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북경(베이징) 여행기(3박4일)
2009년 3월28일~3월31일
금번 여행은 중국 소림사무예극관람→왕부정거리야경→이화원→옥공예품전시장→만리장성→중국황제13릉→발마사지→천단공원→동인당→스차하이→후통인력거→베이징 림픽스타디움→천안문광장→자금성 등을 둘러보는 3박4일간의 여행 일정이다.
김해공항출발→중국베이징공항도착→소림사무예극관람→왕부정거리야경→ 글로리아호텔
▲ 공항 로비에서 대가하고 있는 일행
14:50분 출발 아시아나 비행기를 타기위해 공항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는 일행들이다.
▲ 기내에서 바라본 북경공항주변 풍경
14:50분 김해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약 2시간 정도 비행끝에 북경공항 부근에 도착했다. 사진은 북경공항 착륙을 위해 저공비행시 북경공항 주변풍경을 담은 모습이다.
공장인듯 한 건물들이 줄지어 들어서 있는 모습니다. 외곽 지역이라 그런지 큰 건물들은 보이지 않았다.
비행기가 착륙직전에 카메라에 담은 북경공항의 모습으로 엄청한 규모였다. 이 공항이 세계최대에 걸맞게써비스도 좋을지는 두고볼 일이지만 규모 만큼은 압권이였다.
베이징(북경) 공항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늘어날 수요에 대비해 건설한 세계 최대의 공항이다. 베이징 공항 제3 터미널은 영국의 회사 포스터+ 파트너스가 설계한 것이라 한다.
비행기가 착륙하여 천천히 활주로를 돌고 있을때 담은 북경공항의 모습이다.
▲ 북경(베이징) 공항(개항전 사진)
14:50분 김해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16:50분경 북경공항에 도착하여 입국수속을 마치고 공항내 지하철을 이용 3km정도 달린끝에 화물이 있는 곳에 도착하여 짐을 찾을수 있었다.
베이징(북경) 공항은 건설비용은 18억 파운드이며, 황금용 모습의 지붕 너비는 790미터. 지붕 위 곳곳에는 삼각형 모양이 솟아있어 비늘로 덮인 용의 등을 연상케 한다. 황금색 지붕과 함께 붉은 색 기둥은 중국 전통의 절이나 궁전의 이미지를 차용한 것이라 한다.
2004년 8월부터 건설된 이 건물은 세계 최대의 공항 터미널이다. 베이징수도 국제공항의 연간 승객 수용 규모가 2012년 9천만 명에 다다르게 된다고 한다. 180만 세제곱미터의 콘크리트와 50만 톤의 철로 세워졌으며, 공사 정점에는 최대 5만 명의 작업자들이 공사에 참여했다 한다.
북경 날씨는 조금 춥게 느껴질 정도로 쌀쌀했다. 공항에서 그냥 갈수가 있겠는가...기념으로 공항을 배경으로 폼 함 잡았다.
공항에서 시내까지는 약 30여분 소요되었다. 버스로 이동하면서 시내 모습을 담은 사진으로 고층건물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고..사통팔달 시원하게 뚫린 도로망이 인상적이였다.
▲ 불꽃놀이 폭죽에 불타버린 중국 중앙방송국(cc-tv)
사진은 우리나라 뉴스에서 도 나왔던 불꽃놀이 폭죽에 의해 불에 탄 중국 중앙방송국 건물을 카메라에 담았다. 소방 당국 허가도 안 받고 A급 폭죽 수백발을 터뜨려 중국중앙방송(CC-TV) 신축 사옥의 부속 건물인 문화센터(44층)의 건물이 불탄 보기 흉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북경 시내에는 차량들도 많이 다니고 있었다.그중 현대차가 많이 눈에 띄있다. 한가지 특이한 것은 택시 대부분이 현대 아반테 차량이였다. 이름은 엘란트라로 붙여 있었다. 아반테가 나오기전에 엘란트라가 대인기를 끌면서 이름을 그대로 엘란트라라 이름했다 한다.가이드 말에 의하면 7년전 현대차 북경공장이 들어서면서 현대차가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한다. 가슴 뿌듯한 자부심을 숨길수가 없었다.
일정대로라면 기예 써커스를 관람하게 되어 있었지만 극장 사정으로 미루고 대신 써비스로 소림사의 입문하여 성장과정을 그린 무예극을 관람했다.
소림사 무예극을 마치고 일행들은 저녁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들어서고 있다.
식당 매뉴는 북경 오리구이 였다. 우리나라 오리고기 맛을 연상했는데 맛은 영 아니였다.가이드 말로는 북경의 오리고기가 유명하다고 했는데... 글쎄~껍질은 딱딱하고 질겼고 맛은 별로였다.그래도 일행들은 배가 고팠는지..잘들 먹는다...지난번 상해,장가계 여행시 식사 때문에 고생했는데...니끼한긴 했지만 그런대로 북경식은 괜찮은 편이였다.
▲ 버스안에서 바라본 야경
식사를 마치고 중국의 명동으로 불리는 왕부정 거리 야경을 보기위해 이동하면서 카메라에 담은 사진이다.
▲ 북경 왕부정 거리
약 20여분 달린끝에 왕부정 거리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자 세찬 바람과 함께 날씨가 겨울 날씨처럼 춥게 느껴졌다. 버스에서 내려 왕부정 거리를 걸었는데 중국 젊은이들이 구름처럼 쏱아져 나와 있었다.
▲ 북경 왕부정 거리
중국이 개방되면서 동풍시장과 상업시설과 백화점을 지어 오늘의 번화가로 발전하게 되었다. 지금 이 거리에 드나드는 인구는 하루에 100 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래서 전차, 버스, 자전거 외에는 허가 받은 차량만 들어오도록 하는 교통 통제구역으로 묶어놓았다 한다.
중앙 통로를 중심으로 길게 뻗은 거리 양가에는 백화점,의류 등 상점이이 즐을서 늘어져 있었다.
백화점 건물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왕부정 거리는 북경시 최대 번화가로 시 동편에 길게 늘어선 상점거리다. 약 1km가량의 거리 양편으로 약 100여개의 각종 상점이 들어서 있다. 우의상점과 신화서점 등의 유명 상점을 비롯해 우의빈관과 같은 호화호텔도 자리하고 있다. 거리의 서쪽에는 중국 전역에서 가장 유명한 북경 백화점이 들어서 있으며, 동쪽에는 신동안(新東安)시장이 있다.
왕부정 거리에서 와이프와 함께 기념사진 한장 담았다. 날씨가 추워 마눌은 모자을 눌려쓴 모습.
잠시 화장실도 다녀올 겸 백화점 안에 들어가 백화점 내부를 한컷했다. 우리나라 백화점과 다를게 없었다.
백화점에는 손님들은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2층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트의 모습이다.
왕부정 거리에서 만난 롯데 백화점을 만났다...반가웠다. 북경 왕부정거리 중심에 자리하고 있었다.
왕부정 거리는 일찍이 황실의 저택이 있던 곳으로, 황실의 우물이 있었는데 그 이름을 따서 왕부정이라 불리게 되었다 한다. 황실이 있던 곳이어서인지 이곳은 아직도 화려하고, 호화스러운 상점과 빌딩이 많으며 유리창 거리가 우리나라 서울 명동, 압구정거리쯤으로 비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곳은 상업거리로 백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왕부정의 동방신천지에는 수많은 전문 판매점들이 모여있어 중국에서 최신 유행하는 유명 상품의 패션상품을 살수 있다. 또한, 이곳은 잘 찾아보면 대를 이어 그 전통을 살리고 있는 가게도 많이 있어 좋은 품질의 비단이나 차, 골동품 등을 살수도 있다 한다.
왕부정 거리에서 좌측 길 따라 발길을 옮겼다..포장마차가 있는 거리를 구경하기 위해서 이다.
