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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각석(刻石),반구대 암각화(盤龜臺 岩刻畵) 답사 여행기(09.10.23)

☞나의 포토갤러리/나의 旅行記

by 산과벗 2009. 10. 27.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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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각석(刻石),반구대 암각화(盤龜臺 岩刻畵) 답사

('09.10.23) 

 

각석,반구대 암각화가 뭘까?  바위에 새긴 그림을 말할까? 이런저런 궁금증과 함께 ㅅ조금은 설레는 마음안고 창원을 출발했다.

관광버스 3대에 편승, 박물대생들을 태운 버스는 가을의 향취가 물씬 묻어나는 깊어가는 황금들녁을 가르며

쉬임없이 고속도로를 질주한다.

언양 IC를 빠져나와 가을걷이가 한창인 꼬불꼬불한 시골길을 달린끝에 각석이 위치한 천전리에 도착했다.  

  ↑ 석각 암각화 답사지역 지도

 인터넷에서 답사지역 지도를 하나 다운받아 우리가 찾아갔던 석각,암각화 지역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나름대로 편집한 지도로,  계곡물은 대곡천을 따라 굽이굽이 흘려 사연호에 잠기는 지역임을 알수 있었다.

 

 ↑ 천전리 각석(刻石) 위 언덕길

버스에서 내리자 시원한 물줄기를 쏱아내는 시원한 대곡을 만났다.  세면으로 만든 다리하나를 건너 각석이 위치한 곳으로

발길을 옮기고 있는 일행들이다. 

 

 ↑ 천전리 각석(刻石) / 국보  제147호

언덕을 오르는가 싶더니 바로 좌로 내리서면서 각석을 만났다.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각석(刻石) 태화강 물줄기인 대곡천 중류의 기슭 암벽에 새겨진 그림과 글씨였다.

아래 ·위 2단으로 나누어 서로 다른 내용이 다른 기법으로 표현되어 있었으며, 전체적으로 조각이 가득한 바위였다.

각화 곳곳에 각석이 깨어져 떨어져 나간 나간 흔적들이 오랜 인고의 세월을 말해주고 있었다.

 

이 각석은 국보제147호로 울산시 울주군 두동면 천전리 산210번지 소재한 "천전리 각석" (높이 9.5m, 높이 2.7m)

윗면은 쪼아서 새기는 기법으로 기하학적인 무늬와 동물, 추상적인 인물등이 조각되어 있으며,

아랫단은 선을 그어 새긴 그림과 글씨가 뒤섞여 있으며, 기마행렬도, 동물, 용 등 다양한 내용이 표현되어 있다.

선사시대부터 신라시대까지의 생활모습을 담고 있는 천전리각석은 암질이 자색쉐일(shale)로

바위그림을 새기기 매우 적합한 재질로 되어있다.

 ↑ 각석(刻石)에 대한 설명을 듣고있는 박물대생

각석에 대한 창원문화원장님의 끝없는 설명이 이어진다.

해박한 지식과 식견을 두루 갖추고 지근한 나이에도 불구하고 지칠줄 모르는 체력과

경상도 특유의 구수한 사투리가 고향 형님같은 정겨움과 구수함이 곳곳에서 묻어난다.

원장 님의 설명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암벽에는 쪼아서 새기는 기법으로 기하학적 무늬와 동물, 추상화된 인물 등이 조각되어 있고.

사실성이 떨어지는 단순화된 형태로 중앙부의 태양을 상징하는 듯한 원을 중심으로, 양 옆에 네 마리의 사슴이

뛰어가는 모습과  맨 왼쪽의 반인반수(半人半獸:머리는 사람, 몸은 동물인 형상)상도 눈에 들어오고

표현이 소박하면서도 상징성을 갖고 있는 듯한 이 그림들은 청동기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보여진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아랫단은 선을 그어 새긴 그림과 글씨가 뒤섞여 있는데, 기마행렬도, 동물, 용, 배를 그린 그림 등 다양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배그림은 당시 신라인의 해상활동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고 한다. 
 

↑ 각석(刻石)의 문양

 상하 2단으로 나뉘어 상단은 기하학 문양과 인물상, 동물상이 있고 하단은 신라시대 선각 그림과 명문이 새겨져 있으며,

신라 화랑들의 수련장으로 추정되어 이 시대 연구 자료로서 매우 중요한 가치로 평가받고 있으며,

신라의 화랑과 낭도들이 전국을 순례하면서 이러한 곳에 들러 심신을 단련하던 곳이 아닌가 생각된다.
 

