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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탑사/충북 진천

☞여행·가볼만한 곳/국내·사찰 답사

by 산과벗 2007. 3. 9.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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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진천 보탑사
위치 : 충북 진천군 진천읍 연곡리 비립동 483

중부고속도로에서 진천IC를 빠져나가자 마자 좌회전 하여 2킬로 정도 가면 김유신장군생가터.백곡저수지 방면이 보탑사 가는 길이고 4킬로 정도 더 가서 있는 백곡저수지를 지나 5분 정도 가면 보탑사랍니다. 주변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자연석다리인 `농다리', 화랑태권무예성지, 진천농교 등의 관광지도 있다

충북 진천읍의 백곡천 둔치 주변에는 아직까지도 옛 모습 그대로를 간직한 장(5일.10일장)이 서 시골장터의 넉넉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



삼국시대 신라와 고구려의 국경지대로 고려시대 큰 절터로만 전해오던 연곡리 비립동에 21 세기를 앞두고 우리나라의 무궁한 발전과 민족의 숙원인 통일을 기원하는 동시에 전통목조 건축문화를 재현함으로써 다음 세대에게 문화민족의 긍지를 심어주기위해 건립한 보탑사는 1991년도 고건축 문화재 팀이 이곳을 답사하고 신영훈 문화재 전문위원회 감독아래 1992년 5월에 착공하여 건축한 것으로, 1층에는 심주를 중심으로 사방불을 모시고 2층에는 경전을 모셨으며 3층에는 미륵3존불을 모셨다.

보탑사라 이름한 뜻은 법화경 견보탑품에 의하면, 석가모니 부처님의 법문을 다보여래께서 증명하고 찬탄하기 위해 칠보탑이 솟아오르는 것을 보여주신 것과 관련, 그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보배탑을 세움으로서 모든 사람의 가슴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심어주는 자비심으로 가득 채우고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뜻에서라 한다.

층별형태
1층 금당(金堂): 심주를 중심으로 석가여래, 비로자나불, 아미타불, 약사여래를 모신 보탑사의 본당.
2층 법보전(法寶殿): 불, 법, 승 3보중의 법보, 즉 석가세존의 가르침인 8만대장경을 봉안하는 법당.
3층 미륵전(彌勒殿): 석가 세존께서 열반에 드신뒤 부처님이 안 계신 세상이 계속되다가 장차 이땅에 오시어 새로운 정법(正法) 시대를 여실 미래불인 미륵불을 모시는 법당.

한편, 보탑사의 주지는 능현(법명)스님 김점자로 부지규모 4천여평에 연면적은 500㎡(170 평), 탑높이 54m(목탑 33.3m, 상륜부 20.8m)의 사찰를 관리하고 있으며 경내에는 보물 404호인 백비와 연곡사지 3층석탑이 현존하고 있다.


▶ 진천 보탑사가 있는 연곡리는 길지임이 분명하다. 원래 생거진천, 사후용인이라는 말이 있듯이 진천은 살아있을 때 머무르고 싶은 최고의 명당 자리로 널리 알려져있다.
특히 연곡리는 이름에서 풍기는 이미지 그대로 연꽃 계곡답다. 고려시대에는 큰 절이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보탑사에 있는 백비가 옛 영화를 말해주는 듯 싶다.
이 백비는 보물 404호로 처음부터 비문이 없는 백비였는지,아니면 후대에 글씨가 닳아없어진 것인지는 알길이 없다.

보탑사는 건립된지 얼마 안되는 비구니 사찰이다. 이곳이 본격적인 유명세를 치루게 된 동기는 바로 우리시대 명인 신영훈님의 걸작 3층목탑 때문인듯 싶다. 이 목탑은 사람이 직접 올라갈 수 있는 형식이다 목탑 형식을 하고있는 법주사 팔상전은 겉에서만 다층 형식일 뿐 안은 통층이다. 그러나 이곳은 층층이 계단으로 올라가야 하는 것이다.
특히 1층은 사방 불전인데 약사 여래불 앞에 공양으로 올려진 수박이 동지가 되도록 상하지 않는다고 하는 미스테리를 안고있다.
지금도 많은 신도들이 올려 놓은 수박이 놓여져 있는데 영험한 수박이라고 신도들 간에 화제를 몰고있다.
또 연곡리 계곡 입구에는 김유신 장군 탄생지가 있어 함께 둘러 보기에도 좋다 가는길은 진천에서 천안가는길 일반국도 21번도로를 따라가면 김유신 장군 탄생지와 보탑사 이정표가 오른쪽으로나온다 .

