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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칠층전탑/하회마을/병산서원 답사기(09.11.20)

☞나의 포토갤러리/나의 旅行記

by 산과벗 2009. 11. 22.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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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동 칠층전탑/하회마을/병산서원 답사기

(2009. 11.20)

 

오늘은 안동 칠층전탑,하회마을,병산서원을 찾아 나서는 날이다. 

이 3곳 모두 생애 처음 가보는 곳으로 타 지역 답사 여행과는 비교할수 없는 의미있는 답사가 될것이란

설레임과 기대감을 안고 집을 나선다.

 

▲ 안동 신세동 칠층전탑 

우측으로 안동댐 상류를 끼고 좌측으로 철길이 나있는 굴다리를 지나자 좁다란 골목같은 허름한 자리에

우리의 목적물인 츨층전탑이 우뚝 서 있었다.

지난 여주 신륵사 문화 답사에서 전탑을 직접보고 들은 기억을 되살리면 전탑(塼塔)이란

흙으로 만든 벽돌을 이용하여 쌓아 올린 탑을 말한다.  

이 전탑은 1단의 기단(基壇)위로 7층의 탑신(塔身)을 착실히 쌓아올린 모습이다.

기단의 각 면에는 화강암으로 조각된 8부중상(八部衆像)과 사천왕상(四天王像)을 세워놓았고,

기단 남쪽 면에는 계단을 설치하여 1층 몸돌에 만들어진 감실(龕室:불상을 모시는 방)을

향하도록 하였다. 진한 회색의 무늬없는 벽돌로 쌓아 올린 탑신은 1층 몸돌에 감실을 마련하였고,

지붕돌은 위아래 모두 계단모양의 층단을 이루는 일반적인 전탑양식과는 달리,

윗면에 남아 있는 흔적으로 보아 기와를 얹었던 것으로 보인다. 

 

 ▲ 칠층전탑 안내문

칠층 전탑 바로 앞에는 전탑에 대한 상세항 설명이 적힌 안내판이 서 있었다.

 

 ▲ 칠층전탑에 대한 설명을 듣고있는 일행들 

창원문화원장님의 설명을 빌리면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며,

7층이나 되는 높은 층수에 높이 17m, 기단너비 7.75m의 거대한 탑임에도 매우 안정된 자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국내에 남아있는 가장 크고 오래된 전탑에 속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고 했다.

또한 지붕에 기와를 얹었던 자취가 있는 것으로 보아

목탑을 모방하여 전탑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입증해 주는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전탑 바로 앞으로 철길이 나있어 기차가 지날때 심한 진동 때문에

탑이 금이생기는게 아닐까 하는 우려와 기단의 윗면을 시멘트로 발라 놓은점이 아쉬움으로 남지만 

파손을 막기위한 방편일수 밖에 없다는 원장 님의 설명이였다.

 

 ▲ 다시 바라본 칠층전탑

중간중간 땜방질 흔적은 있었으나 대체로 잘 보존된 전탑으로 보였다.

하지만 전탑은 보통 사찰앞에 세워지는게 보통이지만 왜 이 초라한 이곳에 세워졌을까하는 의문점은 지울수가 없었다.

원장님의 보충 설명은 신륵사 전탑도 그랬듯 전탑은 강을 바라보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했으며,

그 원인은 원장님도 알수 없다는 설명이였다.

 

 ▲ 칠층전탑 형태

전탑 기층은 모두 벽돌 9단으로 쌓은것이 특징이라 했다.

 

 ▲ 칠층전탑에 대한 설명

전탑 앞에서 이쁘게 생긴 우리 학생 조교님이 교재를 읽고있다,

이어 원장님의 설명이 이어지며, 모두들 열심히 경청하고 있는 동기생들의 모습이다.

 

 ▲ 종가집

전탑 앞에있는 대명문 종가집이다. 집안으로 들어가 보지는 못했지만 본채와 안채,사랑채,정자와 연못 등이

잘보존돼 있다고 안내문은 전하고 있었다.

 

 ▲ 전탑앞 종가집에 대한 안내문

 

 ▲ 종가집

칠층전탑을 답사하고 나와 버스를 타기직전 안동댐 상류지를 카메라에 담았다. 

 

▲ 하회마을 입구에서 점심

칠층전탑을 뒤로하고 안동 시내를 벗어나 약 8km 달린끝에 하회마을 입구 주차장에 도착했다. 