 ↑ 각석(刻石)의 하단 글씨

아랫단에는 글자는 800자가 넘는데 왕과 왕비가 이 곳에 다녀간 것을 기념하는 내용으로,

법흥왕대에 두 차례에 걸쳐 새겨진 것으로 추정되며, 내용 중에는 관직명이나 6부체제에 관한 언급이 있어

 6세기경의 신라사회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여러 사람이 이루어 놓은 작품으로, 선사시대부터 신라시대까지의 생활, 사상 등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어느 특정 시대를 대표한다기보다 여러 시대의 모습을 담고 있어 더욱 의미가 깊은 유적이라 한다.

 

 ↑ 천전리 공룡발자국 화석1/문화재자료 제6호(울주군)

우리 일행은 원장님이 각석에 대한 긴 설명을 듣고 다시 계곡을 건너 공룡발자국 화석방향으로 발길을 옮겼다.

모든 일행은 공룡발자국 화석을 보지않고 그냥 지나쳐 등산로 같은 길을 따라 갔지만 나는 공룡발자국 화석을 자세히

관찰하고 사진도 몇컷 담아왔다. 

이곳의 공룡발자국 화석은 약 1억년전 전기 백악기 시대에 서식하던 중대형 공룡들의 발자국으로서 귀중한 자연사 자료라 한다.

 

  ↑ 천전리 공룡발자국 화석2 

공룡이 걸어간 발자국 길은 보이나 이들의 평행한 행렬이 없는 것으로 보아 많은 공룡들이 일정한 방향을 향해 진행한 것이

아니라 공룡공원을 이리저리로 평화롭게 배회했던 생태를 시사해 준다 하겠다.

 

  ↑ 천전리 공룡발자국 화석 안내판 

당시 공룡들은 아열대 기후아래 우기와 건기가 교호하고 열대 무역풍이 영향을 미치는 사반나 지역의 하천평야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천전리 발자국화석은 사연댐으로 흘러가는 하천의 동측에 면적 약 1,750㎡암반의 단일 노두에는 대형초식 공룡인 한외룡(울트라사우루스)을 비롯한 용각룡 10필의 족인과 중형 초식공룡인 조각류 이구아나룡에 속하는

고성룡(고성고사우루스) 1필의 족인(1개)이 함께 200여개 산출된다.

 

 ↑ 하천 건너편애서 바라본 각석(刻石) 

공룡발자국 화석이 있는 곳에서 바라본 조금전 우리가 들렸던 암벽에 새긴 각석의 모습이다.

 

 ↑ 대곡천의 기암석(奇岩石)

좌측으로 공룡발자국 화석 암반과 우측으로는 각석이란 문화재를 휘감고 기암층 사이로 야햔 포말을 이루며

유유히 흐르고 있는 대곡천의 풍경이다.

 

 ↑ 대곡천을 감싸고 있는 산하(山下)

 공룡발자국 화석을 뒤로하고 대곡천을 따라 발길을 옮기며 우측으로 잠시 시선을 던져본다.

암반위로 나무가지마다  가을이 살포시 내려앉고 있는 풍경이 펼쳐진다.

 

 ↑ 대곡천 따라/ 암각화(岩刻畵) 전시관(展示館)을 향해

 암각화 전시관을 향해 평탄한 오솔길을 따라 걷고있는 일행들의 모습은 여행탓인가?

한발짝 한발짝 내딛는 발길에 여유로움이 묻어난다. 

 

 ↑ 암각화(岩刻畵) 전시관(展示館)입구 다리의 화사한 꽃

각석을 출발한지 약 20여분쯤 걸렸을까? 암각화전시관 입구에 도착했다. 제일먼저 다리 양 가이드라인 위의 

이름모를 화사한 빨간꽃이 우리일행을 반겨준다.

 

 ↑ 암각화(岩刻畵) 전시관(展示館)입구 표지대

 입구에는 울산 암각화전시관이란 커다란 입간판이 우뚝 서 있는 모습에서 많은 문화재 관람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짐작케 했다.

 

 ↑ 암각화(岩刻畵) 전시관(展示館)의 모습

 입구의 울산 암각화전시관 입간판이 있는 곳에서 바라본 전시관이 모습이다.