▶ 산사에 이르면 불교를 상징하는 여러 구조물들이 일주문, 천왕문을 시작해서 산산각, 칠성각을 마지막으로 화려하게 펼쳐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충북 진천읍 연곡리 만뢰산 남쪽에 자리 잡은 보탑사(寶塔寺)는 파격적일 만큼 소담스럽다. 사각의 육중한 기단 위에 날개를 편 독수리처럼 힘찬 추녀의 3층 목탑 뒤편으로 고구려 장군총의 모습을 재현한 지장전, 북동쪽으로 자그마한 산산각이 전부다.

보탑사 3층 목탑은 신라가 새로운 통일국가를 염원하여 황룡사 9층탑을 세웠듯이 남북통일의 간절한 염원을 담아지은 탑이다. 국내산 적송을 이용하고 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것이 특징이며 현존하는 목탑중 유일하게 3층(높이 42.1m)까지 올라간 세계 최대의 목탑이다. 사실 내부에 대웅전, 법보전, 미륵전을 기능적으로 포함하고 있는데, 1층은 탑의 핵심인 금당이다. 금당에는 동서남북으로 사방에 부처님을 모셨으며 이탑의 중심이 되는 심주안에는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셨고 둘레에는 999개의 간절한 발원이 담긴 백자 원탑(願塔)이 있다. 2층은 티벳불교에서 따온 윤장대가 있으며 4면의 벽에 한글법화경을 쑥돌에 새긴 석경이, 3층은 미륵3존불을 모신 미륵전으로 꾸며져 있다. 군더더기 없이 똑 떨어지는 탑의 자태가 더 감동적인 것은 어쩌면 화려하거나 소박하거나, 절터가 좋거나 나쁘거나, 또는 관념이 있거나 없거나의 구별을 없애는 멸도일심의 경지인지도 모른다.

만뢰산은 덕성산의 한줄기가 파도치듯 서운산을 넘어 남쪽으로 뻗친 산으로 삼국통일의 위엄을 달성한 김유신장군과 유서가 깊다. 정상에는 장군의 아버지인 김서현 장군이 쌓았다는 옛 성터 흔적과 신라의 옛 흔적을 쓸쓸히 보여주는 우물터, 지랑 마을에 있는 생가터, 장군의 태를 묻었다는 태령산이 있다.

보탑사는 진천읍에서 서쪽으로 12㎞지점에 있으며 보탑사 못 미쳐에 연곡계곡과 연곡 저수지가 있어 풍광 또한 빼어나다. 또 이곳을 유명하게 한 것은 우리나라에 단 3개 뿐인 백비(비문을 새기지 않은비.보물 제404호)가 있기 때문이다. 고려초의 것으로 추정되는 백비에 조각된 아홉 개의 용은 그 조각솜씨가 뛰어나며 석비주변에는 도덕봉, 약수봉, 욕녀봉 등 아홉 개의 봉우리가 병풍처럼 펼쳐져있다. 나지막한 구름과 젖빛 벌판을 뽀송뽀송한 마음으로 걷다보면 먹장삼 승려들의 모습과 향내담은 은은한 풍경 소리가 있는곳. 그러나 보탑사는 구도자의 행렬보다는 학생들의 황룡사 9층탑이나 장군총의 역사 체험 명소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백비(보물 4040호)
요사채 옆 비각에는 비석에 아무 글자도 새기지 않은 백비(白碑촵진천 연곡리 석비촵보물 404호)가 있다. 우리나라에 4, 5기 정도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백비는 무자비(無字碑)라고도 한다.