먼저 이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고 도두 도시락을 꺼내 오순도순 모여앉아 나눠 먹는다.

컵라면 하나로 점심을 때웠지만 오가피술 한잔이 목줄기를 타고 흐르면서 세상 부러울게 없다.

 

▲ 한잔술을 주고받으며

점심을 먹으면서 한데 어울려 서로 약주 한잔씩 주고 받으며 서먹서먹 함도 사라지면서 웃음을 나누고 있는 모습들이다.

 

▲ 둘이서 한잔

이 두사람은 어떤사이일까? 꼭 연인같으면서도 아닌 영원한 37기 동기생일 뿐이다...

술잔을 마주치며 카메라 앞에 포즈를 잡는 모습이 정겨워 보인다.

 

▲ 하회마을 입구에서 점심

점심을 먹고 하회마을로 향해 걸어갔다. 이곳에서 약 1km정도 거리라 한다. 주차장을 지나자

각약각색의 식당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 독특한 입간판

우측으로 장승에다 하회미가(河回味家)란 식당 간판이 눈길을 끈다.

 

 ▲ 육각정

상가지역 중앙부에 세워진 육각정이 운치를 더해주고 있었다.

 

 ▲ 초가지붕 식당

 

 ▲ 각종 기념품 가게

 

 ▲ 매표소앞 안내도

상가지역을 구경하며 매표소 앞에 도착했다. 성인 2,000원란 요금이 붙어 있었다.

매표소 옆으로는 관광안내소도 있었다. 매표소에서 히회마을 까지는 셔틀버스가 운행되고 있었지만

별도 500원의 요금을 내야 했다. 주차료 따로받고 입장료 따로받고 셔틀버스 요금까지 조금은 너무하다는 생각이든다.

걸어 갔으면 좋으려만 우리 국장님..들어갈때는 단체 버스로 나올때 걸어서..단체로 버스에 올랐다. 

 

 ▲ 하회마을 입구 전시관

매표소를 출발한 버스는 눈 깜박할 사잉에 마을입구 전시관 앞에 도착 내려야 했다. 

이 전시관은 영국 엘리자베스2세 여왕이 하회마을 방문 기념으로 지어진 여왕방문과 관련된 전시물이 보존된 곳이였다. 

 

 ▲ 전시관 앞 풍경

전시관을 둘여보고 나와 20여m 거리에 각종 거시기 등 장승이 여기저기 세워져 있었다. 

장승들은 하나같이 남성거시기만 달고 있었다. 웃음꽃 피우며 거시기를 배경삼아 사진들 찍기가 바쁜 일행들이였다.

 

 ▲ 하회마을 설명을 듣고있은 일행들

장승이 서있는 곳에서 원장님이 하회마늘에대한 설명을 하고있는 모습이다. 

 

 ▲ 제멋대로 생긴 장승들

 

 ▲ 거시기속 홍일점

남성 가시기 뿐인줄 알았는데...여승 장승도 하나 눈에 띈다. 오랜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지만 제법 예쁘게 생겼다.

 

 ▲ 매표소앞 안내도

원장님의 설명과 단체로 사진한장 담고 하회마을로 이동히고 있는 일행들의 모습이다. 

 

 ▲ 하회마을 안내도

하회마을 입구에는 크다란 안내도와 함께 어디서 나타닜는지 안동 권씨란 해설자가 상세한 설명을 해주었다.

안동하회마을(安東河回마을)은 중요민속자료  제122호로 지정되었으며,

예로부터 유림의 고장이었던 이곳은 한국의 대표적 동족부락으로, 국보를 비롯해 보물·중요민속자료·중요무형문화재 등

값진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어 1984년 1월 민속보존마을로 지정되었다.

동쪽은 태백산의 지맥인 화산(321m)이 감싸고 있으며, 낙동강이 서·남·북 경계를 따라 마을 전체를

태극형으로 감싸 흐른다. 이는 풍수지리적으로 산태극수태극(山太極水太極)을 이루는 길지(吉地)로

임진왜란 때는 전화를 입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 원조집

아마 술을 파는 집으로 옛전통을 이어가고 있는듯 했다.

아래 사진 몇컷은 매표소옆 관광안내소에서 얻은 안내지에 실린 내용을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이라 흐릿하다.

