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문사
강화군 삼산면 매음리 629번지 낙가산에 있는 사찰. ( 032-933-8271~3 )
양양 낙산사 와 금산 보리암과 함께 우리나라 3대 해상관음기도도량이다. 신라 선덕여왕 4년(635)년에 회정대사가 금강산에서 수행하다가 이 곳에 와서 절을 창건하였는데, 관세음보살이 상주한다는 산의 이름을 따서 산의 이름을 낙가산이라고 하였고, 중생을 구제하는 관세음보살의 원력이 광대무변함을 상징하여 절의 이름을 보문사라고 하였다.
▲ 보문사 대웅전
▲ 보문사 석실
나한을 모신 나한전으로 넓이가 97평이나 되는 석굴 법당이다. 홍예문을 들어서면 천연동굴 안에 석가모니불, 미륵, 제화갈라보살, 나한상을 안치한 23개소의 감실이 있다. 신라 선덕여왕 때, 한 어부가 고기를 잡다가 그물에 걸려 올려진 것들이라는 보문사 창건 전설이 있다. 인천광역시유형문화재 제27호. 석실앞 향나무 앞에는 대형 맷돌이 있다.
▲ 보문사의 대형 맷돌
일반용 보다 두배 정도 크기(지름 69cm, 두께 20cm)의 화강암 맷돌이다. 보문사 석실 입구에 있는 보문사 향나무 오른쪽 계단 옆에 있다. 인천광역시민속자료 제1호.
운판
범종·법고·목어와 함께 불음(佛音)을 전하는 불전사물(佛殿四物)의 하나에 속하며 대판(大版)이라고도 한다. 뭉게구름 모양의 얇은 청동 또는 철제 평판이며, 두드리면 맑고 은은한 소리가 나는 불교 공예품이다. 판 위에 보살상이나 진언(眞言)을 새기기도 하고 가장자리에 승천하는 용이나 구름, 달을 새기기도 한다. 위쪽에 구멍이 두 개 뚫려 있어 매달 수 있게 되어 있다.
선종(禪宗)에서는 재당(齋堂)이나 부엌 앞에 달아두고 공양시간을 알리는 도구로 쓰였다. 구름 모양으로 만든 이유는 구름이 물이기 때문에 불을 다루는 부엌에서 화재를 막는다는 주술적인 이유도 있던 것으로 생각된다. 물과 불은 상극이기 때문이다. 밥이 다 되어 뜸을 들일 때 3번 치므로 화판(火版), 바리때를 내릴 때 길게 치므로 장판(長版)이라고도 하였다.
지금은 끼니 때에 사용하기보다는 일반적으로 범종·목어·법고와 함께 아침·저녁 예불을 드릴 때 중생교화를 상징하는 의식용구로, 또는 허공에 날아다니는 짐승들을 제도하기 위하여 치고 있다. 운판을 치면 그 소리는 허공을 헤매는 고독한 영혼을 천도하고 공중을 날아다니는 조류계(鳥類界)의 모든 중생들을 제도한다고 한다.
판 위에 적힌 진언은 보통 '옴마니반메홈'이다. 보살상이나 연화수보살에게 귀의하여 극락왕생하기를 바라면서 이것을 외우면 죽은 후에 육취(六趣)에 들어가서 윤회를 벗어날 수 있는 공덕을 쌓게 된다고 한다. 몸에 지니거나 집안에 두어도 같은 공덕이 생긴다고 한다.
▲ 목어
나무를 깎아 잉어모양으로 만들고 속을 파낸 불교용구로서 본래 중국의 선원(禪院)에서 아침에는 죽을 먹고 점심에는 밥을 먹었는데, 그 때마다 때를 알리는 신호기구로 쓰였던 것이다. 모양이 길다랗고 곧게 생겨 꼭 물고기 모양이었는데, 지금은 ‘방(梆)’이라고 부른다. 뒤에 와서 현재의 것과 같은 둥근 모양이 되었다. 한국에서는 이것을 목탁(木鐸)이라 하여 부처님 앞에서 염불 ·독경 ·예불을 할 때에 쓰고 또 공양할 때, 대중을 모을 때에 신호로서 사용한다.
물고기 모양으로 만든 데 대한 근거는 없으나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옛날 어떤 스님이 스승의 가르침을 어기고 죽은 뒤에 물고기가 되었는데 그 등에서 나무가 자라났다고 한다.
어느 날 스승이 배를 타고 바다를 지나갈 때, 한 마리의 물고기가 바다에서 나타나 전에 지었던 죄를 참회하며, 등에 자란 나무를 없애 주기를 애걸하므로, 스승이 수륙재(水陸齋)를 베풀어 물고기 몸을 벗게 하고 그 나무로써 물고기 모양을 만들어 달아놓고 스님들을 경책(警責)하였다고 한다.
또 일설에는, 물고기는 밤낮 눈을 감지를 않으므로 수행자로 하여금 졸거나 자지 말고 늘 깨어서 꾸준히 수도에 정진하라는 뜻으로 고기 모양으로 만들었다고도 한다. 한국에서는 둥근 것을 목탁이라 하고 긴 것은 목어라고 구분하여 부른다.
