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모재(瞻慕齊)는 김해김씨(金海金氏) 삼현파(三賢派) 16세 통정대부(通政大夫) 창락(昌樂) 김현우(金顯佑) 조(祖)를추모(追慕)하고 신위(神位)을 모시고 제례(祭禮)를 봉양(奉養)하기 위해 1975년 11월 건립한 김해김씨(金海金氏) 삼현파(三賢派) 월백대종회(月栢大宗會) 문중제실(門中祭室)이다.
삼현파(三賢派) 8세 삼족당(三足堂)선생께서 칠원현감(漆原縣監)으로 벼슬을 오셨을때 둘째 아들인 삼현파(三賢派) 9세 사시당(四詩堂) 김생 (金鉎) 선생께서 따라 오셔서 독서를 즐기며 장암(藏岩)의 경관(景觀)이 아름다운 것을 사랑 하시며 이곳에 정착하며 길이 자손(子孫)을 양육하시었다.
사시당(四詩堂) 김생 (金鉎) 선생의 아들 김일양(金一陽), 손자 김진개(金進凱), 증손 김기옥(金基玉), 고손 김계안(金戒安), 현손 김시남(金時南), 래손 김한주(金翰柱), 칠대(七代)를 전하여 칠원(漆原)에 거주하시다 8대 창락(昌樂) 김현우(金顯佑) 할아버지 께서 달달박박과 노힐부득의 전설(傳說)이 서린 창원의 백월산(白月山)아래 반야동(班也洞:월백리)으로 이사하여 자리를 잡고 후손들에게 경계를 하였습니다. 농사짖고 책읽으면서 성명(性命)을 보존하는 것으로 족하다. 이외에 다른 것은 구하지 말아야 한다.
이후 5~6대를 거쳐 지금에 이르러 자손들이 모두 분수를 지키며 생활을 영위하여 후손이 100여가구를 넘어서 한고을의 아름다운 숲을 이루고 있다. 현우(顯佑) 할아버지의 묘소는 마을뒤 도룡곡(道龍谷) 계좌(癸坐)에 자리 하고있다.
첨모재(瞻慕齊)는 달달박박과 노힐부득의 전설이 서린 백월산 자락의 창원시 북면 월백리 786번지에 김해김씨 삼현파 삼족당(三足堂) 김대유(金大有)의 8대손(代孫)인 창원 입향 조(祖) 통정대부 군자감정 김현우(金顯佑)를 추모하는 제실(祭室)로 창락 김현우(金顯佑)의 후손들은,
삼현파(三賢派) 14세(김시남),15세(김한주),16세(김현우),17세(김재국,김재복,김재수,김재구),18세(奎),19세(昌),20세(斗) 선조의 신위(神位)를 모시고 제례를 올리고 있다.
대문체 추술문(追述門)과 본당인 첨모재(瞻慕齊) 편액이 있다.편액은 익당(益堂) 설인수(薛仁洙)선생(先生)의 글씨이며 첨모재(瞻慕齊)에 걸려있는 첨모재기(瞻慕齊記)는 중원(中園) 배문회(裵文會/1899-1984)선생(先生)이 지은 것이다.
▶익당(益堂) 설인수(薛仁洙) : 전북 제3-4대 교육감, 10대 국회의원(순창,임실,남원)
▶중원(中園) 배문회(裵文會) : 경남 함안 출신 교육자이자 유학자
본당 첨모재(瞻慕齊)기둥에 쓰여진 주련(柱聯)을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 白月山中境地函(백월산중경지유)→백월산속 지경이 그윽한 곳에
▶ 昌辰薖轴樂悠悠(창신과축낙유유)→좋은날 한가히 보내니 즐거움 아득하네.
▶ 讀史耕田垂在訓(독사경전수재훈)→사서읽고 밭갈며 농사지어라는 교훈이 내려오니
▶ 修身守分外何求(수신수분외하구)→몸닦고 분수지키는 외에 무엇을 구하리오.
첨모재기(瞻慕齊記)를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삼족당(三足堂)선생께서 칠원에 현령으로 벼슬을 오셨을때 선생의 둘째 아들인 사시당(四詩堂) 김생 (金鉎)께서 따라 오셔서 독서를 하다 자주 경내의 산천(山川)을 두루돌아 보시고 특히, 장암(藏岩)의 경관(景觀)이 아름다운 것을 사랑 하셔서 틈나는 날이면 소요하여 탈속한 초월적 흥취를 즐겼습니다. 선생께서 벼슬을 그만두시자 이로인하여 장암(藏岩)에 머물러 길이 자손(子孫)을 양육하시고 드디어 병주의 마을을 이루었습니다.
칠대(七代)를 전하여 창락(昌樂) 현우(顯佑)에 이르러 다시 창원의 백월산(白月山) 아래 반야동(班也洞)으로 이사하여 자리를 잡고 후손들에게 경계를 하였습니다.농사짖고 책읽으면서 성명(性命)을 보존하는 것으로 족하다. 이외에 다른 것은 구하지 말아야 한다.
