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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북경(베이징) 여행----2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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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과벗 2009. 4. 2.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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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북경(베이징) 여행기2일차(3월29일)

이화원→옥공예품전시장→만리장성→중국황제13릉→발마사지  

아침에 눈을뜨니 흐린날씨에 간간이 진눈개비가 날린다. 호텔식으로 간단히 식사를 마친 일행은 두툼한 겨울자켓을 입고 오늘 여행 일정에 들어간다. 오늘은 만리장성 가는날인데...혹시나 비가 오지는 않을까 걱정이 된다. 

 ▲ 이화원 (颐和園) 입구

이화원은 서태후의 여름 별장으로 세계문화유산 (1998년 지정)으로 지정되었으며, 북경시 서북 교외에 위치하고 있다.도심에서 약 19키로미터 거리로 청나라 때의 황실 원림과 행궁(서태후의 여름별장)이었다.이화원의 원명은 청의원이며 1764년에 건조되었으며 부지 290헥타르, 그 중 수면이 220헥타르이다.원내는 궁정구, 전산 전호구, 후산 후호구 3개 경치구로 나뉘며, 전당, 누각, 정자가 도합 3,000여칸으로 황제와 황후가 정치 활동을 하며 휴식, 유람하던 곳이다. 

 

▲ 이화원 편액

  ▲ 이화원 (和園) 전경

 ▲ 이화원 인수문

이른 아침인데도 많은 관광객들로 붐빈다. 간간이 눈발이 날리는 차가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외국인을 비롯한 중국인들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 이화원 내 수석

 이화원 인수문을 들어서니 거대한 수석이 잠시 나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 이화원 쿤밍호

이화원은 1860년 영국, 프랑스 연합군에 의해 불타버리고 1888년에 서태후가 해군 경비 500만냥 배근을 유용하여 재건,10년만에 완공, 이름을 "이화원"으로 고쳤다 한다. 

 ▲ 이화원 쿤밍호

주위 8km. 인공호인 쿤밍호[昆明湖]가 대부분을 차지하며 그 흙을 쌓아올려 만든 완서우산[萬壽山]이 북부에 있고 모든 건축물은 산 남쪽에 집중되어 있다. 이 중에서도 통칭 천간낭하(千間廊下)라고 불리는 장랑(長廊)이 눈길을 끈다. 12세기 금나라 때 지은 작은 궁전을 시초로 명조(明朝) 중엽에 만들어졌으며, 청조(淸朝)의 건륭제(乾隆帝)가 많은 전각(殿閣)을 세우고 정원을 꾸몄다. 서태후(西太后)가 살았던 별궁으로서 유명하다.  

 ▲ 이화원 쿤밍호를 배경으로

쿤밍호를 배경으로 사진한장 남긴다.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어 사진한장 찍도 쉽지않다. 조금만 지체하면 일행을 놓쳐 길잃은철 새가 되기 십상이다. 커다란 호수를 바라보면서 평지인 땅을 파 이 엄청난 호수를 만들었다 하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호수를 만들기 위헤 파낸 흑으로쌓아 이화원 동산을 만들고..얼마나 많은 백성들이 죽고 희생 되었겠는가? 중국의 항제들은 왜 이렇게 큰 별장이 필요했을까 하는 의문을 던져 보기도 한다.

 ▲ 이화원 쿤밍호 앞에서

가이드의 장황환 설명을 들으며 약 5분간 사진찍을 시간을 주지만 마땅한 곳이 없다.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곳을 틈타 사진한장 카메라에 담는다. 하나 우리 마님 눈을 감아버렸네...

▲ 이화원내 수석  

이원원 구석구석를 둘려보자먀ㅕㄴ 하루종일 걸어도 모자랄듯...날씨도 춥고 사람도 많고 해서 다 둘려보지 못하고 아쉬운 발길을 돌리며 나오다 만난 거대한 수석이다. 이상한 형태의 이 수석 아래에 보호문물이라 써 있었다. 

 ▲ 수석 

곰보처럼 홈이 패인 기이한 수석...황제 별장이였으니 이런 수석쯤이야 별거 아니겠지...

 ▲ 이화원 입구

이화원을 둘려보고 들어갔던 문을 통해 다시 나왔다.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구석구석 들러보지 못한 아쉬움을 남기고 이화원을 뒤로하고 발길을 돌린다.

