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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봉정사/ ‘맛있는 국화밭 속으로’

☞여행·가볼만한 곳/국내·사찰 답사

by 산과벗 2007. 3. 9.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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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쩍 떠난다]안동 봉정사 ‘맛있는 국화밭 속으로’ [경향신문 2006-11-09]
단천교~가송리 ‘퇴계 녀던길’


▲ ‘퇴계 녀던길’ 단천교 주변 정경.

봉정사~하회마을~도산서원으로 이어지는 ‘안동 답사 트라이앵글’에 새 볼거리가 하나 추가됐다. 퇴계 이황 선생의 흔적을 좇아가는 ‘퇴계 녀던길(옛길)’. 도산서원에서 청량산까지의 50리길(20㎞) 가운데 단천교에서 가송리까지 3㎞를 가리킨다. 차량이 다닐 수 없는 강변 트레킹 코스다.

35번 국도 도산서원을 지나, 이육사 문학관 방향으로 우회전한다. 이육사 문학관을 3㎞쯤 지나 갈림길에서 백운지 방향으로 좌회전. 단천교 입구에서 ‘퇴계 오솔길’이란 이정표를 처음으로 만날 수 있다. 포장도로는 1㎞ 정도 가면 끊긴다. 언덕 위 주차장에 차를 대고 여기서부터는 걸어가야 한다.

‘단사(丹砂)’라는 지명이 붙을 만큼 이 지역은 유난히 땅이 붉다. 바위도 흙도, 말라붙은 핏빛 같은 붉은색이다. 주차장에서 강변까지는 가파른 계단길. 재작년만 해도 ‘전지가위’가 필요할 만큼 수풀이 울창했다는데, 지난해 말 시에서 정비를 끝내 길이 훨씬 편안해졌다. 낙엽이 잔뜩 쌓여있어 발이 푹푹 빠진다.

언덕만 내려오면 평지다. 낙동강 강변 모래톱을 따라 길이 나 있다. 푹신한 모래밭에 발이 조금씩 빠진다. 강가엔 억새와 갈대가 피어있고, 발치엔 메꽃이 피어있다. 400여년 전 퇴계가 집에서, 도산서원에서 이 길을 따라 청량산으로 갔다. 유년시절엔 청량산에 있는 숙부에게 학문을 배웠고, 늙어서는 청량산에서 도산십이곡을 지었다. 퇴계는 이 길을 걸어 갔을까, 가마를 타고 갔을까. 짐꾼들을 거느렸을까, 혼자 봇짐 지고 갔을까. 30분을 채 걸었나 싶은데, 퇴계의 오솔길은 가송리 농암종택에서 끊어진다. 굳이 퇴계의 흔적을 찾지 않더라도 한번쯤 걸어보고 싶은 상쾌한 길이다.

창문을 내리자 알싸한 향기가 자동차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갑갑하던 자동차 안이 금세 국화 향기로 가득찼다. 경북 안동 봉정사 입구엔 지금 국화가 한창이다. 산자락에 손수건처럼 펼쳐진 국화밭 예닐곱 개가 모여 1만여평. 절을 3㎞ 앞두고 꺾어져 들어가는 모퉁이부터 좌우로 노오란 국화밭이 펼쳐졌다.

“지금이 한창 좋을 땝니다. 지난달 중순부터 피기 시작해서 이달 초 만개했어요. 된서리 내릴 때까지 꽃이 한 보름 갑니다.”

늦가을 꽃인 국화는 서리 내릴 때 피고, 서리 내릴 때 진다.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보다’라는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처럼, 무서리가 내리는 10월 중순 피기 시작해 된서리 내리는 11월 중순 진다. 꽃이 만개한 보름 동안 국화밭 아낙들의 손길은 바쁘다. 꽃을 따서 말려 차로 만들기 위해서다. 국화밭과 국화차야 전북 고창에도 있지만, 봉정사 국화밭의 자부심은 남다르다. ‘국화차 원조’라는 것.

“고창 거기는 서정주 시인 고향이라고 국화밭 만든 거고, 우리는 옛날부터 국화차 만들어 왔어요. ‘우리나라 국화차의 대부’ 되시는 스님도 계시고….”

