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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27일--개강식/한국의 역사와 가치관

☞나의 포토갤러리/창원 박물대학

by 산과벗 2009. 9. 4.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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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박물대학 수강일지

(제37기)

 

8월27일(목)

◯ 개강식 : 2009년 8월 27일(목) 14:00-

◯ 장 소 : 교원연합회 강당

◯ 등록인원 : 130명

 

▶ 오늘은 제37기 창원박물대학 개강식이 있는 날이다.

14:00부터 개강식이 시작하지만 13:20분경 개강식 장소인 교원연합회 강당에 도착했다. 강당 로비에는 먼저 도착한 많은 수강생들이 삼삼오오 짝을지어 박물대학에서 준비한 차를 마시며 정담을 나누고 있었다. 나는 출석 체크를 마친후 교재인듯한 한국문화의 이해와 사상이란 책 한권과 교과 일정표를 받아들고 강당에 입실했다.

 

▶ 내가 아는 지인도 먼저 도착하여 자리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멀리서 눈인사를 나누고 맨 마지막 줄에 자리했다.여자들이 대부분이다. 남자는 내 나이 정도 아니면 그 이상으로 보일듯한 남자들도 20-30여명 되는듯했다.

 

장년..아니 황혼기에 접어든 느즈막한 나이에 다시 학생의 위치로 돌아가 공부를 시작한다는 것이 다소 나설면서도 조금은 설레는 마음 숨길수가 없었다.

▶ 박물대학 개강과 관련한 인사들의 소개와 함께 간단한 개강식 행사를 가졌다.

 

사진 : 개강식 장면

 

◯ 강의 : 2009년 8월27일(목) 14:30-16:20

◯ 주제 : 한국의 역사의식과 가치관

◯ 강사 : 박동백 박사 : 창원박물대학장/창원문화원장

◯ 강의내용

 

▶ 인사말

- 박동백 창원문화원장의 한국의 역사 의식과 가치관에 대한 강의가 시작.

- 향토 문화를 이해하는 내용과 일제에 의해 왜곡된 역사가 광복후 아직까지도

복원되지 못한 안타까운 현실을 직시.

-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고 가치판단에 도움을 주고자 국내 우수 교수님을 초빙.

- 강의와 현장 답사를 통해 우리 문화의 우수성 재인식.

 

▶ 설문지를 통한 역사의식

- 우리역사는 신라의 화랑도 정신과 고려의 자비정신,조선의 선비정신으로

우리나라의 전통을 이어왔으며,

- 중국과 국경을 이루며 대치하고 일본의 강제 한일합방 등 억압에도 굴하지

않고,독자적 문화소유.

- 우리민족은 전쟁을 많아한 나라가 아니며,가난한 나라도 아니였으며,우리

시대의 사람들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고려장 제도 또한 사실이 아니였다는

사실 확인.

 

▶ 축성대감 최윤덕 장군

- 조선 세종대왕 시절 무관으로써 좌의정에 오른 장상(將相).

- 고려 우왕2년(1376)에 창원군 북면 내곡리에서 출생하여,

- 14세에 그의 기질이 알려져 19세에 무과에 급제하고,

- 세종 원년(1419) 삼군도절제사로 대마도 정벌.

- 세종 15년(1433) 야인 이만주가 침입하자 평안도 도절제사가 되어 이를 격퇴.

※창원의 인물 최윤덕 장군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남다른 감회와 슴뿌듯한

자부심을 느꼈다. 장군이 바로 내고향 북면 출신이였기 때문이다.

우리 동네에서 700여m 떨어진 대산리 사리실 마을 뒤산에 장군의 묘가 있다.

세종대왕은 무인이지만 나라에 큰공을 세운 최윤덕 장군을 우의정에 이어

좌의정까지 등용했으니 최윤덕 장군이 어떤 인물이였는지는 직잠하고도 남을

일이였다.

 

▶ 왜곡된 역사의식

- 조선시대의 왕의 명칭에 대한 설명. 조(祖),종(宗),군(君)은 과연 무엇을 의미

하는 것이지를 이번 강의를 통해 확실히 인지.

- 그 동안 내 짧은 지식인지는 모르지만 태조(太祖),세종(世宗),세조(世祖),

연산군(燕山君),선조(宣祖) 등의 임금에 대한 호칭에 대해...

- 태조는 나라를 세웠으니 (祖)로 하고 그 다음은 모두 (宗)으로 부르는데..

왜 세조(世祖),선조(宣祖)등의 이름이 등장했는지? 또한 연산군(燕山君),

광해군(光海君) 등은 왜 군으로 이름했는지..궁금증 해소.

- 나라를 새로세운 왕은 조(祖)를 붙였고,아들이 왕의자리를 물려받은 경우는

종(宗), 왕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 왕은 군(君)을 붙였고,

- 그중 조카인 단종(端宗)을 몰아내고 왕에오른 수양대군(世祖)은 단종보다 윗

사람(삼촌)이기 때문에 조(祖)를 붙여주었고, 선조(宣祖) 또한 임진왜란을

극복하고 다시 나라를 세웠다 하여 (祖)를 붙였다는 였다는 내용과.

왕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 연산군과 광해군은 (君)이란 이름을 붙임.

 

▶ 순장(殉葬/장례)제도

- 지배층에 속한 인물을 장사지낼 때 주변 사람들을 함께 묻는 것을 순장.

순사(殉死)·순송(殉送)이라고도 함.자진해서 죽는 경우도 있었으나 강제로 묻히는

것이 대부분이었고, 산 채로 묻는 일도 있었으나 죽여서 묻는 것이 일반적임.

- 순장은 사회가 지배층과 피지배층으로 나뉜 뒤 고대 초기에 널리 유행한 장례풍속

으로, 고대 오리엔트 지방이나 초기 그리스 사회 및 중국·일본을 비롯해 우리나라

에서도 행해짐.

- 중국의 경우는 주로 은(殷)나라 때 성행하기 시작하여 수십 명에서 수백 명을

순장시킨 무덤들이 다수 발견.

- 우리나라의 경우 초기 고조선과 관련된 유적인 강상무덤과 누상무덤에서 각각 100

여 명이 넘는 순장사실을 확인,

- 신라에서는 502년(신라 지증왕(智證王:22대)에 금지되기 전까지는 국왕이 죽으면

남녀 각 5명씩 순장했음이 확인되어 우리 고대사회에서도 널리 행해지던 장례풍속

이었음을 알수 있음.

- 함안 가야 고분군에서 무덤속에서 칼과 5명의 유골이 함께 묻혀있는 순장발견.

※우리나라 역사는 선조들의 좋은면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나쁜점만 부각된 된것이

사실 이란다.주인이 죽으면 그를 따르던 종들도 죽음을 당해 함께 무덤속에 들어

가야 했던 순장제도...그 얼마나 슬픈 일인가?

순장제도를 폐지한 신라 지증왕/22대(502년)은 개혁의 큰업적이 아닐수 없다.

하지만 우리 역사는 아직도 지증왕의 업적을 부각시키는 대목은 어디에도 찿아

볼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는 말로 강의는 끝났다.

우리 향토문화와 역사의 현주소를 다시한번 되돌아 보는 좋은 계기가 된 뜻깊은

강의로 박물대학 박동백 원장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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