 ▲ 식당건물 입구

이화원을 출발한 우리 일행은 아직 이르지만 식당으로 향한다. 아침식사를 흰죽 한그릇으로 때운 탓일까? 배가 고파온다.우리가 도착한 식당은 쇼핑물을 파는 가게를 겸한 거대한 식당이였다. 

 ▲ 식당내 글 한점

식당안으로 들어서자 먼저 눈에 뜨는 글 한점이 잠시 나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뜻은 모르겠지만 글씨체가 맘에 들었기 때문이다. 사예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그냥 지나칠수 없었다.

 ▲ 식당내부 풍경

식당 내부믄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우ㅡ리일행은 별도로 마련된 우리들만의 작은 방으로 안내되었다.

  ▲ 점심식사

역시 중국음식은 다 마찬가지 인것 같다. 니끼한 냄새는 여전하다..일부는 식사하기 힘들어 하지만 대부분 잘들 먹는다. 나 역시 지난 상해여행시 보단 맣이 좋아졌음을 알수 있었다. 먹기 힘들지만 중국 음식문화를 접하는것 또한 값진 체험이 아닐까? 

 ▲ 식사후 식당 입구에서

식당 입구에는 한국인 관광객을 위해 커피를 팔고 있었다.. 맥심 1회용 커피였다 한잔에 천원을 달라한다.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잔씩 사 마신다. 중국에에는 어디에 가도 커피 자판기를 찾아볼수가 었었다. 커피 문화가 익숙되지 않은탓도 있겠지만 서양 문화를 거부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 옥공예품 전시장

식사를 마친 일행은 중국 옥공예 전시장을 찾았다. 교포로 부터 옥에대한 상세한 설명을 들으며 안내하는대로 따라 들어갔다.정말 입이 벌어질 정도의 대단한 전시장이였다. 옥공예품 역시 상상을 초월하는 조각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옥 공예품 대부분 값 또한 상상을 초월하고 있었다. 대부분 우리돈으로 몇 백만원을 초과하는 금액이였다.

  두꺼비, 개구리, 새, 없는 모양이 없었다.이걸 다 손으로 조각한 것일까..도저히 기계로는 할수 없을것 같았다.

  군함,여헹선 등 다양한 모양도 배..옥  구석구석 미세한 손길이 닿은 작품임을 알수가 있었다.

  이게 두꺼비다..가격은 상상을 초월하고 있었다..조그마한 옥공예품 한점을 사고 싶었는데...탱자만한 크기의 장남감도 몇만원..아니 몇 십만원은 줘야 살수가 있었다.

  이 옥 공예품은 양인듯... 나의 시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이것보라..거대한 옥을 이렇게 이름답게 조각했다니 도저히 믿지지 않는 작품이다. 

  이쪽 저쪽으로 봐도 나의 발길을 머추게 하는 욕 공얘품, 작품 모두를 카메라에 담고 싶었지만 일행과의 일정 땜에.. 또는 카메라 배터리 소진이 염려되어 몇점만을 카메라에 담았다.

옥을 만져보니 얼음처럼 차가웠다..우리가 침대밑에 깔고 자는 옥 매트는 이곳을 방문하면서 모두 가짜임을 알수가 있었다.

  갖다 붙인것도 아니고..참으로 대단한 조각 솜씨가 아닐수 없다.

아름다움의 극치라 할까...그동안 인터넷 사진으로 옥공예품을 많이 접하면서 혹시 의심을 가졌는데... 내가 직접 접하고 보니 거짖이 아님을 알수 있었다.

  ▲ 만리장성 케이블카 탑승장에서

옥 공예품 전시장을 뒤로하고 우리일행은 만리장성으로 향했다..산하나 보이지 않던 북경이였는데...만리장성 가는 길목에는 험준한 산이 많이 나타났다. 진눈개비가 날리는 꼬불꼬불한 고개를 넘고..시내에서 만리장성 까지는 약 40여분 소요되었다.  

 ▲ 만리장성 케이블카

만리장성 오르는 케이블카는 6명이 탑승할수가 있었다. 케이블카 시설은 낡아보였고 타고가면서 아찔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산 곳곳에에는 제법 눈이 하얗게 쌓인 풍경이 나타난다. 3월말경 북경이 눈이오기는 아주 드물다고 한다.