경기도 파주 감악산 정상에 있는 백비는 당나라 장수 설인귀의 비라고 전한다. 전남 장성군 황룡면 금호리 비는 주인이 분명한 유일한 백비다. 조선시대 최고의 청백리 박수양의 비석인데 명종 임금이 비석을 내리면서 어명으로 글자를 새기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전남 함평군 신광면 계천리에도 백비가 있다.


▲ 비석에 아무런 글자도 씌어 있지 않아 관심을 끄는 백비. 고려 초기 것으로 추정되는 이 진천 연곡리 석비는 보물 404호.

비석에 글자를 새기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 미완성설 ▶ 사후 제거설 ▶ 도교적 허무주의 배경설 ▶ 진실을 밝힐 수 없는 시대에 대한 저항설 등의 가설이 있지만 아직 정설은 없다.

연곡리 백비는 조형양식과 수법으로 보아 고려초에 조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말을 닮은 귀부의 머리는 전면과 좌우가 모두 깎여져 모습을 알 수 없지만 여의주를 문 용 아홉 마리가 뒤엉킨 이수는 사실적인 조각이 돋보이는 비석이다.

처음부터 글씨를 새기지 않았던 것으로 보는 설이 유력하다. 비석 귀부의 거북 등 표면이 박리현상으로 벗겨지고 있는데 한 꺼풀 벗겨진 곳에서도 표면과 같은 거북 등 무늬가 선명하게 드러나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

충북 진천 보탑사 3층목탑 관광명소화

탑속에 절이 있다.
충북 진천읍 연곡리에 있는 보탑사. 42m 3층목탑 속에 대웅전, 법보전, 미륵전이 들어 있다. 황룡사 9층탑이 몽골군에 의해 소실된 후 750여년만인 96년에 재현된 이 목탑 옆에 지난 1998년 10월 10일 지장전이 완공됐다.

탑이 지상에 있는 사람들의 상승욕구를 나타낸 것이라면, 지장전은 땅속에 묻혀 죽은 사람들을 위한 것. 하늘을 향해 솟구친 사각목탑과 지하형식의 지장전이 음양 조화를 이루고 있다.
환생하지 못한 중생들을 구제하는 지장보살을 모신 지장전은 고구려 장군총을 모방한 것이 특징. 건물이 땅 속에서 솟아오르는 이미지를 빌렸고, 입구에는 해의 신 삼족오와 달의 신 두꺼비를 그렸다. 내부공간 62평은 자연광이 들어올 수 있도록 특별히 설계했다. 석굴암처럼 건물 위에 흙을 덮을 예정이다.

3층 목탑
트 13층 높이, 2,000여명이 들어갈 수 있는 웅장한 3층탑은 관광명소가 됐다. 연간 이곳을 찾는 초중고생들은 줄잡아 2만명. 밑에서 고개가 아플 정도로 탑을 바라보는 학생들은 "황룡사 9층탑은 얼마나 대단한 규모였겠느냐"면서 자긍심을 느낀다.

탑안 1층에 들어서면 999개의 백자탑을 모신 심주를 중심으로, 석가모니(남쪽), 약사여래불(동쪽), 아미타불(서쪽), 비로자나불(북쪽) 등 사방불이 있다. 불법이 사방으로 퍼지기를 기원하는 방식으로 탑에서만 가능한 양식이다. 2층에 올라가면 중앙에 8만 대장경을 보관한 윤장대와 한글법화경을 새긴 석경이 있고, 3층에서는 미래세계를 화평하게 할 미륵불에 예불을 드릴 수 있다.
병고에서 구원해주는 약사여래불 앞에 작년 초파일부터 놓아 두었던 수박을 동짓날에 잘랐는데 젤리처럼 생생했다고 한다. 신영훈(문화재 전문위원)씨를 비롯한 문화재 전문가들이 건축한 3층목탑은 설계에만 2년이 걸렸다. 일본의 목탑은 사람이 못들어가는 구조이고, 1056년 만들어진 중국 산서성 불궁사 5층목탑은 올라갈 수는 있지만 8각탑이라 참고가 되질 않았던 것. 시공을 맡았던 김영일(해라시아 문화연구소 연구원)씨는 10년동안 모델을 찾아 헤매다가 경주 남산 마애탑을 보고 복원을 시작했다.