이후 5~6대를 거쳐 지금에 이르러 자손들이 모두 분수를 지키며 생활을 영위하여 후손이 100여가구를 넘어서 한 고을의 아름다운 숲을 이룬것에 비길만 합니다. 이 할아버지의 묘소는 마을뒤 도룡곡(道龍谷) 계좌(癸坐)에 자리 하였는데 숲이 우거질 정도가 되었고 우러러 바라보며 남기신 교훈을 생각하여 깊이 새기며 항상 살아계실 때와같이 정성을 다합니다.
근래에 마을중에서 그윽한 정취가 있는 자리를 찾아서 네기둥 세 도리의 제실을 지어 첨모(瞻募)라고 편액 하고 문은 추술(追述)이라 하였습니다. 그 규모가 비록 크게 한아(閒雅)하고 청치(淸熾)가 있는것은 아니지만 족히 깨달음을 얻을 만한 자리라고 세시로 제사를 드리고 강의하는 장소로 쓸만한 곳입니다. 우리 어른께 기실문(記實門)을 청하 옵니다. 라고 하였다.
그 말의 뜻이 정성되고 곡진하여 족히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켰고 나 또한 칠원(漆原)에 살면서 익히 그 대대로 전해오는 유래(由來)를 알고 있으므로 마땅히 사양할수 없었다. 아! 옛날 성종,중종 사이에 영남(嶺南)의 문운(文運)이 크게 일어났을때 김씨(金氏) 가문(家門)은 충효(忠孝)와 절의(節義)로 크게 드러나고 창성(昌盛)하여 중국에서도 이름이 날 정도였다. 무오사화,기묘사화가 일어 났을때 그 평하 당함이 더욱 혹독하여 잔혹함을 당한 뒤에도 해원(解寃)을 못하였다.
삼족당(三足堂) 선생이 장암에 기거하신 것이나 칠원에서 벼슬을 그만둔것도 그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사시당(四詩堂) 선생이 장암(藏岩)에 기거한 것이나 창락재(昌樂齋)가 반야(班也)에 은거하신 일들이 모두 당시의 후손을 삼가게 하신 깊은뜻을 경계한데서 나온 것이다.
그 근신하고 물러나 덕을닦고 길러 밝으면서도 잠겨있는 듯한 깊은 덕은 다른 사람이 잘 알지못하는 지경에 미침이 있다. 그러므로 조상이 후손에게 덕을 내림에 제한됨이 없다는 것이 이처럼 그윽하고도 넉넉하여 번성함이 흠모하고 조상을 추존하고 후손에 술회(瞻募 追述)하는 정성은 한 순순하고 근면함이 있으니 백성들의 덕성이 가히 두터운 대로 돌아갈 것을 아침 저녁으로 기대할수 있다.
그 두터울 것이 엷어지고 엷어야 할것이 두터워지는 지금의 세상 정세에 밝게 감화됨이 있겠는가?
반야(班也→월백리)의 꽃나무는 이미 향기를 얻었으니 봄의 자태가 화려하게 비칠날이 멀지않은 어느 날 이리오.
내 다가올 날을 기다리며 기약하리라 이 행역에 처음부터 경리를 맡은 사람은 종손인 일곤(一坤)이고 끝까지 전력을
다한 사람은 자손인 용덕(容德)이라고 하였다.
이에 이것으로 기문을 삼는다.
을묘(1975)년 11월 동지절 분성 배문회(裵文會)짖다.
첨모재 원운(原韻)을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 憶曾昌祖琠奠居東(억증창조전거동)→일찍이 훌륭한 조상이 동쪽에 정착하신 것을 생각하여
▶ 肯模多年慶赤哀(긍모다년경적애)→다년간에 걸쳐 첨모재를 지은 정성을 경아하네.
▶ 蘈藻歲時無受地(빈조세시무타수지)→명절이나 철따라 제물올려 편히 제사 지낼곳 없었는데
▶ 松杉遠邇入望中(송삼원이입망중)→멀고 가까운곳 소나무 삼나무가 눈에 들어오네.
▶ 軒窓通敵來明月(헌창통창래명월)→탁 트인 난간과 창으로 밝은달이 비춰오고
▶ 竹樹蔚蔥送爽風(죽수울총송상풍)→울창한 대숲에는 시원한 바람 불어오네.
▶ 力拙吾門今緖(역졸오문금서)→재력 부족한 우리문중 이제야 두서를 차렸으니
▶ 承先裕後誓無窮(승선유후서무궁)→영원히 조상 빛내고 후손 복되게 하리라.
胄孫 種石謹識(주손 종석근식)
장자로 이어진 자손 종석(鍾石) 삼가 짖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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