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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 대원군/석파--李昰應 (1820∼1898)

☞墨香·古書畵/古書藝·한국

by 산과벗 2006. 2. 23.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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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파--李昰應 (1820∼1898)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으로 보다 잘 알려진 석파(石破) 이하응(李昰應)은 구한말의 격동기에 파란 많은 생애를 살았던 인물이지만, 그의 정치적 이력 못지않게 묵란화(墨蘭畵)의 일인자로도 널리 소개되어 있다. 그는 자신이 겪은 삶의 격정들을 토로해내듯 묵란화에 몰두하여 석파란(石破蘭)이라는 독창적인 난 그림을 형성하였다. 이하응의 묵란은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의 서예적 필묵법에 기초하고 있으나, 쉽게 모방할 수 없는 고도의 필력과 문기(文氣)가 함축되어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난잎을 그릴 때 세 번의 굴곡을 주는 삼전법(三轉法)과 활달하고 예리하게 끝나는 서미(鼠尾)의 선묘가 특징적이다. 묵란과 함께 어우러진 괴석도 눈여겨 볼 만한데, 그의 묵란에 괴석이 등장하는 것은 60세 이후의 작품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또한 만년(晩年)의 작품으로 갈수록 괴석의 비중이 커지고 형태도 다양화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 작품은 이하응이 68세되던 해(1887년)에 그린 것으로 시서화(詩書畵) 일치의 격조를 갖춘 석파 묵란도 중의 수작(秀作)이라 할 만하다. 이처럼 이하응의 묵란화는 구도와 필묵법 등에서 독특한 화풍을 창출하여 중국의 난 그림과는 현저하게 구별되는 조선적인 묵란화의 한 전형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하겠다. 화면에 쓴 제시(題詩)에는 묵란에서 느낄 수 있는 흥취와 묵란을 그리는 노년(老年)의 심경을 표현하였다.

 

 

 

 ▲대원군(1820~1898)의 73세 때 작품

《아래 글씨체가 다르지요.. 낙관 글씨를 보니 고균 김옥균(1851~1894)의 글씨 이지요.

임진년이면 1892년 이구요.. 수구와 개화로써 서로 이념이 다른데 잘 못 보았나 찾아 보았습니다. 역시나 역사적인 의미 있는 작품이라네》

 

 

" 석파 이하응 <난맹첩>중 蘭畵."소장처 미상.

 

석파 이하응은 완당의 <난맹첩>을 본받아

그대로 임모 하면서 난초 그리는 법을 익혔다.

여기에 실린 난초그림 역시 완당의 <난맹첩>

에 있는 것과 똑같은 필치로 되어 있다.

                             완당평전에서.

 

 

 

石坡 李昰應,

 

1820~1898.
흥선대원군 으로 운현궁의 주인으로 추사와 더불어 묵난과 글씨에 일가견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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