봉정사 일대에서 국화차를 처음 시작한 것은 10여년 전. 봉정사 돈수 스님이 경내에 조그맣게 국화밭을 가꾸고, 차를 만들어 신도들에게 나눠줬다. 이후 돈수 스님이 마을 사람들에게 국화 종자와 차 만드는 기술을 전수하면서 국화밭이 조금씩 생겨났다. 돈수 스님과 가깝게 지내던 김재현 대표(52)가 3년전 6,000여평 규모의 국화농원 ‘가을신선’을 열면서 국화 농사가 본격화됐다. 지금은 가을신선을 비롯해 ‘금국’ ‘황국’ 등 3곳의 농원에서 국화밭을 가꾸고 있다. 가장 규모가 큰 가을신선의 한해 국화차 생산량은 1t 정도다. 김대표는 “예전부터 사찰 등에서 국화차를 조금씩 잡쉈지만, 이렇게 기술을 갖춰 대량 생산·보급하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라고 설명했다.

봉정사의 한 스님은 “종자도 스님이 다 나눠주고, 국화차 만드는 법도 스님이 다 알려줬으니, 여기 국화차는 돈수 스님 한 뿌리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그 돈수 스님은 봉정사 주차장 근처 국화밭 앞에 작은 암자를 짓고 수행하고 있다. 차에 대해 묻자 스님은 “차? 그거 음료수지, 뭐”라며 손을 내저었다. 그의 거처 앞 국화밭에서 생산된 국화차 포장지에는 스님의 말이라는 ‘차맛은 텅빈 골짜기처럼 고요하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봉정사 앞 골짜기의 지명은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옛 지명은 꽃이 많다고 해서 ‘화원’이었다. 봄이면 진달래와 벚꽃이 지천으로 피었단다. 국화 농사도 잘 된다. 국화가 만개한 보름 동안엔 마을 아낙들이 총동원돼 꽃을 ‘수확’한다. 국화차용 국화는 먹을 수 있는 식용국화를 쓴다. 꽃 크기가 엄지손톱만한 소국의 일종이다.

“아무 국화나 말린다고 차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느 꽃과 마찬가지로 국화에도 독성이 있습니다. 식용국화를 사용하고, 독성을 제거하기 위해 한번 데쳐서 말립니다.”

만개한 국화 송이를 감초와 대추 끓인 물에 넣어 데쳐 말려야 ‘차’가 된다. 감초를 넣는 이유는 독성을 제거하기 위한 것. 제독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차에서 아린 맛이 난다. 어느 정도 온도에 얼마나 빨리 데쳐내느냐가 차맛을 좌우한다. 국화향을 ‘가두는’ 기술이 필요한 것이다. 돈수 스님이 국화차를 처음 만들 땐 ‘냄비’에 넣고 데쳤다지만, 지금 다원들은 안동 시내에 공장을 두고 삶고 말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국화차는 전국 백화점, 전통찻집 등으로 납품된다. 25g들이 한봉지가 2만원 정도에 팔린다.

봉정사 가는 길엔 3곳의 다원이 각자 무료 시음회를 열고 있다. 국화차 맛을 보여주고 차도 판다. 사람이 밀려 차를 여러 번 우려내다 보면 ‘맹물’ 맛이 나기도 한다. 봉정사 주차장 앞의 전통찻집 ‘만휴’는 국화차 전문점. 물 속에서 꽃이 풀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도록 유리다관에 차를 담아 낸다. 봉정사 귀일 스님이 운영한다.

“국화가 몸에 좀 좋나요? 첫째, 꽃 자체에 병충해가 없어요. 둘째, 살균·해독에 그만입니다. 고기나 생선을 먹고 국화차를 마시면 식중독 걱정이 없어요. 셋째, 숙취 해소에도 국화차 만한 게….”

귀일 스님은 “만병통치약이 따로 없다”며 국화 예찬론을 풀어냈다. 국화주, 국화떡, 국화전, 국화밥, 국화막걸리 등 국화 응용 음식을 만들고, 국화 베개 만들기, 국화 염색하기 등의 국화 체험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안동 명물인 간고등어와 국화차를 ‘번들’로 판매하면 얼마나 좋겠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봉정사 국화밭은 소박하다. 그 흔한 축제도 없고, 딱히 해볼만한 체험행사도 없다. 국화밭 사이에 들어가 사진을 찍어도 호루라기 불며 나무라는 사람 한 명 없다. 몇해만 지나면 여기도 사람들이 몰려들고, 국화향 대신 파전 굽는 냄새가 진동할 것이다. 스님에겐 죄송하지만, 말해야겠다. 지금 가 보시라고. 지금이 아니면 손때 타지 않은 국화밭 못 보신다고.

