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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족산 전등사/인천 강화

☞여행·가볼만한 곳/국내·사찰 답사

by 산과벗 2007. 3. 9.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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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강화 정족산 전등사 [답사 2006. 6. 18 한국의산천 ]

▲ 사찰 뒤로 보이는 소나무가 일품이다. ⓒ2006. 6. 18 한국의산천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吉祥面) 온수리 정족산성(鼎足山城) 안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사찰로서 381년(소수림왕 11)에 아도(阿道)가 창건하여 진종사(眞宗寺)라 하였다. 그 후 고려 제27, 28, 30대의 충숙왕(忠肅王)·충혜왕(忠惠王)·충정왕(忠定王) 때에 수축하였고, 1625년(인조 3)과 1906년에도 중수하였으며, 또 일제강점기에도 두 차례 중수하였다.

전등사라는 이름은 충렬왕(忠烈王:재위 1274∼1308)의 비 정화궁주가 이 절에 옥등(玉燈)을 시주한 데서 비롯되었다. 이때 정화궁주는 승려 인기(印奇)에게 '대장경'을 인간(印刊), 이 절에 봉안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이 절에는 보물 제178호인 전등사 대웅전(大雄殿), 보물 제179호인 전등사 약사전(藥師殿), 보물 제393호인 전등사 범종(梵鐘)이 있다. 또 대웅전에는 1544년(중종 39) 정수사(淨水寺)에서 개판(改版)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의 목판 104장이 보관되어 있다.

※ 팔만 대장경을 이곳에서 만들었다고 하는 설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학설이 분분하다.

▲ 전등사로 들어가는 정족산성 동문 이곳 매표소에서 전등사까지 약 250m 거리 ⓒ2006. 6. 18 한국의산천

▲ 이 동문을 지나면 바로 오른쪽 누각안에 병인양요(丙寅洋擾) 당시에 프랑스군에 승리한 기념비로서 양헌수 승전비(梁憲洙勝戰碑)가 서 있다. ⓒ2006. 6. 18 한국의산천

▲ 윤장대 ⓒ2006. 6. 18 한국의산천

책장의 일종으로 불교에서는 경전을 넣은 책장을 돌리면 경전을 읽는 것과 같은 공덕을 쌓을 수 있다고 한다. 윤장 또는 전륜장()·전륜경장()이라고도 한다.

중심에 기둥을 세우고 기둥에 의지하여 원형 또는 다각형의 나무장을 올린 뒤 여기에 경전을 넣고 손잡이로 돌릴 수 있도록 만든다. 경전은 경장뿐 아니라 율()과 논(), 여러 고승들의 장소()도 함께 넣어 둔다.

"석문정통()" 탑묘지()에 따르면 사찰에 처음 윤장대를 설치한 것은 중국 양()나라 때의 선혜대사() 부흡 현풍()으로, 불도를 믿으려 하나 글을 알지 못하거나 불경을 읽을 겨를이 없는 사람들을 위하여 만들었으며 한 번 돌리면 경전을 읽은 것과 공덕이 같다고 하였다.






숙묵당

▲ 정족산 사고지로 오르는 길에 내려 보이는 전등사 전경 ⓒ2006. 6. 18 한국의산천


숙묵당 지붕



▲ 대웅전 ⓒ2006. 6. 18 한국의산천

대웅전과 대웅전 처마의 네귀를 떠 받들고 있는 나부상

전등사의 대표적인 건물인 대웅보전은 그 자체만으로도 조선 중기의 건축 양식을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전등사 대웅보전이 세상에 더욱 유명하게 된 것은 대웅보전의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나부상(裸婦像) 때문이다.
대체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신 신성한 법당에 웬 벌거벗은 여인인가 하고 궁금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나부가 아니라 원숭이로 간주하는 경우도 있다. 원숭이는 사자나 용과 마찬가지로 불교를 수호하는 짐승으로 중국, 인도, 동남아시아의 사찰에 모셔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등사 대웅전의 조각상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나부상이라는 데 의견이 더 많다.
이 나부상과 관련해서는 유명한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 나부상 ⓒ2006. 6. 18 한국의산천

전등사는 1600년 이상의 역사를 간직한 가운데 여러 차례 화재를 겪고 이 때문에 대웅보전도 여러 번 중건되었다. 그 중 지금의 나부상이 만들어진 것은 17세기 말로 추측된다.
당시 나라에서 손꼽히는 도편수가 대웅보전 건축을 지휘하고 있었다. 고향에서 멀리 떠나온 그는 공사 도중 사하촌의 한 주막을 드나들며 그곳 주모와 눈이 맞았다.
사랑에 눈이 먼 도편수는 돈이 생길 때마다 주모에게 모조리 건네주었다.
“어서 불사 끝내시구 살림 차려요.”
“좋소. 우리 그림 같은 집 한 채 짓고 오순도순 살아봅시다.”

도편수는 주모와 함께 살게 될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대웅보전 불사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공사 막바지에 이른 어느 날 그 주막으로 찾아가보니 여인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며칠 전에 야반도주를 했수. 찾을 생각일랑 아예 마시우.” 이웃집 여자가 말했다.

도편수는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었다. 여인에 대한 배반감과 분노 때문에 일손이 잡히지 않았고 잠도 오지 않았다. 그래도 도편수는 마음을 다잡고 대웅전 공사를 마무리했다.

공사가 끝나갈 무렵 대웅전의 처마 네 군데에는 벌거벗은 여인이 지붕을 떠받치는 조각이 만들어졌다.
이것이 전등사 대웅보전에 얽힌 전설이다.

이 나부상이 더욱 재미있는 것은 네 가지 조각이 제각각 다른 모습이라는 점이다. 옷을 걸친 것도 있고 왼손이나 오른손으로만 처마를 떠받든 조각도 있으며 두 손 모두 올린 것도 있기 때문이다.



▲ 나부상 ⓒ2006. 6. 18 한국의산천

이 전등사 대웅전의 나부상은 희랍의 시지프스 신화를 연상케 한다. 그런가 하면 부처님을 모신 성스러운 전각이지만 그런 조각상을 세운 당시 도편수의 익살과 풍자, 그런 파격을 기꺼이 받아들일 줄 아는 전등사 스님들의 자비로운 마음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과연 그 대웅전을 중건했던 도편수나 스님들은 무슨 뜻으로 나부상을 올려놓았던 것일까?
단순히 사랑을 배신하고 욕심에 눈 먼 여인을 징계하고자 하는 뜻만은 아닐 것이다. 도망간 여인이 잘못을 참회하고 세상을 올바르게 살아가라는 염원도 들어있는 것이다. 또 그런 조각상을 보게 될 후대의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자비로운 마음을 본받으라는 뜻도 담겨 있으리라.
그렇기에 전등사 대웅보전의 나부상은 보면 볼수록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든다.

 
 
▲ 오랜 세월의 풍상을 견디며 지탱해온 대웅전 기둥.
ⓒ2006. 6. 18 한국의산천   
 
교통

초지대교길 
서울 - 대명리 - 초지대교 - 온수리 (이정표 양호)

강화대교길
김포- 군하(월곳면) - 강화대교 - 강화(선원면 방면) 48번 국도 이용 (27km, 0:30) 강화 - 창리 - 금월(선원면) - 두운(불은면) - 온수(길상면) - 삼랑성 - 전등사84번(구301번)이정표 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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