즐비하게 들어서 있는 포장마차다. 이곳에 들어서자 먼저 이상한 냄새가 꼬를 찌른다.너무 맡기싫은 냄새다..모두들 코를 막고 난리다...하나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며 특히 젊은이들은 꼬찌로 된 전갈.등을 사서 걸어면서 먹고있는 모습도 보인다.
특히 밤이 되면 더욱 화려한 불빛으로 행인들을 유혹하고.., 군것질을 하며 돌아다니는 젊은이들...이곳저곳을 둘러보며 구경하는 여유가 북경여행의 별미로 우리를 더욱 즐겁게 한다.
이곳은 또한 쇼핑에 빠지지 않는 먹거리도 가득한 곳으로서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는 다양한 간식거리가 있어 역시 음식천국이라 불리는 중국을 실감케 한다.
북경의 대표요리인 북경 오리구이 전문 요리점 뿐 아니라 각종 특색있는 요리집과 국제 패스트 푸드점들의 간판을 볼 수 있었다.
이 호텔은 북경 올림픽을 개최하면서 지은 5성급 호텔로 내부는 깨끗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2인 1실로 침대가 따로 설치돼 있었다. 모처럼 부부 나들이 인데 따로 자란 말인가?
친구11명 부부가 함께했는데...1명은 사정으로 싱글이다... 당연히 싱글방에 모두 모여 한국서 가지고온 소주랑 안주..그리고 중국맥주도 곁들이며 여행의 피로를 달래며 밤새는줄 모르고 이야기 꽃을 피우다 새벽1시께 잠자리에 들며 여행첫날 일정을 마쳤다.
이화원→옥공예품전시장→만리장성→중국황제13릉→발마사지
아침에 눈을뜨니 흐린날씨에 간간이 진눈개비가 날린다. 호텔식으로 간단히 식사를 마친 일행은 두툼한 겨울자켓을 입고 오늘 여행 일정에 들어간다. 오늘은 만리장성 가는날인데...혹시나 비가 오지는 않을까 걱정을 하면서 이화원으로 출발한다.
▲ 이화원 (颐和園) 전경
▲ 이화원 (颐和園) 입구
이화원은 서태후의 여름 별장으로 세계문화유산 (1998년 지정)으로 지정되었으며, 북경시 서북 교외에 위치하고 있다.도심에서 약 19키로미터 거리로 청나라 때의 황실 원림과 행궁(서태후의 여름별장)이었다.이화원의 원명은 청의원이며 1764년에 건조되었으며 부지 290헥타르, 그 중 수면이 220헥타르이다.원내는 궁정구, 전산 전호구, 후산 후호구 3개 경치구로 나뉘며, 전당, 누각, 정자가 도합 3,000여칸으로 황제와 황후가 정치 활동을 하며 휴식, 유람하던 곳이다.
▲ 이화원 편액
▲ 이화원 인수문
이른 아침인데도 많은 관광객들로 붐빈다. 간간이 눈발이 날리는 차가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외국인을 비롯한 중국인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 이화원 내 수석
이화원 인수문을 들어서자 거대한 수석이 잠시 나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 이화원 쿤밍호
이화원은 1860년 영국, 프랑스 연합군에 의해 불 타버리고 1888년에 서태후가 해군 경비 500만냥 배근을 유용하여 재건,10년만에 완공, 이름을 "이화원"으로 고쳤다 한다.
▲ 이화원 쿤밍호
주위 8km. 인공호인 쿤밍호[昆明湖]가 대부분을 차지하며 그 흙을 쌓아올려 만든 완서우산[萬壽山]이 북부에 있고 모든 건축물은 산 남쪽에 집중되어 있다. 이 중에서도 통칭 천간낭하(千間廊下)라고 불리는 장랑(長廊)이 눈길을 끈다. 12세기 금나라 때 지은 작은 궁전을 시초로 명조(明朝) 중엽에 만들어졌으며, 청조(淸朝)의 건륭제(乾隆帝)가 많은 전각(殿閣)을 세우고 정원을 꾸몄다. 서태후(西太后)가 살았던 별궁으로서 유명하다.
▲ 이화원 쿤밍호를 배경으로
쿤밍호를 배경으로 기념사진 한장 남긴다.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어 사진한장 찍도 쉽지않다. 조금만 지체하면 일행을 놓쳐 길잃은철 새가 되기 십상이다. 커다란 호수를 바라보면서 평지인 땅을 파 이 엄청난 호수를 만들었다 하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호수를 만들기 위헤 파낸 흑으로 쌓아 이화원 동산을 만들고..얼마나 많은 백성들이 죽고 희생 되었겠는가? 중국의 황제들은 왜 이렇게 큰 별장이 필요했을까 하는 의문을 던져 보기도 한다.
▲ 이화원 쿤밍호 앞에서
가이드의 장황환 설명을 들으며 약 5분간 사진찍을 시간을 주지만 마땅한 곳이 없다.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곳을 틈타 사진한장 카메라에 담는다. 하나 울 마님 눈을 감아버렸네...
▲ 이화원내 수석
이원원 구석구석를 둘려보자며 하루종일 걸어도 모자랄듯...날씨도 춥고 관광객도 많고 해서 다 둘려보지 못하고 아쉬운 발길을 돌리며 나오다 만난 거대한 수석이다. 이상한 형태의 이 수석 아래에 보호문물 이라 써 있었다.
▲ 수석
곰보처럼 홈이 패인 기이한 수석...황제 별장이였으니 이 정도의 수석은 평범한 거겠지...
▲ 이화원 입구
이화원을 둘려보고 들어갔던 문을 통해 다시 나오면서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구석구석 들러보지 못한 아쉬움을 남기고 이화원을 뒤로하고 발길을 돌린다.
▲ 식당건물 입구
이화원을 출발한 우리 일행은 아직 이르지만 식당으로 향한다. 아침식사를 흰죽 한그릇으로 때운 탓일까? 배가 고파온다.우리가 도착한 식당은 쇼핑물을 파는 가게를 겸한 거대한 식당이였다.
▲ 식당내 글 한점
식당안으로 들어서자 먼저 눈에 뜨는 글 한점이 잠시 나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뜻은 모르겠지만 글씨체가 맘에 들었기 때문이다. 서예에 관심이 있어 한때 붓을잡았던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그냥 지나칠수가 없었다.
▲ 식당내부 풍경
식당 내부는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우리일행은 별도로 마련된 우리들만의 작은 방으로 안내되었다.
▲ 점심식사
역시 중국음식은 다 마찬가지 인것 같다. 니끼한 냄새는 여전하다..일부는 식사하기 힘들어 하지만 대부는 잘 먹는다. 나 역시 지난 상해 여행시 보단 많이 좋아졌음을 알수 있었다. 먹기 힘들지만 중국 음식문화를 접하는것 또한 값진 체험이 아닐까?
▲ 식사후 식당 입구에서
식당 입구에는 한국인 관광객을 위해 커피를 팔고 있었다.. 맥심 1회용 커피였는데 한잔에 천원을 달라한다.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잔씩 사 마신다. 중국에에는 어디에 가도 커피 자판기를 찾아볼수가 었었다. 커피 문화가 익숙되지 않은탓도 있겠지만 서양 문화를 거부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 옥공예품 전시장
식사를 마친 일행은 중국 옥공예 전시장을 찾았다. 교포로 부터 옥에대한 상세한 설명을 들으며 안내하는 대로 따라 들어갔다.정말 입이 벌어질 정도의 대단한 전시장이였다. 옥공예품 역시 상상을 초월하는 조각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옥 공예품 대부분 값 또한 상상을 초월하고 있었다. 대부분 우리돈으로 몇 백만원을 초과하는 금액이였다.
두꺼비, 개구리, 새, 없는 모양이 없었다.이걸 다 손으로 조각한 것일까?..도저히 기계로는 할수 없을것 같았다.
