, 지금은 절터만 남아 있다.
백월산을 중심으로 남쪽 계곡 언저리에서는 기와조각이 출토대고 있는데, 기와 조각에 '남사'(서기757년에 창건됨)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남아 있으며, 탑재와 석등 들이 주위 논바닥에 박혀 있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이속이 절터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북쪽에서도 많은 기와조각과 삼충석탑, 불상 등이 출토되어 여기에도 절이 있었음을 짐작 할 수 있다

 
 
 
  노힐부득( 努慰夫得)신라의 승려로 달달박박(달달朴朴)과 함께 창원군(昌原郡) 백월산(白月山) 무등곡(無等谷)에 들어가 수도하였다. 관음보살(觀音菩薩) 만나기를 염원하며 참선하던 중 709년(성덕왕 8) 4월 8일 회진암(懷眞庵)에서 관음의 화신(化身)을 만났다. 이때 보살의 법력(法力)으로 그의 몸이 미륵 금상(金像)이 되어 연화대(蓮花臺)에 앉았다고 한다. 그 후 경덕왕은 백월산에 남백사(南白寺)를 짓고 미륵보살(彌勒菩薩)과 아미타불(阿彌陀佛)의 소상(塑像)을 안치하였다.
 
 
  신라 성덕왕 때의 염불승(念佛僧).
20세경 도반 노힐부득(努慰夫得)과 함께 출가, 승려가 되어 유리광사(琉璃光寺) 등에서 수행에 힘썼다. 어느날 밤 신기한 꿈을 꾸고 구사군(仇史郡:현 창원시에 속한 지명)의 백월산(白月山)으로 들어가, 깊은 골짜기에 있던 사자암(獅子岩)을 차지하고 판방(板房)을 짓고 수도에 정념하면서 쉬지 않고 아미타불(阿彌陀佛)을 염하였다.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르면, 그렇게 염불을 계속하던 중 709년(성덕왕 8) 4월 초파일 해질 무렵 예쁜 여인이 찾아와 하룻밤 묵고 가기를 청하였는데 거절하였다.
그녀는 노힐부득이 있는 남암(南庵)으로 갔는데, 다음날 아침 궁금한 생각에 남암으로 가보니 노힐부득은 미륵불(彌勒佛)이 되어 광채를 발하면서 연화대(蓮花臺) 위에 가부좌(跏趺坐)를 하고 있었다. 까닭을 묻자, 그는 “관음보살(觀音菩薩)이 화현(化現)한 여인을 만나서 이리 됐노라”고 말하며 금보살이 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하여 달달박박도 아미타불이 되었는데, 그 소식을 듣고 사람들이 운집해오자 일장 설법을 끝낸 후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전한다.
 
 
 
  <백월산양성성도기(白月山兩聖成道記)>에 이런 기록이 있다. 백월산은 신라 구사군(仇史郡)1- 옛날의 굴자군(屈自郡)이며 지금의 의안군(議案郡)이다-의 북쪽에 있었다. 산봉우리가 기이하고 빼어났으며, 그 산맥이 수백 리에 뻗쳐 있었으니 참으로 큰 진산(鎭山)이었다.
 
 
  옛 노인들이 서로 전해 말했다. 옛날에 당나라 황제가 일찍이 못을 하나 팠더니, 매월 보름 전날이면 달빛이 밝아지면서 못 가운데에 산이 하나 있고, 사자처럼 생긴 바위가 꽃 사 이에 은은히 비쳐 그 그림자가 못 가운데 나타났다. 황제는 화공에게 명하여 그 형상을 그 리게 하고 사자를 보내어 천하에 이 산을 두루 찾게 했다.그 사자가 해동(海東)에 이르러 이 백월산을 보니, 큰 사자암(獅子岩)이 있고 산의 서남쪽 2보(步)쯤 되는 곳에 삼산(三山)이 있는데, 그 산의 이름은 화산(花山) -그 산은 한 몸뚱이에 봉우리가 셋이므로 삼산이라 한다- 인데 그림과 같았다. 그러나 그 산이 진짜 그 산인지 아닌지 알 수 없으므로, 신 한 짝을 사자암의 꼭대기에 걸어놓고 사자는 당나라에 돌아와서 황제에게 아뢰었다.
신 그림자가 못에 나타났다. 황제는 이를 이상히 여겨 산 이름을 백월산이라 내렸는데-보름전에 백월의 그림자가 못에 나타나므로 백월(白月)이라 이름한 것이다-그 후에는 못 가 운데에 산 그림자가 없어졌다
 
