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지리산/국골 추성리 코스(추성리~칠선계곡)

☞국립공원지정명산/山·지리산 소개

by 산과벗 2007. 5. 4. 17:35

본문

지리산 국골 추성리  
 
  지리산 국골 추성리    
 
 
  경남 함양 마천면
 
♣ 국골은 가야국의 마지막 임금인 구형왕이 신라에게 쫓겨와 진을 쳤다는 전설이 남아있는 골짜기다. 이러한 전설을 뒷받침하듯 국골 초입에는 성안이라는 지명이 있다.
이웃한 칠선계곡 백무동계곡의 유명세에 눌려 등산객들이 드물게 찾는 코스지만 등산로는 잃지 않을 정도로 나있다. 계곡을 건널 때만 주의를 기울이면 된다. 지리산의 호젓한 맛을 즐기기에 적합하다.
이 코스는 추성리에서 일찍 칠선계곡이나 백무동계곡을 출발한 등산객이 천왕봉 중봉 하봉을 거쳐 내려오는 길로 많이 이용하고 있다. 주릉에 붙기가지의 반쯤은 완만한 등산로를 따라 국골의 시원한 계류소리를 들을 수 있지만 등산로가 계류에서 벗어난 나머지 능선길은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가파른 길로서 막판에 땀을 잔뜩 흘려야 주릉에 올라설 수 있다.

▶ 들머리는 칠선계곡과 같은 추성리다.
칠선계곡으로 오르는 칠선교를 건너지 말고 추성산장 앞을 지나 계곡을 오른쪽에 두고 농로를 따라 간다. 10분쯤 가면 소나무 참나무 어우러진 언덕배기다. 까마득한 발아래로 국골과 칠선계곡 두물머리가 보이고, 칠선계곡 쪽으로는 이름있는 용소도 내려다보인다.
이곳에서 얼마쯤 가면 길은 청색 천막이 있는 양봉장 너른 터로 이어진다. 계류소리를 들으며 띄엄띄엄 있는 산죽길을 지나면 계곡 건너에 표지기가 보인다. 추성리 들머리에서 1시간쯤 거리. 계곡을 건너면 인적이 드문 탓에 이끼가 잔뜩 낀 돌길이다. 5분쯤만에 계곡을 다시 건너, 처음처럼 계곡을 오른쪽에 두고간다. 30분쯤 오르면 계곡이 갈리고 등산로는 두 계곡 사이의 능선으로 이어진다. 물은 여기서 뜨는 것이 좋다.

왼쪽의 작은 지계곡을 돌아 건너 능선에 붙으면 길은 바로 코가 땅에 닿을 만틈 가팔라진다. 20분쯤 마다 집채만한 바위가 보이면서 잠깐씩 숨돌릴 수 있는 터가있다. 능선에 붙은지 한시간쯤이면 돌로 잘 다져놓은 움막터를 만난다. 이후로도 가파르고 좁은 길이 계속 이어지다가 갑자기 사면이 완만해지면서 바위에 흰 페인트로 국골 화살표를 그려놓은 주릉에 올라서게 된다.

추성리를 출발해 4시간 30분쯤 걸린다. 여기서 하봉 중봉 넘어 천왕봉까지는 2시간이 더 걸린다 추성리 - 천왕봉 (6시간 30분)
 
  새창으로 등산지도보기
  ○ 국골은 역사의 베일에 가려진 가락국 마지막 임금인 구형왕의 애환이 깃들여 있는 지리산의 숨은 계곡이다. 그리고 이웃한 칠선계곡의 선녀탕에 얽힌 사연과 함께 곰들이 쫓겨 들어와 살았던 골짜기이기도 하다.

