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과 고독은 다릅니다. 무문관(無門關) 수행자들은 ‘깨침이 우리의 생명’ ‘이 몸을 금생에 제도하지 못하면 언제 하겠느냐’는 각오로 스스로 고독을 선택한 분들입니다. 스님들이 (깨달음을 얻어) 저 문을 박차고 나오시는 것을 기다리며 성심껏 시봉할 뿐입니다.”
고립은 자초하는 것이고, 고독은 선택하는 것일까. 12일 오전 강원도 인제군 백담사. 3개월간의 하안거(夏安居)를 시작하는 이날 백담사 무금선원장 신룡(神龍) 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안거(安居)는 부처님 생전에 인도에서부터 시작된 수행방식. 생물이 번성하는 우기(雨期) 때 외출하다가 생명을 밟아 죽이는 일을 막기 위해 한 곳에서 수행하도록 한 부처님의 뜻에서 비롯됐다.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하안거(음력 4월 보름~7월 보름)와 동안거(음력 10월 보름~1월 보름) 등 1년에 두 차례 3개월씩 이뤄지고 있다.
일반 선원에서는 참선하는 스님들이 함께 큰 방에 모여 참선하고 육체노동도 함께 하는 등 ‘대중 생활’을 한다. 그러나 무금선원에서 하안거에 들어가는 11명의 스님들은 3개월 동안 출입문을 밖에서 걸어 잠그고 3평 남짓한 독방에서 혼자서 오로지 참선에만 매진한다. 매일 오전 11시쯤 쪽문(공양구)으로 들어오는 식사가 수행승과 세상을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 늘 묵언(默言)해야 하며 TV나 신문은 물론, 전화와 편지·소포도 금지된다.
몸이 아파도 공양구에 메모를 해놓으면 약이 들어올 뿐이다. 올해부터는 선원 뒤편에 1인당 3평 남짓한 마당이 제공됐다. 운동과 햇볕을 쬐기 위해서다. 설악산과 백담계곡의 수려한 풍광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하지만 무금선원 수행자들에게는 이 마당까지가 ‘외출’이 허용되는 한계다.
스스로 택한 지독한 독방 감옥살이인 셈이다. 어지간한 수행력으로는 견디기 힘든 생활이기에 무금선원에 입방할 자격은 법랍(스님이 된 이후의 햇수) 20년 이상, 20 안거(安居) 이상의 선원장급 스님들로 제한된다. 그래도 지원자가 넘쳐난다. 정해진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마음껏, ‘양껏’ 정진하려는 스님들이다. 5년째 이곳을 떠나지 않는 진허 스님(전 마곡사 주지)과 2년째인 대흥사 회주 보선 스님(전 조계종 중앙종회 부의장)등이 대표적이다. 올해는 특별히 법랍 10년이 안된 스님도 무문관에 들었다. 지난해부터 “꼭 무문관에 들어가야겠다”며 소망한 덕분에 예외가 인정됐다.
진허 스님은 “혼자서 독방 감옥살이한다고 하지만 수행하는 삶의 연속이고, 행복의 연속”이라며 “도량(道場)도, 세월도 잊고 그저 수행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보선 스님도 “해제철(하안거와 동안거 사이의 기간)에 잠깐씩 외출하는 것 외에는 이곳에서 수행하는 것이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선원장인 신룡 스님 역시 1999~2002년 3년 동안 이 무문관에서 참선수행을 했다. 그는 “무문관에서 수행하면서 듣고 보는 계곡의 물소리, 계절따라 변하는 산색(山色), 별빛이 그대로 가슴 속에 쏟아진다”며 “그럴 때 맑은 법열(法悅)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날 안거를 시작하는 무금선원 11명의 스님들은 오전 11시쯤 결제(結制) 법회를 마쳤다. 각자는 곧바로 방에 들었다. 문은 13일 오전 밖에서 잠긴다.
아래쪽의 기본선원 수좌들은 하루 12시간 동안 참선 수행을 하며 특별가행정진 때는 하루 18시간 정진하기도 한다. 교선사(敎禪師)의 죽비가 이들의 수행 고삐를 당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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