주변 명소
추천 답사코스 :
길상사, 향토민속자료전시관, 김유신장군탄생지, 보탑사, 농다리, 이상설선생 생가

1. 농다리
농다리는 읍내에서 중부고속도로를 바라보며 구곡리쪽으로 가면 나온다. 고려말, 그러니까 14세기에 만든 다리라 했다. 혹은 세월을 거슬러 삼국시대에 이미 세웠다고도 했다. 그 기나긴 세월을 농다리는 이 작은 천변에서 천변을 잇고 서 있으니 그 인내심이 놀랍다. 원래 길이는 100m였다. 하지만 긴 세월 수백번은 치렀을 장마 홍역에 양쪽이 떠내려가 지금은 93m정도만 남아 있다. 폭은 3m정도. 암숫돌 한쌍씩 24칸이다. 암돌과 숫돌을 엇갈리게 끼워맞춰 언뜻 봐도 거대한 지네 형상이다. 시멘트는 커녕 석회도 바르지 않고 자연석을 쌓아 만들었지만, 삼국시대 작품이 맞다면, 1000년이 넘는 세월을 그리 큰 해침 없이 인내해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상선약수, 노자는 물 흐르듯 사는 삶을 최고의 덕목이라 했다. 농다리는 개울 흐름의 강약에 맞춰 진짜 지네처럼 구부정하게 생겼고, 돌들은 그 흐름에 따라 조금씩 흔들린다. 그래, 눈 앞의 견고함을 포기하고 다리는 영원한 멸실로부터 해방된 것이다.

2. 김유신 장군 탄생지와 보탑사

장군 탄생지는 읍내 농다리 반대편에 있다. 군청에서 천안쪽으로 가다보면 장군의 영정을 모신 길상사가 나오고 이어 향토민속자료전시관이 나타난다. 길상사를 들른 뒤 탄생지로 가는 길은 차츰 비포장으로 변한다.
김유신은 이곳 진천에서 태어나 훗날 삼국을 통일했다. 뒷산 태령산에 태를 묻을 때 무지개와 함께 신들이 내려와 태를 가지고 승천했다고 한다. 생가터에는 장군의 업을 기리는 비석이 있고, 너른 잔디밭에는 감나무 몇그루가 터를 지키고 있다. 터 뒤편으로 장군 태실로 오르는 산길이 이어진다.
산행은 40분. 그리고 탄생지에서 이어진 길 끝 산 속에 보탑사가 있다.

절로 가는 좁은 길엔 하도 나무가 우거져 하늘이 뵈지 않는다. 보탑사는 오는 9일로 세워진지 딱 4년을 맞는 어린 절이다. 원래 절터였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절을 없애니까 안좋은 일이 많았는데 잘된 일』이라고 했다. 마을뿐 아니라 여러모로 잘된일이었다.

보탑사는 거대한 3층 목탑이 유명하다 목수 신영훈 선생이 삼국시대 목탑형식을 빌어 고스란히 재현한, 2000년대의 문화재다. 쇠못 하나 쓰지 않는 순수한 목탑으로 높이는 무려 42.71m로 웬만한 고층아파트 높이. 척 단위로는 탑신이 108척으로백팔번뇌를 상징한다. 80m가 넘는 황룡사탑에는 못미치지만 옛사람들의 건축술을 재현한 기념비적 건물이다.

1층은 사방으로 약사여래, 아미타여래, 석가여래와 비로자나불을 모신 불전이 있다. 약사여래 앞에는 초파일에 딴 수박들을 놔뒀다. 수박은 동짓날 배를 가르면 지 않고 젤리처럼 말라 있다고 한다.
2층은 대장경을 봉안한 윤장대, 3층은 미륵불 3존을 모신 미륵전이다.

3. 길상사
길상사는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김유신 장군의 영정을 모신 사당으로 충북 진천군 진천읍 벽암리에 자리하고 있다.
김유신 장군의 사당이 이곳 진천에 자리잡게 된 것은 장군이 이곳 진천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장군의 아버지인 김서현 장군이 이곳 만로(진천의 옛 지명)의 태수였다.