국(國)골. 지리산의 많고 많은 계곡과 봉우리들 가운데 나라를 의미하는 뜻의 國골. "國"자를 쓰는 지명은 이곳밖에 없다. 가락국의 10대 임금이며 마지막 왕이었던 구형왕이 국골에서 추성산성을 축조하고 국골에서 신라의 침공에 대비해 군마를 이끌고 훈련을 시켰다는 말에 근거를 두고 붙인 지명이다. 물론 이러한 내용은 아직 정설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이는 구형왕이 신라 법흥왕 19년(532년)에 나라를 신라에 평화롭게 넘겨주었다고 해서 양왕(讓王)이라고 했다는 사실을 두고 볼 때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일각의 주장에 따를 때 그러하다.
그러나 지리산 사람들은 구형왕이 나라를 넘겼다고 해서 양왕이라 하지만 국골과 추성산성을 근거지로 해 신라에 항거하다 다시 인근의 왕등재 일대에서 토성을 쌓고 저항하다 끝내는 왕산으로 쫓겨가 최후를 맞았다는 등의 구전을 들어 구형왕과 지리산을 애써 결부시키고 연관지으려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지리산 동부권역에는 가락국 구형왕에 얽힌 지명과 유적지가 유난히 많이 있음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추성산성터 주변의 두지터(식량저장고), 얼음터에서 국골은 물론이고 구형왕이 올랐다는 왕등재 그리고 왕등재 일대의 토성, 산청군 금서면의 왕산과 구형왕릉, 덕양전 또한 구형왕의 증손자였다는 김유신 장군의 훈련터 등이 그것이다.

개국 과정에서부터 베일에 가려져 아직도 정확하게 사료가 정립되지 못 하고 있는 가락국의 실체가 마지막 왕이었던 구형왕의 행적까지 송두리째 뒤덮여 있어 신비감을 더 갖게 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결국 구형왕이 지리산으로 피해 들어와 국골을 천연 요새로 해 추성산성을 쌓아 도성을 세우려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왕등재 일원에서도 토성을 쌓고 신라에 항전하려 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래서 지리산 사람들은 하봉과 중봉사이를 흘러내리는 골짜기를 나라의 뜻을 인용, 국골로 불러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얘기들이 물론 오랜 세월을 보내 오면서 과장될 수도 왜곡될 수도 미화될 수도 있었을 것으로 보이지만 지리산이 이미 1천5백 여년 전부터 우리 민족사와 함께해 왔음을 의미하는 것이고 보면 새삼 지리산과 한민족의 깊은 인연을 되새기게 한다.

이즈음에서 국골 주변의 산성과 왕등재 일원의 토성, 그리고 왕산 일대의 유적들에 대한 학계의 발굴 노력을 통해 가락국의 패망과 신라와의 관계 등의 역사를 규명해 봄직하다는 생각이다.

국골은 가락국 마지막 왕의 피란 도성으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과 함께 태고적 선녀들의 노여움을 산 곰들이 칠선계곡에서 쫓겨 들어왔다는 동화같은 얘기도 전해 온다. 앞서 칠선계곡 편에서 언급했듯이 국골 너머 칠선계곡의 선녀탕과 그 전설의 궤를 같이한다.

일곱 선녀가 칠선계곡 선녀탕에 내려와 목욕을 하고 있던 것을 본 지리산 곰이 평소 연정을 품고 있던 중 선녀들의 옷을 훔쳐 바위 틈에 숨겨버렸다.
목욕을 마친 선녀들은 옷을 입고 하늘나라로 올라가려 했으나 아무리 찾아 헤매도 옷을 찾을 수가 없었다. 마침 사향노루가 이 사실을 보고 자신의 뿔에 걸려 있는 선녀들의 옷을 가져다 주어 선녀들이 무사히 하늘나라로 되돌아 갈 수 있었다고 한다.
곰이 선녀들의 옷을 훔쳐 바위틈에 숨긴다는 게 노루의 뿔을 나뭇가지로 잘못 알고 옷을 숨긴 것이다. 그리하여 선녀들은 자신에게 은혜를 베푼 사향노루는 칠선계곡으로 집단 이주해 살게 하고 몹쓸 짓을 한 곰은 이웃의 국골로 내쫓아 버렸다는 얘기다.