-두번째 잔 맛 가장 매혹적-

국화차는 두번째 잔이 가장 맛이 좋다. 두 사람 기준으로 10~15송이를 넣고 우려낸다. 5~6회까지 우려낼 수 있는데, 맛은 두번째 잔이 가장 낫다.

국화차를 마실 땐 유리다관과 유리잔을 사용한다. 마른 꽃이 뜨거운 물 속에서 풀어지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다. 팔팔 끓인 물을 90도 정도로 식혀서 차를 담은 다관에 붓는다. 다관과 찻잔은 뜨거운 물을 부어 미리 데워놓는다.

차는 식으면 맛이 없다. 찻잔 크기가 조그마한 것도 식기 전에 비우고 또 따라 마시기 위해서다. 한 잔을 서너 번에 나눠서 마시면 된다. ‘색, 향, 미’를 고루 음미하는 것이 원칙. 색깔을 먼저 보고, 향기를 맡고, 그 다음에 맛을 본다.

차를 대접하는 팽주가 차를 따라줄 때는 고개만 살짝 숙여 목례한다. 술잔을 받을 때와 달리 잔을 손으로 받치지 않는다. 술에서는 ‘첨잔’을 하지 않지만, 차를 마실 때엔 잔이 다 비지 않을 때 채워도 상관없다.



안동 봉정사 주변 가볼만한 곳
봉정사 입구 전통찻집 ‘만휴’

처음엔 ‘휴만’인 줄 알았다. 한자로 나란히 ‘휴(休)’와 ‘만(萬)’이 적혀 있는데, 알고보니 ‘만휴’로 읽어야 한단다. ‘일만가지 번뇌를 버리고 쉰다’는 뜻. 초의선사가 차로 사귄 벗 다산 정약용에게 써 준 글귀다. 전통찻집 이름으로 그럴 듯하다.

봉정사 입구의 찻집 ‘만휴’(www.manhue.com)는 지난해 4월 문을 열었다. 팔각형 모양의 건물을 반으로 갈라, 절반은 찻집으로 쓰고, 절반은 봉정사 귀일 스님의 기와 그림을 전시한다. 찻집은 실내에 무릎 높이의 마루를 만들고, 낮은 탁자와 방석을 놓았다. 국화차 외에도 녹차, 연차, 오가피차 등의 전통차를 판다. 다판, 다관, 숙우, 차탁 등을 놓고 ‘제대로’ 차 한 잔을 마실 수 있다. 자리를 구분하기 위해 세운 나무벽의 그림은 봉정사 수미단의 연꽃무늬를 탁본한 것. 찻값은 5,000~6,000원.


귀일 스님이 기왓장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10여년 전이다. 절집 지붕을 갈 때 나온 기와에 용얼굴(도깨비얼굴) 등을 그린다. 귀일 스님은 “삼국시대에 이미 기와에 신장(神將)이나 나한(羅漢)을 그려 추녀 끝에 달았다는 기록이 있다”며 “일제시대 때 단절된 전통을 복원하기 위해 기와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말했다. 험상궂은 용, 도깨비뿐 아니라 민화풍으로 ‘귀엽게’ 그린 그림들도 눈에 띈다. 관람은 무료. 그림이 많은 편은 아니다.

봉정사
주차장까지 와서 봉정사를 안 들를 수 없다. 봉정사는 국사 시험에 단골로 나오는 ‘봉정사 극락전’이 있는 곳. 봉정사 극락전은 우리나라에 지금까지 남아있는 목조 건축물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부석사 무량수전과 최고(最古) 위치를 다투는데, 무량수전이 1376년, 극락전이 13년 빠른 1363년 중수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무량수전을 생각하고 극락전에 오면 “애걔?” 소리가 나올 것이다. 극락전은 작다. 맞배지붕에 배흘림기둥을 갖춘 정면 3칸 건물. 골격은 그대로지만 재료는 새것으로 바꿨다. 이 건물에 주목하는 것은 바로 그 골격 때문이다. 주춧돌만 남아있는 황룡사 등 삼국시대의 절집이 이런 형태로 지어졌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봉정사 자체도 큰 절이 아니다. 나란히 놓여있는 극락전과 대웅보전이 각각 마당 하나씩을 거느린 형태다. ‘석가탑’처럼 수수한 극락전 앞엔 3층석탑이 있고, 팔작지붕으로 ‘다보탑’처럼 화려해 보이는 대웅보전 앞엔 아무것도 없는 빈 마당이 있다. 두 건물 사이를 ‘화엄강당’과 ‘고금당’ 같은 단아한 맞배지붕 건물들이 가른다. 이 네 건물이 모두 국보와 보물로 지정됐다. 봉정사(鳳停寺)는 부석사를 짓던 의상대사가 종이 봉황을 접어 날렸더니 여기에 닿았다고 해서 자리잡은 절. ‘명품’ 부석사 만큼의 장쾌함과 화려함은 없지만, 고전적인 기품이 있다. 입구의 소나무, 참나무 숲길도 좋다. 봉정사 종무소 (054)853-4181