 ▲ 만리장성의 인파

만리장성 /허베이 성[河北省] 북부 옌산 ...보하이 만[渤海灣]에서 중앙 아시아까지 약 6,400km(중간에 갈라져 나온 가지를 모두 합하여)에 걸쳐 동서로 뻗어 있는 성이다. 부산에서 서을까지가 약 400km밖에 안되는데..6,400km라니..상상을 초월하는 성이다.세계 불가사이한 유산으로 등재 될만한 성이다.

 ▲ 만리장성 풍경

날씨가 흐려 비가올까봐 걱정했는데..그래도 눈까지 내려 또 다른 운치를 볼수있어 다행이었다..

 ▲ 만리장성에서

사람이 많아 사진한장 찍기도 쉽지않다...사람이 뜸한 틈을타 사마눌과 기념사진 한장 남겼다.사진찍기를 좋아하는 친구가 없어 서로찍어주고 해야하는데..아쉬웠다.

▲ 만리장성 위쪽에서 바라본 풍경

현재의 만리장성은 명대 특히 그 후반기에 축조된 것으로, 동쪽은 보하이 만 연안의 산하이관[山海關]부터 중국 본토 북변을 서쪽으로 향하여 베이징[北京]과 다퉁[大同]의 북방을 경유하고, 남쪽으로 흐르는 황허 강[黃河]을 건너며, 산시 성[陝西省]의 북단을 남서로 뚫고 나와 다시 황허 강을 건너고, 실크로드 전구간의 북측을 북서쪽으로 뻗어 자위관에 다다른다.  

▲ 만리장성 관광을 마치고

만리장성 관광을  마치고 다른일행을 기다리면서 친구들과 찍은 사진이다. 복장을 얼마나 추운지 알수가 있을 것이디. 

▲ 케이블카 안에서 바라본 풍경

"하룻밤을 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는 속담의 유래"

가이드가 만리장성에 대한 장황한 설명을 늘어 놓으면서 다음과 같은 전설을 전한다.다 기억하지 못해 인터넷을 검색하여 그 내용을 소개 하면 다음과 같다.우리 속담에 하루밤을 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는 말이있다. 그 유래는 다음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흔히 '하룻밤을 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는 말은 '만난 지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깊은 인연을 맺을 수 있다' 는 뜻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원래의 어원은 전혀 다른 뜻으로 시작되었다.  

 

중국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쌓을 계획을 세우고 기술자와 인부들을 모은 후에 대역사를 시작했을 때다. 어느 젊은 남녀가 결혼하여 신혼생활 한 달 여 만에 남편이 만리장성을 쌓는 부역장에 징용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일단 징용이 되면 그 성 쌓는 일이 언제 끝날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야말로 죽은 목숨이나 다를 바 없었습니다. 안부 정도는 인편을 통해서 알 수야 있었겠지만, 부역장에 한 번 들어가면 공사가 끝나기 전에는 나올 수 없기 때문에 그 신혼부부는 생이별을 하게 되었으며, 아름다운 부인은 아직 아이도 없는 터이라 혼자서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남편을 부역장에 보낸 여인이 외롭게 살고 있는 외딴 집에 어느 날 지나가던 나그네가 찾아 들었습니다.  남편의 나이쯤 되어 보이는 사내 한사람이 싸릿문을 들어서며 "갈 길은 먼데 날은 이미 저물었고 이 근처에 인가라고는 이 집밖에 없습니다. 헛간이라도 좋으니 하룻밤만 묵어가게 해 주십시오" 하고 정중하게 간청을 했습니다. 여인네가 혼자 살기 때문에 과객을 받을 수가 없다고 거절할 수가 없었던 이유는 주변에는 산세가 험하고 인가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 바느질을 하고 있는 여인에게 사내가 말을 걸었습니다. "보아하니 외딴 집에 혼자 살고 있는 듯 한데 사연이 있나요?" 라고 물었습니다. 여인은 숨길 것도 없어서, 남편이 부역을 가게 된 사정을 말해 주었습니다. 밤이 깊어가자 사내는 노골적인 수작을 걸었고, 쉽사리 허락하지 않는 여인과 실랑이가 거듭되자 더욱 안달이 났습니다.  "이렇게 살다가 죽는다면 너무 허무하지 않습니까? 돌아올 수도 없는 남편을 생각해서 그대가 정조를 지킨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내가 당신의 평생을 책임질 테니 나와 함께 멀리 도망가서 행복하게 삽시다." 사내는 별별 수단으로 여인을 꼬셨습니다. 하지만 여인은 냉랭했습니다. 사내는 그럴수록 저돌적으로 달려 들었고, 여인의 판단은 깊은 야밤에 인적이 없는 외딴 집에서 절개를 지키겠다고 저항한대도 소용없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고. 일단 사내의 뜻을 받아들여 몸을 허락하겠다고 말한 뒤, 한 가지 부탁을 들어달라고 조건을 걸었습니다.

