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마음
- 이달(李達)-
曲欄晴日坐多時 閉却重門不賦詩
곡란청일좌다시 폐각중문불부시
墻角小梅風落盡 春心移上杏花枝
장각소매풍락진 춘심이상행화지
날이 맑아 굽은 난간에 오랫동안 앉아 있으면서
겹문까지 닫아 걸고 시도 짓지 않았네
담 모롱이 작은 매화가 바람에 다 떨어지니
봄빛이 살구꽃 가지 위로 옮겨 가는구나
이른 봄, 아직 그늘엔 잔설이 남았는데
매화가 나무 가득 꽃을 피웠다.
흐믓함도 잠시,
시샘하는 봄바람에 한 잎 두 잎 꽃잎이 흩지다가
어느새 매화는 다 지고 없다.
서운한 눈길을 둘 데 없더니,
이번엔 마당 저편에서 살구꽃이 꽃망울을 터뜨린다.
전엔 눈에 들어오지도 않던
살구나무가 갑자기 어여쁘다.
변덕스러운 봄 날씨라지만
정작 변덕스러운 것은 내 마음이다.
이달(李達)이 허봉의 집에 놀러갔을 때,
아우인 허균(許筠)이 왔다가
이달의 꾀죄죄한 행색을 보고 업신여기는 빛이 있었다.
허봉이 운자를 부르자 즉석에서 대답해 부른 시다.
허균이 이 시를 보고 낯빛을 바꾸고 무릎 꿇고 사죄했다.
허균은 이후 그를 시 스승으로 섬겼다.
시 한 수가 오만한 마음을 싹 씻어가 버렸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