봉정사와 안동 시내를 잇는 5번 국도상엔 ‘제비원 석불’로도 알려진 ‘이천동 석불’이 있다.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마애불이다. 바위 위에 불상 머리를 올려놓은 것 같은 모습. 다가가서 보면 바위에 희미하게 그려진 옷과 손을 볼 수 있다. 야간에는 불상 주변에 조명을 켠다. 밤길에 지나다 얼굴이 바위에 얹혀 있어 깜짝 놀랐다.

안동 가는길
중앙고속도로를 이용하면 서울에서 안동까지 2시간30분 걸린다. 중앙고속도로 서안동IC를 이용해 34번 국도 안동·영덕 방향으로 달린다. 34번 국도는 안동 시내까지 이어진다. 봉정사는 34번 국도 송야4거리에서 서호·봉정사 방향으로 좌회전, 924번 지방도로를 탄다. 봉정사까지 10㎞ 거리다. 봉정사 경내엔 국화밭이 없고, 절 주변으로 국화밭이 흩어져 있다. 봉정사, 하회마을, 도산서원이 안동의 대표적인 볼거리. 모두 둘러보려면 1박2일 이상은 잡아야 한다. 고속도로 휴게소에 비치된 안동 관광지도를 챙겨두면 유용하다. 안동관광정보센터(054)856-3013

국화다원으로는 가을신선(www.gaulsinsun.com), 금국(www.gughwa.com)이 대표적이다. 시음회장, 홈페이지에서 국화차를 구입할 수 있다. 가을신선 50g 4만원, 금국 40g 3만6천원. 우리테마투어(www.wrtour.com)에서 11·12·15일 봉정사 국화밭, 안동 하회마을, 영주 부석사를 둘러보는 당일 상품을 운영한다. 4만3천원.

지도엔 분명 안동 시외버스터미널 옆 34번 국도상에 간고등어 골목이 있다고 나와 있었다. 아뿔사, 간고등어를 포장 판매하는 직판장 골목이었다. 식당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겨우 34번 국도와 35번 국도가 만나는 귀퉁이에서 ‘안동 간고등어 구이마당’(054-853-8292)을 찾아냈다.

안동 간고등어는 성냥곽 절반 크기로 온 가족이 밥을 먹을 만큼 짜다는데, 이 집 구이는 담백하고 고소했다. 겉은 바삭하게 익어있고, 속살은 촉촉하다. 매콤하게 양념한 조림도 맛있다. 가오리찜, 북어 보푸라기 무침, 고추장아찌 등 10여가지 찬이 딸려나온다. 구이 6,000원, 조림 6,000원. 구이와 조림이 함께 나오는 ‘구쪼’는 1만원이다.

안동국수는 밀가루에 콩가루를 섞어 만든 면발을 육수에 담아 낸다. 면발이 약간 텁텁하고 탁탁 끊어지는 것이 특징. 면을 따로 삶아 찬 육수에 말아 내는 건진국수는 여름 한정 음식이라 지금은 맛볼 수 없다. 시내 옥동4거리 ‘옥동 손국수’(054-855-2308)는 안동 사람들이 꼽는 맛집이다. 손국수(4,000원)를 시키면 안동식으로 조밥 반공기와 쌈채가 곁들여 나온다. 국물에 들깨를 갈아 넣은 들깨국수(4,500원)도 괜찮다.

‘버버리 찰떡’(054-843-0106)은 안동의 명물 간식. 찹쌀을 빻지 않고 그대로 밥을 한 뒤 떡메로 쳐서 떡모양을 만들어 팥고물, 콩고물을 묻혀서 낸다. 쌀알 모양이 그대로 살아 있어 깨물면 떡보다는 밥 느낌이 난다. 떡도 고물도 달지 않고 담백하다. ‘버버리’는 벙어리의 안동 사투리. 떡이 커서 베어 물면 말을 못한다고 ‘버버리’란 이름이 붙었다. 1개 500원. 34번 국도와 5번 국도가 만나는 교차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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