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t1.daumcdn.net/cafefile/pds8/23_o_b_7nd0_JlMj_000_01_00001045)
검객(劍客)
가도(賈島)
十年磨一劍(십년마일검)에
십년 동안 한자루 칼을 갈아
霜刃未曾試(상인미증시)라
서릿발 같은 칼날 아직 시험치 못했노라
今日把贈君(금일파증군)하니
오늘 칼잡아 그대에게 주나니
誰有不平事(수유불평사)라
누가 공평치 못한일 하리오
삼도헌과
함께 맛보기
이
시는 고문진보에 실려있다. 고문진보는 전집과 후집으로 나뉘어 있는데 전집엔 시가, 후집엔 산문이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은 우리나라 선비들이
문장을 다듬기 위해 즐겨 읽던 책인데 좋은 시와 산문들이 즐비하다. 소시적 이 책의 고운글에 취해 있을 때 이 시에 나오는 칼은 학문을
의미한다고 풀이하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인생길에 칼을 품고 살아간다. 가슴에 품은 칼이 어디 학문뿐이겠는가. 속진으로 가득한
세상을 바라보면서 누구든 가슴속의 칼을 힘껏 휘둘러 보고 싶은게 현실이다. 이 시 속에서 작자는 십년동안 적공의 세월을 보냈지만 아직 시험하지
못했다고 술회하고 공평하지 못한일이 있으면 그대의 칼로 처리하라는 근엄한 의지를 전한다. 인간이 가진 -개인적이든 인류를 위한 것이든
간에- 욕망들을 사그라지게 하는 마음의 칼을 상정하고 있는 것이다.
칼에는
두 종류가 있다. 양날이 모두 서 있는걸 검(劍)이라 하고, 한 날만 있는걸 도(刀)라 한다. 서릿발 같은 양날칼로 자신의 허물을 벨 수 있어야
진정한 검객이다. 검객은 함부로 검을 사용하지 않는다. 맘속에 항상 시퍼런 칼날을 세워놓고 사용할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 그렇지만 칼집에서
칼날을 꺼내 사용하지도 못하고 영영 녹슨칼이 되어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더라도 검객은 칼날 다스리기를 멈추지 않는다. 진정한
검객은 남을 위해 칼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다스리기 위해 칼을 갈고 닦으니까.
가도(779-843)
중국
중당 때의 시인으로 자는 낭선(浪仙), 여러 차례 과거에 실패하고 출가하였으나 811년 낙양에서 한유(韓愈)를 만나면서 환속하였다. 당나라의
대문호였던 한유가 거리를 지나갈 때 가도가 시구를 생각하다 그와 부딪혔다. “새는 연못가 나무에 깃들고, 스님은 달빛 아래 문을
두드리네(鳥宿池邊樹, 僧敲月下門)”라는 구절을 생각하던 중이었는데 이 구절 가운데 ‘고(敲;두드리다)’를 사용할까 ‘퇴(推;밀치다)’를 사용할까
고민하다 한유의 행렬과 부딪히게 되었던 것이다. 그 때 한유는 자초지종을 듣고 ‘敲’가 더 좋겠다고 해서 문장을 다듬는 일을 이후로는 퇴고’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후에 미관이나마 벼슬길에 나서기도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