 

  ▲ 하동고택 외

이 사진은 하동고택,남촌댁,주일재,북촌댁 등에 대한 설명이다.

하회마을의 대표적 가옥으로는 북촌택·양진당·충효당·남촌택의 네 가옥을 들 수 있는데, 이들 가옥들은 ㅁ자형을 기본으로 하고

몸채의 한 편을 연장해 사랑채로 했다.

 

자료에 따르면 이곳에는 '허씨터전에 안씨문전에 유씨배판'이라는 말이 전해오는데,

이는 일찍이 허씨(許氏)들이 자리를 잡았다가 나중에는 안씨(安氏)들이, 그 다음에는 풍산유씨(豊山柳氏)들이 동족부락을

이룬 집성촌임을 의미한다. 조선 전기에 이미 유씨들의 기반이 성립되어 있었을 것이라 짐작되나 유씨 동족촌의

기틀이 마련된 것은 조선 중엽 이후 대유학자인 유운룡·유성룡 형제 시대에 이룩되었다.

  ▲ 삼신당 신목 외

사진은 삼신당 신목,양진당,충효당,작천고택 등에 대한 설명이다.

이곳에는 과거 신분제 사회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300~500년 된 130여 호(戶)의 유서깊은 대·소 가옥들이 보존되어 있다.

 

 ▲ 빈연정사 외

사진은 빈영정사,원지정사,만송정,옥연정사 등에 대한 설명이다.

이들 중 유운룡의 종택인 안동양진당(보물 제306호)과 서애 유성룡을 모신 종가인 충효당(보물 제414호)을 비롯해

하회북촌택(중요민속자료 제84호)·하회원지정사(중요민속자료 제85호)·하회빈영정사(중요민속자료 제86호)·

하회유시주가옥(중요민속자료 제87호)·하회옥연정사(중요민속자료 제88호)·하회겸암정사(중요민속자료 제89호)·

하회남촌택(중요민속자료 제90호)·하회주일재(중요민속자료 제91호) 등이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이들 가옥들은 모두 풍산 유씨의 소유이며, 대부분이 유운룡과 유성룡의 유적이다.

 

 ▲ 삼신당 신목 외

사진은 경암정사, 병산서원 등에 대한 설명이다.

 

▲ 초가집들(1)

  

 ▲ 초가집들(2)

 

 ▲ 기와집

 

▲ 북촌댁 삼거리 안내판

나는 만송정과 북촌댁을 보기 위해 이곳에서 우측으로 들어섰다.

그대한 대문과 크다란 집채가 시야에 들어왔다.

 

 ▲ 북촌댁 안내문

 

▲ 북촌댁(1)

중요 민속자료 제84호로 양진당과 함께 북촌을 대표하는 가옥으로 경상도 도사를 지낸 류도성이 철종 13년에 건립한 집으로

안채,사랑채,문간채,사당 등을 두루 갖춘 영남의 대표적인 양반 가옥이다.

 

 ▲ 북촌댁(2)

북촌댁 내부의 풍경이다.

 

▲ 북촌댁 뒤뜰에 있는 노송

북촌 고택을 들려보면서 집뒤에 신비스런 자태를 한 노송 한그루를 만났다.

뱀처럼 꼬불꼬불한 몸둥아리 곳곳에서 오랜풍파를 견더낸 흔적들이 배어 있었다.

300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이 노송의 특징은 하회마을을 감싸고 흘려가는 낙동강의 형상과 일치하고 있으며,

조선 정조시절 류사춘 공이 분가할때 집안의 융성과 일가의 번영을 기원하면서 하회의 주산인 하산에서

옮겨 심은 것이라 전해지고 있다.

    

 ▲ 소나무 앞에 있는 노송에 대한 설명문이다.

 

 ▲ 마을골목을 배경으로

마을을 가로질러 초가와 기와가 마주하고 있는 집 골목길에서 경쟁이라도 하듯 사진한장 찍기위해 일행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내 차례는 까머득한듯...역시 회장님은 인기짱...회장님과 함께 멋진 포즈를 잡고 여성 동기생들의 모습을 찰칵했다.

 

 ▲ 충효당

보물 제 414호로 지정된 충효당의 모습이다. 

