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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릉 탐방(2023-10-26)

☞나의 포토갤러리/나의 旅行記

by 산과벗 2023. 11. 12.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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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2일차

영등포 큰딸 집에서 여행 첫날밤을 자고 일어나 창밖을 보니 뿌연 연무가 드리워져 날씨가 좋지않다.오늘은 여행 2일째 되는 날 서울 투어로 선.정릉과 롯데타워 전망대,창덕궁,창경궁,남산타워전망대,남대문시장을 등을 둘러볼 예정으로 아침 7시경 집을 나섰다.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선릉 (宣陵)과 정릉(靖陵)

서울 강남구 삼성동 도심 빙딩속에 자리한 조선시대 왕릉군으로 조선 제9대 성종대왕과 성종의 계비 정현왕후가 함께 잠든 선릉(宣陵)과 조선 제11대 중종이 안장된 정릉(靖陵)을 합쳐 부르는 말이다. 선.정릉이라는 말 외도 삼릉(三陵)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현재 사적 제199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세계 유네스코 공인지정 세계문화유산이다.

1494년, 성종이 승하하면서 당시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 저자도리에 안장되었고 1530년에는 계비 정현왕후가 승하하면서 같은 곳에 왕릉으로 안장되어 지금의 선릉이 만들어졌고 이후 1544년에는 중종이 승하하면서 바로 한 울타리에 있는 왕릉인 정릉에 안장되어서 선정릉 및 삼릉이 형성되었다.

 

▲ 소풍(김밥,분식집)

영등포 신풍역에서 지하철 7호선을 타고 강남구청역에서 내려 8호선을 갈아타고 선.정릉역에서 내려 2번출구로 나왔다.

선정릉역 주변 아침식사 하는 식당을 검색한 결과 선정릉역에서 걸어서 5분거리에 있는 소풍 이라는 분식집을 알게 되어 찾아갔다. 

 

다양한 식사 매뉴판...이 식당은 24시간 영업하는 관계로 일찍 출근하는 직장인들에게 인기가 많은것 같았다.

우리는 날치알 돌솥밥을 시켰는데 생각보다 맛 있게 먹었다.

 

소풍이라는 분식집에서 아침식사를 맛있게 먹고 선.정을 찾아 걸었다. 태해란로를 건너 약 7여분 걸은결과 선.정릉 입구에 도착했다.

 

선.정릉 입구 표지판이다.

선.정릉은 두번째 탕방이다. 포스코 계열사에 근무할때 본사 건물이 서울 태해란로에 있어 출장왔다 한번 다녀간 적이 있다.

 

선정릉 표매소

 

운영시간 : 3월~10월 06:00-21:00

11월~1월 : 06:30-17:30

2월 : 06:00-18:00

매주 월요일 휴관

입장료 : 개인1,000원, 단체800원

무료관람 : 만24세이하,65세이상,장애인,유공자,상이군경 등

주차 : 2시간이하 400원, 5분 초과시 600원

 

매표소 우측에 있는 선정릉 배치도다. 우리는 붉은선 따라 둘러볼 예정이다.

 

우리는 무료 관람이라 표 받는곳에서 주민등록증만 제시하고 바로 입장이 가능했다.

 

성종대왕릉 입구의 홍살문이다.

 

우측은 어로, 좌측은 향로라 쓰여있다.

 

제를 지내는 제실이다. 내부를 한번 바라본후 릉으로 향한다.

 

릉은 잔듸 언덕 위에 위치하고 있었다.

 

선릉으로 가려면 우로 돌아 올라가야 한다.

 

성종대왕의 릉이다.

선릉은 제9대 성종(1457~1494)과 계비 정현왕후(1462~1530) 윤 씨의 능으로 동원 이강릉이다. 각기 다른 능침을 갖고 있지만 홍살문, 정자각은 하나다. 앞에서 보면 좌측이 성종의 능, 우측 언덕위가 정현왕후의 능이다.

 

성종대왕릉

성종은 세조의 손자로, 세조의 아들인 의경세자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는데, 두 달 만에 의경세자가 20세로 요절하자 의경세자의 동생인 예종이 즉위하고 성종은 자을산군으로 봉해졌다. 그런데 예종도 즉위한 지 14개월 만에 사망했다. 예종의 원자인 제안대군은 9세이고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은 병석이라 그가 13세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태조의 비범함을 닮았다고 알려진 성종은 7년간 정희왕후의 수렴청정을 받다가 친정을 시작했다.