군함,여헹선 등 다양한 모양도 배..옥 구석구석 미세한 손길이 닿은 작품임을 알수가 있었다.
이게 두꺼비다..가격은 상상을 초월..조그마한 옥공예품 한점을 사고 싶었는데...탱자만한 크기의 장남감도 몇만원..아니 몇 십만원은 줘야 살수가 있었다.
이 옥 공예품은 양인듯... 나의 시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이것보라..거대한 옥을 이렇게 이름답게 조각했다니 도저히 믿지지 않는 작품이다.
이쪽 저쪽으로 처다봐도 나의 발길을 머추게 하는 옥 공얘품, 작품 모두를 카메라에 담고 싶었지만 일행과의 일정 땜에.. 또는 카메라 배터리 소진이 염려되어 몇점만을 카메라에 담았다.
옥을 만져보니 얼음처럼 차가웠다..우리가 침대밑에 깔고 자는 옥 매트는 이곳을 방문하면서 모두 가짜임을 알수가 있었다.
붙인것도 아니고..참으로 대단한 조각 솜씨가 아닐수 없다.
아름다움의 극치라 할까...그동안 인터넷 사진으로 옥공예품을 많이 접하면서 혹시 의심을 가졌는데... 내가 직접 접하고 보니 거짖이 아님을 알수 있었다.
▲ 만리장성 케이블카 탑승장에서
옥 공예품 전시장을 뒤로하고 우리일행은 만리장성으로 향했다..산하나 보이지 않던 북경이였는데...만리장성 가는 길목에는 험준한 산이 많이 나타났다. 진눈개비가 날리는 꼬불꼬불한 고개를 넘고..시내에서 만리장성 까지는 약 40여분 소요되었다.
▲ 만리장성 케이블카
만리장성 오르는 케이블카는 6명이 탑승할수가 있었다. 케이블카 시설은 낡아보였고 타고가면서 아찔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산 곳곳에에는 제법 눈이 하얗게 쌓인 풍경이 나타난다. 3월말경 북경이 눈이오기는 아주 드물다고 한다.
▲ 만리장성의 인파
만리장성 /허베이 성[河北省] 북부 옌산 ...보하이 만[渤海灣]에서 중앙 아시아까지 약 6,400km(중간에 갈라져 나온 가지를 모두 합하여)에 걸쳐 동서로 뻗어 있는 성이다. 부산에서 서을까지가 약 400km밖에 안되는데..6,400km라니..상상을 초월하는 성이다.세계 불가사이한 유산으로 등재 될만한 성이다.
▲ 만리장성
날씨가 흐려 비가올까봐 걱정했는데..그래도 눈까지 내려 또 다른 운치를 볼수있어 다행이었다.
▲ 만리장성에서
사람이 많아 사진한장 찍기도 쉽지않다...사람이 뜸한 틈을타 울 와이프와 기념사진 한장 남겼다.사진찍기를 좋아하는 친구가 있었다면 서로 찍어주고 좋았을 텐데...아쉬웠다.
▲ 만리장성 위쪽에서 바라본 풍경
현재의 만리장성은 명대 특히 그 후반기에 축조된 것으로, 동쪽은 보하이 만 연안의 산하이관[山海關]부터 중국 본토 북변을 서쪽으로 향하여 베이징[北京]과 다퉁[大同]의 북방을 경유하고, 남쪽으로 흐르는 황허 강[黃河]을 건너며, 산시 성[陝西省]의 북단을 남서로 뚫고 나와 다시 황허 강을 건너고, 실크로드 전구간의 북측을 북서쪽으로 뻗어 자위관에 다다른다.
▲ 만리장성 에서
만리장성 관광을 마치고 케이블카를 타려 가기 직전 친구들과 카메라에 담은 사진이다. 복장,인상을 보면 얼마나 추운지 알수가 있을 것이다.
▲ 케이블카 안에서 바라본 풍경
"하룻밤을 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는 속담의 유래"
가이드가 만리장성에 대한 장황한 설명을 늘어 놓으면서 다음과 같은 전설을 전한다.우리 속담에 하루밤을 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는 말이있다. 그 유래는 다음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흔히 '하룻밤을 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는 말은 '만난 지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깊은 인연을 맺을 수 있다' 는 뜻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원래의 어원은 전혀 다른 뜻으로 시작되었다.
중국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쌓을 계획을 세우고 기술자와 인부들을 모은 후에 대역사를 시작했을 때다. 어느 젊은 남녀가 결혼하여 신혼생활 한 달 여 만에 남편이 만리장성을 쌓는 부역장에 징용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일단 징용이 되면 그 성 쌓는 일이 언제 끝날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야말로 죽은 목숨이나 다를 바 없었습니다. 안부 정도는 인편을 통해서 알 수야 있었겠지만, 부역장에 한 번 들어가면 공사가 끝나기 전에는 나올 수 없기 때문에 그 신혼부부는 생이별을 하게 되었으며, 아름다운 부인은 아직 아이도 없는 터이라 혼자서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남편을 부역장에 보낸 여인이 외롭게 살고 있는 외딴 집에 어느 날 지나가던 나그네가 찾아 들었습니다. 남편의 나이쯤 되어 보이는 사내 한사람이 싸릿문을 들어서며 "갈 길은 먼데 날은 이미 저물었고 이 근처에 인가라고는 이 집밖에 없습니다. 헛간이라도 좋으니 하룻밤만 묵어가게 해 주십시오" 하고 정중하게 간청을 했습니다. 여인네가 혼자 살기 때문에 과객을 받을 수가 없다고 거절할 수가 없었던 이유는 주변에는 산세가 험하고 인가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 바느질을 하고 있는 여인에게 사내가 말을 걸었습니다. "보아하니 외딴 집에 혼자 살고 있는 듯 한데 사연이 있나요?" 라고 물었습니다. 여인은 숨길 것도 없어서, 남편이 부역을 가게 된 사정을 말해 주었습니다. 밤이 깊어가자 사내는 노골적인 수작을 걸었고, 쉽사리 허락하지 않는 여인과 실랑이가 거듭되자 더욱 안달이 났습니다. "이렇게 살다가 죽는다면 너무 허무하지 않습니까? 돌아올 수도 없는 남편을 생각해서 그대가 정조를 지킨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내가 당신의 평생을 책임질 테니 나와 함께 멀리 도망가서 행복하게 삽시다." 사내는 별별 수단으로 여인을 꼬셨습니다. 하지만 여인은 냉랭했습니다. 사내는 그럴수록 저돌적으로 달려 들었고, 여인의 판단은 깊은 야밤에 인적이 없는 외딴 집에서 절개를 지키겠다고 저항한대도 소용없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고. 일단 사내의 뜻을 받아들여 몸을 허락하겠다고 말한 뒤, 한 가지 부탁을 들어달라고 조건을 걸었습니다.
귀가 번쩍 뜨인 사내는 어떤 부탁이라도 다 들어줄 테니 말해 보라고 했습니다. 여인은 "결혼식을 올리고 잠시라도 함께 산 부부간의 의리가 있으니 그냥 당신을 따라나설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그러니 제가 새로 지은 남편의 옷을 한 벌 싸 드릴 테니 날이 밝는대로 제 남편을 찾아가서 갈아 입을 수 있도록 전해 주시고 그 증표로 글 한 장만 받아 달라는 부탁입니다. 어차피 살아서 만나기 힘든 남편에게 수의를 마련해주는 기분으로 옷이라도 한 벌 지어 입히고 나면 당신을 따라 나선다고 해도 마음이 좀 홀가분 할 것 같습니다. 당신이 제 심부름을 마치고 돌아 오시면 저는 평생을 당신을 의지하고 살 것입니다. 그 약속을 먼저 해 주신다면 제 몸을 허락하겠습니다." 여인의 말을 듣고 보니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고. 마음씨 또한 가상 한지라 좋은 여인을 얻게 되었노라 쾌재를 부리며 그렇게 하겠다고 하고 '이게 웬 떡이냐'''' 하는 심정으로 덤벼들어 자신의 욕정을 채운 후 골아 떨어졌습니다.