법고
홍고(弘鼓)라고도 한다. 악기분류상으로는 혁부(革部)에 드는 타악기의 하나이나 주로 불교의식에서 쓰인 데서 법고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크기와 모양은 다양하며 지름이 거의 2 m에 이르는 큰 북부터 농악에서 쓰이는 소고(小鼓) 크기의 작은 북까지 가지가지이다. 그러나 북통은 모두 나무를 잘라 만들었고 양쪽 북면에는 쇠가죽을 씌워 북채로 쳐서 소리낸다. 법고는 불교의식 외에 승무(僧舞)에서도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악기이며, 또 일부 지방에서는 농악에서 쓰이는 소고를 법고라고 부르는 곳도 있다.
▲ 윤장대
책장의 일종으로 불교에서는 경전을 넣은 책장을 돌리면 경전을 읽는 것과 같은 공덕을 쌓을 수 있다고 한다. 윤장 또는 전륜장(轉輪藏)·전륜경장(轉輪經藏)이라고도 한다. 중심에 기둥을 세우고 기둥에 의지하여 원형 또는 다각형의 나무장을 올린 뒤 여기에 경전을 넣고 손잡이로 돌릴 수 있도록 만든다. 경전은 경장뿐 아니라 율(律)과 논(論), 여러 고승들의 장소(章疏)도 함께 넣어 둔다.
"석문정통(釋門正統)" 탑묘지(塔廟志)에 따르면 사찰에 처음 윤장대를 설치한 것은 중국 양(梁)나라 때의 선혜대사(善慧大士) 부흡 현풍(傅翕玄風)으로, 불도를 믿으려 하나 글을 알지 못하거나 불경을 읽을 겨를이 없는 사람들을 위하여 만들었으며 한 번 돌리면 경전을 읽은 것과 공덕이 같다고 하였다.
▲ 마애관음좌상
보문사가 관음 도량의 성지임을 가장 잘 상징하는 성보문화재로서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곳이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멀리 서해바다가 한 눈에 조망되는 등 경치가 장관이다. 특히 낙조 경관은 아주 일품이어서 수평선 너머로 떨어지는 붉은 해와 노을을 쳐다보노라면 종종 그야말로 무아지경의 경지에 들곤 한다.
이 관음좌상은 대웅전과 관음전 사이에 있는 계단을 따라 한 10분 가량 올라가면 나오는 낙가산 중턱의 눈썹바위 아래에 새겨져 있다. 절에서부터의 거리는 약 1km가량 된다. 오르는 길이 제법 가파르기 때문에 계단은 지그재그 식으로 놓았다. 이 불사를 기념하는 `관음성전계단불사공덕비'가 중간에 놓여 있다. 계단이 놓여졌다고는 하나 눈썹바위로 올라가는 길 자체가 워낙 급한 까닭에 천천히 올라가야 한다.
보문사 가는 길
1) 48번국도 -> 김포 -> 강화도 -> 84번지방도 -> 찬우물3거리 -> 우측 군도로(6km)-> 인산리 갈림길 -> 오른쪽도로(5km) -> 외포리 선착장
2) 강화읍 -> 4번군도로 -> 내가저수지 -> 고천리 -> 17번도로 -> 외포리 선착장
3) 김포 48국도 -> 누산리에서 죄회전 -> 양곡 -> 대명리 -> 강화 초지대교 -> 길상 온수리 -> 마니산 방면 -> 내리선착장
▶ 서울방면에서 김포를 거쳐 왕복 4차선의 48번국도를 타고 강화로 들어선 후, 강화읍내에 들어가기 바로 전 강화 인삼센터 부근에서 좌회전하여 외포리방면 84번 지방도로로 접어든다. 읍내를 벗어나 점차 시골풍경이 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할 무렵 나오는 찬우물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6km 정도 지난 후 인산리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5km정도 진행하면 외포리에 도착한다.
서울 도심에서 차로 1시 간 반이면 강화 본섬의 서쪽 끝 외포리 포구에 닿을 수 있다.
여기서 맞은편 가까이 보이는 석모도 석포리 선착장까지 1.5km 정도의 바닷길을 페리선을 타고 건너가야 한다. 페리 운항은 여러 척이 수시 왕복한다. 외포리에서 배를 타고 건널 때 뱃전으로 날아 드는 갈매기떼의 정경 또한 흥미롭다.
석포리와 보문사를 잇는 8km 구간을 다니는 섬내 버스는 배 시각에 맞춰 다니고 있어 굳이 승용차가 없더라도 가는 길이 수월하다.
보문사까지는 차로 15-20분 정도 걸린다. 보문사 입구에는 넓은 주차장과 상점, 식당들과 근처에 민박할 수 있는 산장이 들어서 있다.
▶ 외포리 석모도 훼리호 도선료 외포리항구 - 석모도(석포리)
외포리 선착장에서 30분간격 운행하는 배편이용(10분소요), 자가용이나 버스까지도 배에 실을 수 있다. 주말이나 행락철에는 수시운행 .자가용 왕복 14000원, 1인 왕복 1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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