 

▲ 성종대왕릉

성종처럼 운이 좋은 왕은 별로 없다. 우선 어느 모로 보나 왕에 오를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지만 한명회의 사위가 된 후 조선의 왕까지 될 수 있었다. 또한 국제 정세가 안정되고 국내적으로 태평이 구가되던 때에 왕위에 있었다. 임진왜란을 겪은 선조나 병자호란을 당한 인조와는 극명하게 대비된다. 성종은 국리민복이나 부국강병과 관련해서 세종이나 세조에 비해 내세울 만한 것이 없는데, 스스로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될 만큼 국가가 튼튼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 성종대왕릉

그럼에도 학자들이 성종을 조선 왕조의 대표적 왕으로 꼽는 이유는 25년 동안 왕위에 있으면서 많은 업적을 남겼기 때문이다. 성종은 홍문관을 설치하고 『경국대전』, 『동국통감』, 『대전속록』, 『악학궤범』 등 각종 서적을 간행했으며, 세조 때의 공신 중심인 훈구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김종직 등 신진 사림 세력을 등용했다. 그의 조치는 성과를 거두어 왕권을 안정시키는 동시에 조선 중기 이후 사림 정치의 기반을 조성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학자들은 성종이 조선 왕조의 정치, 경제, 사회적 기반과 체제를 완성해 조선 초기 문화의 꽃을 피웠다고 평가한다.

 

▲ 성종대왕릉 앞에서 기념사진 한장은 남겨야지...

 

▲ 친구도 한장~

 

▲ 나도 한장 담아야지~

성종대왕릉을 뒤로하고 정현왕후 릉으로 향한다. 

 

▲ 가을이 살포시 내려앉은 정릉 오솔길 따라 걸으며 지척 언덕위에 있는 정현왕후 릉에 도착했다.

 

▲ 정형왕후(貞顯王后)릉 안내판

정현왕후는 신창(新昌) 공아(公衙)에서 출생하여 1473년(성종 4) 대궐에 들어가 처음 숙의(淑儀)에 봉하여졌고, 1479년 6월 연산군의 생모인 왕비 윤씨가 폐위되자 이듬해 11월에 왕비로 봉하여졌다.

 

 정형왕후(貞顯王后)릉

정현왕후는 1497년(연산군 3)에 자순(慈順), 1504년에 화혜(和惠)라 존호되었다. 1530년(중종 25) 8월 경복궁에서 죽었으며, 1남1녀를 두었으며, 시호는 자순화혜소의흠숙정현왕후(慈順和惠昭懿欽淑貞顯王后)이고, 능호는 선릉(宣陵)이다.

 

 정형왕후(貞顯王后)릉 앞 석불들이다.

 

정현왕후릉 앞에서 기념으로 사진한장 카메라에 담는다.

 

 정현 욍후릉을 내려오고 있는 두 연인~

 

 갈림길에서 정릉 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정릉 안내 문이다.

 

우리는 릉 위 까지 올라가지 못하고 아래에서 바라본다.

 

제실이다.

 

▲ 중종의 릉인 정릉(靖陵)이다

중종은 그야말로 격변기의 왕이다. 그는 성종 19년(1488) 연산군의 이복동생으로 태어나 진성대군에 봉해졌다. 하지만 1506년 박원종 등이 중종반정을 일으켜 연산군을 폐위하고 13세인 그를 왕으로 추대했다. 반정을 주도한 사람은 성희안으로, 평소 연산군의 방탕과 폭정에 불만을 품고 있다가 풍자적이고 훈계적인 시를 지어 올렸는데 이것이 연산군의 미움을 샀다. 연산군은 당시 이조참판 겸 부총관이었던 성희안을 종9품 무관인 부사용에 임명했다. 현대로 치면 장군에서 일등병 정도로 강등당한 것이다.

 

▲ 정릉(靖陵)

조선 제11대 중종(1488~1544)의 능인 정릉이다. 선릉과는 달리 사람들의 방문이 많지 않은 곳에 있다. 그러나 능역의 경계를 벗어나면 강남 중심부답게 주위가 매우 번화해 묘한 대비를 이룬다.

 

홍살문 입구에 우측으로 어로와 좌측으로 향로가 표시돼 있다.

 

이렇게 선.정릉을 둘려보고 릉을 뒤로하고 우리는 매표소로 돌아왔다.

근데 내일 백령도로 떠날 예정인데. 펜션 사장님께서 연락이 왔다. 내일,모래 날씨(파도)가 좋지않아 출항이 어렵다고 한다. 이를 어쩌나? 하지만 하늘이 하는일을 누가 막으랴...해서 일정 시간계획을 대폭 수정이 불가피 했다.

우리는 선.정릉역에서 3호선 지하철을 타고 오늘 두번째 탐방지 롯데월드 전망대가 있는 잠실역으로 향했다.

 

사진/글 : 산과벗(김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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