평일이라 그런지 몇멸 그룹의 학생들이 눈에띌뿐 대체로 한산한 분위기에 작은 분수만이 힘차게 물을 솟구치고 있었다.

 

 ↑ 암각화(岩刻畵) 전시관(展示館) 앞에서/점심

  전시관 앞 잔디밭에서 점심을 먹기로 한다, 모두들 삼삼오오 모여 앉아 도시락을 플어혜치고 점심을 맛나게 나눠 먹는다.

역시 야외에서 먹는 밥맛은 일품이다.

 

 ↑ 암각화(岩刻畵) 전시관(展示館) 입구

점심을 먹고나서 우리 일행은 삼삼오오 그룹을 이뤄 자유롭게 암각화 전시관 내부를 관람했다.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각석 등 국보급 암각화 바위 그림이 있는 울산암각화전시관은 2008년 5월 30일 개관하였다.

국 내 유일의 암각화 전문전시관인 울산암각화전시관은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각석 실물모형 전시,

국내외 암각화 사례전시, 선사동물 찾기, 암각화 체험 및 학습 공간 등 선사문화 체험공간으로 꾸며져 있어 선사예술을

보여주는 한국대표 세계적 관광명소로 주목받는다고 관계자는 설명한다.

이 전시관은 행정구역상으로는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동면 천전리 333-1번지라 한다.

 

 ↑ 암각화(岩刻畵) 전시관(展示館)내부 출입구

전시관 안에 들어서자 안내직원이 한명 앉아있었고 우측으로는 기념품 판매 코너도 자리하고 있었다.

사진은 안쪽으로 들어서는 입구에 세워진 영상물이다.

 

 ↑ 전시관(展示館)의 암각화(岩刻畵) 모형 

울산암각화전시관은 매주 월요일과 설날, 추석을 제외하고는 연중 개관하고 있어 학생들과 시민들이 언제든지 방문해

선사문화 유적을 감상할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고 한다. 

 

 

 

 

 

 

 

↑ 암각화(岩刻畵) 전시물(展示物) 

 

1층에서 반구대암각화· 천전리 각석 실물모형 전시, 각종 문양에 대한 입체적 영상 해설 등의 관람을 헸다. 
                2층에는 올라  선사사시대 생활모습, 선사마을 생활, 선사미술실 등 체험공간, 선사시대 사냥체험, 포토존,

선사인과의 만남 등으로 구성돼 있었다.

 

 

 

 

 

 

 


 

 

 

 

 ↑ 암각화(岩刻畵) 전시물(展示物)1

울산암각화전시관에서 활동하고 있는 직원들은 "이곳 전시관이 개관한지는 얼마되지 않았지만

전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며 "앞으로 명실상부한 울산의 대표 문화명소 뿐 아니라 세계적인 선사문화 관광지로

명성을 떨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한다.  

  

 ↑ 암각화(岩刻畵) 전시관(展示館) 앞에서

 암각화 전시관 관람을 마치고 나와 전시관 앞에서 단체로 기념촬영이 있었다.

이 사진은 정면에서 촬영하는 사이 옆쪽에서 그냥 카메라 셔터를 눌려 담은 사진으로 옆모습만 나왔다.

 

 ↑ 암각화(岩刻畵) 전시관(展示館)앞 풍경

 반구대 암각화를 보기위해 전시관을 뒤로하고 전시관 입구 다리위에서 바라본 대곡천의 모습...

화사한 꽃과 가을옷을 갈이입은 단풍이 굽이도는 계곡과 어울린 한폭의 그림같은 풍경이다.

 

 ↑  암각화(岩刻畵) 전시관(展示館)앞 다리 꽃길

전시관 앞 꽃길 다리를 거너고 있는 일행들이다. 

 

 ↑ 대곡천과 기암 풍경1

전시관을 출발, 약 5분쯤 지났을까? 굽이도는 대곡천을 병풍처럼 드리워진 기압벽 위로 울긋불긋 단풍이 물들어가는

풍경이 나의 시선을 사로잡고 말았다. 

 

 ↑ 대곡천과 기암 풍경2

 병풍처럼 둘려쳐진 기암벽 사이로 단풍이 곱게 물들고 잔잔히 흐르는 호수와 어울려 한폭의 동양화를 그려내고 있었다.

자연이 아니고서는 감히 그 누구도 흉내낼수 없는 아름다운 신의 걸작품이였다. 