 

귀가 번쩍 뜨인 사내는 어떤 부탁이라도 다 들어줄 테니 말해 보라고 했습니다. 여인은 "결혼식을 올리고 잠시라도 함께 산 부부간의 의리가 있으니 그냥 당신을 따라나설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그러니 제가 새로 지은 남편의 옷을 한 벌 싸 드릴 테니 날이 밝는대로 제 남편을 찾아가서 갈아 입을 수 있도록 전해 주시고 그 증표로 글 한 장만 받아 달라는 부탁입니다.  어차피 살아서 만나기 힘든 남편에게 수의를 마련해주는 기분으로 옷이라도 한 벌 지어 입히고 나면 당신을 따라 나선다고 해도 마음이 좀 홀가분 할 것 같습니다. 당신이 제 심부름을 마치고 돌아 오시면 저는 평생을 당신을 의지하고 살 것입니다. 그 약속을 먼저 해 주신다면 제 몸을 허락하겠습니다." 여인의 말을 듣고 보니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고. 마음씨 또한 가상 한지라 좋은 여인을 얻게 되었노라 쾌재를 부리며 그렇게 하겠다고 하고 '이게 웬 떡이냐'''' 하는 심정으로 덤벼들어 자신의 욕정을 채운 후 골아 떨어졌습니다.

 

아침이 되어 흔드는 기척에 사내는 단잠을 깨었습니다. 밝은 아침 햇살에 여인을 보니, 양귀비와 같이 절세의 미색이었습니다. 사내는 저런 미인과 평생을 같이 살 수 있다는 황홀감에 빠져서 간밤의 피로도 잊고 벌떡 일어나서 어제의 약속을 이행하기 위하여 길 떠날 차비를 했습니다.  여인은 사내가 보는 앞에서 장롱 속의 새 옷 한 벌을 꺼내 보자기에 싸더니 괴나리 봇짐에 챙겨 주는 것이었습니다. 사내는 잠시라도 떨어지기 싫었지만 빨리 심부름을 마치고 와서 평생을 해로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부지런히 걸었습니다. 드디어 부역장에 도착한 그는 감독관에게 면회를 신청하였습니다. 사정을 들은 감독관은 인원을 채워야 하는 규정때문에 사내에게 작업복을 갈아 입혀 대신 들어가게 하고 남편에게 옷 보따리를 건네 주었습니다. 남편은 옷을 갈아 입으려고 보자기를 펼치다가 옷 속에서 편지를 발견했습니다. "당신의 아내입니다. 당신을 공사장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 이 옷을 전한 남자와 하룻밤을 지냈습니다. 이런 연유로 외간 남자와 하룻밤 같이 자게 된 것을 두고 평생 허물하지 않겠다는 각오가 서시면 이 옷을 갈아 입는 즉시 집으로 돌아오시고 그럴 마음이 없거나 허물을 탓하시려거든 그 남자와 교대해서 공사장 안으로 다시 들어가십시오." 남편은 옷을 갈아 입고 그 길로 아내에게 달려와서 아들 딸 낳고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랍니다.  이거야말로 하룻밤을 자고 만리장성을 쌓은 것이 아닙니까? 하고 많은 인간사에서 이처럼 사랑하는 이를 위해 만리장성을 쌓아준다면야 한번의 허물쯤이야 문제가 되겠습니까? 그러나 어리석은 그 사내 처럼 잠시의 정욕에 눈이 어두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남의 만리장성을 쌓아주고 있는 것이나 아닌지?

 ▲ 케이블카 안에서 바라본 풍경

만리장성 관광을 마치고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가다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 황제 13릉 입구

만리장성 관광을 마친 우리일행은 황제 13릉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사진은 13릉입구 출입 문이다.