김유신 장군은 돌아가신 후 흥무대왕이라는 시호를 받아 왕의 반열에 올랐는데, 이곳 길상사의 사당인 흥무전의 이름도 장군의 시호인 흥무대왕에서 따온 것이다.

길상사에는 특별히 별 볼거리는 없다. 주차장에서 계단을 오르면 흥무전에 이르게 되고 흥무전에는 김유신 장군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길상사는 정비가 잘 되어 있어 아늑하고 차분한 분위기의 사당이다. 또 흥무전 앞에 아주 커다란 겹벚나무가 몇 그루 서 있어 봄이면 화사한 벚꽃이 만개하고, 또 주변에 배나무와 복숭아나무가 있어 벚꽃과 함께 복사꽃과 배꽃을 볼 수 있다.

4. 만뢰산
천안·안성·진천의 경계에 서있는 명산
일명 보련산·만노산·금물노산·이흘산이라고도 불렸던 이 산은 충남 천안시와 충북 진천군의 경계인 진천 연곡리와 백곡면 대문리에 솟아 있다.

만뢰산 등산로는 계곡과 능선을 따라 거미줄처럼 나있다. 문봉리 김유신 생가터 뒷산으로 김유신 장군의 태가 묻힌 태령산에서 시작하여 만뢰산을 잇는 능선을 한 바퀴 돈 다음, 보탑사가 있는 비선골로 내려오는 산길을 택하는 것이 오가기 쉽고 주변 볼거리도 있어 좋다.
김유신 탄생지에서 200m쯤 내려와 지능선을 따라 산행을 시작한다. 태령산 정상에서 1시간쯤 능선길을 따라가면 쥐눈이에서 올라오는 안부고개를 지나 사송리로 내려가는 임도 고갯길에 다다른다.
만뢰산 정산으로 가는 능선길이 넓게 나있다. 여기서부터 참나무와 소나무 숲속으로 지그재그로 난 능선길을 30여분 동안 숨가쁘게 오른다. 560m봉을 지나면서 힘들지 않고 느긋하게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내비치는 숲길을 오른다. 30여분쯤 더 가면 만뢰산 정상이다. 정상은 평평하게 닦인 헬기장이다. 뾰죽한 봉우리를 깎아내어 아마도 정상의 높이가 1~2m는 낮아졌을 것이다.
정상 주위에 신라가 쌓은 석성이 있는데 풀숲에 가려 잘 보이질 않는다. 헬기장 한쪽 귀퉁이에 움푹 패인 옛 우물터가 메워지지 않고 어느 정도 원형을 유지한 채 남아 있다. 여기 저기 널린 토기 파편과 기와 조각들이 옛 성터임을 일러준다.

정상에 서면 진천, 경기도 안성, 천안시 일대의 산과 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신라의 전초기지가 들어설 만한 요충지이다. 하산은 비선골로 나는 내리막길로 들어선다. 중간에 보련계곡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에서 잠시 망설이게 되지만 남쪽으로 뻗은 능선길을 택한다. 30여 분쯤 가다보면 왼쪽으로 꺾어지는 갈림길이 나온다.
연꽃 모양의 연곡리 깊은 골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속에 둥지를 튼 보탑사도 내려다볼 수 있다.
보탑사 주차장까지 4시간 30분쯤 걸린다. 산행시간을 줄이려면 연곡저수지에서 임도를 따라 태령산과 만뢰산이 만나는 임도 고갯길로 올라가서 만뢰산 정상을 오른 다음, 비선골 보탑사로 내려오는 코스를 택해도 좋다 (약 3시간 소요).
진천에서 제일 높은 민뢰산을 올랐다는 감회도 크지만 김유신 장군의 아버지인 김서현(金舒玄) 장군이 쌓았다는 신라 고성을 돌아보는 것도 만뢰산 산행의 의미를 더해준다.