아침이 되어 흔드는 기척에 사내는 단잠을 깨었습니다. 밝은 아침 햇살에 여인을 보니, 양귀비와 같이 절세의 미색이었습니다. 사내는 저런 미인과 평생을 같이 살 수 있다는 황홀감에 빠져서 간밤의 피로도 잊고 벌떡 일어나서 어제의 약속을 이행하기 위하여 길 떠날 차비를 했습니다. 여인은 사내가 보는 앞에서 장롱 속의 새 옷 한 벌을 꺼내 보자기에 싸더니 괴나리 봇짐에 챙겨 주는 것이었습니다. 사내는 잠시라도 떨어지기 싫었지만 빨리 심부름을 마치고 와서 평생을 해로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부지런히 걸었습니다. 드디어 부역장에 도착한 그는 감독관에게 면회를 신청하였습니다. 사정을 들은 감독관은 인원을 채워야 하는 규정때문에 사내에게 작업복을 갈아 입혀 대신 들어가게 하고 남편에게 옷 보따리를 건네 주었습니다. 남편은 옷을 갈아 입으려고 보자기를 펼치다가 옷 속에서 편지를 발견했습니다. "당신의 아내입니다. 당신을 공사장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 이 옷을 전한 남자와 하룻밤을 지냈습니다. 이런 연유로 외간 남자와 하룻밤 같이 자게 된 것을 두고 평생 허물하지 않겠다는 각오가 서시면 이 옷을 갈아 입는 즉시 집으로 돌아오시고 그럴 마음이 없거나 허물을 탓하시려거든 그 남자와 교대해서 공사장 안으로 다시 들어가십시오." 남편은 옷을 갈아 입고 그 길로 아내에게 달려와서 아들 딸 낳고 행복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하고 많은 인간사에서 이처럼 사랑하는 이를 위해 만리장성을 쌓아준다면야 한번의 허물쯤이야 문제가 되겠습니까? 그러나 어리석은 그 사내 처럼 잠시의 정욕에 눈이 어두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남의 만리장성을 쌓아주고 있는 것이 아닌지? 그 이후 만리장성 공사장에는 실성한 사람처럼 한 젊은이가 일을 하면서 "하루밤 자고 만리장을 쌓는구나"하며 탄식한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 케이블카 안에서 바라본 풍경
만리장성 관광을 마치고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가다 창밖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 황제 13릉 입구
만리장성 관광을 마친 우리일행은 중국 황제 13릉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사진은 13릉입구 출입 문이다.
▲ 황제13릉에 들어서며
빠따링에 이어진 산기슭의 들판에 숨어 있는 평원에 명대의 황제 13릉이 있는곳이다. 헌(獻), 경(景), 유(裕), 무(茂), 태(泰), 강(康), 영(永), 소(昭), 정(定), 장(長), 경(慶), 사(思), 덕(德)릉의 13릉으로 전후 2백여 년에 걸친 명대 13명의 황제가 각각 지하에 잠들어 있다.
▲ 황제13릉 특이한 나무
릉 정원에 들어서자 이상하게 생긴 나무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나무원통에 접을 붙혔다 한다. 신기하여 한컷했지만 가이드가 알려준 이름을 까 먹고 말았다.
▲ 13릉 설명
13릉 성명을 상세하게 적어놓은 안내판이다. 한국 관광객이 많이 찾아서일까? 유일하게 한글로 안내되어 있어 기분이 좋았다.
▲ 정릉설명
정릉(定陵)은 장릉 다음으로 큰 규모이며 제13대 신종만력제와 그의 두 명의 황후가 잠들어 있는 능이다. 정릉은 지하궁전도 발굴되었는데 이 능은 6년의 세월과 국비 2년분의 투자로 만들어졌다. 능 안은 지하로 20m 정도 깊고, 최대폭 47m, 안길이 88m의 규모이다. 정릉은 1957년에 발굴되었다 한다.
▲ 향나무 숲
황제13릉 내 정원에는 향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다.
▲ 황제13릉에도 봄은
릉 정원에도 봄은 찾아온듯...노란 개나리가 활짝 미소짖고 우리일행을 반긴다.
▲ 황제 지하릉 내부
황제의 무덤은 지하 계단을 띠라 지하로 한참을 내려가야 나타났다. 황제가 앉았던 의자 하며 유물들이 들도 있었다.
▲ 황제13릉 관광을 마치고
지하 황제 무덤을 관광하고 지하에서 나오는 우리 일행들이다.
▲ 황제13릉 내 건물
릉으로 향하는 문이다. 중국의 모든 건물들은 붉은색 아니면 황색이였다.
▲ 황제13릉 관광 기념
향나무로 둘려쌓인 릉을 빠져나와 단체로 기념사진 한장 카메라에 담았다.
▲ 식당겸 발마사지장 건물입구
13릉 관광을 마치고 발마사지 장으로 향했다.눈발도 그쳤고 서쪽하늘에 황혼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또한 이 건물이 발마사지를 겸한 식당 이였다.
▲ 발마사지 장면
발마시지 장면이다. 여자들은 어린 소년이..남자들은 어린소녀 들이 앉아 따끈한 약물을 데워 나무통에 발을 10여분 담그게 하고 발을맛자지 한다.처음에는 어깨 등을 두드려 피로를 풀어주고 본격적인 발마시지에 들어간다. 사진은 나를 맛서지하고 있는 소녀의 모습이다.마사지도중 각질이 심하다며 깍을것을 요구한다. 20,000원이라 했다 하나둘 신청하더니 모두 신청한다.
이것 또한 상술인것 같았다.
▲ 저녁식사
발마사지를 마친 우리는 바로 옆의 식당에 들어가 샤브샤브식으로 저녁을 맛나게 먹었다.
중국술 빼갈 두어병 시켜 한잔식 곁들이니 하루의 피로가 싹 가시는듯 기분이 날것 같이 좋았다..60도의 독한 술이지만 향은 끝내줬다..작은잔으로 두어잔 들이키니 금새 찡해옴을 느낄수 있었다.
▲ 숙소에서
이틀째의 일정을 마치고 숙소에 들어왔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싱글방으로 모여 소주,맥주 한잔씩 나눈다.맥주는 현지 가이드가 10여병 사가지고 들어왔다. 고마웠다. 맥주한병에 우리돈으로 2,000원 이였고 맥주맛은 우리맥주와 별 다를게 없는듯 했다.
▲ 숙소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로 밤 새는줄도 모르고 새벽2시, 아니 3시까지 이야기 꽂을 피우다 잠자리에 들면서 2일차 일정을 마무리 했다.
천단공원→동인당→스차하이→후통인력거→베이징 림픽스타디움
오늘은 여행 3일채 되는 날..뿌연 안개가 드리웠지만 파란하늘이 보이는 맑은 날씨다. 하지만 조금 춥게 느껴지는 쌀쌀한 초겨울 날씨다. 호텔식은 먹을게 없다 빵한조각에 우유한컵으로 아침을 때우고 첫 방문지인 천단공원으로 향한다.
▲ 호텔앞에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호텔 로비 앞에서 출발 준비를 하며 정담을 나누고 있는 일행들의 모습이다.
▲ 북경거리 모습
천단공으로 이동하면서 목격한 북경시내의 모습이다. 여자들의 자전거 출근행렬이 많이 눈에 띈다. 교통질서는 엉망이며 북경이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믾은 변화와 발전을 가져왔지만 시민들의 의식이나 거리모습 등은 우리나라에 비하면 아직은 멀었다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다.
▲ 천단공원 입구
천단공원 입구에는 이른아침부터 수많은 관광객이 몰려와 입장하고 있는 모습이다. 외국인들도 많지만 대부분 중국인 들이다.