 ▲ 황제13를에 들어서며

빠따링에 이어진 산기슭의 들판에 숨어 있는 평원에 명대의 황제 13릉이 있는곳이다. 헌(獻), 경(景), 유(裕), 무(茂), 태(泰), 강(康), 영(永), 소(昭), 정(定), 장(長), 경(慶), 사(思), 덕(德)릉의 13릉으로 전후 2백여 년에 걸친 명대 13명의 황제가 각각 지하에 잠들어 있다.

 ▲ 황제13릉 특이한 나무

릉 정원에 들어서자 이상하게 생긴 나무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나무원통에 접을 붙혔다 한다. 신기하여 한컷했지만 이름을 까먹고 말았다.

 ▲ 13릉 설명

13릉 성명을 상세하게 적어놓은 안내판이다. 한국 관광객이 많이찾아서일까? 유일하게 한글로 안내되어 있어 기분이 좋았다.

 ▲ 정릉설명

정릉(定陵)은 장릉 다음으로 큰 규모이며 제13대 신종만력제와 그의 두 명의 황후가 잠들어 있는 능이다. 정릉은 지하궁전도 발굴되었는데 이 능은 6년의 세월과 국비 2년분의 투자로 만들어졌다. 능 안은 지하로 20m 정도 깊고, 최대폭 47m, 안길이 88m의 규모이다. 정릉은 1957년에 발굴되었다 한다.

 ▲ 황제13릉내 향나무 숲

정원에는 향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다.

  ▲ 황제13릉에도 봄은

릉 정원에도 봄은 찾아온듯...노란 개나리가 활짝피어 우리일행을 반긴다. 

  ▲ 황제 지하릉 내부

황제의 무덤은 지하 계단을 띠라 지하로 한참을 내려가야 나타났다. 황제가 앉았던 의자 하며 유물들이 들도 있었다.

  ▲ 황제13릉 관광을 마치고

지하 황제 무덤을 관광하고 지하에서 나오는 우리 일행들이다.

 

 ▲ 황제13릉 내 건물

릉으로 향하는 문이다. 중국의 모든 건물들은  붉은색 아니면 황색이였다.  

  ▲ 황제13릉 관광 기념

향나무로 둘려쌓인 릉을 빠져나와 단체로 기념사진 한장 카메라에 담았다.

 ▲ 식당겸 발마사지장 건물입구

13릉 관광을 마치고 발마사지 장으로 향했다.눈발도 그쳤고 서쪽하늘에 황혼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또한 이 건물이 발마사지를 겸한 식당 이다.  

  ▲ 발마사지 장면

발마시지 장면이다. 여자들은 어린 소년이..남자들은 어린소녀 들이 앉아 따끈한 약물을 데워 나무통에 발을 10여분 담그게 하고 발을맛자지 한다.처음에는 어깨 등을 두드려 피로를 풀어주고 본격적인 발마시지에 들어간다. 사진은 나를 맛서지하고 있는 소녀의 모습이다.마사지도중 각질이 심하다며 깍을것을 요구한다. 20,000원이라 했다 하나둘 신청하더니 모두 신청한다.

이것 또한 상술인것 같았다. 

 ▲ 저녁식사

발마사지를 마친 우리는 바로 옆에 식당이 있었다 그곳에서 샤브샤브식으로 저녁을 맛나게 먹었다.  

 중국술 빼갈 두어병 시켜 한잔식 곁들이니 하루의 피로가 싹 가시는듯 기분이 날것 같이 좋았다..60도의 독한 술이지만 향은 끝내줬다..작은잔으로 두어잔 들이키니 금새 찡해옴을 느낄수 있었다.  

 ▲ 숙소에서

이틀째의 일정을 마치고 숙소에 들어왔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싱글방으로 모여 소주,맥주 한잔씩 나눈다.맥주는 현지 가이드가 10여병 사가지고 들어왔다. 고마웠다. 맥주한병에 우리돈으로 2,000원 이였고 맥주맛은 우리맥주와 별 다를게 없는듯 했다

 ▲ 숙소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로 밤 새는줄도 모르고 새벽2시, 아니 3시까지 이야기 꽂을 피우다 잠자리에 들면서 또 하루의 일정을 마무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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