 
  이 산의 동남족 3천 보쯤 되는 곳에 선천촌(仙川村)이 있었는데, 그 마을에는 두 사람이 살고 있었다. 한 사람은 노힐부득(努 夫得) -득(得)을 등(等)이라고도 쓴다(이니 그의 아버 지는 월장(月藏)이요, 어머니는 미승(味勝)이었다. 한 사람은 달달박박(祠祠朴朴)이니 그의 아버지는 수범(修梵)이요, 어머니는 범마(梵摩)였다.- [향전(鄕傳)]에 치산촌(治山村)이라 한 것은 잘못이다. 그리고 두 사람의 이름은 우리말이니 두 집에서 각각 두 사람의 심행(心行) 이 등등(騰騰)하고 고절(苦節)이란 두 가지 뜻에서 지은 것이다.
두 사람은 모두 풍골(風骨)이 범상하지 않았고 속세를 초월하는 높은 생각이 있어 서로 잘 지냈다.
나이 스물이 되자 마을 동북쪽의 영(嶺) 밖 법적방(法積房)4에서 함 게 머리를 깎 고 중이 되었다.
얼마 후 서남쪽의 치산촌 법종곡(法宗谷) 승도촌(僧道村)의 옛 절이 정신을 수련할만하다는 말을 듣고, 같이 가서 대불전(大佛田)`소불전(小佛田) 두 마을에서 각각 살았다.
부득은 회진암(懷眞庵)에서 살았는데, 혹 양사(壤寺) -지금의 회진동(懷眞洞)에 옛 절터가 있으니 곧 이것이다- 라고 했다.
박박은 유리광사(琉璃光寺) -지금 이산(梨山) 위에 절터가 있으니 곧 이것이다- 에 살았다. 모두 처자를 데리고 와서 살면서, 산업을 경영하고 서로 왕래하면서 정신을 수련하고 마음 을 편안하게 지니면서도 속세를 떠날 생각은 잠시도 버리지 않았다. 신세의 무상함을 느껴 서로 말했다.
"기름진 땅과 풍년 든 해가 참으로 좋지만, 의식이 생각하는 대로 생기고 절로 배부르고 따뜻함을 얻는 것만 못하고, 부녀와 가옥이 참으로 좋지만, 연화장(蓮花藏)에서 여 러 부처님 들과 함께 놀고 앵무새, 공작새와 서로 즐기는 것만 못하네. 더군다나 불도를 배우면 마땅히 부처가 돼야 하고 진심을 닦으면 반드시 진리를 얻어야 함에 있어서랴. 지금 우리들은 이미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으니, 마땅히 몸에 얽매인 것을 벗어버리고 더할 나위 없는 도를 이루어야지, 어찌 풍진(風塵)에 골 몰하여 세속의 속된 무리들과 다름이 없어서야 되겠는가?"
 
 
  드디어 인간 세상을 버리고, 장차 깊은 산골에 숨으려 했다. 어느 날 밤 꿈에 백호(白豪)의 빛 이 서쪽에서부터 오더니, 빛 가운데서 금빛의 팔이 내려와 두 사람의 이마를 만 져주는 것이었다. 잠을 깨어 꿈을 이야기하니 두 사람이 서로 꼭 같으므로 모두 한참동안 감탄했다.
드디어 백월산 무등곡(無等谷)-지금의 남동(南洞)이다-으로 들어갔다. 박박사(朴朴師)는 북쪽 고개의 사자암을 차지하여 판잣집 여덟자 방을 지어 살았으므로 판방(板房)이라 하고, 부득사(夫得寺)는 동쪽 고개의 돌무더기 아래 물 있는 곳을 차지하여 역시 승방(僧房)을 만 덜어 살았으므로 뇌방(磊房)이라 했다.-[향전(響傳)] 부득은 산 북쪽 유리동(遊離洞)에 살았 는데 지금의 판방이고, 박박은 산 남쪽 법정동(法精洞) 뇌방에 살았다 하니 이 기록과는 서 로 반대된다. 지금 살펴보면 [향전]이 잘못이다.
이처럼 각각 다른 암자에 살면서, 부득은 미륵불을 근실히 구했고, 박박은 아미타불(阿彌 陀佛)을 경 례(敬禮) 염송(念誦)했다.
 
 
  3년이 채 못되어 경룡(景龍) 3년 기유(709) 4월 8일은 신라 성덕왕 즉위 8년이었다. 날 이 바야흐로 저물려 하는데, 나이 스물 됨직한 썩 아름다운 자태를 한 낭자가 난향과 사향을 풍기면서 갑작스레 북암(北庵)-[향전]에는 남암이라 했다-에 와서 재워주기를 청했다.
그녀는 이내 글을 지어 바쳤다.