▲ 공원입구/자전거 주차
중국인들이 타고온 자전거다 입구 양쪽으로 자전거 주차장이 있고 그기엔 자전거가 빽빽하게 주차되어 있는 모습니다.
일반 국민들은 아직까지 교통수단이 자전거 인듯 했다.
▲ 천단공원에 들어서며
공원안에 들어서니 향나무가 양쪽으로 빽빽히 들어 서 있고 길게 뻗은 넓은 광장이 우리를 맞이한다.
▲ 기 운동을 하고있는 중국인들
공원내에는 아침일찍부터 기운동을 하고 있는 중국인들을 만날수 있었는데 대부분 나이든 사람들이었고 부루스 춤, 제기차기 등의 운동을 하고 있었다. 특히 크다란 붓에 물을 묻혀 바닥에 한자 행초서를 쓰고 있었는데 그 기법이 출충하여 한참을 구경하느라 일행을 놓치기도 했다.
▲ 천단공원에서
기년전을 향해 들어가면서 마눌과 함께 공원을 배경으로 기념사진 한장 남겼다.
▲ 천단공원의 모습
천단은 북경 충웬구에 있는 사적으로, 명.청시대 중국에서 군주가 제천의식을 행하던 도교 제단이다. 매년 풍년을 기원하는 것은 황제의 연례행사였고, 비가 오지 않으면 기우제를 지냈다. 고대 규모로는 가장 큰 제단 규모로 만들어 졌으며,대지면적은 약 273만 m2로 고궁인 자금성의 네 배이다.1961년 국무원에서는 최초의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 중 하나로 선포를 했고, 1998년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됐다.
▲ 천단공원의 모습
천단은 1406년에 시작하여 명의 영락제 18년인 1420년에 완공되었다. 영락제는 자금성을 건설했던 왕으로, 이곳의 건설 당시는 천지단(天地坛)이라고 불렸고,1530년 가정제 9년에는 3개의 제단을 더 추가함으로써 천단이라고 불리게 된다. 동쪽으로는 일단(日坛)을, 북쪽으로는 지단(地坛)을, 서쪽으로는 월단(月坛)을 추가하였다. 현재의 규모로 확장된 것은 청대의 건륭제 연간이다.
▲ 기년전/제단
중국에서 군주 제천 행사를 를 맞기 위해 지은 제단 중 가장 유명한 건축물 중의 하나로서 천안문, 자금성과 함께 베이징의 심벌이라 한다.
▲ 기운동 하고 있는 중국인
공원내에는 어디를 가나 운동하는 중국인들이 눈에 띄었다. 한데 모여 노래를 부르는 단체도 있었고. 각양각색의 운동을 즐기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중국인들의 삶의 한 면을 볼수 있었다.
▲ 천단공원 내
중국의 황제들은 왜 이렇게 상상를 초월하는 큰 제단을 지어야 했을까?
▲ 우리일행의 모습
제단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일행들이다.
▲ 끝없는 향나무 숲길
양 사방으로 향나무 숲 사이로 길게 뻗은 길이 끝이 보이지 않는다. 역시 중국..대단한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 가이드의 설명
천단공원에 대한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고 있는 가이드.. 이에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귀기울이는 모습에서 진지함을 느낄수가 있었다.
▲기년전 광장
기년전은 목조에다가 금도금을 입혔으며, 삼층으로 유리기와를 올려 지붕을 만들었다. 명나라 시대에는 위에는 청색과 황녹색으로 되어 있었지만, 건륭제가 1751년에 중건을 하면서 전부 청색으로 바꾸었다. 1889년 낙뢰에 의하고 한번 소실되었지만,1906년에 다시 재건되었다 한다.
▲ 기년전 앞에서
기년전 앞에서 울 와이프 폼 함 잡고 섰다. 챙모자에 짙은 썬글라스를 끼고 선 폼이 멋져 보인다.
▲ 기년전의 건축물
기년전..중국에서 군주 제천 행사를 를 맞기 위해 지은 제단 중 가장 유명한 건축물 중의 하나로서천안문, 자금성과 함께 베이징의 심벌이다. 기년전은 직경 32m,높이 38m,25개의 중심에 유지된 제단으로 현존한 중국 최대의 제단.중국 건축 사상 중요한 건축물로 간주 된다.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정월에 황제가 오곡풍작을 기원하는 제를 올렸다.
기년전의 내부다 사람들이 많아 정면에서 담지못해 잘 보이지는 않지만 제를 지낼수 있는 제단이 마련돼 있었다. 이곳에 풍년을 기원하는 제를 지내고 기우제도 지냈다 한다.
▲ 와이프와 함께
이곳까지 왔는데..와이프와 함께 기념사진 한장은 남겨야지...
▲ 수많은 관광객 속에 기운동하고있는 중구인
관광을 마치고 나오면서 수많은 관광객과 운동나온 시민들로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나도 제기하나를 천원에 사서 발로 차 보았지만 옛날 실력은 온데간데 없고 헛발질이 나온다.
▲ 동인당 입구
천단공원 관광을 마치고 북경의 유명란 동인당을 찾았다. 설명으로는 한의학 교수라는 분이 통역을 붙여 진맥을 해주었다.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진맥을 설명하는 교수의 말을 듣고 모두 깜짝 놀란다. 몸 상태를 정확하게 알아 맞추는 것이였다...너무나 믿음이 가 속는샘 치고 약을 지어 가방속에 넣는다.
▲ 식당입구
동인당을 나선 우리 일행은 점심식사를 하기위해 삼형이(三兄耳) 라는 식당에 들어갔다.
▲ 아늑한 식당 분위기
깨끗한 식당 분위기다. 예약손님이 있는듯 식탁위에는 식사 준비가 한창인다.
▲ 점심식사
매뉴는 역시 기름으로 띄기고 볽고 진한 향에 니끼한 음식이였다. 그래도 이젠 모두들 이력이 붙었는지 잘들 먹는다.
▲ 점심식사 모습
빼갈 1잔 곁들이니 니끼한 냄새가 기시는듯 훨씬 먹기가 좋다. 남자들 보다 여자들이 더 잘 먹는다.
▲ 스차하이
점심을 먹은 우리는 스차하이를 찾았다. 중국속에서 유럽의 정취를 느껴볼수 있는 이색적인 거리로 호수 주변에는 각종 상점 및 커피숍,맥주집이 들어서 있었다.
▲ 스카이하이에서
모두들 기분이 좋은듯 쌀쌀한 날씨임에도 표정들은 밝다. 호수를 배경으로 미모의 여성들 사진한장 카메라에 담았다.
▲ 후퉁 인력거
북경 여행을 계획한다면 후통(胡同)에 꼭 가보라 했다.후통이란 우리식으로 표현하자면 골목길이라 한다.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후통, 인력거를 타고 골목믈 다니면서 중국 라오바이싱(老百姓, 일반서민) 생활 모습을 구경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 인력거를 타고
인력거는 리어카 처럼 생긴 앞에다 자전거를 달았다. 인력거를 탄 우릴 운전자가 사진한장 찍어주겠다며 카메를 뺏듯이 받아 사진한장 담아주고 골목을 누비다 허름한 골목길앞에 내려준다.
▲ 중국인의 생활상 체험
우리는 좁다란 골목길을 따라 어떤 집으로 들어갔다 제법 괜찮은 집이라 생각되었다. 이집이 관광객들에게 개방하면서 유명해져 홍콩인이 우리돈으로 44억을 주고 팔라고 했다는데 자식이 아버지로 부터 물러 받은 집이라 팔지않고 대를 이어가고 있라고 한다.
▲ 부억
1평쯤 돼 보이는 허름한 부억이다. 그러나 전자랜지도 설치돼 있었다.
▲ 방문
방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로 침상이 나온다. 이 또한 두어평 정도 돼 보인다. 난방시설은 아예 없다.