이 집은 서애 류성룡 선생의 종택으로 평생을 청백하게 지낸 선생이 삼간초려에서 별세한후 문하생들과 주변 사람들이

선생의 유덕을 추모하여 건립한 집이라 한다.

 

 ▲ 마을어귀 고사목

충효당을 지나 마을 어귀로 나오자 고사목하나가 나의 는길을 끌었다. 

불에타 생명을 다한듯한 거대한 고사목...앙상한 뼈대만 남긴 골몰이 또 다른 운치로 다가왔다. 사진한장 부탁할 일행하나 없어

삼발을 사용 기념으로 고사목을 배경으로 사진한장 카메라에 담고 고목을 뒤로 했다.

 

 ▲ 강둑에 선 고목

고사목을 지나 강둑을 따라 약 200여m 지점에 서 있는 고목이다. 

세찬 풍파에 시달리며 산전수전 다 겪은듯한 고목...당당한 자태를 뽐내며 나를 반겨주는듯 했다.

 

 ▲ 모과

강둑 따라 발길은 계속 이어진다.

우측 마을앞에는 탐스럽게 영근 노란 모과가 늦가을 햇살을 받으며 빤짝이고 있었다.

 

▲ 만송정

강둑따라 걷다보니 소숲을 만났다.  아마 이 솔숲이 안내문에서 소개하고 있는 만송정 솔숲이였다.

이 만송정 솔숲은 천년기념물 제473호로 지정도었으며, 겸암 류운용 선생이 젊은시절 조성한 것으로 풍수지리적으로

마을 서쪽의 지기가 약해서 심은 일종의 비보림이라 한다.

 

 ▲ 부용대

솔풒은 강둑따라 길게 이어져 있었으며, 솦숲 사이로 더디어 부용대가 시야에 들어왔다.

부용대!!..낙동강 굽이치는 푸른물결을 바라보고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드리워져 있엇다.

 

 ▲ 하회마을(1)

솔풒 우측으로는 하회마을의 그림같은 풍경이 나의 발길을 잠시 멈추게 했다.

 

 ▲ 하회마을(2)

푸른 물결이 굽이치는 낙동강을 바라보며 천혜의 절경을 간직한 하회마을의 풍경이였다.

 

 ▲ 하회마을(2)

포근한 산자락과 끝없이 이어진 초가지붕들...감나무 가지에 둥지를 튼 까치집이 한데 어울린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하회마을의 풍경에 시선을 빼았긴채 카메라 셔터 소리는 그칠줄을 몰랐다. 

 

 ▲ 부용대

우측 마을풍경에 시선을 빼앗긴패 강득따라 걷다 좌로 고개를 돌려보니 그림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기암절벽에 병풍처럼 둘려쳐진 암벽아래로 굽이치는 푸른물결...갈대숲 하늘거리는 강 너머로

옥연정사도 시야에 들어온다.

 

 ▲ 부용대를 배경으로

아름다운 풍경을 벗삼아 강둑따라 걷다 뒤따라 오는 일행을 만났다.

이 멋진 풍광을 그냥 지나칠수는 없지 않겠는가? 삼발을 이용해 함께한 일행들 단체로 카메라에 담은 모습이다.

 

 ▲ 다시보는 부용대

부용대를 좌로 하고 강득따라 걸어가다 초가 움막 하나가 시야에 들어왔다.

강 건너 부용대와 어울린 풍경이 또 다른 멋을 풍기고 있었다.

 

 ▲ 다시보는 부용대

하회마을 답사를 마치고 병산서원으로 향했다. 하회마을을 벗어나 우측 강변을 따라 요즘도 이런 길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비 포장길에 먼지를 날리며 꼬불꼬불한 길을 달린 버스는 약 10여분 만에 병산서원에 도착했다.

도착하지 제일먼저 시야에 들어온 것이 병산서원과 마주하고 있는 강건너 기암봉이였다.

 

 ▲ 병산서원(屛山書院)

안동의 숨은 진주로 불리는 병산서원은 조선시대 5대 서원의 하나이자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원건축의 하나로 평가받는 곳이다.

고려 때부터 내려오던 풍산 류씨 문중의 교육기관인 풍악서당을 서애 류성룡의 뜻에 따라 1572년 옮겨 지었다.

산비탈에 가지런하게 세워진 서원의 풍모에서 세월이 빚어낸 장엄함이 느껴진다.