비선골 보탑사 3층목탑 둘러보길
만뢰산에 올랐다가 들러볼 수 있는 명소도 많이 있다. 비선골 보탑사는 만뢰산 기슭 연곡리 절터에 우뚝 서 있다. 이곳 보탑사에는 경주 황룡사 9층탑 이후 처음으로 3층까지 지은 목탑이 있다. 탑의 높이는 42.71m, 1층의 넓이는 60.14평, 2층은 50.33평, 3층은 41.40평이다. 1층의 금당에는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심주를 중심으로 약사보전·극락보전·대웅보전·적광보전 등 사방불을 모셨으며 2층 법보전에는 8만대장경을 모신 윤장대와 4면 벽에 한글 법화경을 새긴 석경이 있다. 3층 미륵전에는 미륵삼존불을 모셔놓고 있다. 먼 훗날 불교 문화재로 길이 남을 것이다.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는 김유신 생가터도 가볼 만한 곳이다. 연곡리 못미처 상계리 계양마을은 예부터 담안밭이라고 불렀다. 옛날에는 커다란 담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매우 큰 주춧돌이 남아 있었다. 김유신 장군의 부친인 김서현 장군이 만노태수(萬弩太守)로 있을 때 이곳에 집을 짓고 살았으며 이곳 만뢰산성에서 백제군을 방어했다고 전한다. 이곳은 신라 진평왕 17년 (595년)에 태어난 통일신라의 명장 김유신 장군의 출생지로 알려져 있으며 근처에 소년시절 말 달리며 활쏘기 연습을 했다는 치마대(馳馬臺)라 부르는 치마바위가 있다. 뒷산 태령산에는 김유신 장군의 태를 묻었다는 태실 유지와 주위에 돌로 쌓은 둘레 216m의 석성이 남아 있다. 생가터에는 현재 1983년에 세운 유허비와 비각이 남아 있다.

귀로
절에서는 되도록 해거름에 나오도록 한다. 김유신 생가터쯤에 이르면 노변에 풍경소리라는 찻집이 있다. 차 한 잔 마시고 나와 달빛 아래 서 있으면 귀에는 풍경소리가 낭랑하고 숯굽는 향내가 온몸을 휘감는다. 밝은 낮에는 만날 수 없는 노변 풍경이다.

여행수첩
가는길(서울기준): 중부고속도로 진천IC 좌회전, 진천방면 이정표 따라 진천군청까지 - 군청 앞 삼거리에서 17번국도로 직진 - 4.2㎞ 전방 사석삼거리에서 21번국도 천안방면 우회전 - 1.5㎞ 지점 「애매한」 사거리에 「김유신장군 탄생지」 「보탑사」 작은 이정표. - 눈 앞 갈래길의 「사잇길」로 마을로 들어갈 것. 공사중인 시멘트포장길과 비포장길이 이어지고 김유신장군 탄생지가 중간에 있다. 보탑사는 그 길 끝에 있다.

농다리
군청 앞 삼거리에서 좌회전, 좌회전하자마자 오른편 작은 길로 들어간다. 이 길 따라 5㎞를 가면 왼쪽에 큰 이정표가 보인다. 고속도로 굴다리를 지나 바로 있다.
대중교통
서울 동서울이나 남부터미널에서 진천행(1시간30분). 진천에서 보탑사와 농다리는 택시 이용. 

길상사
군청 앞 삼거리에서 17번국도로 직진하여 진천읍을 벗어나서 조금만 가면 우측에 길상사 표지판이 있고 이길을 따라서 조금만 가면 주차장이 있다.

먹을거리
풍경소리(0434-533-8245)」:김유신장군 탄생지와 보탑사 사이. 수제비와 콩나물국. 각종 차. 서울에서 내려온 사내가 운영하는 운치 있는 공간. 실내에는 숯으로 만든 석부작과 민속품. 해거름부터 은은하게 퍼지는 숯굽는 냄새가 참 좋다. 민박도 겸.

머물곳 : 진천관광호텔(0434-533-0010), 그랜드파크여관(533-4646) 등.


클릭 ■☞ 만뢰산 , 연곡저수지, 김유신장군탄생지 및 태실, 연곡계곡

주변에 있는 만뢰산을 등산하기도 하고 보탑사에 이르기 전 연곡저수지가 있어 조용히 낚시를 즐기기도 하고 겨울이면 빙어 낚시객들이 많이 찾아온다.