국골은 선녀들이 곰을 내쫓았지만 그렇게 작지도 빈약하지도 않은 계곡이다. 칠선계곡의 지류에 해당하는 국골은 중봉과 하봉 사이에서 형성돼 추성동의 용소에서 칠선계곡과 합류한다. 마찬가지로 큰 계곡의 그늘에 가려 아직도 숨겨진 골짜기나 다름없다.

칠선계곡과 얼음골과 함께 추성동에서 오를 수 있는 세 개의 골짜기 중 가운데 위치해 있다. 하봉 능선을 사이에 두고 깊숙하게 이어진 국골은 지금은 등산로가 비교적 잘 이어져 있어 간혹 하봉 능선을 등반하는 사람들이 찾는 깨끗하고 한적한 계곡이다.
당장에라도 칠선계곡에서 쫓겨난 곰들이 불쑥 나타날 것 같은 분위기가 있는가 하면 구형왕이나 나라를 세우기 위해 들어왔듯 지리산의 포근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 국골의 인상이다.

국골 산행은 한적한 분위기와 더없이 깊은 골짜기 특유의 원시림 속에서 표출되는 상쾌함, 그리고 태산장곡만이 자랑하는 스산함 등을 한꺼번에 맛볼 수 있다.

▶ 산행의 시발점을 추성동으로 할 때 하봉 언저리의 하봉 능선과 교차 지점에서 하산은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중봉을 거쳐 천왕봉을 올랐다가 다시 칠선골을 통해 추성동으로 하산할 수 있다. 이 코스는 상당한 체력소모를 요하므로 신중한 산행 준비가 필요하다.

국골 산행은 천왕봉을 오르기보다는 오히려 하봉을 오른 뒤 쑥밭재를 거쳐 왕등재를 거쳐 유령계곡 또는 오봉리로 하산하는 것이 더 의미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 코스는 특히 국골과 왕등재가 공통적으로 갖는 특징, 즉 구형왕과 가락국의 사연들을 인식하며 답사해 볼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또한 이 구간은 지리산 동부권역 가운데 가장 덜 개방돼 인적이 드문데다 산세는 그 어느 곳 못지 않게 수려한 특성을 갖고 있는 곳이기도 해 등반의 묘미를 더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 구간 중 쑥밭재에는 일제 당시 지리산 일원에서 일제와의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애국지사 석상용 선생의 묘가 있는가 하면 빨치산과 국군의 양민학살 현장이 있기도 해 지리산 근대사의 실상을 체험해 볼 수도 있다.

국골 산행은 추성동 마을버스 정류장 부근에서 마을 가운데를 지나는 농로가 시발점이 된다. 마을 뒷산, 칠선계곡과 합류지점인 용소 바로 위에 등산로가 잘 다듬어져 있는데 노송과 거목들이 운치있게 서 있어 본격 산행에 앞서 몸과 마음을 가다듬기에 적격이다. 초반부에는 계곡과 다소 거리를 두고 등산로가 나 있으나 10여분만 오르면 계곡과 함께 등산로가 있어 부담없이 산행을 즐길 수 있다.

비교적 평탄한 등산로를 따라 2시간 남짓 오르면서 국골 산행의 진미를 느낄 수 있다. 세련되지 못한 계곡미와 울창하면서도 덤불이 뒤엉켜 다소 무질서한 분위기는 음산함마저 일게 한다. 멀리 정상을 올려다보려 해도 수림으로 뒤덮여 중봉과 하봉의 모습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2시간여 동안의 산행을 하다 보면 계곡은 다시 하봉과 두류봉 사이의 골과 하봉과 중봉 사이의 골로 나뉘는 지점이 나온다. 이곳에서 잠시 쉬면서 식수를 준비해야 한다. 더이상 물줄기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국골 산행의 마지막 고비가 남은 셈이다.

깎아지른 듯한 등산로는 극심한 체력 소모를 요구한다. 길은 비교적 잘 나있는 편이지만 곳곳에서 길이 희미해지나 별다른 문제는 없다. 한시간 또는 한시간 30분 가량의 힘든 산행을 해야만 하봉능선에 도착할 수 있다.