▲ 뒤골목의 중국인
서민들의 생활상을 보고 나오면서 사진과 같은 허름한 집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었다. 아무도 물건을 살 사람도 없을것 같은데 집앞에서 장난감 같은 것을 팔고 있다.
▲ 다시 인력거를 타고
서민들의 생황상을 관광하고 나오니 다시 인력거가 기다리고 있었다. 인력거를 타고 골목을 누비며 호수를 따라 내달린다.인력거 운전하는 자는 하루에 얼마를 버는지는 모르겠으나 기분이 좋은듯 싱글벙글 거린다.
▲ 줄지어 대기하고 있는 인력거 앞에서
거리에 줄을서있는 인력거들...손님이 없는지 인력거에 담요같은 것을 덮고 낮잠을 자고 있는 모습들이 많이 눈에 띈다.나는 인력거 운전자에게 팁 2천원을 건네다. 2천원을 받아든 운전자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고마움을 표한다.우리와는 완전 다른 삶을 살고있는 북경의 서민들...조금은 안스럽게 보이지만 그들 나름의 행복한 삶이 아닐까 생각도 해 본다.
▲ 실크 전시장입구
후퉁을 나선 우리 일행은 실크 제조 및 판매하는 곳으로 안내됐다.
▲ 실크 전시장
누에 고치에서 실을 뽑는 과정을 관람한후 쌍 번데기 누에는 서로 엃켜 실을 뽑을수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사진과 같은 이불소재로 사용한다고 했다. 사진에서 보듯 몇사람이 잠아당겨도 찢기지 않고 늘어나는 것이 신기했다. 그리고 누애고치 하나에서 저렇게 많은 량의 실크가 나온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 북경올림픽 로
실크 백화점 관광을 마친 우리는 근처에 있는 베이징올림픽 메인스타디움을 보기위해 걸어서 이동했다.넓고 길게 뻗어있는 광장이 장관이였다.
▲ 북경올림픽 로 앞에서
메인스타디움 가까이에서 기념으로 사진 한장 카메라에 담았다.
▲ 북경 올림픽 주경기장
주 경징 주변에는 새로 지은듯한 고층 건물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었고 도로는 사통팔달 시원하게 뚤려 중국의 역동성을 느낄수 있었다.
▲ 북경 올림픽 주경기장
2008년 3월에 완공된 중화인민공화국 베이징의 경기장이다. 한국어로 베이징 국립경기장, 베이징 올림픽 주 경기장이라고도 한다. 그 모양에서 이름을 따 속칭 새둥지(중국어: 鳥巢 냐오차오[*], 병음: niǎo cháo)라고 불리고 있다.
베이징 국가체육장은 길이 300 m, 나비 220 m, 높이 69.2 m의 규모로 건설되었으며, 총 연면적은 약 25만 제곱미터이다. 건설에는 총 길이 36 km, 총 중량 4만 5천 톤의 강철이 쓰였다. 총 건설 비용은 3억 5천만 위안으로 추정된다. 2003년 12월 기공하였고, 2008년 3월에 완공한 경기장이다.
▲ 북경 올림픽 주경기장 앞에서
올림픽 주 경기장을 배경으로 단체로 사진한장 기념으로 남겼다.
▲ 햇불빌딩
메인스타디움 건너편에 우뚝서 있는 햇불 빌딩이다. 모양이 햇불처럼 생긴데서 이름 붙혀진 이 건물은 7성급 호텔로 베이징 올림픽 VIP손님의 숙소로 사용되었다 한다.
▲ 북경 올림픽 주경기장을 뒤로하고
베이징 올림픽 주 경기장을 떠나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카메라에 담았다.
▲ 민속촌 입구
올림픽 주경장을 지척에 두고 실크백화점 앞에있는 민속촌 아치다.
▲ 민속촌 입구
민속촌 답게 특이한 집들이 많이 들어서 있었다.
▲ 민속촌입구 모조나무
민속촌 앞의 모조나무다 처음에는 진짜 고목 인줄 알았는데..모조 나무였다.
▲ 한국식 식당
올림픽 주경기장 관람을 마치고 모처럼 한식 식당을 찾았다. 식당 맞은편 길건너 빙딩꼭대기에 눈에익은 글자가 시야에 들어온다.현대자동차 북경지사 건물이다. 반가웠다. 그리고 가슴 뿌듯한 자부심도 느켰다.
▲ 불고기 전골
매뉴는 한식식당 답게 소고기 전골에 김치 된장국 상치 등 우리 입맛에 맞는 음식이 나왔다.
▲ 한식
생선도 한마리 올라오고..나물,부추무침 등 다양하다.빼갈한잔이 빠져서는 안돼지..두어병 시켜 나눠 한잔씩 들이키니 하루의 피로가 싹 가시는 듯 기분이 좋다.
▲ 북경 시내풍경
저녁식사를 마치고 오늘 마지막 일정인 북경 기예써커스를 관람하기 위해 이동하면서 차창 밖으로 북경시내를 바라본 풍경이다.
▲ 북경시내 풍경
사진은 써커스 극장 앞 풍경이다. 새로 신축한듯 건물이 아름다웠다.
▲ 조각상을 배경으로
써커스 극장 앞 조각상 앞에서 기념사진 한장 남겼는데 사진이 흐릿하게 나왔다.
▲ 써커스 극장
소년궁 극장..우리가 써커스를 볼 극장이다.
써커스는 관중들의 박수 갈채를 받을 만한 기예였다. 하지만 지난 상해 여행시 상해 써커스 보다는 못한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써커스를 관람한후 저녁 9시경 숙소로 돌아와 3일차 여행 일정을 마쳤다.
천안문광장→자금성→북경공항
오늘은 4일째 여행 마지말 날로 천안문 광장 자금성 광광에 나선다. 조금 쌀쌀하지만 3박4일간의 일정중 가장 날씨가 깨끗하고 좋는 날이라 기분좋게 하루의 여행 일정을 시작한다.
▲ 북경시내 한 아파트
여행짐을 모두 챙겨 숙소를 나선다. 맑은날씨지만 바람까지 불어 쌀쌀함은 여전한것 같다.사진은 천안문 광장을 향하면서 차창밖으로 바라본 한 아파트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작은 규모의 아파트로 보였지만 집집마다 에어컨 외기가 매달려 있음이 특이했다. 그중 우리나라 LG전자에서 만든 에어컨이 많이 눈에 띄었다.가이드 말로는 이곳 북경에서는 차동차 하면 현대..가전제품은 엘지..휴대폰은 삼성 제품이 대단한 인기가 있다고 한다.따라서 잘사는 나라 한국..가이드 자신도 한국인이라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중국인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한다.
▲ 천안문 광장 입구
천안문 광을 가기위해 내린곳은 전차가 서 있었고...천안문은 보이지 않았다. 일반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전차를 타고 천안문 까지 이동한다고 한다. 하나 우리일행은 걸어서 천안문 광장까지 가기로 하고 잠시 화장실 다녀오는 시간에 한컷한 사진이다.그런데 중국은 아직 우리나라에 비하면 부족한게 너무 믾았다.. 그 첫째가 화장실 문화였다. 들어가는곳 마다 지저분 하고 냄새가 진동을 한다.
▲ 천안문 광장 입구 거리
천안문으로 걸어가면서 양길가에 새로 지어지고 있는 건물을 보았다. 옛 거리를 재현하기 위해 모두 상점들이 들어설 예정이라 한다.
▲ 천안문광장 입구 골목
허름한 골목길을 한컷했다. 조그마하고 허름한 상점들이 밀집해 있었고 이른 아침인데도 사람들은 붐비고 있었다.
▲ 천안문 광장 입구
이 건물을 지나면 천안문 광장이다.보이는 문으로 바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우측 도로를 가로 질러 건물 옆으로 들어갔다.