 

  ↑ 기암풍경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는 일행들

이 아름다운 기암절벽을 바라보며 장황한 설명을 쏱아내는 원장님!!

이곳이 바로 고려말의 충신 정몽주가 귀향살이한 곳이라 한 대목에서 나는 다시한번 바라보며 답사여행의 보람을 느낀다.

 

 ↑ 집청정 앞 계곡풍경

기암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집청정을 지나 우측으로 호수를 끼고 있는 길을 따라 가면서

아름다운 풍경에 다시한번 감탄사를 던진다.

 

 ↑ 사연호의 풍경

대곡천을 따라 흘러가던 물은 사연호에 닿으면서 하천이란 이름은 지우고 잔잔한 호수로 변하면서

 이곳에서 부터 사연호가 시작된다.  이 물은 결국 울산 태화강으로 흘려 동해로 빠져들어 갈 것이다.

 

 ↑ 사연호와 기암풍경

 대곡천을 휘감고 있는 사연호가 시작되는 커브길에서 바라본 집청정 앞 계곡 풍경이다.  

 

  ↑ 반고서원 유허비(盤皐書院 遺墟碑) /시도유형문화재 제13호 (울주군)  

사진 앞쪽에 보이는 정자각이 바로  반고서원 유허비(盤皐書院 遺墟碑) 이다.

유허비란 한 인물의 옛 자취를 밝혀 후세에 알리고자 세우는 비석으로, 이 비는 고려 말 충신

포은 정몽주(1337~1392) 선생의 학덕을 기리고 있다.
포은 선생은 고려 우왕 2년(1376) 성균관 대사성의 벼슬에 있으면서 중국 명나라를 배척하고 원나라와 친하게

지내려는 친원배명 외교정책에 반대하다가 이곳에서 1년가까이 귀양살이를 하였다.

그 동안 반구대에 올라 "중양절감회"라는 시를 짓는 등 많은 자취를 남겼다.

 

詩題 ; 重陽節 感懷[중양절 감회]

월 구일의 감회

 

節序重陽亦暑消[절서중양역서소]

중양의 절서가되니 역시 더위는 사라지고

 

天高馬膩冷霜朝[천고마니냉상조]

하늘 높고 말 살쪄 서리내린 아침은 차네.

 

黍禾嚲嚲昇祥旭[서화타타승상욱]

곡식은 익어 늘어졌는데 좋은 아침해 뜨고

 

鴻雁嗈嗈聽遠霄[홍안옹옹청원소]

기러기 짝지어 우는 소리 멀리서 들리네.

 

國泰民安時絶好[국태민안시절호]

국태 민안하니 때는 더할나위 없이 좋고

 

風調雨順歲豊饒[풍조우순세풍요]

풍조 우순하니 해는 풍년들어 넉넉하네.

 

重陽把酒無量感[중양파주무량감]

중양절에 술잔드니 더없이 좋은 감정이라

 

擊壤歌呼紫陌遙[격양가호자맥요]

도성의 길 멀리서 풍년가 노래 부르도다.

 

그 후 지역인들은 선생을 추모하여 반구대를 "포은대"라 명명하기로 하였다.

↑ 반고서원 유허비(盤皐書院 遺墟碑) 설명판

숙종 38년(1712) 언양지역 유생들이 포은 정몽주, 회재 이언적, 한강 정구 세 분을 추앙하여 반고서원을 세우고 제서하였다.

그러나 고종 8년(1871) 흥선대원군의 명으로 서원은 문을 닫게 되었다.

그 후 지역 유림들이 포은대영모비(1885), 포은실록대비(1890), 반고서원유허비실기(1901)

3기의 비석을 차례로 세웠으며, 1965년 현위치로 이전하였다.

 

 ↑ 호젖한 대나무길

  우측으로 서연호를 끼고 나중에 되돌아와 뒤풀이 동동주 한잔할 가든을 지나 대나무 오솔길을 따라

 반구대 암각화가 있는 곳을 향해 우리일행들의 발길은 계속된다.

 

 ↑ 곱게물든 단풍

  반구대 암각화가 있는 곳으로 가는 길목엔 곱게물든 예쁜 단풍나무 하나가 온몸에 붉은옷을 걸치고 우리를 반긴다.

 

 ↑ 반구대 암각화(盤龜臺岩刻畵) / 국보  제285호

 울산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산234-1

암각화 전시관을 출발한지 약 30여분이 소요되었을까?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에 도착했다.