 

  ▲ 병산서원에 들어서는 일행들

주차장에서 병산서원 복례문으로 들어서는 일행들이다.

 

  ▲ 병산서원 만대루

서원의 정문인 복례문(復禮門)을 지나면 만대루가 고풍스런 만대루가 시야를 사로잡는다.

200명이 앉을 수 있다는 너른 만대루에 오르면 굽이치는 낙동강과 병산 앞자락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 병산서원 입구의 안내문

 

 ▲ 병산서원(屛山書院)/사적 제260호   

병산서원은 사적 제 26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서애 선생의 문집을 비롯하여

각종 문헌 1,000여 종 3,000여 책이 소장되어 있다.

본래 이 서원의 전신은 풍산현에 있던 풍악서당(豊岳書堂)으로 고려 때부터 사림의 교육기관이었다.
1572년(선조5)에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선생이 지금의 병산으로 옮긴 것이다.
1607년 서애가 타계하자 정경세(鄭經世) 등 지방 유림의 공의로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1613년(광해군5)에 존덕사(尊德祠)를 창건하고 위패를 봉안하였다. 1614년 병산서원으로 개칭하였다.
1620년(광해군12)에 유림의 공론에 따라 퇴계 선생을 모시는 여강서원(廬江書院)으로 위패를 옮기게 되었다.
그 뒤 1629년(인조9)에 별도의 위패를 마련하여 존덕사에 모셨으며, 그의 셋째 아들 수암(修巖) 류진(柳袗)을
추가 배향하였다. 1863년(철종14)에 사액(賜額)되어 서원으로 승격하였다.

 ▲ 병산서원(屛山書院)에 대한설명을 듣고있는 일행들 

원장님의 장황한 설명에 들고 있는 일행들이다.  공부하는 자세가 열정적이고 진지하다.

병산서원은 선현 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많은 학자를 배출하였으며, 1868년(고종5)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이

내렸을 때에도 훼철(毁撤)되지 않고 보호되었다. 일제강점기에 대대적인 보수가 행해졌으며 강당은 1921년에,

사당은 1937년 각각 다시 지어졌다. 매년 3월 중정(中丁:두 번째 丁日)과 9월 중정에 향사례를 지내고 있다.


 산서(屛山書院) 뒷문

병산서원 뒤쪽으로 들어가자 태극마크가 선명한 문이 3개 있었고 문은 굳게 닿혀 있었다.

 

 ▲ 병산서(屛山書院) 풍경

병산서원 우측 옆뜰로 나서는 문쪽 기와지붕이 강건너 기암봉과 어울려 운치를 더해주고 있었다.

 

 ▲ 우리는 영원한 동기생

몇차례 답사여행을 통해 서먹서먹했던 분위기는 사라지고 오랜 친구처럼 남자동기생들 오랜만에 함께 정답게 섰다.

역시 홍일점!!..여성 동기생 한명쯤 있어야 제 맛이 나는법...이쁜 여성 동기생 덕분에 사진 또한 짱이 됐구나...

 

 ▲ 만대루  

만대루!!! 여느 누각들과 달리 그 흔한 단청하나,장식흔적 하나 없건만 어찌 이렇게도 고풍스런 미를 간직하고 있을까?

병산서원이 안동의 숨은 진주란 말이 허구가 아님을 여실해 보여주고 있었다.

만대루 기둥에 기대고 앉아 굽이도는 푸른강물에 그림자 드리운 병산을 바라보며  가슴 한자락 내려놓고 싶구나...

 

 ▲ 병산서원 입구에서  

병산서원 답사를 마치고 복례문을 나서다 그럴싸한 분재같은 명품 소나무의 유혹에 빠져 존경하는 동호 형님을 불러세워

멋진풍경과 어을린 멋지고 당당한 형님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것을 끝으로 안동 문화유적 답사의 모든 일정을 마무리 했다.

 

내 생애 처음으로 찾은 안동 칠층전탑과 하회마을,

그리고 병산서원 답사여행!!

한국의 미와 전통이 살아숨쉬는 고장답게

나에게 감동을 안긴 의미있고 값진체험으로 기억될 것이다.

 

박물대학 37기 동기생들과 함께한 답사여행 즐거웠습니다.

아울러, 좋은곳으로 안내해 주신 박동백 창원문화원장님과

국장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사진/글 : 산과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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