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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인을 위해 간을 떼어 준 장호남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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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행이라니요? 사위도 자식인데 자식 된 도리로서 당연히 할 일을 한
것뿐이에요."
간경화로 생명이 위독한 장인에게 사위가 자신의 간을 떼어준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훈훈한
감동을 주고 있다.
천안에 있는 국립중앙청소년수련원 사업기획팀에서 일하는 장호남(35)씨가 그 사연의
주인공.
장씨는 지난 6월 뜻밖의 소식을 접하게 된다. 어릴 적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
친아버지처럼 의지하고 따랐던 장인이 간성혼수(간질환이 중증이 되면서 일어나는 의식상실 상태)로 쓰러졌다는 것. 장인 홍기영(65)씨는 간경화
말기로 간 이식 외에는 살 수 있는 방법이 없는 상태였다.
가족들은 간 이식을 위한 검사를 받기로 했다. 장씨도 평소 자상하게 친 자식처럼
돌봐주시던 장인을 살리는 일에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결심하고 함께 검사를 받기로 했다.
그러나 가족들은 장씨를 말렸다. 혹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친자식도 아닌
사위에게 그 위험을 감수하게 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특히 외아들인 장씨의 어머니를 생각하면 절대 찬성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가족 만류에도 뜻 굽히지 않아
장씨의 아내 홍석정(31. 영양사)씨는 당시의 심정에 대해 "처음에 신랑이 자신도 함께
간이식에 동참하겠다고 했을 때는 한편으로 너무 고마웠지만, '혹 잘못되면 어쩌나? 시어머니에게는 뭐라 말하나?'하는 생각에 잠이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장씨의 장모도 "사위가 자신도 간이식에 동참하겠다고 했을 때 너무 고마워서 눈물을
흘렸다"며 "하지만 사돈댁 심정을 생각하면 차마 못할 짓이라고 생각했고, 또 내 자식이 그런다고 해도 그러라고 못할 것 같아 안된다고 말렸다"고
말했다.
특히 장인 홍씨의 만류는 더욱 단호했다. 홍씨는 '자식에게 칼을 대게 하면서까지 살고
싶지 않다'며 '더욱이 남의 집 귀한 외아들의 간을 떼어서 다 늙은 사람에게 이식들 한다니 절대 그럴 수 없다'고 고집을 피웠다고 한다.
이러한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장씨는 자신의 결심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지난달
20일 간이식수술을 받았다. 지금은 30일 퇴원하여 원주의 집에서 요양 중에 있다. 장인 홍씨도 지난 4일 무균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겨
치료중이다.
장씨의 행동에 대해 직장동료 정의홍(연수부장)씨는 "가족이 해체되어 가고 이기적인
마음이 팽배한 현대사회에 보기 드문 선행이 아닐 수 없다"며 "장호남씨는 평소에도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하며 늘 남보다 궂은일에 앞장서는 모범
사원"이라고 말했다.
장씨는 어떻게 결심하게 됐느냐는 질문에 "사위도 자식인데 자식 된 도리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 뿐"라고 답했다.
다음은 장호남씨와의 전화인터뷰 내용.
- 현재 몸 상태는
어떤가.
"많이 좋아졌다. 병원에서 한달 정도 요양을 해야 움직일 수 있다고 한다."
- 언제 이식 수술을
했나.
"7월 20일에 했다."
- 어떻게 간이식 수술을 결심하게
됐나.
"지난 6월에 장인이 쇼크로 쓰러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병원에서는 더이상 약물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했고, 간 이식만이 장인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했다. 그래서 가족들이 간 이식을 위한 검사를 받기로 했는데, 사위도
자식이라며 같이 받겠다고 했다."
- 주위에서 반대가 있었다고
하던데.
"가족들은 마음은 고맙지만 사위에게까지 위험을 감수하게 할 수 없다며 반대했다. 특히
외아들을 둔 어머니를 생각하면 더욱 그럴 수 없다고 반대했다."
- 가족들을 어떻게
설득했나.
"가족들의 만류로 우선 처가 식구들만 검사를 받았는데, 검사결과 처형만이 적합판정이
나왔다. 그러나 장인은 두명의 간을 이식받아야 했기에 더이상 내 의사를 꺾지 못했다. 또 여러 방면으로 알아보고 위험성이 별로 없다는 것을
어머니와 가족들에게 알려 결국 허락을 받아냈다."
- 수술을 받으러 들어갈 때 두렵지는
않았나.
"왜 두려움이 없었겠나. 특히 의사가 수술 전에 혹 있을지 모르는 부작용과 잘못될
가능성에 대해서 설명할 때는 사실 겁도 났다. 그렇지만 일찍 아버지를 잃고 친 아버지처럼 모시던 장인을 살리는 일이기에 전혀 망설임은 없었다.
장인은 30여년의 공직생활을 하시다가 정년퇴직 하신지 얼마 되지 않았다. 평생을 나라를
위해 가정을 위해 일해오셨는데, 이제 편히 즐기면서 남은 노년을 보내게 해드려야한다는 생각에 용기를 내게됐다."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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