교통안내
1) 중부고속도로 진천 IC→진천읍 경유 청주방면 진행(구 17번 도로)→사석리에서 천안방면 우회전(21번도로)→약 2KM를 진행하여 우회전 (관광안내판 참고)
2) 경부고속도로 목천 IC→진천방향 우회전→연곡리 입구에서 좌회전

현지교통
연곡리까지 시내버스 1일 4회 운행(06:30 , 10:00 , 14:40 , 18:40) (문의 - 진천시내버스터미널 043-533-1501~2)
특산물 : 참숯 (보탑사에 이르는 길에 숯을 판매하는 곳이 있다.)
정보제공 : 진천군청 문화체육과 (043-539-3024)

진천 보탑사
"옛날에 진천 어는 생원의 딸이 용인으로 시집을 가서 아들을 낳고 유복하게 살다가 남편이 일찍 죽어서 청산과부가 되었다. 그래서 어린 아들을 시집에 두고 진천으로 개가를 하여 아들을 낳고 남부럽지 않게 사는데, 용인에 두고 온 아들이 늘 마음에 걸린다.
한편 용인의 아들도 그동안 장성하여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게 소원이라 진천으로 찿아와서 여쭈니 어머니는 흐뭇하나 진천의 아들이 그럴 수는 없다고 거절하였다. 그러나 용인 아들은 그만두지 않고 진천의 원님에게 소장을 내어 해결해 달라고 하였다.

고을 원님은 고심 끝에 생전에는 진천에서 살다가 죽어서는 용인에서 제사 지내라는 "생거진천, 사거 용인" 이라는 판결을 내린다. 여기에서 '생거진천'이라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또한 일설로는 진천 지방은 예부터 평야가 넓고 비옥하여 가뭄의 해가 없어 농업경영이 순조로와 살기 좋은 곳이기에 '생거진천'이요. 용인은 산자수명하여 산세가 순후하여 사대부가 유명한 산소가 많다하여 '사거용인'이라 하였다고 한다.''''

보탑사
보탑사는 충북 진천군 보련산자락에 자리잡고 있다.

일반적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일주문과 사천왕문, 범종각, 석등, 석탑, 대웅전의 순서로 들어가지만, 보탑사는 이러한 면에서는 파격적으로 입구에 범종각과 법고각이 나란히 자리를 잡았다.
입구에 양쪽으로 나란히 자리를 잡아서 대부분의 절이 범종각 안에 법고와 범종을 자리하게 한거와는 다른 느낌을 준다. 이 느낌을 절을 돌아보는 내내 그 운을 느끼게 한다.

금산사의 미륵전은 3층 통층인데 비하여 이 보탑은 각층마다 사람이 계단을 통하여 오르내릴 수 있게 설계가 되어 있다.
즉 겉모습은 탑이지만 각층마다 법당인 다층집으로 황룡사 9층 목탑이래 1300년만에 사람이 오르내릴 수 있게 지어진 목탑이다.
각층은 부처님과 경전. 그리고 미륵불을 모시고 있는데 신라가 통일국가를 염원하여 황룔사 9층탑을 세웠듯이 남북통일은 물론 옛 고구려 땅까지 통일하려는 염원을 담아지은 것이 바로 보탑사이다.

목수 신영훈 선생은 쇠못하나 쓰지 않은 순수한 목탑으로서 42.7미터의 3층탑을 삼국시대 목탑 형식을 빌어 고스란히 재현했다.

흔히 절 집에 이르면 불국토를 상징하는 여러 구조물들이 미혹에서 깨달음에 이르는 순서처럼 차례차례 펼쳐지기 마련이다.
이 목탑은 한 건물에 법당 다섯과 대장전을 모두 포함한 샘이니 편액만도 열두 개나 붙어 있다. 3층 사방에 걸린 용화보전, 대자보전, 미륵보전, 도솔천전은 이곳이 미륵전임을 알리고 2층 사방이 구장전, 수다라전, 법보전, 보장전, 편액은 경전을 모시고 있음을.
1층 사방의 약사불전, 극락보전, 대웅보전, 적광보전의 편액은 이곳이 각 부처님을 모신 곳임을 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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