날 저문 산속에서 갈 길이 아득하고
길 없고 인가 머니 어찌하리요
오늘 밤은 이곳에서 자려 하오니
자비하신 스님은 노하지 마오

박박은 말했다.
"사찰은 깨끗해야 하니, 그대가 가까이 올 곳이 아니오. 이곳에서 지체하지 마요." 박박은 문을 닫고 들어가버렸다.-기(記)에서는 나는 모든 잡념이 없어졌으니, 혈낭(血囊)으로 나를 시험하지 말라 했다.
낭자는 남암(南庵)-[향전]에서는 북암이라 했다-으로 찾아가서 또 앞서와 같이 청했다. 부득은 말했다.
"그대는 이 밤에 어디서 왔소?"
"저의 담연(湛然)함이 태허(太虛)와 같 은데, 어찌 오고 가는 것이 있겠습니까? 다만 어진 선비의 지원(志願)이 깊고 덕행이 높단 말을 듣고 도와 보리(菩提)를 이루어드리려 할 뿐입니다."
이에 게송 한 수 를 지어 바쳤다.

첩첩산중에 날은 저문데
가도가도 인가는 보이지 않소
송죽(松竹)의 그늘은 한층 그윽하고
냇물 소리는 한결 더욱 새롭소
길을 잃어 찾아왔다 마오
요체(要諦)를 지시하려 하오
부디 이 내 청만 들어주시고
길손이 누구인지는 묻지 마오

부득사는 이 말을 듣고 매우 놀라면서 말했다.
"이곳은 부녀와 함께 있을 데가 아니오. 그러나 중생의 뜻에 따르는 것도 또한 보살행 (菩薩行)의 하나인데, 더구나 깊은 산골짜기에서 밤이 어두우니 소홀히 대접할 수 있겠소?"
이에 읍하고 암자 안으로 맞아들였다. 밤이 되자 부득은 마음을 맑게 하고 지조를 가다듬어서 희미한 등불이 비치는 방에서 염불하기를 쉬지 않았다. 이윽고 밤이 끝나려 하자 낭자는 부득을 불러 말했다.
"내가 불행히도 마침 산기(産氣)가 있으니, 스님께서 짚자리를 좀 준비해주십시오."
부득은 그 정경(情境)을 불쌍히 여겨 거절하지 못하고 축불을 들고서 은근하게 대했다. 낭 자는 해산을 마치자 또 목욕하기를 청했다. 부득은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마음 속에 얽혔으 나, 가엾은 심정이 더욱 커져서, 또 목욕통을 준비해서 낭자를 그 안에 앉히고 물을 끓여 목욕시켜주었다. 얼마 후에 통속의 물에서 향기가 강렬하게 풍기더니, 그 물이 금빛 물로 변 했다.
부득이 크게 놀라니, 낭자는 말했다.
"우리 스님께서도 여기에서 목욕하십시오."
부득은 마지못해 그 말에 따랐더니, 문득 정신이 상쾌해지는 것을 느끼게 되고 살결이 금 빛으로 변했다. 옆을 돌아보니 문득 한 연화대(蓮花臺)가 생겼다. 낭자는 부득에게 거기 앉기를 권했다.
"나는 관음보살인데 이곳에 와서 대사를 도와 대보리(大菩提)를 이루어준 것입니다." 말을 마치자 보이지 않았다.
박박은 생각했다.
"부득이 오늘 밤에 반드시 계(戒)를 더럽혔을 것이니 내가 가서 그를 비웃어주리다." 가서 보니 부득은 연화대에 앉아 미륵존상이 되어 광채를 내쏘고 몸은 금빛으로 물드어 있었다.

 
 
  박박은 그만 머리를 숙이고 그에게 예를 갖추면서 말했다.
"어떻게 이렇게 되셨습니까?"
부득은 그 사유를 자세히 말했다. 박박은 탄식했다.
"나는 마음에 장애가 너무 겹쳐서 다행히 부처님을 만나고서도 도리어 만나지 못한 것이 되었습니다. 대덕지인(大德至仁)께서는 나보다 먼저 뜻을 이루었으니, 부디 옛날의 교분을 잊지 마시고 나도 함께 도와주셔야 하겠습니다."
"통에 아직 금물이 남아 있으니 목욕할 수 있습니다."
박박도 목욕을 하니 부득처럼 무량수불(無量壽佛)이 되 어 두 부처가 서로 엄연히 마주 앉았다.
산 아래 마을 백성들이 이 소식을 듣고 다투어 와서 우러러보고 감탄하여 참 드물고 드문 일이라 했다.
두 부처는 마을 백성을 위해 불법의 요체(要諦)를 설명하고는 온몸이 구름을 타고 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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