▲ 천안문 옆 모습
횡단보도를 지나 도로를 가로질러 건너 옆에서 바라본 건물의 모습니다.
▲ 천안문 광장 중국 인민대회장
이곳이 북경 관광의 중심인 천안문 광장이다. 동서500M, 남북800M로 그 광대함에 우리를 놀라게 한다. 광장주변에는 인민영웅기념비,모택동 주석 기념당, 인민대회당 등이 있다.
▲ 천안문 광장에서
와이프와과 나는 가이드에게 부탁하여 자금성을 배경으로 기념사진 한장 카메라에 담는다. 좋은 추억이 될듯...
▲ 천안문 광장 인민대화장 앞에서
뒤에 보이는 곳이 중국 최고인민대회당이다. 우리나라를 치면 국회의사당인 샘이다.이곳에서 중국은 물론, 세계를 움직이는 결정이 쏱아져 나온다.약 10분간 사진찍을 시간을 얻은후 자금성을 향해 발길을 옮긴다.황금색 지붕에 붉음담벽 이것이 중국의 전통적 국가기관위 건물이다.
▲ 천안문 광장에서 바라본 자금성 정문
자금성은 동서로 760m, 남북으로 960m, 72만 m²의 넓이에 높이 11m, 사방 4km의 담과 800채의 건물과 9999 개의 방이 배치되어 있다. 1961년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었고,1987년 "명·청 시대의 궁궐"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 곳의 중문인 오문의 가운데 문은 황제 만 사용하고 현재도 일반인의 출입을 엄금하고 있다 한다.
▲ 자금성 옆에서
천안문 광장을 떠나 지하 도를 따라 도로를 건너 자금성 첫번째문의 옆모습을 배경으로 마이프를 돌러세우고 한장 담았다.
▲ 자금성 들어가는 문
조금 더 가까이에서 담은 사진이다.중국의 황제들은 붉은색과 황금색을 좋아했다고 하며 황금이 최고 가치가 있듯 아마 최고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문 중앙에는 모택동의 사진이...좌측에는 중화인민공화국만세..우측에는 세계인민대단결만세 라 쓰여 있었다.
▲ 자금성 들어가는 문/모택동 사진
수많은 인파에 떠밀리다 시피 하여 다리하나를 지나 문입구에 들어섰다.천안문 광장에서 바라볼때는 별로 크게 느껴지지 않았는데 옆에와 보니 엄청난 건물임을 알수가 있었다.
모택동은 1926년 주더(朱德)와 연합하여 홍군(紅軍)을 창설, 중국 공산당의 핵심 인물이 되었으며 1934년부터 일 년간 이어진 장제스의 초공작전에 밀려 '대장정'에 오르면서 공산당의 저변을 크게 넓혔다. 중일전쟁 종전과 함께 벌어진 장제스 정부와의 전투에서 승리하여 그들을 대만으로 내몰고 1949년 10월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워 초대 중앙인민정부의 주석 자리에 올랐다. 1965년부터 벌어진 사회주의 문화대혁명을 주도했다.
중국 역사의 마지막 거인 등소평은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운 사람이며 자신의 권력 확장을 위해 수십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문화대혁명을 주도했던 인물이지만 중국인들에겐 영웅으로 추대받고 있는 인물이다.
▲ 자금성
자금성 안으로 들어서면서 그 규모에 올랐다. 우나라라 역사 사극에서만 보아온 자금성...정말 대단했다.
▲ 자금성 앞에서
수많은 관광들 땜에 사진한장 찍기가 쉽지않다. 인파를 피하려고 조금만 지체하면 일행을 놓칠것 같고..재 빠르게 와이프를 불러세우고 사진한장 담는다.
▲ 자금성 내
황제가 살았다는 집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러한 문을 전방에 9개 후방에서 8개 도합 18개의 문이 있다고 한다.
▲ 자금성2
우리는 저 문을 통과한다 통과하고 나면 또다른 건물과 문이 나올것이다.가이드의 설명을 들어보지만 사람들이 많아 시끄러워 잘 알아들을수가 없다.
▲ 자금성 광장
중국의 황제들은 왜 이렇게 큰집이 필요했을까? 이러한 집을 짖는데 얼마나 많은 인력이 필요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을까?
▲ 자금성3
가이드의 말에 이히면 자금성의 건물은 전부 목조 건물로 안시성 원사림에서 나무를 배어 이곳 북경까지 운반하는데만 3년이 걸렸다고 하니 대단한다는 생각이 든다.
▲ 자금성 앞에서
사람이 뜸한 외곽지역을 배경으로 울 마눌 사진한장 카메라에 담는다. 내모습은 담을 겨를도 없다.
▲ 자금성의 단청
건물의 단청이다. 우리나라 사찰이나 고궁의 단청과 비슷했지만 건축미는 우리나라 것 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자금성4
궁내 광장이다. 관광객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지만 워낙 넓은 탓에 빈공간이 많이 있어 보인다.
▲ 대화전
이곳이 자금성 중안지점으로 황제가 거처하던 대화전이다.수많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군데군데 모여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있는 모습이다.
▲ 자금성 대화전
건물 중앙위쪽에 대화전이라 쓰 있었다. 발 디딜틈도 없을 정도다 사진찍는다는 것은 엄두도 못낼 진 풍경이다. 황제가 거처했다는 건물 내부를 잠시 처다보는 것 만으로 민족해야 했다.
▲ 대화전의 단청
대화전의 건물 모습이다. 단청이 아름다웠다. 2008년 북경 올림픽을 계기로 새로 단장했다 한다.
▲ 황제가 살던 집 내부
대화전 건물 내부에는 황제가 앉았던 자리등..우리나라 경북궁 내부와 비슷했다.
▲ 거북상 앞에서
관광객이 없는곳을 택해 울 와이프 한컷 카메라에 담았다.
▲ 자금성 단청
아름다운 단청의 모습이다. 새로 칠을 해서인지 색감이 선명한게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어 카메라에 담았다.
▲ 자금성에서
나 또한 다른 관광객에게 양해를 구하고 아무도 안 보이는 곳에서 와이프에게 부탁하여 사진한장 담았다.
▲ 자금성 내부
이 넓은 터에 건물 또한 셀수 없이 들어서 9개의 문을 거쳐 황제가 살던곳까지 왔건만 또다시 9개의 문을 거쳐야 나갈수 있다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 소화전
화로같이 생긴 이 금동이 화재가 나면 불을 끌수있게 물을 담아두는 소화전 이라 한다. 금도금을 했는데 관광객이 끓어간다고 했다.
▲ 자금성 건물
벌써 두어시간 쯤 걸었었는데...아직도 끝이 없다. 우리나라 경북궁은 이곳 별채 하나 정도 밖에 되지 않을듯. 그 규모가 대단했다.
▲ 자금성 건물1
이 수많은 황금색 건물들은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페인트칠로 새로 단장했는데...이에 사용한 폐인트가 우리나라 노루표 폐인트였다는 가이드의 말에 가슴 뿌듯한 자부심을 느낀다.
▲ 화장실
드물게 나타난 화장실이다. 이곳 또한 지저분 할 것이라 예상을 하고 들어갔는데..이게 왠일인가? 너무 깨끗했다. 그래서 의문이 생겼다..가는곳 마다 화장실이 냄새가 심하고 지저분했는데...여기만 왜 이렇게 깨끗할까? 그 궁금증은 다음 사진에서 확인 할수 있었다.
▲ 4성급 장군 화장실
아니나 다를까.. 화장실 입구에는 4성급 장군전용 화장실이란 안내판이 붙어 있었다. 아마 올림픽을 계기로 일반인에게 개방한것 같아 보였다.
▲ 우리는 동갑내기 친구
자금성을 둘러보면서 잠시 휴식하면서 친구와 함께 나란히 섰다. 모두 나와 동갑네기로 고향 불알친구다. 좋은 추억이 될듯...
