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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고궁박물관

☞국보·보물·유물/박물관을찾아서

by 산과벗 2006. 4. 14.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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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고궁(古宮)박물관.』


우리나라는 광복 60주년을 맞는 8월 15일 첫 왕궁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조선왕조 정궁인 경복궁 서남쪽, 광화문 바로 뒤편이다.
지난해까지 국립중앙박물관이 들어서 있던 건물에 문을 
여는 이 박물관은 4만점이 넘는 소장품이 모두 조선왕조 
것으로  오는 10월 용산에서 재개관하는 국립중앙박물관
과 함께 가히 한국 박물관의 쌍벽(雙璧)을 이룰 만하다.
조선 왕실 비장(?藏)의 보물들 
태조 고황제 금보(太祖高皇帝金寶)를 비롯한 여러 어보
(御寶·임금의 도장)들과 좀처럼 일반이 접할 기회가 없던 
태조의 어진(초상·보물 931호), 영조의 어진(보물 932호)
도 공개된다.
1910년 8월29일 대한제국이 일본에 강제병합되면서 조선
왕조는 공식적으로 멸망했다. 왕실 재산을 일제 때는 
이왕직(李王職)에서 관리했고 광복후 '구 황실 재산 사무
총국’이 업무를 이어받았다. 
1961년 문화재관리국이 생겼지만, 미술품(국립중앙박물관)과 
고문서(서울대·한국학중앙연구원)가 아닌 유물들은 그대로 
경복궁·창덕궁·종묘 등에 방치됐고 일부는 유출되기도 했다. 
스러진 왕조가 겪어야 했던 스산한 역사의 뒤안길이었다.
왕궁 유물 전시관이 처음 생긴 것은 1992년. 왕조 멸망 후 
무려 82년만이다. 덕수궁 석조전 일부에 궁중유물전시관이 
들어서면서 흩어진 유물들을 수습했으나 여전히 상당수의 
유물들은 구중궁궐 곳곳에 남아있다가 이번에 비로소 한자리
에 모았다. 
종묘에 있던 진설상과 제기, 창덕궁에 있는 고종황제의 자동차 
다이믈러와 캐딜락 등도 이곳으로 오게 된다. 
개관을 앞둔 전시실은 휘황하다. 
왕실의 족보인 '선원록(璿源錄)', 혼례 행렬을 그린 반차도
(班次圖)를 지나면 종묘 제례 때 쓰는 진설상(陳設床)과 제기
(祭器)를 볼 수 있다.  조선시대 과학의 진수를 모아놓은 곳
에는 별자리를 돌판에 새긴 천상열차분야지도각석(天象列次
分野地圖刻石·국보 228호)과 측우기, 앙부일구(해시계)가 관객
을 반갑게 맞는다.
영왕비 대홍원삼(英王妃大紅圓衫)과 금봉잠(金鳳簪) 같은 의복·
생활 유물과 도자기·가구들에 이르면 그 화려한 자태는 절정을 
이룬다. 
전시 공간이 2000평 조금 넘어서 한번에 900점밖에 공개할 수가 
없어 특별전 형식으로 번갈아 전시한다. 
☆ 중국 역대 왕조의 유물을 보려면 본토보다 대만으로 가야 
한다. 타이베이시에 있는 고궁(故宮)박물관은 중국 은대(殷代)
부터 청대(淸代)에 이르는 황실예술품 70만점을 소장하고 있다. 
장제스(蔣介石)가 본토에서 쫓겨 대만으로 밀려나면서 궁중 
유물들을 배로 실어온 것이다. 고궁박물관의 진열품들은 극도
로 세밀하고 지나치게 화려해서 우리 정서에 벅찬 감도 있지만 
관람자의 혼을 빼놓는다.
☆ 러시아는 크렘린 궁(宮)과 에르미타주 박물관에는 제정
(帝政)시대의 황실유물들이 진열되어 있다. 표트르 대제의 
왕관과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옥좌(玉座), 예카테리나 2세 
여제가 탔던 황실마차 등은 눈이 부실 정도다. 유럽 왕실에서 
바친 금은 세공품과 각종 전리품들은 제정 러시아의 위세와 
품위를 드러내준다. 그러나 말안장까지 온갖 보석으로 치장한 
극단의 사치는 농민혁명이 왜 일어났는지를 느끼게 한다.
▲ 첫 임금 이성계의 어보 600년이 넘은 지금도 광채가 휘황한 조선 태조 이성계의 어보. 왕에게 존호를 올리거나 사후에 시호를 올릴 때 예물로 사용된 의식용 도장이다. 15일 문 여는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선보인다.