얼음골에서 올라오는 길과 마주치는 곳이다. 마지막 구간의 급경사면은 돌이 떨어질 위험이 있어 주의해야 하며 겨울철 산행은 지극히 위험한 구간이 된다. 국골 산행은 일단 하봉능선에 도착하면서 끝이 난다. 여기서 하봉 정상으로 올라가 밭 아래 국골 전경을 뒤돌아 보는 것 역시 운치있다.

국골은 오르는데 상당한 체력 소모를 요구해 주로 이 골을 찾는 등산객들은 얼음골 등 다른 코스로 하봉에 올랐다가 국골을 하산코스로 활용하고 있다.
어떤 코스를 선택하든 국골은 지리산의 숨은 골짜기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여기에다 가락국 마지막 왕의 애환이 얽힌 사연까지 되새기며 산행을 한다면 더더욱 멋진 가을 산행이 될 것이다.

▶   추성동 - 초암릉 - 하봉 - 천왕봉
    지리산 최고의 계곡인 칠선골과 국골 사이에는 초암릉이라 부르는 긴 능선이 있다.이 능선 중턱에 옛적에 초암이란 암자와 상원사란 대찰도 있었다고 하며, 일제 때는 지리산 북쪽에서 천왕봉을 가장 쉽게 오르는 지름길이었다고 한다.
요사이는 사람이 자주 다녀 길이 비교적 뚜렷이 나기도 했다.
   
지리산의 대다수 능선들과 달리 암릉 구간이 많아 색다른 경관을 보이기도 하는데, 그러나 지리산의 기존 등산로에 비하면 안내판도 없는 등, 역시 험한 길이므로 초행자는 산행을 삼간다.
   
초암릉길은 추성동 마을에서 시작한다. 추성동에서 칠선골로 걸쳐진 교량 동쪽 끝에서 동쪽 둔덕으로 낸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따라 100m쯤 올라가면 오른쪽 산비탈로 등산로 초입이 있다(아무 표식이 없지만 산으로 가는 길목임을 뚜렷이 알수 있다).

국골 산행로이기도 한 이길로 접어들어서 게속 올라가면 아름드리 소나무와 느티나무가 선 곳을 지나 농수로 길을 따라 가게 된다.
   
이 농수로로 가다가 보면 왼쪽으로 표지리본이 잔뜩 붙은 등산로 길목이 나온다. 이 길목을 무시하고 그대로 농수로를 따라 오른쪽 아래의 계곡으로 내려가 국골 하류부를 건넌다. 이어 염소막 옆 길을 따라 초암릉으로 붙는다.
   
산행 개시 후 순한 길로 이어지다가 1시간쯤 뒤 암릉이 나선다. 이 암릉을 우회하며 길이 이어진다. 암릉은 날카롭고 가팔라서 등날을 타고 가기는 어려우며, 주로 암부의 오른쪽 옆을 따라 돌아 오른다. 중간에 가슴팍까지 차오르는 산죽밭이나 노송숲이 나타나는 등, 지리산다운 원시적 분위기가 계속된다.
   
하봉이 가까와지면서 경사가 급해진다. 경사가 죽으며 왼쪽 암벽에 '국골 →'이란 붉은 글씨가 씌어 있는 능선에 올라서면 초암릉 등행이 끝난 것이다. 이곳에서 물론 오른쪽이 천왕봉이다. 만약 이곳에 좀 늦게 올라섰으면 장터목까지 갈 생각을 말고 중봉~하봉간 안부에서 왼쪽 길로 하여 치밭목산장으로 가서 1박 하도록 한다.
 
 
 
  추성동  
민박칠선휴게소(추성민간산악구조대장 허상옥씨집)962-5494, 지리산식당962-5738, 벽촌집962-9511, 추성산장962-2422, 호두나무집962-5497 칠선산장962-5630  
광점마을(허공다리골 입구)    
민박광주리농원962-5648, 덕천산장963-9405, 김종현씨 집963-3427, 이봉덕씨 집962-5644, 이진호씨 집962-5507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