▲ 향로
곳곳에는 어떤 용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향로 모양을 한 물건들이 많이 놓여 있었다.
▲ 자금성 내
이 또한 기이한 모양의 탑처럼 보여 카메라에 담았는데 역시 용도는 모를 일이다.
▲ 가이드의 설명에 귀 기울이고
수 많은 사람들의 틈을 타 우리 일행을 모아놓고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고 있는 가이드다.
▲ 자금성 건물 내부
건물 내부를 구경하기 위해 인파속을 비집고 들어가야 한다. 질서는 온데간데 없고...
▲ 수많은 관광객
관광객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어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다.
▲ 관광객 속의 우리일행
▲ 자금성의 건물
자금성은 명나라,청조의 24명의 황제가 살았던 황궁으로 세계적으로 가장 크고 완전하게 보전된 궁전이다. 700여 건축물과 9000여개의 방이 있다고 한다.
▲ 자금성의 정원
19개의 문을 거쳐 마지막 문을 나오자 고궁 정원이 나타났다. 고궁 규모에 비해 정원은 그리 넒지가 않았다.대부분 향나무들이 많았고...우리나라 정원처럼 화려하지도 않았다.
▲ 자금성의 정원2
마지막 부분에 인조 기암석으로 쌓아 그 위에 누각을 지은 모습이 기이해 카메라에 담았다.
▲ 자금성의 출구
자금성 출구다. 모두 황금색으로 된 지붕과 붉은 벽이다.
▲ 자금성의 정원/봄
무슨 꽃인지는 몰라도 노란꽃이 활짝피어 자금성에도 봄이 왔음을 알리고 있었다.
▲ 자금성의 정원4
자금성 출구에는 제법 오래된 듯한 향나무 들이 버티고 서 있었다.
▲ 자금성으로 들어오는 인파
정원를 빠저 나오자 출구 광장에도 자금성으로 들어가는 수많은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 고궁박물관
출구를 빠져나와 바라본 고궁박물관 이란 이름이 붙어 있었다. 자금성은 1900년에 일어난 의화단 운동으로 유럽 열강 연합군의 주둔이 있었고 1908년 즉위한 선통제는1924년 군벌 세력의 쿠데타로 영원히 자금성을 떠났다. 바로 그 직후 고궁박물원이 된 것이다.
↑호수가에 기대어 서서 추억을 남긴다. 옆의 관광객이 없었다면 더 좋은 사진으로 탄생 했을 텐데....
▲ 자금성 밖 호수에서
자금성 밖에있는 인공 호를 배경으로 카메라에 담았다.
▲ 자금성 밖 호수
잔잔한 호수와 셩벽이 한데 어울린 그림같은 풍경이다.
▲ 차창밖의 시내
자금성 관광을 마치고 공항으로 이동하면서 차창밖으로 펴쳐진 북경시내의 풍경이다.
▲ 공항으로 이동하면서1
북경 올림픽을 계기로 새로 지은 빌딩인듯 깨끗하고 운치가 있어 보였다.
▲ 북경시내 빌딩
공항으로 이동중 이와같은 건물들이 우후 죽순처럼 솟아있었고 올림픽을 계기로 북경은 세계속의 도시로 웅비하고 있었다.
▲ 차창밖으로 바라본 북경시내
도로 또한 사통팔달 시원스럽게 뚫려 고층건물과 어울려 아름답게 다가왔다.
▲ 베이징(북경)공항
북경 공항의 지붕모습이다. 공항으로 들어서기 전 차창밖으로 시선을 던지며 카메라에 담았다.
▲ 북경공항 내부
북경공항 내부다. 높은 천정에 화려하고 고급스런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 북경공항에서
북경 공항 안에서 폼 한번 잡은 울 와이프 기분이 좋아 보인다.
▲ 출국 비행기를 기다리며
출국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가이드로 부터 무슨말을 들었는지 웃음꽃을 피우고 있는 여인들이다.
▲ 이륙직전 공항
부산행 출국 비행기를 타고 이륙을 위해 활주로를 돌면서 공항풍경을 카메라에 담은 모습니다.
▲ 이륙직전 북경공항
출국 비행기를 타고 활주로를 돌면서 바라본 차창밖 풍경이다.
▲ 북경공항 전경
엄청난 규모다. 지붕모양이 특이하다. 북경공항도 우리나라 노루표 페인트를 사용 건물을 도색했다고 한다.
▲ 이륙/북경공항 주변풍경
이륙후 차창밖으로 바라보며 카메라에 담은 북경공항 주변 농경지와 공장들이다.
▲ 기내에서 바라본풍경
북경 시내쪽은 산 하나 보이지 않았는데..이 지역은 첩첩산중...산세가 만만찮아 보인다.
▲ 기내에서 바라본 풍경
멀어져 가는 산천...깨끗한 날씨탓에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온 산하가 게 다가온다.
▲ 기내에서 바라본 풍경
구름띠가 형성되면서 짙푸른 산천과 어울린 풍경이 아름다움과 멋을 더해준다.
▲ 기내에서 바라본 풍경
산악 지대는 사라지고 비행기가 회전하면서 농경지와 공장지대 농촌풍경이 가깝게 다가온다.
▲ 북경은 멀어져가고
흰 뭉개구름 두둥실 떠다니며 푸른하늘과 어울려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 기내에서 바라본 풍경
비행기가 고도를 높이면서 흰구름이 눈 밑에 깔리기 시작한다. 여행시 항공기를 탈때마다 창가에 앉는 행운탓에 바깥풍경은
많이 보아 왔지만 오늘처럼 날씨가 맑은날은 그리 많지 않았던것 같다.
▲ 기내에서 바라본 풍경
넓은 농경지를 따라 고불고불 강줄기도 시야에 들어오고..한가롭게 흰구름은 두둥실 떠나니고...그림같은 아름다운 풍경이다.
▲ 기내안에서 바라본 풍경
육지를 벗어나고 있다.시시각각 변하는 구름띠...비행기 날개끝과 어울려 더욱 아름답게 다가온다.
▲ 항공기 안에서 바라본 풍경
하늘과 바다가 맞다아 구분이 안된다. 푸른 물결 위로 거대한 뭉개구름이 시야에 들어온다. 자연의 신비로움이리라.
▲ 황혼이 드리우고
어둠이 깔리면서 황혼이 드리우고 있다. 우리일행이 탄 비행기는 저녁 7시40분경 김해공항에 무사히 도착하면서 3박4일간의 일정을 모두 마무리 했다.
3박 4일간의 짧은 일정이였지만 추억에 남는 값진 여행으로 기억돨 것이다.지난번 상해 여행때 보았던 장가계 천자산,보봉호와 같은 아름답고 경이로운 자연풍경은 접하지 못했지만 중국의 역사,정치,문화,생활을 접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체험한 뜻깊은 여행으로 기록 될것이다. 특히,말만듣던 만리장성과 천안문광장,자금성 탐방은 상상을 초월하는 볼거리로 중국인의 저력을 확인할수 있었고 자금성을 보지 않고는 중국을 다녀왔다 말하지 말라는 친구의 말이 무슨뜻인지 자금성을 보고서야 알수가 있었다. 니끼한 중국음식 문화...입에 맞지 않았지만 그 또한 체험이요.여행의 별미가 아니였을까? 한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구석구석 돌아보면서 사진도 찍고 좀더 중국을 깊이있게 살피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고향친구들과 함께한 이번 북경여행...아름다운 추억으로 가슴깊이 영원히 남으리라. 친구들! 낮선 이국땅에서 지친몸 이끌고 끝까지 함께한 친구들~수고 많았고 이 자리리를 빌어 모두 수고했고 고마운 마음 전한다. 아울러,여행에 불편이 없도록 많은도움을 주신 롯데관광 김정숙 가이드와 현지 교포가이드에게도 이 자리를 빌어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사진/글 : 산과벗(김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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