▲ 마지막 비 이방자여사의 비녀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되는 영친왕비 이방자 여사의 머리 장식. 원형의 옥판 위에 칠보와 진주로 장식했고 은으로 만든 나비와 꽃 모양의 떨새를 붙였다. 떨잠은 움직일 때마다 떨새가 아름답게 흔들리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 (위부터) 고종 친필인 경운궁(慶運宮) 현판. 경운궁은 지금의 덕수궁으로, 아관파천에서 돌아온 1896년부터 이곳에 거처했다. 궁궐의 천장 장식품 창덕궁에서 나온 쌍룡각 보개(雙龍覺寶蓋). 궁궐의 천장 장식품으로, 황금빛 용 두마리를 그려넣은 이 보개는 대한제국수립 이후의 것으로 보인다.

▲ 영·정조시대 어검 왕실 의식에 쓰이던 어검(御劍). 조선 후기인 18세기 영·정조 때 것이다.

▲임금옥좌 재현모습, 궁궐안 임금의 옥좌를 재현했다. 천명(天命)을 받아 삼라만상을 통치함을 뜻하는 일월오악도 병풍을 펼쳐 놓았고 임금을 기준으로 오른쪽에는 어보를 넣은 함이 왼쪽에는 어책을 넣은함을 놓았다. 창덕궁에서 나온것이다.



▲ (왼쪽부터)종묘제례에 쓰인 제기 종묘 제례에 쓰였던 제기(祭器) 중의 하나인 코끼리 받침 모양의 준(樽). 제사용 술을 담는 놋쇠 그릇으로 18세기에 만들어졌다. 종묘 제례에 사용됐던 준은 받침이 소 모양인 것도 있다. 투호 항아리 궁궐에서 쓰이던 투호(投壺) 항아리. 투호는 열 걸음쯤 떨어진 곳에서 항아리에 화살을 던져 넣는 놀이로 궁중 에서 왕족들이 할 때는 임금이 상을 내리기도 했다.

▲ (위부터) 나무 해태상 나무를 깎아만든 해태상. 이번에 처음 공개되는 유물로, 궁궐 계단의 돌 해태상을 만들 때 본으로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태종 어책 세종이 아버지인 태종(太宗/재위 1400~1418)을 기려 만든 어책(御冊). 푸른 옥에 임금의 공덕을 찬양하는 내용을 새겨 금을 입혔다. 600년 가까운 세월에도 조금도 바래지 않은 옥빛이 맑고 푸르다.

▲ (왼쪽부터) 2층 자개장 붉게 칠한 나무 위에 나전(전복껍질 안쪽의 빛나는 부분) 으로 장식한 2층장. 조선 마지막 왕비 순종의 황후인 윤비 가 쓰던 것으로 여겨진다. 민간 것보다 뛰어나게 화려한 자개 장식이 호사스럽다. 고종·순종이 사용한 나전칠 연상 고종과 순종이 사용하던 나전칠 연상(硯床). 벼루를 비롯한 문방구를 넣어 두는 작은 책상에 자개로 화려하게 꽃과 새, 산수화 장식을 넣었다. 떨잠(떨철반자)은 궁중의 여인들이 큰머리·어여머리의 앞 중심과 양 옆에 꽂았던 머리꾸미개이다. 원형 ·각형 ·나비형의 옥판에 칠보 ·진주 등의 보석으로 꾸미고, 은사로 가늘게 용수철을 만들어 끝에 은으로 만든 꽃, 새, 나비 모양의 떨새를 붙인다. 떨잠은 옥판 위의 떨새가 움직일 때마다 흔들리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며, 이 때 떨새의 모양은 무척 아름답게 보인다고. 지난 8월 15일 처음 문을 연 '고궁(古宮)박물관'에 이들 왕실보물들이 전시-공개되었다. 흩어져 없어져 버리고 겨우 남아 있는 일부라고 한다.



전체를 떨잠(떨철반자)이라 하며, 스프링과 그 끝의 장식을 떨새라 한다.


영-정조 시대의 어검.


각종 어검들

쌍룡각 보개


태조 이성계의 어보와 어보함 노부(鹵簿) 조선 시대 궁중행사 때 사용한 각종 물품과 편성 인원 및 운용방식을 일컫는 말. (국립고궁박물관 자료) 2005.10.31 안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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