암각화는 높이 3m, 너비 10m의 ‘ㄱ’자 모양으로 꺾인 절벽암반에 여러 가지 모양을 새긴 바위그림이다.
바위그림을 암각화라고도 하는데,
암각화란 선사인들이 자신의 바램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커다란 바위 등 성스러운 장소에 새긴 그림을 말한다.
전세계적으로 암각화는 북방문화권과 관련된 유적으로 우리민족의 기원과 이동을 알려주는 자료이다.

  ↑ 반구대 암각화(盤龜臺岩刻畵) 설명문

 위 사진 아레에 붙어있는 반구대 암각화에 대한 상세한 설명문이다.

 

  ↑ 반구대 암각화(盤龜臺岩刻畵) 현장 
1965년 완공된 사연댐으로 인해 현재 물 속에 잠겨있는 상태로 바위에는 육지동물과 바다고기,

사냥하는 장면 등 총 75종 200여점의 그림이 새겨져 있다. 육지동물은 호랑이, 멧돼지, 사슴 45점 등이

묘사되어 있는데, 호랑이는 함정에 빠진 모습과 새끼를 밴 호랑이의 모습 등으로 표현되어 있다. 멧돼지는

교미하는 모습을 묘사하였고,

사슴은 새끼를 거느리거나 밴 모습 등으로 표현하였다. 바다고기는 작살 맞은 고래, 새끼를 배거나 데리고

다니는 고래의 모습 등으로 표현하였다. 사냥하는 장면은 탈을 쓴 무당, 짐승을 사냥하는 사냥꾼,

 배를 타고 고래를 잡는 어부 등의 모습을 묘사하였으며, 그물이나 배의 모습도 표현하였다.

이러한 모습은 선사인들의 사냥활동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길 기원하며, 사냥감이 풍성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바위에 새긴 것이다.

↑ 반구대 암각화(盤龜臺岩刻畵)에 대한 설명을 듣고있는 일행들

일행들에게 반구내 암각화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는 창원문화원징님 이시다.

조각기로 쪼아 윤곽선을 만들거나 전체를 떼어낸 기법, 쪼아낸 윤곽선을 갈아내는 기법의 사용으로 보아

신석기말에서 청동기시대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선과 점을 이용하여 동물과 사냥장면을 생명력있게

표현하고 사물의 특징을 실감나게 묘사한 미술작품으로 사냥미술인 동시에 종교미술로서

선사시대 사람의 생활과 풍습을 알 수 있는 최고 걸작품으로 평가된다.

전체 화면에는 고래, 물개, 거북 등 바다동물과 호랑이,사슴,염소 등 육지동물 그리고 탈을쓴 무당,사냥꾼,배를

타고있는 어부, 목책,그물 등 다양한 종류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수렵과 어로를 위주로 한 당시의 생활풍속을 알려주는 가장 귀중한 선사시대 문화유산으로 한 화면에 200여점에

달하는 다양한 종류의 물상들이 새겨져 있는 것은 세계적으로 매우 드문 예로서

고고학, 미술사 연구에도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소중한 문화재가 물에 잠겨 안타깝지만 오히려 헤손되지 않고 오래도록 보존하는 한 벙법일수도 

있다는 점에서 어쩌면 다행이란 생각도 든다고 말한다.

 

 ↑ 억새와 암각화(岩刻畵)

 물에잠긴 반구대 암각화.. 바람결에 하늘거리는 은빛 억새와 어울려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 사연호와 기암층 

반구대 암각화 답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좌측으로 내리서 잔잔한 사연호 따라 층층이 기암벽을 이루고 있는

풍경이 아름다워 카메라에 담았다.  

 

 ↑ 사연호와 가든 

사연호에서 바라본 우리가 머물 가든의 풍경이다...잔잔한 호수를 끼고 다소곳 앉아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다.

 

 ↑ 가든에서 

가든에는 먼저온 일행들이 벌써 자리를 하고 도토리묵과 붙임개등 놓여있고 동동주 사발이 배달되고 있었다.

 

 ↑ 회장님 인사말

 회장님의 인사말이  끝나고 동동주 한잔씩 주고 받으며 정을 나누면서...

서먹서먹한 감정도 사라지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정겨움이 야기저기서 묻어난다.

 

 ↑ 경청하는 일행들

 동동주 한잔에 서로 정담을 나누며 있는 37기 동기생들이다.

 

 ↑ 동별 장기자랑 

분위기가 무르익어가자 동별로 장기자랑이 시작된다. 처음에는 움추리고 있던 분위기가 시간이 지나다

노래한곡에 두둥실 춤을 추며 흥겨운 시간이 이어진다.

누가 잘하고 못하고도 없이 모두가 우승자 다운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하기 시작한다.

 

 ↑ 박동백 원장님 한곡조

 나도 한곡조..우리 원장님 노래실력 쥑인다. 못한다고 하더니 "허공"이란 곡을 뽑기시작한다. 넘어가는 폼이 쥑이다.  

흥겨움에 젖어 시간 가는줄도 몰랐는데...이제 떠나야 시간이다. 모두들 아쉬움을 접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오늘 이자리는 회장님이 마련한 자리다. 100명이 넘는 인원인데...경비도 만만찮을 것이다.
이런 자리를 마련해 주신 회장님께 감사를 드린다.

 

 ↑ 그림같은 풍경의 반구대

포은 정몽주이 한이서린 이곳 ...돌아오는 길에 다시한번 바라본 풍경이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 더욱 깨끗해진 모습이다. 

 

 ↑ 반구대 앞에서

돌아오면서 서쪽으로 기운 햇볕을 받은 반구대의 아름다운 풍경에 취해 폼함 잡아보았다.

 

 ↑ 집청정(集淸亭)

집청정(集淸亭)은 경주최씨 가암파의 파조 정무공(貞武公) 최진립(崔震立)의 증손 운암(雲岩)

최신기(崔信基)가 1600년대에 반구대 앞에 세운 정자를 말한다.

최신기는 최원석씨의 14대조. 1932년에 중건됐다. 현재 울산에 남아 있는 15개의 정자 가운데 원형이

가장 잘 유지되고 있고, 보존상태도 좋은 편이다. 최신기가 집청정을 지은 뒤

시인묵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 됐다. 사철 맑은 대곡천 계곡물과 반구산(265m),

일명 비래봉에서 뻗어내린 상대와 중대, 하대 3층 석대와 석대에 이어진 거북 머리 형상을 한 반구대가

만들어내는 경관에 푹 빠진 것. 선경이 따로 없었다. 머물 곳으로는 집청정이 있어서 모자람이 없었던 것.

 반구대는 풍광 뿐이 아니었다. 선비들의 표상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와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한강(寒岡) 정구(鄭逑) 세 선현이 흔적을 남긴 곳. 선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집청정에는 1600년대 중반부터 1800년대 말까지 300년간 이곳을 다녀간 283명이 읊은 394수의 작품이 남이있다.

 

지금은 어린이 예절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잇는 곳이다.

 

  ↑ 집청정(集淸亭) 안내문

 집청정 옆에 세워진 이 안내문은 포은 정몽주 선생의 얼이 숨어있는 곳으로 요즘은 잊혀져 가는 전통예절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한다.

 ↑ 그림같은 풍경 반구대

 돌아오는 길에 집청정 앞의 반구대의 그림같은 아름다운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 역광이 되지않아 더욱 운치가 있었다.

 

  ↑ 전시관앞 계곡풍경

버스가 있는 전시관으로 다시 돌아왔다. 다리를 건너면서 전시관앞 대곡천의 

아름다운 풍경도 다시한번 카메라레 담았다. 

 

  ↑ 전시관 앞 계곡풍경2

 태양이 서쪽으로 기운 탓인가? 선명해진 산하...반구대의 상단부가 고개를 내밀며 우리들에게

아쉬움의 작별을 고하는듯 하다.

 

 ↑ 전시관을 뒤로하고

버스가 있는 전시관 앞에 도착하면서 천전리각석과 반구대암각화 답사를 모두 마치고 다시찾아올 기약도 없이

전시관을 뒤로하고 버스에 버스에 올랐다.

 

암각화에 대한 궁금증으로 시작한 금번 답사여행은 선사시대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과 그들의 희망을

그림으로 돌에새긴 귀중한 문화재를 접할수 있었던게 무엇보다 큰 보람이며,

그림같은 아름다운 풍경의 반구대가 포은 정몽주 선생의 유배지라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된것

또한 값진 답사 여행으로 가슴속깊이 남을 것이다.

좋은 여행지를 선정해 주신

박동백 창원문화원장님을 비롯한 관계직원 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리고 싶다.

 

글/사진 : 산과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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